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해]
38년 된 병자와 성공 (요 5:1-9)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이 시간에 “38년 된 병자와 성공”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성공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며 인내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 가장 쉽게 떠오르는 명언으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말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에디슨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9,999번의 실험을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실패를 1만 번째 되풀이 할 셈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게 아니고, 다만 전구가 안 되는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 에디슨이 자그마치 1만 번의 실패를 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섰기 때문에 전깃불을 발명하여 인류에게 밝은 빛을 전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더 지독한 사람을 봅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입니다. 그는 38년 동안 실패하면서도 성공을 노렸던 사나이입니다. 그는 발병한지 자그마니 38년 동안 거의 움직지 못하는 중병이고 보호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 못을 떠나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 병을 나으려는 자기에게 돌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끝까지 기다린 사람입니다. 성경이 38년을 강조한 이유는 그의 중병보다 그만큼 그의 끈질김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걸 아시고 찾아오셔서 그가 평생 소망하던 건강의 소망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성공이 무엇인 줄 아세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성공입니다. 실패하던 삶도 예수 만나면 성공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인생에 성공하고,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대로 그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가 됩니다. 그래서 고전1:30-31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예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더 깊이 만나세요.
예수를 만나는 것이 성공의 비밀입니다.
1. 예수 만나면 경쟁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1-3절에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여기 "많은 병자"라고 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예루살렘성의 북쪽의 양문 곁에 있는 연못으로 온천수가 간혹 솟구치는 간헐천으로 이곳에서 성전에서 쓸 양들을 씻었다고 합니다. 이 못은 폭이 50m 길이가 95m 되는 꽤 넓은 직사각형이었습니다. 축구장 규격이 90×45m 인데 축구장만 하거나 보다 컸습니다. 그리고 중앙에 기둥이 있고 둘레에 다섯 기둥이 있는 큰 행각이 있었습니다. 큰 연못에 둥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있었습니다.
병자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물이 솟구치거나 움직일 때 거기 먼저 들어간 사람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이 한 번 동하면 그곳은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그 경쟁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보다 건강해야 하고 경쟁자가 적어야 하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지 경쟁자가 많으니 이 병자는 38년 동안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경쟁이 심해도 예수 만난 사람은 그 경쟁이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써주시기 때문입니다. 구국운동하시는 어느 목사님도 초등학교 때 학반에서 꼴지였답니다. 성적도 수우미는 볼 수 없고 양양양 가가가 이게 전부였고, 교사의 평가도 얼마나 나쁘든지 바보요 구제불능이라는 뜻으로 적힌 처참한 아이였는데 예수 만나고 유능한 목사가 됐습니다. 그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아 성적표를 복사해 와서 보여주는 걸 보았습니다. 예수 만나면 똑똑해집니다.
에디슨도 학교에서 못 가르치겠다고 퇴학시켰지만 하나님 만나고 세계적인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고전1:1-2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경쟁을 두려워 마시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입니다.
2. 예수 만나면 나의 부족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5-7절에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여기 38년 된 병자의 형편이 잘 나타납니다. 얼마나 아프고 약한지 38년 동안 한 번도 온천에 뛰어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경쟁자가 되는 병자들이 이렇게 소개됩니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 이들의 공통점은 물에 뛰어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소경이니 물이 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거니와 쉽게 갈 수가 없습니다. 절뚝발이 역시 걷지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깁니다. 그리고 혈기 마른 사람은 사지는 멀정해도 기운이 없어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다가는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집니다. 이들이 소개된 것은 38년 된 병자의 형편이 더 심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형편이 어려워도 예수 만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배경, 경제적인 배경, 출신 학교나 지역의 배경, 선후배 혹은 친구, 혹은 지능이나 건강, 화려한 경력 등이 갖추어져 있으면 성공의 좋은 조건이 되지만 예수 만나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성공에 아무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하나님께서 부하게 하시면 부자가 되고, 미천해도 하나님이 높이시면 영광의 자리에 앉고, 하나님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형편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삼상2:6-8에서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했습니다.
3. 예수 만나면 사회적인 굴레도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8-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이 말씀대로 예수님이 치료하신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얼마나 준수하느냐 하면 안식일을 위한 안식일이 될 만큼 끔찍하게 지킵니다.
이스라엘 중간사에 보면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을 침략할 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킨다고 싸우지도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안식일을 주셨는데 안식일을 위한 안식일이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 아니라 불행일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성경도 모르는 앞뒤 꽉 막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다고 공격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파도 치료해서는 안 되고 짐승이 구덩이에 빠져도 건지기를 꺼려했습니다. 이런 꽁꽁 얼어 붙고 경직된 사회에서 의식과 외식과 거짓만 발달하고 정죄와 심판만 있는 정나미 떨어진 사회에서는 살아가기도 힘들거니와 성공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율법적인 사람들과 신앙생활하면 정말 힘듭니다.
사회적 굴레의 힘이 대단합니다. 형식과 제도와 전통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좋은 전통은 큰 도움을 주지만 나쁜 전통은 사람을 죽입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초기 봉건주의 사회에서 신앙생활하기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이렇게 잘못된 사회적 굴레에서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사람들은 안식일이 오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온천의 물이 솟구쳐도 한 사람도 뛰어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위급환자들은 안식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속히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안식일이 아니라 불행일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떤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어도 예수 만나면 삽니다. 속된 표현으로 개천에서 용 난다고 아무리 나쁜 환경일지라도 예수 깊이 만나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바울 보세요. 그 시대에 태어나 평생 유대인의 저항 속에서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불평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예수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더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됩니다. 성공합니다. 승리합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하나님 더 잘 경외해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38년 된 병자가 모든 경쟁과 자기 형편과 당시 제도와 상관이 없이 병고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기쁘신 일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