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1.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
마 28:19~20
〈 어거스틴과 조개 껍데기 〉
어거스틴이 하루는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백사장에는 서너 살 아이가 웅덩이 하나를 파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조개껍데기 하나를 집어들고 바닷가로 뒤뚱뒤뚱 걸어갑니다.
바닷물을 조개껍데기에 담아 와서 자기가 파 놓은 웅덩이에 붓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어거스틴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야 뭐하고 있니?”
아이가 대답합니다. “저 바닷물을 모두 퍼다가 여기에 담을 거예요!”
귀엽지만 엉뚱한 대답에, “이 작은 웅덩이에 저 바닷물을 다 담을 수 있겠느냐?”
이 질문에 꼬맹이는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당돌하게 대답합니다.
“할아버지도 ‘삼위일체’를 할아버지 머릿속에 다 담으려 하잖아요?”
이 대답에 잠시 멍해졌는데, 그때 “펑” 소리가 났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앞을 보니, 아이와 웅덩이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당시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를 깊이 연구하는 중이었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삼위일체, 삼위일체를 규명하고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잠시 머리를 식히러 바닷가에 나갔다가 이 환상을 체험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별명은 “진리의 연인”입니다. 별명 중 최고의 별명이 아닐까요?
그는 죽을 때 유언을 남깁니다.
“미련하게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했다!”
1,50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삼위일체의 신비가 모두 풀렸을까요?
오늘 설교 제목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 유대인의 업적 3가지 〉
유대인은 구약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합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주전 2,100년경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거기서부터 여호와 하나님과 유대인의 길고 긴 신앙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유대인은 여호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 유대인, 유대교가 인류 역사에 끼친 긍정적인 것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죄의식을 깨우쳤습니다.
둘째, 안식일을 알렸습니다.
셋째, 유일신을 알렸습니다.
첫째, 죄의식입니다. 성경이 “너희는 죄인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성경이 선포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둘째,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개념이 없다면, 인간은 휴식이 필요함을 몰랐을 겁니다.
미국 서부 개척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기독교인들은 마차를 타고 서부로 달려가면서 7일에 하루는 꼬박꼬박 쉬었습니다.
안식일 개념이 없는 이들은 줄창 달렸습니다.
멈추면 손해라고 인식하고 달리다가, 말도 지치고 사람도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셋째, 유일신입니다. 인류의 정신사를 보면 온갖 잡신들이 창궐합니다.
그러한 중에 참신, 진정한 신, 창조주는 오직 한 분이라는 유일신 개념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업적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구약성경의 위대함이고, 구약시대의 위대함이고, 유대인의 위대함입니다.
☞ 그런데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 유일신 하나님의 삼위일체 신비 〉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일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때부터 유대인이 세운 유일신 사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됩니다.
유대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유대인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두 분이 되는 것으로 비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유대인, 특히 바리새인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신성모독’입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태도, 한편 이해합니다.
유대인은 유일신 사상을 자기네 머릿속에만 담으려 했던 것이지요!
어쩌면 어거스틴이 삼위일체를 자기 머릿속에 담으려 했던 일과 유사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크신 분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 예수님의 ‘성령 하나님’ 선포 〉
유대인이 어렵게 도달한 유일신 사상, 그 속내는 사실 그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은 계시하십니다.
그 시대에 필요한 만큼씩,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만에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시고 40일간 지상에 더 계시다가 제자들 보는 앞에서 승천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이러한 자기의 사역을 제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성부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가야한다. 거기서 너희를 위하여 중보할 것이다.
선포하면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내가 너희 곁을 떠나 성부의 보좌 우편으로 가지만,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
“보혜사, 성령하나님께서 너희 곁으로 와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지나서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합니다.
120명의 제자가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보좌’에 계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렇게 계시는 삼위가 한 분이라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의문이 터져 나오는 것은 일견, 당연합니다.
서기 4세기,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논쟁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세 위격, 한 본체”로 결론을 내립니다. 이 말이 곧 “삼위일체”입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론이 이렇게 난 것은 신약성경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명명백백하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
분명한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크리스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장 13절 말씀은 오늘날 예배를 마치면서 행하는 축도의 근거본문이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계시는 곳 〉
2천 년 전, 신약성경의 완성으로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선포되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세 위격, 한 본체” “삼위일체”
니케아 공의회 이후 30년쯤 지나 어거스틴이 탄생합니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연구를 거듭하다가 ‘조개껍데기 환상’으로 일단락합니다.
그 이후로 성경의 삼위일체 신학은 계속됩니다.
삼위일체 신비에 근접하고자 신학의 전진은 계속 이어집니다.
삼위일체 신비로부터 쏟아지는 은혜가 무궁무진하거든요!
이 은혜는 모든 크리스천,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큰 은혜를 끼칩니다.
〈 삼위일체의 은혜 〉
하나님의 계심이 ‘삼위일체’ 진리는, 모든 ‘있음’에 대하여 새롭게 돌아보게 합니다.
‘있다’ ‘존재한다’ 해서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에는 신비가 가득합니다.
과학은 사실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뉴턴의 정상우주론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거쳐 지금은 양자역학의 시대입니다.
물질의 최소단위는 ‘원자’입니다. 더 이상 잘게 나눌 수 없는 상태가 원자입니다.
이 원자는 그냥 있는 사물이 아닙니다. 모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됩니다.
이를 규명하는 이론이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은 ‘있음’의 신비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아직도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쩌면 하나님 자신의 존재형식을 취하셨을 것입니다.
‘있음’ ‘존재’의 실상을 규명하는 일은 인류 역사가 지속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존재의 규명이 끝내 명쾌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존재의 신비는 끝이 없습니다.
아주 작은 ‘원자’의 존재 양식을 규명하는 일에도 인류의 역량은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계심에 대하여 인류가 ‘삼위일체’라는 것에 근접한 것만도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었습니다.
사람의 존재 양식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살아생전에는 육신을 가졌으니 육신에 생명과 영혼이 함께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달라집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영의 세계로 귀의합니다.
벌써 두 곳으로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살아생전 있던 세상에서는 유족들의 마음속에 남게 됩니다.
삼위일체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신비를 상징하면서 우리를 존재의 신비로 안내합니다.
☞ 존재하는 것들의 신비를 깨닫고,
☞ 감사하며, 감동하며, 겸손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