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3-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극장의 우상에 빠져서 살아왔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나는 교회운동의 봉사자로 자처하면서 근 40년을 살아서 교회운동을 많이 한 사람답게 교회운동을 통하여 알게 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피정도 비교적 많이 체험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많은 피정에서 색다른 체험도 많이 하였고, 피정 지도도 많이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얘기도 하였고, 감사의 표현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우쭐함에 내 자신의 모든 것을 포장하고 살기도 하였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지금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사실은 내가 더 많은 체험과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때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모든 것을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인도해주셨다는 확신이 들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은근히 과대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즐겨하는 이 본성은 베이컨이 말한 인간의 4대 우상의 하나인 ‘극장의 우상’이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하는 동안 나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사람들은 관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팬들의 극성스러운 지지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무대에서 자신을 던지고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들처럼 살고 있다는 자화자찬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배우들이나 탈렌트들을 보면 그들이 바로 인생의 인도자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반성해 보면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실망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그들의 삶이 거짓이 많고, 나나 그들의 모든 것들이 허위라는 생각으로 아주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연기와 같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정말 신앙심이 깊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극장의 우상에 빠져 있는 죄 많고 허영과 자만심에 가득 찬 욕심이 많은 형편없는 사람이랍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엔 분명 그런 사람이랍니다. 그런데도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볼 줄 모르고 언제나 내가 최고인 듯 교만과 아집에 가득 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신앙심의 깊이는 아무도 측정할 수 없고,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답니다. 그 깊이와 너비와 높이는 하느님만 아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포장된 상자에 갇혀서 주님의 앞에 넘겨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과 전혀 다르게 그렇게 넘겨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상자를 여시고 심판하실 때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생각과 말과 행실에 따라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이런 농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교적 열심히 살았다는 어떤 본당 회장이 죽었는데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졌는데 지옥은 평소에 말을 많이 한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잘 지도한다는 지도자들이 대부분 갇혀 있는 곳이더랍니다. 그 회장이 지옥에 내려가서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본당 신부님이 계셔서 깜짝 놀라서 “아니, 신부님께서 여기에 웬 일이십니까?” 그랬더니 신부님이 검지를 입에 대면서 “쉿 조용히 하세요. 옆에 주교님이 계십니다.” 하더랍니다. 그래서 더욱 놀라서 주교님께 쫓아가서 “아니, 주교님께서 어인 일로 여기에?”했더니 주교님은 "옆에 교황님께서 계십니다.” 하더랍니다. 교황님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무서운 가르치심입니다. 아마 나는 그보다 훨씬 심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정말 자신을 두렵게 한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나 봉사자들이나 지도자들은 더욱 반성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반성과 뉘우침으로 하는 말입니다. 특히 교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또한 같습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악에 떨어뜨릴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잘못 인도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잘못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 모습입니다. 교리나 전례나 성경의 말씀을 지도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 책임이 막중합니다. 교황님의 무류성도, 교정권도 그래서 아주 심각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교리봉사를 한다든지, 전례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또한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언제나 생각해보고, 잘못을 고치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답니다.
우리가 인도자나 지도자의 자세가 주님의 의향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항시 기억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정말 잘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야 한답니다. 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이 바로 봉사자와 지도자들의 태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의견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모순이며 엄청난 오류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모순(矛盾)을 바로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사람들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는 새로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이론가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이 고집쟁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 사람들의 가장 윗자리에 내가 있지 않은지 반성하면서 분명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 우울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