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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 순진한 인도인이 그립다!
지옥의 개처럼 상대방을 물어뜯고 짓밟고 음해하는 것을 3월, 4월에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그 진실의 내막을 알고 있는 나에게 한국의 출구 없는 닫힌 정치, 막힌 언론, 눈먼 시민단체, 어릿광대가 된 종교단체의 담합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돈과 힘이 있고 나름 사회적인 관계망과 명성과 지위가 있으므로 무능하고 무력하고 아무 것도 아닌 나는 그들을 맞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 전에 내려놓고 미주알고주알 문제를 아뢰며 날마다 울부짖었다.
하나님께 고소하며 아우님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주기를 간청하였다. 나 혼자 어둠과 악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중보기도에 참여하였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그러나 지금도 허리를 굽히고 가만히 중보기도를 계속 바치고 있다.
가슴 졸이는 시간에 묘하게도 인도에서 겪었던 어려운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 때 그 인도인들이 차라리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들을 만나면 격의 없이 허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2008년에 1년 걸려서 탐바람 무디츄르에 조그만 땅을 샀다. 2009년 초에 건축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였고 설계사가 구청에서 받는 건축허가를 8개월 정도에 걸려서 받아냈다. 그러나 촌민사무소의 촌장에게서 받아야 하는 건축허가를 12월 25일이 지나도록 받지 못하였다. 당시 우리는 건축회사와 계약을 하였고 허가가 떨어지면 바로 건축하려고 모래와 시멘트 등의 건자재를 구입해 놓은 상태였다. 애간장이 타서 날마다 전화를 하고 설계사를 통하여 통사정을 해도 촌장은 반응이 전혀 없었다. 하루는 설계사가 자기의 노력으로 촌장의 건축허가를 받아낼 수 없으므로 포기하겠다고 하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이 외국인이 들어와서 집을 짓는 것을 반대하므로 촌장이 면담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촌장 사무실에 전화를 걸고 찾아가기를 반복하였지만 번번이 허탕을 쳤다. 당시 첸나이 시내에서 탐바람에 가려면 2시간 30분이 걸렸다. 만약에 러시아워에 걸리면 3시간, 4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였다.
2009년 12월 마지막 주가 되었는데 건축허가서는커녕 촌장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 사무실에 촌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시와 모욕, 조롱을 받으면서 내가 여기서 무엇하고 있는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런 수모와 고통을 겪고 있는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속 편히 살자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하곤 하였다.
그 해 마지막 월요일 아침에 만약에 올해 안으로 촌장의 건축허가서를 받지 못하면 2010년에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촌장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타올랐고 원칙도 상식도 없는 인도행정에 대한 분노로 아침부터 괴로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가 가기 전에 촌장의 사인을 받아내야 했다. 뇌물을 쓸 것인가? 선물 공세를 할 것인가? 아니면 가서 괴성을 지르며 싸울 것인가? 눈물로 하소연할 것인가? 등으로 고민하며 기도하였다. 기도 중에 떠오른 것은 선물을 준비해 가고 만약에 사인을 거부하면 촌민사무소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선물을 준비해서 무디츄르의 촌민사무소를 찾아갔다. 마침 촌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는데 외출 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 앞에 서류를 내려놓고 말하였다. ‘건축허가서에 사인해주지 않으면 오늘부터 사무실 앞에서 단식농성을 할 것’이라고. ‘나는 단식할 준비를 다하고 왔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그 앞에 버티고 섰다. 그러자 그의 얼굴빛이 확 바꾸어지면서 ‘지금은 중요한 약속이 있으므로 시간을 낼 수 없고 내일 꼭 사인을 해주겠으니 10시 까지 오라’고 하였다. 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큰 소리를 쳤다.
“골백번 찾아 왔지만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던 당신을 어떻게 믿어요. 당신이 지금 그냥 나가면 나는 오늘부터 단식농성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가 “해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부디 내일 아침 10시에 오십시오.”라고 나에게 정중하게 말하며 자기를 나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내가 행여 자기 사무실에 남아서 단식농성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앞세우고 나왔다.
그 다음 날 그는 약속대로❰건축허가서❱에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 동안 겪은 수모와 거부, 분노와 상처를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두 번째 사건 역시 건축 건이다.
희망발전소 3층 빌딩을 짓는 중에 건축업자가 거짓말을 하며 공기를 어겼다. 우리 건축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한국에 있었으므로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애도의 시간을 주며 위로를 하였다. 그런데 돌아와서 인근의 주민들에게 물으니 그런 말을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건축업자가 괘씸하였지만 지나간 일로 싸우며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호구로 취급하며 건축계약서에 없는 지출을 하게 만들었다. 외국인으로서 인도인들과 관계가 틀어지면 결국 손해는 외국인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참고 이해하며 양보하였다. 외국인으로 사는 세금을 내는 것으로 자위하며 업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화가 나지만 일체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잔꾀를 부리며 나를 열나게 만들었다.
건축이 다 끝나고 페인트 칠만 남았는데 공정 90%가 진행된 상태에서 업자가 인부들을 보내지 않았다. 서서히 분통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늦어도 7월 말까지 건물을 완공을 해야 하는데 일꾼을 서너 명만 보내서 일을 찔끔찔끔하기를 일주일이나 계속하였다. 날마다 전화를 걸어서 하루에 20명 정도 보내서 일을 빨리 끝내라고 촉구하였으나 건축업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8월 15일에 맞추어서 봉헌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는데 모든 것이 물 건너가고 있었다. 건축을 그만두고 그들이 철수할지라도 박치기를 할 결심을 하고 현장 감독편에 메시지를 보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내일 몇 시에 오십시오.”
사장이 그 시간에 맞추어서 득달처럼 달려왔다. 그는 평당 시가를 조정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나는 다짜고짜 그에게 말하였다.
“너 나에게 저주받고 싶니? 축복받고 싶니?”
처음 만났을 때 독실한 힌두교 신자라고 자기소개를 하였던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공기를 어겼다. 그 것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 지금부터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너를 저주할 수도 있고 축복할 수도 있다. 네가 지금처럼 공사를 하지 않고 미적거리면 우리 집 앞에 현수막을 만들어 너의 회사 이름을 쓰고 나쁜 악질회사라고 알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너희 회사 앞에 가서 악질회사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할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너희 회사가 나에게 행한 악을 갚아달라고 아뢸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네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공사를 팔월 초까지 끝내면 반대로 너희 회사가 훌륭하고 좋은 회사라고 선전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책자를 만들어서 소개를 하고 한국인들이나 인도인들에게 너희 회사를 선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너희 회사를 축복할 것이다.”
건축업자는 내 말에 겁을 먹어서 인지 눈망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리깔았다.
“당신은 장도가 유망한 청년 실업가다. 나는 당신의 사업을 축복하고 싶다. 처음처럼 성실하고 바르게 현장을 관리하고 감독하면 당신은 머지않아 널리 인정받는 건축업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길은 탄탄대로가 된다. 나로 하여금 당신을 축복하게 만들어라.”
그 다음날부터 그는 인부를 20여명, 30여 명씩 투입하여 공기보다 며칠 지난 후에 건축을 마치고 모든 검사를 다 받아냈다.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서 축가를 불러 주었으며 우리 집 사진을 그가 이용하도록 허락해주고 그의 회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세 번째 사건 또한 건축업자와의 이야기다.
안드라푸라데시주 데칸고원에 위치한 난댤 소도시 왕 빈민가에 1,500여 평의 땅을 시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받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탁아와 교육을 전제로 하고.
건축업자는 계약서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재를 사용하였다. 빨간색 그라나나이트를 사용하기로 한 식당의 홀에 하얀색 값싼 타일을 깔았다. 나는 그에게 계약서를 보여주며 하얀색 타일을 걷어내고 빨간색 그라나나이트를 바꾸라고 하였다. 그는 두 달 동안 대답만하고 교체하지 않았다. 두 달 째 되는 날, 업자를 식당홀로 불렀다. 망치를 가져오라고 하자 영문을 모르는 그가 망치를 가져왔다. 망치를 들어서 타일을 깨자 혼비백산한 그가 내 손을 꼭 잡고 내일 당장에 교체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때부터 돈 타령을 시작하였다. 예산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에 이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날 때 마다 건축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계약서에 명시된 비율이나 치수를 지키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건물을 지었다. 창틀을 먼저 벽에 고정시키고 벽돌을 조적해야 하는데 벽돌을 쌓고 난 후에 벽돌을 망치로 깨부수며 창틀을 고정시키면서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외벽 플래스터링을 할 때도 방수액 비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직접 방수액을 구입하고 그 자리에 서서 비율을 그대로 지키도록 감독하였다. 그러나 안 볼 때 비율을 지키지 않아서 플래스터링 작업이 끝났을 때 방수액이 남았다. 페인트도 세 번 코팅을 해야 하는데 두 번 코팅 밖에 하지 않아서 평수를 계산해서 구입한 페인트가 많이 남았다.
그는 말끝 마다 자기가 손해를 보며 건물을 짓고 있어서 중단하고 싶다고 하였다. 당시 나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건축비의 10% 이상을 건축을 소개해준 사람(우리 건물 감독)에게 소개료로 주고 있었다. 그는 공기가 마감일이 가까이 올수록 갈팡질팡하였고 건물을 완성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특히 화장실 문 이십여 개와 환기창에 대한 자재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일이 있어서 첸나이에 갔다가 돌아왔더니 화장실에 문이 달렸는데 헌 문짝이었다. 아구도 맞지 않고 문과 문틀과 사이가 너무 커서 틈 새로 안이 다 들여다보였다. 현대식 양옥집에 가마니를 잘라서 거적문을 달은 격이었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아끼고 있는데 업자와 감독이 와서 건물이 완성되었으므로 시찰하며 일일이 점검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든 화장실 문과 안에서 외부로 나가는 쪽문이 다 허름한 중고문짝이었다. 그것도 치수가 제대로 맞지 않는. 이층 거실 로비에서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 치수가 너무 맞지 않아서 틈 사이로 주먹이 들어갈 정도였다. 나는 발로 문짝을 뻥! 뻥! 걷어찼다. “이것도 문이냐? 이것이 새 문이냐?” 나의 거친 행동에 업자도 우리가 세운 엉터리 감독도 안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작당하고 나를 속이는 그들에게 내가 문제를 알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문을 계속 걷어찼다.
봉헌예배를 드리고 난 후 업자가 화장실 문을 다시 달겠다며 나무판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그의 수리작업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인부를 사서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화장실문을 일부 교체하였다. 그리고 220평의 건물에 정화조 하나 밖에 묻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반대편에 정화조를 하나 더 묻었다. 교회와 공부방이 있는 다른 건물에는 정화조를 묻었으나 파이프를 하수도로 연결시키지 않았으므로 연결 작업을 다시 해야 하였다. 벽이 젖고 물 빠짐이 나쁜 것을 잡아내는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일 년 후에 업자가 하자보수비를 받으러 왔다. 나는 수리 내역과 영수증을 주면서 수리비를 먼저 정산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건물을 감독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나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감독했던 사람이 나에게 하자보수비를 지불하라고 하였다. 지불을 거절하였다. 며칠 후에 법에 고소할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고소할 테면 하라고 맞짱을 떴다. 그는 계속 재판 이야기로 나를 괴롭혔다. 주변 사람들에게 외국인인 나를 비난하며 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법에 고소한다는 말에 겁을 내거나 떨지 않았다. 우리가 건축한 땅이 교회 땅이고 건축계약자가 내가 아니고 교회이기 때문에 당신이 법에 고발을 하면 교회 대표가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니 빨리 법정에 고소하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국에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인도에서 건물을 감독하였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업자가 나를 법에 고발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빨리 하자보수비를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땅의 주인이 교회이고 건축계약자가 교회이므로 서류상 나와 건축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고소한다고 내가 걸릴 것이 하나도 없다. 그가 법정에 고소하면 교회 대표가 재판정에 서게 될 것이고 우리가 하자 보수한 서류를 제출하면 업자가 계약을 위반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니 나는 좋다. 그러니 법에 고소하라고 해라.’ 라고
그 뒤로 고소한다는 말은 쏙 들어갔고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다. 그러나 만약을 위하여 원본외에도 사본 네 개를 만들어서 비치하였다.
인도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많이 까불림 당하고 속고 뒤통수를 맞았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정치인들과 언론매체, 시민단체, 종교단체들이 사람들을 매장하며 괴롭히는 것을 보니 인도인들의 작당과 속임수, 비난과 비방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즈음 며칠 동안 나를 속이며 괴롭혔던 인도 사람들, 음해하였던 사람들, 이중인격자들, 이기주의자들, 탐욕으로 계속 나를 몰아붙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이토록 상대적인가? 나를 괴롭혔던 순진한 그들이 그립다.
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인시
우담초라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