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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남부지방 여행
방학 때 여행할 목적으로 한국에서 JR패스를 저렴하게 미리 구입해
신칸센을 타고 큐슈지방을 중심으로 여행을 했다.
나가사키 에서는 당시 인기있었던 저렴한 호텔인
캡슐 호텔( capsule hotel) 에서 하룻 밤을 자기도 했다.
캡슐 호텔( capsule hotel)은 일본에서 개발된
취침과 TV시청 및 라디오청취 등의 한 명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만을 제공하는 저렴한 호텔이다.
식사는 조식만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따로 돈을 내고 사야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화장실 및 샤워시설은 공동시설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1인용 공간이기 때문에 성별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구분되어 있으며,
어떤 호텔들은 특정 성별만을 받기도 한다.
長崎県
나가사키현(일본어: 長崎県)은 일본 규슈 지방의 서쪽 끝에 있는 현이다.
현의 수도는 나가사키시다.
고토 열도(五島列島), 쓰시마섬(対馬), 이키섬(壱岐島)을 포함한다.
47 개 현 중 가장 많은 섬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長崎市
쇄국 정책을 펼치던 에도 시대에는,
일본 유일의 에도 막부 공인 국제 무역항(대네덜란드·중국·조선)인
데지마(出島)를 가진 항구도시였다.
이 때문에 데지마와 도진야시키(중국인 거류지)유적을 비롯하여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한 항구 도시로 유명하다.
역사적 경위로 인하여 천주교 신자 수가 비교적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특히 천주교는 나가사키현 단독으로 대교구를 두고 있다
(일본의 대교구는 나가사키를 포함하여 3개가 있고,
도쿄대교구는 도쿄·치바로, 오사카대교구는 오사카·효고·와카야마로 이루어짐).
핵무기(원자폭탄)의 실전 사용으로는,
히로시마에 이은 사상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라카미 성당 (浦上天主堂)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있는 기독교(가톨릭) 성당이다.
성당은 이전 이름 우라카미 천주당(浦上天主堂)이라는 이름으로도알려져 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파괴되었으나, 1959년에 재건되었다.
1962년 이후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며,
소속 신도수는 약 7천명으로,
건물 및 신도 모두 일본 최대 규모의 가톨릭 교회이다.
나가사키 26인 성인 순교지
일본 26위 성인은 1597년 2월 6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책형을 당한 26명의 천주교 신자이다.
통상 26 성인의 순교라 지칭하고, 이들을 일본 이십육 성인이라 부른다.
26명 모두 일본인은 아니고, 스페인인, 중국인, 인도인, 멕시코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처형된 지 265년 뒤인 1862년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이들은 예수가 죽은 골고다 언덕과 비슷한
니시자카(西坂)에서(나가사키역 근처) 죽기를 원했고 처형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순교성지가 되었으며 기념관도 함께 있다.
오우라 천주당(大浦天主堂)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이다.
일본 26위 성인 성당(日本二十六聖殉教者堂)이라고도 불리며,
1853년 일본 정부의 쇄국주의가 끝난 후에 곧바로 건립되었다.
일본의 국보 가운데 유일한 서양식 건물이면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다.
ハウステンボス 하우스 덴 보스
하우스텐보스는 "숲속의 집"이라는 뜻으로,
1992년에 일본과 네덜란드의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호관계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하우스텐보스 해안에 다다르면 풍차와 튤립, 네덜란드 특유의 건축물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복제품과 기막힌 조명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다른 세상 속으로 옮겨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놀이터와 상점, 극장, 식당 등이 거리에 즐비해 볼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오직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체험을 원한다면 유람선 투어를 권합니다.
공원의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가는데, 마치 암스테르담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면적 약 152만 평방미터의 일본 최대 규모의 단일 테마파크입니다
글로버 가든, 홀랜드 슬로프
세계문화유산인 구 글로버 하우스와 구 링거 하우스 등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는 6개의 서양식 건물을 이전•복원한
구라바엔(일본어: グラバー園) 또는 글로버 가든(영어: Glover Garden)은
메이지 시대의 외국인 거류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로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미나미야마테에 있는 관광지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상인 토마스 글로버가
부모와 자식으로 2대에 걸쳐 살았으며,
현존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서양식 건물입니다.
長崎平和公園
1945년 8월 9일에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투하된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와
그 북쪽의 언덕 위를 포함한 지역에 평화를 위해 마련됐다.
북쪽 언덕 위의 평화공원에는 공원을 상징하는 평화기념상이 있는데,
높이 9.7m, 무게 30톤의 청동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모습이다.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살짝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평화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비둘기와 학의 날개를 상징하는 분수가 있어
피폭 후 극심한 갈증 속에서 죽어가던 희생자들의 넋을 달랜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조각상이 당시의 참상과
평화를 기원하는 모습으로 새겨져 전시되고 있다.
운젠 지옥 (온천)
운젠(雲仙) 지옥 온천지는 “후루유 ”와 “신유” 사이 흰 흙으로 덮인 일대이며,
약 30종류의 지옥온천이 점재되어 있다.
「온센여도(温泉余土)」라고 불리는 흰 흙은 분기나 온천열, 산성물의 영향으로
흙이 변질하여 희게 탈색한 점토장을 일컫는다.
그 에너지원은 다치바나(橘)만의 해저 마그마 웅덩이라고 하는데,
‘슈슈’ 소리를 내며 분출하고 있는 분기의 최고 온도는 120도.
분기공 주위에는 흰색이나 담황색의 유노하나(湯の花) 유황꽃이 붙어 있다.
운젠(雲仙)의 유노하나 유황꽃은 온천수 속에 있지 않고,
지표면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운젠 지옥 일대에는 천연기념물의 시로도단 철쭉의 군락과,
기독교인이 처형된 「일본 26성인 순교」라는 지옥이 있다.
시마바라시(일본어: 島原市)
나가사키현 남동부의 시마바라 반도에 있는 시이자
시마바라 반도의 중심 도시이다.
시내에는 시마바라성이나 사무라이 주택 등 에도 시대의 성시 거리가 남아 있고,
주변에 온천도 많은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아리아케 해(시마바라 만)를 사이에 두고 페리나 고속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대안의 구마모토시나 오무타시 등과의 관계도 깊다.
시마바라성(島原城)
일본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시에 있는 연곽식 평성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모리타케 성(森岳城)이라고 불린다.
에도 시대는 시마바라번의 번청으로 번주의 처소였다.
번 성립 당시 시마바라번은 4만 석이었지만, 석고에 비해하면 대단히 훌륭한 성이다.
1876년 천수, 어전 이하 건물은 대부분 파괴 매각되었다.
현재는 혼마루에 천수, 망루, 담이 복원되어 시로아토 공원으로 되었다.
시마바라(島原)부케야시키(武家屋敷)
시마바라 성 축성(1624년)과 동시에 만들어진 무사들이 모여살던 마을이다.
7곳의 거리가 바둑판의 눈처럼 되어 있고,
집과 집의 사이에는 벽도 경계도 없다.
마치 철포와 같이 뚫려있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철포대의 거주지였던 것으로부터,
다른 이름인 텟포쵸(鉄砲町,철포 마을)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시마바라성에서 서쪽으로 5분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모노초 무사저택은 총 길이 406.8m, 폭은 5.6m가 되는 구역으로
저택이 690 채가 있었다. 현재 보존되어 일반에 무료 개방되어 있는 3 채는
야마모토의 저택 , 시노즈카의 저택, 토리다의 저택이다.
고토지(江東寺)
열반상(누워있는불상)이 놓여져있었다. 길이 8.6 미터, 높아 2,12미터의 열반상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는 일본 최대 크기라고 한다.
原城 유적지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은 에도 시대 초기에 일어난
일본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잇키(一揆 :봉기)다.
막말 이전에 일어난 본격적인 내전으로 주 구성원은
일본의 토착 기독교인들을 일컫는 기리시탄이다.
시마바라·아마쿠사 잇키(島原・天草一揆)
또는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の乱)이라고도 한다.
시마바라 반란은 기독교인들이 시작한 농민 폭동으로
에도 시대에 일본에 의한 나라의 고립을 촉발한 주요 역사적 사건이다
그 배경은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에 있는 "하라 성터"였다.
2018년에는 "나가사키·아마쿠사 지역의
숨겨진 기독교 관련 유적지"로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당시의 《호소카와 가기》(細川家記)와 《아마쿠사 도경》(天草島鏡) 등의 기록에는
반란의 원인이 가혹하고 무리한 연공 징수에 있다고 적고 있지만,
시마바라 번주 마쓰쿠라 가쓰이에는 반란 세력들이 기독교로 결속되어 있다고 보고
반란을 기리시탄들에 의한 폭동이라 주장하였다.
막부 또한 시마바라의 난을 기리시탄 탄압의 구실로 삼고자
「시마바라의 난 = 기리시탄 반란(종교전쟁)」이라는 도식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시마바라의 난에는 아리마·고니시 양 집안을 섬기던 낭인(浪人)이나
기존의 토착영주였던 아마쿠사씨(天草氏)·시키씨(志岐氏) 또한 가세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리시탄의 종교전쟁과 순교」라는 것은
반란의 일면일 뿐이며 잇키 즉 「호미와 죽창, 거적 깃발」을 들고 일어난
민란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알려져 있다.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Alessandro Valignano, 1539년 2월 15일 ~ 1606년 1월 20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소속 기독교 선교사이자 사제이다.
동양에 로마 가톨릭교회를 알리려 노력하였다.
발리냐노는 1574년 9월 6일부터 32년간 3차례나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1606년 1월 20일 갑자기 신장질환이 발병하여 숨질 때까지 마카오에 있었다
아마쿠사 시로(일본어: 天草四郎, 1621년? ~ 1638년 4월 12일)는
에도 시대 초기의 기리시탄이자 시마바라의 난의 지도자이다.
막부군의 하라 성 공략으로 재기불능에 빠지고 전사했다.
본명은 마스다 도키사다(일본어: 益田時貞)로
로마 가톨릭교회 세례명은 예로니모 또는 프란치스코이다.
고니시 가문의 옛 가신들과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구세주로 옹립되어
신격화된 인물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했다는 전설과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사생아인 도요토미 히데쓰나(豊臣秀綱)라는 설이 널리 펴졌다.
시마바라의 난에서 십자가를 내세워 전투를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막부군의 하라성 총공격에 따른 전화속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첫댓글 세잎 클로버 님의 인생역사
한 권의 책으로 기록을 남기셔도 부족함이 없으시리라요
우리내 인생은 역시 추억의 뒤안길이 최곱니다
감사합니다.
상쾌한 가을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