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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최초의 인터넷 사찰
오늘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인터넷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1998년도쯤에는 크고 작은 도시에는
주로 전화모뎀을 사용하면서 인터넷을 했습니다.
전화모뎀이라고 하면 전화선에 인터넷을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지금 시대에 이야기 해 본다면 어쩌면 딴 세상이야기 일겁니다.
전화모뎀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어디서 전화가 걸려오면 인터넷은 바로 잠시 끊겨 버립니다.
그리고 통화가 연결이 끊기고 나면
다시 인터넷이 연결이 되는 조금은 번거로운 시절이었지요.
그러다가 2001년쯤에는 거의 지방까지 전용선이 깔리게 됩니다.
전영선이라 하면 지금 사용하는 라인이죠.
이때 까지는 주로 컴퓨터도 도스를 사용하였지만
1995년 11월 28일 출시된 한글 윈도우 95가 출시되고
지방에서는 컴퓨터 보급이 가정에서는 엄두도 안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컴퓨터 가격이 어마어마했고 관공서에서도 거의가
도스를 사용하던 시절이었고 전용선이 깔리고
1995년 11월 28일 출시된 한글 윈도우 95이 출시되면서
우리나라의 컴퓨터가 전환기를 맞은 것은
국민PC가 나오면서 가격대가 뚝 떨어지고 그때 비로써
각 가정에서도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등 에 접속하면서
국민PC가 나오면서 인터넷이 급속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나마 부분적인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아날로그적 서류 들이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이 때 2001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인터넷사찰 “보살의친구bosar79.com” 가
최초로 인터넷사찰을 시작하였고
일자무식이었던 승은 컴퓨터를 하여
불교자료가 전무한 시절에 불교자료 곳간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시도 하는 사람이나,
그 분야에서 선구자나 생소한 것에는
사람들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당시에 스님이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매일 사람들로, 혹은 각 종단 스님들로부터
혹은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혹독하게 질타를 맞게 됩니다.
스님이 인터넷을 한다고?
진짜 스님이야?
스님이 수행은 안하고 인터넷을 한다고?
이것은 당시에는 무지하게 얻어맞을 수행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또라이, 혹은 땡중,
혹은 염불도 안하고 날라리 중이라고 하기도 하고,
특히 여기저기 방송에서 처음 소개되고 부터는
매일 얻어터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심했습니다.
사실 인터넷으로 아침예불, 사시예불을 하였지만
그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인터넷 사찰의 좋은 점은
스님이 어디를 가더라도,
혹은 신도분들이 어디로 이주를 한다 하여도
그들은 항상 컴 속에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승은 아직도 전국을 다니면서
이곳에서 몇 년, 또 다음 지역에서 또 몇 년
그렇기 옮겨 가면서 포교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승을 보고
왜? 한 곳에 안계시고 떠돌아 다니냐고 하십니다.
내 절이 분명히 인터넷 속에 이렇게 버젖이 있는데
왜 굳이 한 곳에서 지내야 한답니까?
보통의 스님들은 한번 자리 잡으시면
두고두고 평생을 도량 지키시지만
승은 어지도 오늘도 인터넷 속에서 불자님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하고 불법을 전하는데
훌훌 이 지역, 저 지역 떠도는 것이 더 가볍지 않겠습니까?
얘기가 다른 방향으로 갔군요.
다시 인터넷사찰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매일 십 여 차례씩 사람들과, 스님들과
왜 인터넷 사찰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면서
이메일, 전화, 방문으로 인하여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지꺼리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당하면서도
그들과 매일을 부딪혔습니다.
당시에 각 종단이나 사찰에서
큰 비용을 들여 만든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기가 막할 정도의 허술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래 도표가 설명하듯이요.
사찰소개 | 자료실 | 방명록 | guest | 이메일 |
주지인사 사찰소개 찾아오는길 | 반야심경 |
어떤 종단이든 사찰에서는
이렇게 똑같은 메뉴 구성을 하여 놓고
홈페이지 만들었다고 방송에 소개를 하였지만
정작 방문객은 처음에는 클릭도 하고 글도 써 보지만
덧글 다는 스님, 혹은 종무소 사람들
누구하나 덧을 다는 사람이 없었고
스님들이 컴에 익숙하지 않으니 더욱 덧글 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몇 백 만원(당시에는 큰 돈)씩 들여서 만든
종단 홈페이지나 사찰 홈페이지가 잠만 자던 시절을 본겁니다.
자료실을 클릭해 보면 달랑 반야심경 텍스트로 쓴 것 하나뿐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창피할 정도인데
그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고 방송에 자랑을 하고 홍보하고
기가막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는데도 사람들은, 스님들은 승을 보고
미친중이라는 둥, 땡중이라는 둥, 연일 그들과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진짜 대화가 안 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승이 발 벗고 인터넷사찰(보살의친구)을 만들고
그때부터는 홈페이지를 공짜로 만들어 드린다고
스님들에게 전하고 며칠씩 걸려서
무료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야 틀에 박힌 블로그도 있고
홈페이지나 사이트도 있지만 예전에는 HTML소스를 이용하여
직접 일일이 소스를 넣어서 한 페이지를 만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카테고리를 20여개 정도 만들고 메뉴도 불교와 관련없는 것들
보살의친구 인터넷사찰이 어느 종단이나 사찰에서 안 변하겠습니까?
그게 지금처럼 바뀌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각 사찰이나 종단 사이트 보면
카페나 홈페이지에 카테고리가 적어도 20개 곳 넘는 곳이 많습니다.
왜 진즉 사이버사찰을 주시하지 않았는지
그때 승에게 욕바가지 뒤집어씌우고 가던 스님들
지금은 반성하시겠지요?
승은 당시 주장한 것이 있었습니다.
넷승(인터넷을 전담할 수 있는 스님)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리하여 불교를 전세계로 퍼트리고 포교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아직도 전문 넷승은 없습니다.
이제는 불자님들이 스님들 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삽니다.
아직도 승은 할 일이 많습니다만
승의 생각을 확 뒤집어줄 수도 없고
불교가 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너무 집단의 과욕으로
종단을 떠나서 받아들일 건 받아 들여야 하고
배척해야 한 것은 배척해야 합니다.
한때는 선지식 100인 스님으로 추천도 받으면서
돈 들여서 그런 것은 안한다고 툭 털었지만
아직도 답답하기는 하염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불교의 문화가 너무 엉키어있습니다.
부처님이 전하시고자 했던 틀에서 너무 벗어나지는 않은지
오늘 모두가 곰곰이 정리를 하여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다시금 뒤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또 무엇을 뒤집어쓰고 있는지를 다시 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2024년 04월 19일 오전 06:26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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