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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2月 ☞영적 성숙의 달☜
삼상23:15-29절) 아슬아슬한 도피
단거리 100m 경주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선수들이 아슬아슬한 사이로 결승점을 들어오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어린아이에게 아주 인기 있는 만화 영화 중에〈톰과 제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언제나 고양이 톰이 생쥐인 제리를 잡아먹으려고 접근하지만, 어느 새 생쥐 제리는 고양이 톰이 오는 것을 알아채고 골탕을 먹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더 약한 생쥐가 언제나 고양이를 골탕을 먹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중국 공산당 역사를 보면, 공산당이 초기에 농민혁명에 실패하고, 장개석 군대에 쫓겨서 장거리 먼 여정을 가게 됩니다. 그 거리가 아마 일만 킬로가 넘고. 도피한 기간도 일 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에 도피한 인원은 8만 명이 넘었지만, 나중에 연변에 도착한 인원은 8천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중국 공산당은 강을 넘고. 산을 넘고. 고원의 늪지대를 넘고. 나중에는 눈이 덮인 산맥을 넘어서 국민당의 추격을 따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 도피하는 동안에 중국 공산당은 더 하나로 단결 되어서 나중에는 중국 전체를 통일하게 됩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예배를 드리다가 신고를 받고. 공안이 들이닥치면, 도망을 치든지. 잡혀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아예 예배드리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데서는 속으로만 기도하고. 예배드려야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가는 당장 잡혀갈 것입니다.
옛날 일제강점기에도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은 일본 경찰에 쫓겨 숨어서 다녔습니다. 이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배신한 한국 순사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 냄새도 잘 맡고. 고문도 심하게 했다고 합니다.
다윗의 장점은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하고. 자기 머리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있을 때, 배는 고팠지만, 그래도 목숨은 안전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갓이 와서 *여기에 있지 말고. 유다로 들어가라*고 하니까 그 말에 순종해서 유다로 갔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나무숲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부 들판이고. 작은 야산이어서 숨을 데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사울 왕과 다윗은 서로 맹렬하게 잡으러 가고 도망치는추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때 다윗이 거의 잡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바람에 다윗은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마 다윗의 생애에 이때만큼 죽으라고 도망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Ⅰ.요나단의 격려
다윗은 아둘람 굴에서 유다로 돌아와서 십 광야 수풀에 숨어있었습니다. 이때 추격대 중에 있었던 요나단은 몰래 혼자 다윗을 찾아가서 다윗을 격려했습니다.
23:15-16절)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다윗은 도망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처지였는데, 그가 사람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딱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힘이 생기고, 절망하려고 했다가도 정신을 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이미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데리고 출동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지금 십 광야에 있는 수풀에 숨어있었습니다. 이때 요나단은 몰래 진영(陣營)에서 나와서 광야로 다윗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을 꽉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다윗이 하나님의 손을 힘없이 붙잡으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손을 놓치게 되고, 그러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절대로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즉 *네 하나님의 손만 붙들고 있으면. 절대로 죽지 않고. 너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요나단이 다윗에게만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나단의 입을 통해서 오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이 세상에서 길을 찾고 있고. 의지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길이 없다. 너희가 너희 실력을 믿지 않고. 우연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손만 꽉 잡으면. 절대로 죽지 않고. 반드시 성공한다.*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손을 꽉 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절망에 지지 않고, 낙심에 빠지지 않고, 자포자기 않는 것을 말합니다.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그리고 요나단은 좀 더 자세히 이렇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23:17절)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요나단은 다윗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습니다. 즉 도망은 치지만.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내 아버지 사울 왕의 손이 너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너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왕(王)의 아들로서 참으로 하기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네가 왕이 되고. 나는 네 신하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王)의 아들이었지만, 왕(王)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반드시 *성령의 사람이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어떻게 해도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생각에 요나단이 거기까지 왔으면, 자신의 병력의 규모라든지. 아버지의 작전 같은 것을 알려줄 것 같은데, 요나단은 그런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사울 왕의 목적은 다윗을 잡아서 죽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일부터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치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새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시시하게 생각해서 더 힘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안에는 양식도 있고, 지혜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Ⅱ.십 사람들의 배신
다윗은 십 광야의 수풀에 숨어있었는데, 그곳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십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윗을 배신해서 일부러 사울 왕을 찾아가 다윗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밀고(密告)했습니다. 이것은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을 격려한 결과였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했다면, 사울 왕이 다윗을 찾는 것을 포기하든지. 늦추든지. 해야 할 텐데, 다윗이 숨어있는 곳을 가장 잘 아는 현지인들이 사울 왕을 찾아가서 다윗이 어디에 있는지 밀고(密告)한 것입니다.
23:19-20절)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십 사람들의 밀고(密告)는 다윗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도망치는 사람을 잡는 데는 현지인의 신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넓은 세상에서 닥치는 대로 찾는 것보다. 그를 본 사람이 어디에 숨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곳을 중심으로 찾으면, 틀림없이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 사람들은 다윗이 숨어있는 곳을 정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즉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알면, 다윗은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독 안에 있는 쥐).
사울 왕은 십 사람들을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23:21절)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사울 왕은 의(義)로운 다윗을 밀고(密告)한 사람들에게 복 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첨(阿諂)하는 것이고 비겁(卑怯)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말은 그렇게 해놓고, 다윗을 잡고 나면 십 사람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의롭게 행동해야지, 간사(奸邪)하게 아첨(阿諂)하면, 하나님 백성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사울 왕도 무턱대고. 다윗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척후병(斥候兵)을 미리 보내서 다윗의 사정을 몰래 알아보고, 기습공격할 작전을 세웠습니다.
23:22-23절)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사울 왕은 다윗이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개역한글 번역에는 *공교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즉 다윗은 옛날에 양을 치는 목자였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편한 길로 다니지 않고. 야생동물들이 다니는 길로 다녔기 때문에 다윗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밀고(密告)하러 온 동안에 또 다윗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사울 왕이 잡으러 가도 놓칠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십 사람들에게 다윗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해보고 혹시 본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사울 왕도 다윗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격려를 받았지만. 더 위험해지게 되었고.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몇 천 명 중에 숨어있어도 한 명 한 명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서 찾아내겠다.*고 했습니다.
Ⅲ.다윗의 위기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즉 갓 선지자가 와서 *아둘람 굴에 있지 말고 유다로 가라*고 해서 갔고, 또 요나단이 와서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라*고 해서 하나님을 힘 있게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즉 십 광야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지인들이 다윗을 배신(背信)해서 사울 왕에게 찾아가 다윗이 숨어있는 곳을 알려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은 그야말로 저인망(底引網)을 끌듯이 한 명 한 명을 확인하면서 이스라엘 끝까지 수색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23:24-25절)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비아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역시 다윗은 하길라 요새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십 사람들이 여러 명이 어디론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사울 왕에게 밀고(密告)하러 간 줄 알고, 그곳을 피하여 남쪽 황무지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바위 위에서 사울 왕의 군대가 오는 것을 관찰(觀察)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보낸 보초(步哨)가 달려오면서 사울 왕이 자기들이 있는 마온 황무지에 거의 다 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사울 왕이 십 사람들로부터 다윗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누가 한발 먼저 아느냐?, 누가 한발 먼저 잡으러 가느냐?, 아니면 도망치느냐?, 하는 데 살고, 죽는 것이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사울 왕과 다윗의 거리는 산(山) 하나 사이밖에 없었습니다. 즉 다윗의 일행은 산(山) 이쪽에 있고, 사울 왕과 그의 군대는 산(山) 저쪽에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군대가 산(山)만 돌아오면, 다윗과 육백 명은 모두 포로가 되어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과 육백 명은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려고. 사울 왕의 군대가 오는 쪽 반대 방향으로 뛰었습니다. 다윗의 일행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고,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두 소리는 최소한도로 내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기를 쓰고. 반대쪽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군대는 어른들이었고. 달리는데 명수(名手)였습니다. 다윗의 일행과 사울 왕의 군대는 점점 그 간격이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제 사울 왕의 눈에는 드디어 다윗의 일행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즉 사울 왕은 *이제 겨우 원수 다윗과 도망자들을 다 잡았구나*생각하고 힘을 다해 추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어른 같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을 믿고 따라온 자들은 모두 잡혀서 끌려가든지, 거기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즉 사울 왕의 군대가 추격을 준비하다가 반대쪽으로 맹렬하게 달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사울 왕의 손에 거의 다 잡혀 죽게 되었는데, 왜 잡히기 직전에 사울 왕이 포기하고, 도로 쏜살같이 후퇴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좌우간 다윗과 그의 일행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붙들리지 않고, 모두 무사(無事)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자기들이 왜 살아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알아봤더니, 바로 자기들이 잡히려는 그 순간에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다는 전령(傳令)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사울 왕이 황급하게 기브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이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살리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23:27-28절)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블레셋 군대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시되 적(敵)을 이용해서 일을 하시기도 합니다. 사울 왕은 완전히 본부는 비워놓고. 다윗을 잡으러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은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다윗을 잡는 것이 중요해도 이스라엘이 망하면, 소용없으므로 다윗을 잡기 직전에 다윗을 포기하고. 블레셋과 싸우러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계획이 아무리 완전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의외의 변수를 일으켜서 그들의 모든 계획을 실패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惡)한 자가 악법(惡法)을 *적법하다* 하고, 권력(權力)을 이용해서 아무리 모략(謀略)을 꾸며도 결국은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칭했는데, 이것은 *분리하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즉 바로 여기에서 다윗과 사울 왕은 서로 분리(떨어지게)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칼로 자르듯이 여기에서부터 사울 왕이 더 이상 오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섬세하게 간섭(干涉)하실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 우리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즉 *셀라하마느곳*에서부터는 절대로 사울 왕이 다윗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거기서 하나님의 손을 보았고, 하나님의 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미 사울 왕은 다윗에게 진 것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사울 왕이 단 한 번도 다윗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쫓겨 다니는 중에서도 더 이상 사울 왕이 넘을 수 없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것을 보게 하시려고. 위험한 지경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경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악(惡)한 자로부터 위협과 공격을 당하지만, 어느 한 순간부터 그들이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는 시점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적(敵)을 이기기 시작합니다.
몇 년 전에 한국 출신 미국 국적의 한 선교사가 북한에 갔다가 억류되어서 종신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북한에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세우고, 빵 공장을 세우러 갔다가 지도자가 강경해지는 바람에 국가반역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도 기도하고. 우리도 그분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미 북한의 지도자가 하나님 백성의 기도에 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나라의 통치자는 기도의 힘에 졌습니다. 즉 기도에 졌기 때문에 선교사를 풀어준 것입니다.
북한이 아무리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들은 이미 기도에 진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더 큰 어려움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망할 것입니다.
롬12:19-21절)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개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더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힘껏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역사서
☞ 자발적인 신청을 수시(隨時)로 받습니다.
▣리더(leader)는 1단계 *필수과목* 자격증을 취득해야 공동체가 안전하고, 직분도 반드시 *필수과목*을 필하고 *세례를 받아야*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전 천주교인 포함).
딤후3:13-14절)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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