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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23) 열두 사도의 차별성
예수님과 생활한 열두 사도의 특별함
복음서가 증언하듯이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사도는 모두 열둘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이 되어라 하여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꿔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두 명의 야고보를 구별하기 위해 제베대오의 아들을 대(大)야고보, 알패오의 아들을 소(小)야고보라 부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유다의 빈자리는 마티아 사도가 선택돼 채웁니다.(사도 1,15-26)
신약 성경은 이들 열두 사도 외에도 바오로와 바르나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안드로니코스, 유니아 등을 사도라 부릅니다.(1코린 9,6; 갈라 1,19; 로마 16,7) 이들은 예수님이 직접 뽑은 사도들이 아닌데 어떻게 교회 안에서 사도로 불릴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주님 부르심을 받고 복음 선포 사명을 띠고 파견된 자들이어서 사도라 불렸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에서 사도직의 정당성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 파견됐다는 점을 강조합니다.(로마 1,1; 1코린 1,1; 갈라 1,1) 바오로는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을 사람에게서, 곧 교회 전승을 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직접 받았다고 강조합니다.(갈라 1,11-16) 그리고 자신의 사도직 활동 중심에는 하느님의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업적이 아닙니까?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사도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의 증표입니다.”(1코린 9,1-2) 바르나바는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도들에 의해 안티오키아로 파견됩니다.(사도 15,22-35)
그런데 ‘사도’라 할 때 흔히 열두 사도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이들이 대표성을 지닌 사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 교회는 든든한 기초, 곧 어린양의 열두 사도 위에 세워졌으며, 무너질 수 없다. 교회는 진리 안에 확고하게 서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단 안에 현존하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69)
열두 사도의 대표성·차별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 이미 지난호에 설명했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사도들이라는 점입니다. 마르코·마태오·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기도한 다음 사도들을 뽑았다고 합니다. 곧 사도 선별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시던 기도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마음에 든다고 무턱대고 뽑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열두 제자의 부르심은 단순히 기능분담이라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철저하게 신론적 의미를 띠게 된다. 그들의 부르심은 아드님이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서 나온 것이고 거기에 뿌리내리고 있다.”(베네딕토 16세 교황,「나자렛 예수 1」 261쪽)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가르침대로, 열두 사도의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당신 의지로 결정한 선택이었지만, 이 결정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일치된 대화의 결과였습니다. 곧 열두 사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된 결정으로 선택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차별성과 대표성이 있겠습니까!
두 번째 차별성은 열두 사도는 늘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주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이심을 배워 그리스도의 신비와 하느님 나라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양성되었습니다.
사도들도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것이 사도성의 중요한 요소임을 자각했습니다. 비록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예수님과 열두 사도는 하느님 나라의 친교에 뿌리를 둔 새로운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유다 이스카리옷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마티아 사도를 선출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이 된 결속력이 복음 선포를 위한 파견의 원동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존재 전체가 파견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차별성은 열두 사도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이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치유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미 밝힌 대로 사도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선한 권능으로 하느님 표징을 드러냅니다. 사도들은 주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이 되었듯이,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모아 하느님의 새 백성, 교회를 이룹니다.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47) 천사와 악마
하느님 섭리 행하며 인간을 수호하는 천사
천사
주님의 피조물 중 가장 뛰어난 천사는 하느님을 모시는 사신(使臣)이며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들은 인간 이전에 지력과 자유 의지를 지닌 채 창조됐으며, 세상에 주님 영광을 드러나게 하고 하느님 섭리를 펴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천사에겐 특별히 우리 인간을 수호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천사가 언급되지만, 그 이름을 정확히 밝힌 천사는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뿐입니다.
천사의 계급
성 암브로시오(339~397) 시대부터 교부와 신학자들은 천사를 9품으로 인식했습니다. 6세기 초 아레오파고스의 위(僞) 디오니시오는 천사들의 거룩한 직무와 능력(속성·권한)에 따라 9품을 3개 계급으로 구분했습니다.
① 상급
치품천사(Seraphim) -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이사 6,2) 이하 천사가 언급되는 성경 구절들.세라핌
지품천사(Cherubim) - 창세 3,24(케루빔)
좌품천사(Thrones) - 콜로 1,16
② 중급
주품천사(Dominantes) - 콜로 1,16
역품천사(Virtus) - 콜로 1,16
능품천사(Potestates) - 콜로 1,16
③ 하품
권품천사(Principatus) - 에페 1,20-21
대천사(Archangelus) - 1테살 4,16
천사(Angelus) - 창세 19,1; 묵시 5,2
대천사 :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
① 선한 천사의 우두머리 미카엘(Michael)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 하느님과 같이 구는 자는 누구냐?’란 뜻입니다. 사탄과 추종자들이 하느님께 반역을 일으켰을 때, 선한 천사들이 외치던 구호에서 유래했습니다. 악마를 축출하는 임무를 지닌 미카엘 대천사는 임종자와 유다 백성·교회의 수호자입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심판대 앞으로 인도하고, 무사히 천국으로 데려가는 역할도 합니다.
② 가브리엘(Gabriel) 대천사는 라파엘과 함께 주님 대전에 대령하고 있는 7천사 중 한 명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 ‘하느님의 영웅’이란 뜻입니다. 세상에 3차례 파견됐습니다.
첫 번째로 다니엘 예언자에게 구세주 탄생 시기를 알려주고, 구세주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다니 9,21-27) 두 번째로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구세주 예수님의 길을 닦은 요한 세례자의 출생을 예고했습니다.(루카 1,11-20)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것을 예고하심으로써 하느님 구원사업 준비를 완수했습니다.(루카 1,28-38)
③ 라파엘(Raphael)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이 낫게 하셨다, 하느님의 묘약, 하느님의 의사’란 뜻을 지닙니다. 이에 걸맞은 활약이 토빗기에 나옵니다. 먼 여행길에 오른 토빗의 아들 토비야를 위험에서 지켜준 데 이어 그의 아내가 될 사라를 악마의 손에서 구출했으며, 마침내 눈먼 토빗의 시력까지 되찾게 해줍니다. 모든 여행자의 보호자로 추앙받는 라파엘 대천사는 영적인 싸움에서 입는 상처에 천상 향유를 발라 치유해줍니다.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 천사의 축일은 9월 29일입니다.
악마
사탄 또는 마귀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를 일컫습니다.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천사였던 이들은 스스로 악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사업을 가로막고 봉사하기를 거부합니다. 악마들은 우리 인간을 자신들의 반역에 끌어들이고자 애씁니다. 악마가 저지른 가장 중대한 죄는 바로 인간이 하느님께 불순종하도록 거짓말로 유혹한 것입니다.
[매주 읽는 단편 교리] 부활 팔일 축제
오늘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다음 주일 곧 부활 제2주일까지는 부활 팔일 축제를 지냅니다. 먼저, 팔일 축제(Octava)란 대축일을 지내고 그 의미를 이어 경축하는 8일간을 말하는데, 이 날짜는 대축일 당일도 포함하여 계산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전에는 많은 팔일 축제가 있었으나, 공의회 이후부턴 주님 성탄 대축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의 경우에만 팔일 축제를 지냅니다.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기 시작한 건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활 팔일 축제의 전례는
① ‘파스카 신비’와 함께
②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난 이들의 ‘신비 교육’(Mistagogia)에 초점을 맞춥니다.
과거, 부활 성야에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은 이 기간에 일상의 일을 멈추고 매일 성당에 와 성찬례에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세례 때 입었던 흰옷을 계속 입고 ‘신비 교육’을 받으며 교회 공동체와의 일치를 도모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주간은 ‘백색 주간’(Septimana in albis) 또는 ‘흰옷을 입는 주간’이라고 불렸습니다. 한편, 부활 제2주일에는 부활 팔일 축제를 마치고 흰옷을 벗게 되었기에, ‘짐 부릴 사’(卸)와 ‘흰 백’(白) 자를 써서 ‘사백주일’(卸白主日)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활 팔일 축제 미사 중 입당송은 특별히 새 신자들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월요일 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오셨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알렐루야.
화요일 지혜의 물을 마시면, 굳세어지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지혜가 너희를 영원히 들어 높이리라. 알렐루야.
수요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알렐루야.
목요일 주님, 승리하신 당신 손을 한마음으로 찬양하나이다. 지혜는 말못하는 이들의 입을 열어 주고, 아기들의 혀도 또렷이 말하게 하였나이다. 알렐루야.
금요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고, 그 적들을 바다에 빠뜨리셨네. 알렐루야.
토요일 주님이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알렐루야.
부활 제2주일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여라. 너희는 그 젖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으리라. 알렐루야.
부활 팔일 축제 미사에서는 ‘부활 감사송 1’을 바치는데, 경문 중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날에”라고 함으로써 주님 부활 대축일의 의미가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1등급 전례일이므로, 제대 초는 3개씩 6개를 켜고 대영광송을 바칩니다. 또한 파견 때 알렐루야를 두 번 덧붙여 부제나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라고 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라고 응답합니다.
[교회의 언어] Resurrectio (레술렉시오, 부활)
Bona Pasca(보나 파스카)!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신앙의 원천이자 핵심인 부활을 뜻하는 라틴어 “Resurrectio”는 어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re-(다시)’와 ‘surgere(일어나다, 오르다)’의 결합으로 “다시 일어남”을 뜻하고,“Resurrectio”는 ‘surgere’는 다시 ‘sub-(아래에)’ + ‘regere(똑바로 하다, 지배하다)’의 결합으로 “아래에서 위로 똑바로 일어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는 “Resurrectio(부활)”가 단순히 “다시 살아남”을 넘어서서 더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마치 넘어져 있던 사람이 다시 우뚝 일어서는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부활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환생이 아닙니다. 분명 같은 존재이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힘들고 혼란스럽고 지친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넘어져 있거나 주저앉아 있는 삶의 모습으로는 부활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생명력 있게 일어서는 부활, 쓰러져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부활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믿나이다] (22) 사도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직접 뽑으시고 파견한 사도들 위에 세워진 교회
그리스도교 초기 사도 시대 복음 선포 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습니다. 교부 시대로 넘어가기 전 ‘사도’라는 말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 열두 사도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 가운데 열둘을 세워 사도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마르 3,13-19; 마태 10,1-4; 루카 6,12-16) 그런데 사도행전과 신약 성경 서간들에서는 이 열두 사도에 속하지 않는 바오로나 바르나바에게도 사도라 부릅니다.(사도 14,14) 어떻게 이들도 사도로 불렸을까요?
사도(使徒)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s)’의 한자어로, 우리말로는 ‘파견된 자’ ‘파견된 제자’라 옮길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분이시죠.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열두 사도를 통해 계속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그러므로 사도들의 파견은 예수님 파견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마태 10,4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복음서를 살펴보면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파견하시는 내용(마르 6,7-13; 마태 10,5-15; 루카 9,1-6)을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직접 불러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직접 사도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과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 선택하신 제자로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훗날에는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사도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끝날까지 증언할 사명을 받고 파견된 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받은 당신의 사명에 열두 제자를 참여시키십니다.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요한 5,19.30) 당신을 파견하신 성부에게서 모든 것을 받으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람들도 그들에게 직무를 맡기시고 그것을 수행할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자신들이 ‘새 계약의 일꾼’(2코린 3,6), ‘하느님의 일꾼’(2코린 6,4), ‘그리스도의 사절’(2코린 5,20),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1코린 4,1)의 자격을 하느님께 받았음을 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59항)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해야 할 복음은 교회를 위해 모든 시대에 모든 삶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들은 후계자들인 주교들을 세우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성령과 사도들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 의해서 사도들과 교회에 파견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광 중에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세워지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 충만함에서 성령을 사도들과 교회에 부어주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46항)
성령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양육하고 치유하는 성사를 통하여, 사도들이 받은 가장 뛰어난 은총을 통하여, 선을 행하게 하는 덕행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특별한 은사를 통하여 교회를 생동적으로 이끄십니다.
이에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새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세례의 은총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선물을 베풉니다. 이 안수로 성령 강림의 은총이 교회 안에 영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와 사도들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을 거룩하게 전승하여 성령의 이끄심대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이의 머릿돌을 기초로 사도들을 통해 지어졌고, 그 기초 때문에 견고한 결속력을 지니게 되어 ‘하느님의 집’ 곧 ‘하느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성령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교회는 사도들의 설교와 복음 선포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 거룩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들 위에 세워졌으므로 사도적이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으시고 선교에 파견하신 증인들인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 교회는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고귀한 유산, 사도들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보존하고 전한다. -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도들의 사목직을 이어받아 그들을 계승한 사람들, 곧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회의 최고 목자와 하나 되어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이 명령을 수행하는 주교단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거룩하게 되며 지도를 받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57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