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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1:15 -
이렇게 그들이 막은 뒤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내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시도 주여 그러하오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16- 다시 두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17 -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 문맥 분석----------------------------------->
++ 세 번의 질문마다 달라지는 '세 단계의 목양 사명-----> '주님은 단순히 같은 말을 기계적으로 세 번 반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대답 뒤에 주님이 주신 명령은 분명한 영적 단계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Feed my lambs)"
대상:막 회심한 영적 젖먹이들, 연약한 어린아이들(lambs).
사명: ---> (말씀의 꼴을 먹이는 양육). 넘어진 자들을 세우고 말씀의 순수한 젖으로 돌보는 기초 사역이다.
두 번째: "내 양들을 치라 (Shepherd my sheep)"
대상:자라난 성숙한 양떼(sheep).
사명:----> 다스림, 인도, 영적 보호와 감독. 이리와 늑대가 들끓는 세상 속에서 교회를 보호하고 진리로 바르게 이끄는 목회적 권징과 통치다.
세 번째: ----> "내 양들을 먹이라 (Feed my sheep)"
대상:온 무리의 양들, 주님께 너무나 소중한 양떼.
사명:----> 다시(영적 양식의 공급). 다스림과 권위보다 가장 궁극적인 목자의 본질은 결국 '죽을 때까지 양떼에게 참된 생명의 말씀을 먹이는 일'임을 최종적으로 전달하신다.
* 주님은 베드로의 과거 세번 부인한것을 청산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워질 교회의 전 영역(어린 신자부터 성숙한 양 떼까지, 먹임과 보호와 온전한 공급)을 감당할 목자의 직무를 세 단계로 베드로에게 단계별 중요함을 가르치신다,
*세번의 질문은 세번 부인한 베드로를 회개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한 직후 이미 나가서 심히 통곡(wept bitterly)하며 철저히 자복했다 (마 26:75).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 당일 엠마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기 전, 이미 베드로와 단독으로 개인적 만남을 가지셨다 (눅 24:34, 고전 15:5).
* 주님은 베드로를 정죄하거나 회개시키려 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완전히 비워진 그릇'에 주님의 사명과 진리의 본질을 담아 주셨다,
* 인간적 결의"에서 "주님의 전지하심"으로의 이동 (영적 해체와 재건)17절에서 베드로가 세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 성경은 그가 "근심하여(grieved)"대답했다고 기록한다.
+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Joh 21:17)
* 주님이 세 번이나 몰아붙이듯 물으신 진짜 영적 타겟은 베드로의 '마지막 남은 자아의 껍질'을 완전히 벗겨내기 위함이었다.
* 첫 번째와 두 번째 대답에서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오리이다(Yea, Lord)"라며 여전히 자신의 입술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려 했다.
* 그러나 세 번째 질문에 이르러 베드로는 자신의 결단, 자신의 감정, 자신의 확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항복하는 고백이다.
* 주님, 제 속에는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랑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의 전지하심(omniscience) 앞에 제 부끄러운 마음을 그대로 열어 놓을 뿐입니다."
* 주님은 베드로를 곤란하게 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에 차 있던 베드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오직 주님의 전지하심과 은혜만을 의지하는 목자로 다시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세 번의 물음으로 그의 깊은 심령을 확인 하셨다.
++ 세 번 부인해서 세 번 물으셨다"는 것은 설교의 흥미를 끄는 평면적인 비유일 뿐이다.
주님의 참된 심정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뒤끝이나 질책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취소되지 않는 완전한 부르심(세 번의 확정)과, 교회를 *( 온전히 돌보기 위한 목양의 삼중적 사명(먹이라-치라-먹이라), 그리고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고 주님의 전지하심 앞에 무릎 꿇는 참된 종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거룩한 영적 수술이었다.
** 영적 적용으로 분석 --------------------------->
+ 요나의 아들 시몬아 내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단순히 세상의 물질이나 직업을 버리라는 율법적 교훈을 넘어, '예수님이 친히 기적으로 베푸신 은혜의 선물들를 시각적 매개체로 삼으셨다 오병이어의 표적과 정확히 겹치는 두 요소 (빵과 생선)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기적에서 사람들을 먹이셨던 것은 다름 아닌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loaves and fishes)였다.
* 친히 준비하신 조반 (9절, 12-13절):제자들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해변에 오르자 예수님께서 이미 숯불 위에 생선(fish)을 놓으셨고 빵(bread)도 마련해 두셨다.
* 예수님은 이 빵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손수 나누어 주셨다. 이 식탁은 제자들의 수고로 차려진 것이 아니라, 오병이어 때처럼 전적인 주님의 기적적 공급과 긍휼로 차려진 식탁이다.
+ "이것들(these)은 ----> '선물'인가, '주신 분'인가?베드로의 눈앞에는 두 가지가 놓여 있었다:
* 방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끌어올린 153마리의 큰 물고기들
* 숯불 위에서 맛있게 구워져 배를 채워준 빵과 구운 생선들
이 모든 것은 분명 주님이 베푸신 놀라운 이적이자 은혜의 결과물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주님이 이것들 보다 나를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심정은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 표적에 머무는 신앙 vs 주님을 따르는 신앙:-----> 많은 이들이 기적의 떡과 물고기를 먹고 배부른 까닭에 주님을 쫓아다녔으나(요 6:26), 십자가 앞에서는 다 떠나갔다.
* 기적으로 배를 채운 자리에서, '내 양을 먹이라'는 미래적 사명으로 주님의 질문은 과거와 현재의 식탁에 멈추지 않고 즉시 미래의 사명으로 직결된다.
* 내가 너를 먹였으니, 이제 너는 내 양을 먹이라:예수님은 기적으로 베드로의 배를 빵과 생선으로 배부르게 먹여 주셨다 그리고 그 빵과 생선을 가리키시며 물으신 뒤, 곧바로 "Feed my lambs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고 명령하신다.
* 수혜자에서 공급자로의 전환:-------> 너는 이제 해변에서 내가 차려주는 생선과 빵을 얻어먹는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내가 생명의 빵으로 너를 먹였듯이 너 또한 굶주린 내 양 떼를 먹이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숯불 가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이것들(these)'은 방금 주님이 기적으로 잡게 하신 153마리의 물고기와, 주님이 숯불에 친히 구워 건네주신 따뜻한 빵과 생선이었다.
그것은 주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이 담긴 선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내가 베풀어 준 이 은혜와 기적의 산물들보다, 정말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많은 성도들이 주님이 주시는 축복과 물질, 응답의 빵과 물고기에는 열광하지만, 그것을 주신 주님 자신을 사랑하는 자리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 주님은 베드로가 기적의 빵과 생선에 취해 갈릴리에 주저앉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내가 너를 먹였듯이, 이제 너는 일어나 내 양들을 먹이라!'
* 예수님은 그 은혜의 식탁을 딛고 영원한 미래의 영적 사명으로 나아가길 원하셨습니다.“
* 베드로는 육신의 빵과 물고기의 한계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한 제자였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고 명하셨을 때, 베드로가 이를 결코 육체적인 식탁 봉사나 물질적인 빵과 생선을 나누어 주는 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성경적 근거는 매우 확고하다.
1. 요한복음 6장에서 베드로가 직접 내린 고백: "영생의 말씀"오병이어 표적 직후, 사람들은 육신의 빵을 더 얻어먹기 위해 주님을 쫓아다녔다.
* 그때 주님은 썩어질 양식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 곧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족하여 떠나갔다.
그때 열두 제자에게 주님이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셨을 때, 대표로 나서서 참된 양식의 본질을 선언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다.
요6:68 -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되,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 베드로는 이미 생명의 참된 양식이 기적으로 만들어낸 보리빵이나 물고기가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기록되고 선포되는 말씀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2. '사람을 낚는 어부'에서 '말씀을 먹이는 목자'로의 완성------>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이 그를 부르실 때 약속하신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였다(마 4:19).
*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일:----죄와 죽음의 바다에서 영혼들을 복음의 그물로 건져 올리는 구원의 사역(칭의/복음 전파)다.
* 목자의 일:----> 건져낸 양 떼가 굶주리지 않고 영적으로 자라나도록 마르지 않는 하늘의 꼴을 먹이는 양육의 사역(성화/말씀 공급)입니다.
* 베드로는 주님이 차려주신 마지막 조반의 빵과 생선을 먹으며 깨달았을 것이다.
* 주님이 친히 자신을 살리시고 먹이신 것처럼, 이제 자신이 맡아야 할 사역'은 사람들의 육신을 채우는 기적의 빵 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들에게 무한히 공급하는 일임을 알았다.
3.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서 증명된 베드로의 사역 방향 -----> 베드로의 이후 행적은 그가 주님의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명백히 보여준다.
* 사도행전 6장의 선언 (식탁 봉사와 말씀 사역의 분리):----->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와 상을 섬기는 일로 갈등이 생겼을 때, 베드로와 사도들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 행6:1-4 - 그 당시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매 그때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 앞으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상을 섬기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골라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 하리라, 하매
* 베드로전서의 목회 서신:말년에 베드로가 아시아의 흩어진 성도들과 장로(목자)들에게 편지할 때 쓴 표현 역시 정확히 이 말씀을 지지한다
벧전 2:2 -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5:2 -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여기서 장로는 목사직무다)
* 베드로는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 하셨을 때, 다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갈릴리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주님께서 이제 맡기시는 사명은, 죄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영혼들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꼴, 곧 '영생의 말씀'을 먹이는 참된 목자의 사명임을 분명히 알았다.
* 육신의 빵은 먹어도 다시 배고프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준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상의 물질이나 빵을 베푸는 자가 아니라, 오직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먹이고 양떼를 세우는 영적 목자가 되라고 명하신 것이다.“
* 많은 주석가와 학자들은 학문적 특성상 헬라어 어형 분석(아가파오/필레오), 문법적 성(남성/중성), 역사적 배경 같은 외형적 틀에 갇혀 나무만 보느라 숲의 영적 실재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 기록자인 사도 요한의 서술 방식과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영적 맥락을 연결해 보면, 방금 나눈 것들은 본문이 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심장을 정확히 짚고 있다.
1. 찢어지지 않은 그물(11절)과 잃어버리지 않는 구원
* 누가복음 5장과의 결정적 대조:주님이 처음 베드로를 부르셨던 갈릴리 사역 초기의 기적(눅 5:6)에서는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 요한복음 21장 11절의 선언:그러나 부활 이후 주님이 주신 이 마지막 기적에서는 153마리라는 엄청난 무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것을 밝힌다.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and for all there were so many, yet was not the net broken)."
* 베드로가 깨달은 것:----> 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7)..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28)'고 선언하셨다.찢어지지 않는 그물을 끌어올리며 베드로는 깨달았을 것이다.'주님이 맡기실 구원의 그물, 진리의 복음으로 건져 올릴 양떼는 단 하나도 잃어버림 없이 주님의 손안에 온전히 보존되는것을 알았을 것이다
2. 숯불 식탁의 영적 적용 -----> : "나는 배를 채우러 온 것이 아니다"
* 제자들의 물고기가 필요 없으셨던 주님-----> :베드로와 제자들이 153마리를 끌고 뭍에 올라왔을 때, 해변의 숯불 위에는 이미 예수님이 * 준비해 두신 생선과 빵이 놓여 있었다(9절).
주님은 제자들의 물고기가 필요해서 조반을 차리신 것이 아니다. 생명의 참된 빵과 영생의 공급자는 오직 주님 자신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 배부름 속에서 찾아온 통회와 각성:----> 그 따뜻한 빵과 생선을 베드로의 입에 넣어주실 때, 베드로의 목구멍에는 단순한 음식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 내가 이 빵과 생선을 먹고 내 육신을 보전하자고 그토록 처절하게 주님을 부인했던가?"
+ 밤새 헛그물질하며 물고기 몇 마리에 목을 매던 나를, 주님은 친히 찾아오셔서 하늘의 공급으로 배불리 먹이시는구나."
+ 바로 그 배부름과 은혜의 눈물이 범벅된 식사 직후에 떨어진 말씀이 바로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였습니다.
* 베드로에게 그것은 "네가 이제 이 육신의 생선과 빵, 기적의 단물에 머물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사명으로 나아가겠느냐?"라는 뼈를 깎는 물음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3. "내 양을 먹이라" — 순수한 말씀의 젖이 흐르는 파이프라인이 되라는 부르심
* 베드로는 오병이어 이후 사람들이 다 떠날 때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온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고백했던 주인공이다.
*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어찌 그것을 세상의 빵이나 고기 나눔으로 생각 했을 것인가?
* 내가 너를 내 살과 피로, 내 영생의 말씀으로 먹여 살렸듯이, 이제 너는 내 양들에게 마르지 않는 하늘의 말씀, 복음의 진리를 쉬지 않고 먹이는 사역자가 되라!"이 말씀의 무게가 베드로의 심장을 관통했기에, 훗날 사도행전에서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는 결단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다.
* 눈물 젖은 빵과 생선을 씹으며 주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를 마주했던 베드로의 심정을, 우리도 함께 느끼는 심정이 되었으면 한다,
18 -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 이르노니 젊어서는 내가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늙어서는 네가 네 손을 내밀 것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네게 띠를 띠워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가리라, 하시니라,
19 - 그분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 겉으로 드러내 보여 주려 하심이더라, 그분께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 왜 '띠를 띤다'는 말이 이토록 중요한가? (당시 유대 풍습)
당시 유대인들의 옷은 통으로 된 긴 튜닉(로브) 형태였다.
평소에는 옷이 헐렁하고 치렁치렁하여 빠르게 걷거나 노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디론가 가거나 일을 하려면 반드시 펄럭이는 옷자락을 걷어올려 허리띠(Girdle)를 질끈 동여매어야 했다. 이를 성경에서는 "허리띠를 띠다 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의 대조는 다음과 같다:
①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를 띠고
외출할 때 자기가 원하는 벨트를 차고, 자기 옷자락을 자기가 묶고,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활보하던 ‘자유와 자기 주권(Self-will)’의 상태를 뜻한다.
불과 조금 전 바다에서도 베드로는 겉옷을 스스로 두르고 (7절)물로 뛰어내렸다.
② "늙어서는 다른 사람이 네게 띠를 띠워
여기서의 ‘띠(gird)’는 패션용 벨트나 활동을 위한 허리띠가 아니라, 죄수의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결박하는 ‘포승줄과 쇠사슬을 의미한다.
사형 집행관이 다가와 십자가 형틀에 매달기 위해 베드로의 허리와 손발을 밧줄로 꽁꽁 동여매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신 것이다
20 - 그때에 베드로가 돌아서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또한 만찬 자리에서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자가 누구니이까? 하고 말한자더라,
21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하니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더라,
23 - 그때에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이 형제들 가운데 널리 퍼졌으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셨더라,
* 머물다(Tarry)"의 문자적·역사적 성취: 사도들의 마지막 생존자
* 역사적 사실:다른 모든 사도들(베드로, 바울, 야고보 등)은 네로 황제 박해 시절을 전후하여 일찍이 피를 흘리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 홀로 남겨진 요한:----> 그러나 요한은 로마의 끓는 기름 솥과 핍박 속에서도 초자연적으로 목숨을 보존받으며, 열두 사도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서 '머문(tarry)' 유일한 사도가 되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동료들의 순교를 다 지켜보며 1세기 말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까지 밧모섬에 홀로 남아 교회의 마지막 기둥으로 머무르며 계시록까지 완성 하였다,
* 정경(Canon)의 완성과 마침표: ----> 사도 요한의 사명 주님께서 요한을 그토록 오랜 세월 죽지 않게 남겨두신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성경)을 최종적으로 닫아 완성하는 것이었다.
* 복음서의 완성:---> 사복음서 중 가장 깊은 주님의 신성을 담은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 서신서의 확립:---->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일어나는 말세지말을 경고한 요한일·이·삼서를 남겼다.
* 계시록의 종결----> :마침내 성경 66권의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통해 역사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마지막 약속을 받아 적음으로써 신약 정경의 문을 완성하고 마쳤다,
* 베드로의 길 (Action & Martyrdom):사도행전의 문을 열고 교회의 기초를 닦으며, 주님을 위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동과 순교의 길'이었다.
* 요한의 길 (Waiting & Revelation):모두가 떠난 뒤에도 끝까지 묵묵히 남아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마침내 계시록을 통해 주의 재림의 영광을 기록하여 후대 교회에 넘겨주는 '인내와 증언의 길'이었다
*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경주(Race)를 달리라는 명령 ---> 하나님은 성도들을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쓰지 않으신다.
+ 베드로에게는 피를 흘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교의 길'을 정하셨고,
+ 요한에게는 끝까지 살아남아 주의 재림을 보고 계시록의 정경을 완성하는 '인내와 증언의 길'을 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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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트랙이 완전히 다릅니다. 옆 라인에서 뛰고 있는 다른 선수가 어떻게 달리는지 쳐다보다가는 내 발에 걸려 넘어질 뿐이다.
+ 히브리서 12장 1-2절의 말씀처럼, 성도는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릴" 뿐이며, 오직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 보아야한다.
++ 너는 나를 따르라 -----> 성경을 보면 이 문장은 강조형으로 되어 있다.주님은 그냥 'Follow me'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베드로 개인을 콕 집어 "Follow THOU me 너는 나를 따르라)"고 명하신다.
* 다른 사람이 주를 따르든 말든,
* 다른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떤 길을 걷든,
* 심지어 온 세상이 주를 등지고 떠나갈지라도,"너는 핑계 대지 말고, 곁눈질하지 말고, 오직 내 뒤만 밟고 따라오라"는 단독자로서의 부르심이다.
24 - 이것들을 증언하고 이것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아노라,
* 요한복음 특유의 '자신을 숨기는' 3인칭 서법 사도 요한은 복음서 전체에서 자신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직접 드러내지 않으셨다.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 (요 13:23, 21:7, 20)
++ 다른 제자" (요 18:15, 20:2)
++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어머니를 모셨던 그 제자 (요 19:26)
이와 동일하게 24절에서도 "나 요한이 이것을 썼다"라고 거칠게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이 사람이라는 겸손한 3인칭 표현을 사용하여 바로 직전(20-23절)까지 언급된 '주님의 품에 기대었던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이 책의 목격자이자 기록자임을 확증한다.
25 -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도 많으므로 만일 그것들이 낱낱이 기록된다면 세상 그 자체도 기록된 책들을 담을 수 없을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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