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동 주민센터 4층에 있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한 권은 듄 어쩌고저쩌고 하는 판타지 sf소설인데 재미있는 듯 하면서도 내용이 하도 허무맹랑해서 졸리기도 했다. 그런 베개만한 두께의 책이 천만권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 책을 끝까지 탐독하려면 대단한 호기심과 인내심, 모험심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책은 작가가 쓰는 데도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겠지만 독자가 읽어내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된다.
두 번째로 가지고와서 읽고 있는 책은 69년생의 일본 까마귀박사가 쓴 책이다. 어떻게 집 주변의 자연을 누비며 동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많은 것들을 얻고 누렸는지에 대한 책이다. 나도 한때는 동물학자나 식물학자를 선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자연을, 동물과 식물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잠시였다. 곧 일상생활에 파묻혀서 식물원이나 동물원을 쫓아다니던 감격을 잊고 말았다. 이 책은 그 감격을 조금이나마 생각나게 해 주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동식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관심사가 많다는 것은 생명력있게 살아간다는 뜻이니 말이다. 나도 활기차게 살고싶다.
이 책을 쓴 하지메 박사도 어린시절 뛰어놀던 자연이 있었지만 나에게도 그런 자연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우리집 대문 바로 앞에 논이 있었다. 논에는 올챙이가 많았고 나는 작은 두 손을 모아 올챙이를 잡으며 놀았다. 논 옆에는 개울이 있었고 개울 상류에는 가재가 살았다. 여름이면 개울에서 멱을 감고 고동과 가재를 잡으며 놀았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를때 나는 옆집 오빠를 따라 깨진 유리를 들고 개구리 배를 갈라 해부를 하며 놀기도 했다. 그때 나이가 고작 여섯 살 내지 일곱 살이었다. 지금은 그런짓을 하려고 큰맘 먹어도 못하지만 그때는 무의식 속에서 살던 유아기라 뭣도 모르고 그렇게 했다.
우리집에는 포도넝쿨과 나팔꽃 넝쿨이 있었고 사립문 앞에는 무궁화나무, 장미, 구기자가 있었다. 창고벽에는 도라지가 피었고 집 앞뒤로 감나무도 있었다. 옆집에는 뽕나무가 있어서 열매를 따먹었고 뒷집에는 배나무가 있어서 철마다 배가 열렸다. 나는 동쪽 벌판 먼 하늘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양치질을 했고 집앞에서 지평선까지 펼쳐진 논밭 위로 커다란 반원형의 무지개가 뜬 것도 보았다.
어린 시절 우리집 주위는 온통 논밭이었고 날이면 날마다 개울가에서 양말같은 것을 세숫대야에 담아가서 빨거나 소꼽놀이를 하거나 머리를 감거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 방망이 휘두르는 것과 비누거품이 둥실둥실 떠가는 것을 구경하며 놀았다. 추수가
끝난 논의 짚더미 사이에서 총싸움, 전쟁놀이 같은 것을 하며 놀았다.
그때는 참새가 참 많았고 가끔 뱀도 출몰했다. 어느 날은 마을에 시커멓게 날아든 떼까마귀를 보고 깜짝 놀라 처마밑으로 도망갔던 기억이 새롭다.
저자가 까마귀박사라고 하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날 하나로마트 위층 웨딩블랑에서 내놓은 음식물찌꺼기통에서 흘러나온 김치국물을 먹고 있는 까마귀를 보고 마음이 애처러워 까마귀에게 빵을 주게 되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몇 달동안 까마귀에게 식빵을 나눠준 적이 있었다. 내가 식빵 봉지를 들고 까마귀를 불러모을 만한 산 아래 빈공터로 걸어가면 벌써 까마귀들이 눈치를 채고 모이기 시작한다. 식빵을 찢어서 던져주면 동네 까마귀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식빵을 물고간다.
그렇게 배고픈 까마귀들에게 이삼일에 한번씩은 꼭 빵을 주던 것이 어느날부터 게을러져서 식빵을 주지않게 되었다. 요즘도 까마귀들을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한때는 나도 까마귀와 가깝게 지냈는데...그 순진했던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동물을 사랑했던 지난날을 되새겨 추억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