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란 시인의 시집 『눈 맑은 길을 가듯』
약력
1983년 《시조문학》 천료
시조집 《너는 나와 달라서》
《지금은 어떠세요》
《뿌리가 이상하다》《꽃물이 스며들어》
《푸른 별로 눈 뜬다면》
현대시조100인선 《너 참 잘났다》
·한국문협작가상, 경남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등 수상
이메일 · minerva2101@hanmail.net
시인의 말
눈 없는 미로로부터
손잡아 이끌어 줄
햇빛 같은 시조를 꿈꾸며
2024년 가을
윤정란
초승달
아무도 열지 못한 자물쇠가 있어서
열쇠만 있으면 꽃이 활짝 필 텐데
뜨거운 눈빛 사이로 웃고 가는 초승달
봄은 가고
그때 꽃이었다면 바람 탓을 했을까
칼이 벤 맨살에다 소금꽃을 피우면
꺾어진 뿌리의 하늘 떠난 봄이 오려나
허튼 허기
길 위든 길 밖이든 눈 감으면 벼랑이다
멍이 든 햇살 물고 쪼개진 별빛 모아
뱁새가 비틀거리며 황새 쫓기 바쁘다
반 란
세상 사람 모두가 일등만 해야 할까
꼴찌며 중간 있어 빛나는 이름인데
입 맞춘 무한경쟁이 누굴 위한 공정인가
여 론
거울을 깨트리자 하늘이 쪼개졌다
촛불도 태극기도 회오리에 휘말려
안개가 계속 쌓이고 붉은 입만 커진다
해설
농경적 상상력과 성스러운 자연
-윤정란 단시조 미학의 세계
황치복 문학평론가
윤정란 시인은 1983년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니까 어느덧 시조를 쓴 지가 40여 년이 넘었다. 그동안 시인은 첫 시집 《푸른 별로 눈 뜬다면》(토방, 1999)을 비롯하여 5권의 시조집과 1권의 시조선집을 발간한 바 있다. 이번 단시조집은 시인의 7번째 시조집인 셈인데, 40여 년의 시력이 증명하듯이 숙성된 시조의 함축미와 절제의 시 형식이 시인의 시적 성숙을 말해주고 있다.
비약과 생략, 절묘한 비유와 암시를 통해서 압축과 절제, 응축과 여운의 단시조 형식을 달관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농사를 짓는 시인의 일상을 반영하는 농경적 상상력은 전통적인 자연의 의미와 가치를 복원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대한 탐구가 전혀 낡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러한 사유가 구체적 삶의 현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또한 시인의 이러한 농경적 상상력에 의한 자연의 탐구는 '오래된 미래'라는 차원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가치와 성스러운 의미의 영역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