♣︎ 하심(下心) ♣︎
- 자신을 낮추는 마음의 힘 -
결혼식 주례사 중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수필가였던 피천득 선생이 남긴 일화다.
팔순이 넘은 어느 해, 제자 몇 명이 명절을 맞아 세배를 드리러 찾아왔다.
정담을 나누던 중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사모님과 평생 그렇게 정답게 사셨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자녀들까지 훌륭히 길러내셨습니까?”
그때 피천득 선생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거야 우리 집사람이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라 그렇고, 자식들도 나에게 과분해서 그렇지.”
서울대 교수이자 명성 높은 문필가였던 그가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를 두고, “나보다 과분하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한마디 속에는 관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저울 하나 씩을 지니고 산다.
상대가 나보다 낫다, 못하다, 더 기여한다, 덜 기여한다며 끊임없이 계산하고 비교한다.
만일 배우자를 두고 “내가 더 잘났는데 손해 보고 산다.”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가 편안할 리 없다.
부모가 자녀를 향해 “이만큼 해줬는데 왜 기대만큼 못하느냐?” 고 여긴다면 가정은 자연히 긴장과 불만으로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어 “저 사람이 나에게 과분하다.” 고 여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작은 배려에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조금 부족한 모습도 너그러이 이해하게 된다.
관계는 비로소 따뜻해지고 평온해진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가짐을 '하심(下心)’이라 부른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태도다.
이는 단순한 겸손을 넘어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삶의 방식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모든 갈등과 고통이 ‘자기중심적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하심(下心)은 그 집착을 내려놓는 첫걸음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제시한다.
타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관계 만족도와 신뢰를 높이고, 가족과 조직의 유대감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결국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 시키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80점을 받아 오면 “나는 70점만 받아도 만족했을 텐데, 정말 잘했다!”고 격려한다.
또 다른 부모는 90점을 받아 와도 “왜 100점을 못 받았느냐?” 고 다그친다.
결과는 분명하다.
전자의 아이는 자존감과 의욕을 키우고, 후자의 아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자란다.
기대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눈높이를 높일 때 사랑도, 교육도, 인간관계도 건강 해진다.
피천득 선생이 불교 신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말과 삶은 이미 하심의 정신을 온전히 품고 있었다.
“나보다 과분한 사람들 덕분에 살아왔다.”는 그의 고백은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보여준다.
우리가 조금만 더 자신을 낮추고 조금만 더 상대를 귀하게 여길 수 있다면 가정도 사회도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
하심(下心)은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현실적인 삶의 기술이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곁에 있는 사람을 이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당신은 나에게 참 과분한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 마음이 우리 인생을 바꾸기 시작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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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삶 !🌴
- 영화배우 신영균의 멋진 선택-
누구든지 세상에 올때도
빈손!
세상을 떠날때도
빈손이다.
누구든지 세상의 명이
다하면 떠나야 한다.
그리고 떠날때!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가?
돈일까,
명예일까,
아니면 이름일까.
나는 오늘
한 사람의 선택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97세,
이 나이에
여전히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내어놓는’ 사람이 있다
영화배우 신영균.
그는 이미
500억 원 상당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기부했고
100억 원 상당의 대지를
모교인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그는
서울 강동구 한강변
자신 소유의 4,000평 땅을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해
내놓겠다고 했다
그 땅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니다.
60~70년대
한 해에 많게는 30편의 영화를 찍으며
온몸으로 일궈낸
삶의 결실이다
연산군,
상록수,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름.
그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한 시대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를 더 깊이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다
술, 담배, 도박,
그리고 유혹들.
그는 늘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을 지켜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남기려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그는 말했다.
“이제 내가 나이 아흔을 넘겼으니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그저 남은 거 다 베풀고 가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내 관 속에
성경책 하나만 넣어 달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쥐고 살려고 하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지 못해
괴로워하는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가진 것’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이라는 것을
그가 마음에 새긴 말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며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 고백은
성공한 사람의 말이 아니다
‘깨달은 사람’의 말이다.
난 마지막에 무엇을
남기고 묘비에는 어떤글을
남길것인가?
2026년4월10일
萬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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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용신 vs 태양신(네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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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에게 어떤 나라인가?
조선시대 부터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1. 지배기간 비율이
중국 503년 : 일본 36년이다.
우리에게 일본이 더 큰 원수국가인가?
중국이 더 큰 원수국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중국 503년 : 일본 36년으로 중국이 훨씬 더 큰 원수다.
2. 중국은 한국에겐 천년 원수다.
3. 일본은 한국에 부스러기라도 남겼지만, (부스러기가 아니라 근대산업화 기반과 기술, 재산을 남겼다)
암튼 일본은 부스러기라도 남겼지만, 중국은 침탈만 해갔다!!
■ 일본에 위안부가 있었다면 중국은 50만에 이르는 '환향녀'가 있다!
환향녀 뿐인가?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당시 조선 인구의 10%를 청으로 끌고 갔다.
걸핏하면 우리의 처녀들을 중국놈들이 공물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중국은 사실상 1392년 이성계의 조선건국에서
부터 1895년 시모노세끼 조약때까지 503년간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왕조는, 이성계가 나라이름도 명나라에 조선과 회령 중에서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성계의 쿠데타는 잘못된 것이고 망국적 치적이므로,
최영 장군의 명나라
정벌계획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루(모화관)을 세우고,
영은문의 전신 홍살문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 오다가, 중국의 요구로 1539년 중종 때
■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영은문'으로 이름까지 바꿔 세운 것이다.
■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이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간
나라였다.
치욕적이게도 중국 황제가 승인해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들의 진이 빠졌다.
■ 심지어 중국 사신의 서열이 조선 왕보다 높았다.
사신이 한 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다.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사신에 임명된 者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 왕이 나가 영접하던 곳이 영은문이었다.
중국 황제의 은혜를 맞이 한다는 것이다.
■ 1894년 발발한 일본과 청 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일본 이등박문과 중국(청) 이홍장 간의 조약으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한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 조선은 중국의 503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가 있었기에 일본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될 것이다.
■ 그리하여
서대문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바꾸고
■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독립이라 하면
일본으로 부터 독립만 아는데,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과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온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3년 동안 지배받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을
존경하고, 반일을 내세우는 주사파 운동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준 막대한 피해는 묻히고 잊혀졌다.
1950년 6·25 남침을 김일성과 모의하고
적극지원하여 우리국민
수십만명을 살상한
■ 마오쩌둥을 존경한다는 정신나간 전직 대통령까지 등장했다.
■독립문에 대한 무식과 오해가
희극이 돼버린 사례가
■ 문재인의 2018년 3·1절 기념식이다.
대통령이 3·1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독립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없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우리 국민들의 비극이다.
대통령이란 자가 독립문이 일본 독립문으로 알고있으니 개가 웃을 일이다.
■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일본이고,
■ 우리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미국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겐 8.15 광복절뿐 아니라
1895년 4월17일도
광복절임으로 둘 다
기념해야 될 것이다.
■ 중국과의 관계는
오래된 역사이니 잊자고 한다면,
■ 일본도 이젠 잊고, 극일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과거 좌파 정권의 자칭 지도자라 했던 자들의 경우,
무식하면 용감은 하겠지만,
국민과 국가를 이끌 지도자 될 자격이 훨씬 뒤떨어졌던 것이 이제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 역사 이래 침략하고, 빼앗아 가기만 했다!
무식하고, 사악하고,
멍청하고, 찌질한, 바보들!
그래서
공산 사회주의 선전선동에
현혹되어 동조하고 부화뇌동하는
일부 좌경세력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일본이 시켜주었고,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은 미국이 시켜주었음을 알고
우리 나라 현재의 안전과 후손들의 안녕을 위하여 이런 점들을 잘 분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박 광 수 (경남매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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