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금요일 맑음. 정범진 등 편저 《漢詩詩語用例大辭典》을 입수하다.
오전에 퇴계학연구원에 나가서 주자가 그의 스승인 연평 땅의 이통李侗에게서 받은 편지를 모아둔 《연평답문》의 본문 윤독에 들어가기 이전에, 송나라 유학자들에 관련된 자료 몇 가지 중(송사 도학전,송원학안 등등)에서 연평선생에 관련된 기사를 초록하여 가지고 와서 함께 읽었다.
그는 벼슬을 한 것도 아니고, 또 저서도 별도로 남긴 것이 없이 오직 주자를 유학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름을 남긴 것이니 그에 대한 자료도 많지가 않아서 오늘 한 시간 반만에 다 읽고 검토하여 볼 수가 있었다.
오후에는 한시협회의 정범진 회장을 예고도 없이 찾아갔더니 마침 그의 오피스텔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주관하는 그 일문의 화수회에서 내는 잡지에 무슨 글이라도 좋으니 쉽게 쓴 글 한 편을 좀 투고하여 달라고 해서 몇일 전에 부탁하기에, 〈퇴계선생과 두향〉이란 기생과의 관계에 대한 우견을 적은 졸문을 1편을 이메일로 보냈던 것을 받아 보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받아서 다 읽어 보았다고 하였다.
개인 문중에서 내는 회지인대도 일년에 몇 차례씩 낸다고 하고, 원고료도 준다고 하였다. 이미 낸 책들을 몇 권 주어서 살펴보니 책도 매우 산뜻하게 내고 있다. 참 좋은 일로 생각된다.
마침 몇년전에 자기가 후배 몇 사람을 데리고 만들었던 《漢詩詩語用例大辭典》이 얼마전에 출간되었다고 하면서 보여주기에, 우선 한 권을 주머니를 털어서 있는 대로 내어 놓고서 들고 왔다. 그냥 가지라고 하였지만 정가가 13.5000원이나 하는 책이고, 이 책을 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방금 싫건 얻어들은 뒤라 차마 공짜로 얻기가 매우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이 책은 중국과 한국에서 지어진 한시 속에서 사용된 시어들을 가나다 순으로 배열한 뒤 각 단어에 대하여 글자 마다 평칙을 표시하고 간단하게 뜻풀이를 한 뒤에, 중국인 시에서 사용된 예와 한국인 시에서 사용된 용례를 그들이 지은 시에서 2구 정도씩 따와서 원문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시에 대하여서는 이와 비슷한 책이 중국에는 매우 많고, 일본에서도 이러한 책이 있을 것이지만, 같은 말에 대한 한국 한시의 용례를 동시에 병렬하고 있다는 것이, 그런 책에서는 없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생각된다. 정회장(전 성대 총장, 84세)이 고령에 큰 일을 한 것이 정말 존경스럽다.
11월 1일 수요일 서예원書藝院에 가 보다.
오늘은 딴 일과가 없어 오전에 초당서예원에 나가서 거기서 상주하면서 역시 서예를 지도하고 있는 초당선생의 부인과 점심도 함께 먹고, 오후에는 붓 끝을 바로 세워서 중봉을 유지하면서 빨리 빨리 원을 그려 가는 연습을 좀 하였다. 이런 것을 시키는 것을 보니 앞으로 행초서를 쓸 때 붓을 종횡으로 휘둘러도 붓끝이 흐트러지지 않게함인 것 같았다.
지난 달과 이 달의 회비를 합하여 드렸더니, “오셔서 한문 어려운 것을 많이 가르쳐 주시는데, 무슨 회비를 받겠습니까?”하면서 사양을 하였다. 매우 미안하기는 하지만 고맙기도 하다. 앞으로 여기서도 내가 할 역할이 더러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저녁 때는 모처럼 강남의 선릉역 곁에 있는 어떤 행사 위주 건물에서 열린 퇴계학진흥회 월례 발표 및 회식에 나가서 발표도 듣고, 저녁도 같이 먹고, 또 뒷풀이까지 보고서 돌아왔다. 이 모임은 지금까지 늘 조찬을 하면서 하였기 때문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저녁에 한다고 하고, 또 망년회까지 겸한다고 하니 한번 나가 보았다. 대개 퇴임한 유림의 후예들이 많이 참석하는 곳이다. 관계, 정계, 재계 등에서 활동하던 이름 있는 분들과 옛날 문벌이 좋았던 집안 후손들이 많이 모이는 일종의 상류층의 사교단체 같은 곳이다. 회비도 만만치 않으며 더러 찬조비까지도 많이 모은다. 여기서 모인 경비로 퇴계학연구원 같은 곳을 후원하고 있으니, 그것은 목표가 뚜렷하고, 참 좋은 일로 생각된다.
학계에 속한 우리 같은 사람이야 찬조금까지 낼 형편은 못 되지만, 더러 월례 발표를 하여 주는 경우가 있어 겨우 체면치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단체를 통하여 모은 기금으로 학술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니, 결국은 우리 같은 서생들을 도와주는 고마운 곳이다.
그러나 서생들 중에는 기질에 따라서 이런 곳에 나와서 잘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역시 후자에 속할 것이지만, 옛날의 선비들이었다면 시를 지을 때는 아주 혼자 떨어져서 호젖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사회의 조직을 중시하고 그런 것을 잘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독서인의 사명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으니까,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아주 중시하는 이런 모임에도 역시 잘 참석하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전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더니, 오히려 몇일 전에 겨우 떨어졌던 독감이 다시 도지는지, 춥고 기침이 나와서 견디기 어려워진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