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신물결
이른 새벽 나는 잠에서 깼다. 얕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모닥불은 꺼져 있었다.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잤기 때문에 젖지 않았지만 추웠다.
방금 전 꾸었던 꿈이 기억났다. 꿈속에서 따뜻한 빛이 나를 감쌌다. 나는 팔을 벌려 빛을 껴안으려 했다. 온기를 몸에 가득 담고 싶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나는 침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떠났다. 이른 봄이었고 초원은 죽은 풀로 덮여 있었다. 작년은 심한 가뭄이었다. 들리는 도시마다 가을에 곡식을 거두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씨앗을 뿌리려면 아직 기다려야 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행자인 내가 음식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굶주린 체 차가운 들판을 걷는데 고향이 떠올랐다. 고향은 덥고 탁했고 나는 늪에 빠진 개구리 같았다.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삶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하며 나는 고향을 떠났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떠오르자 멀리서 도시가 보였다. 서둘러 걸으면 저녁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시는 더럽고 가난했다. 빽빽한 건물들은 낮고 어두웠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많았다. 어디를 보아도 공장이 있었다. 공장에서 뿜는 연기 때문에 하늘은 회색이었다. 가로수에는 나뭇잎이 없었고 도로가 울퉁불퉁해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했다.
도시의 겉모습과 다르게 시민들은 밝고 친절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고 길에서 부딪혀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내가 여행자인 것을 알아보고 음식을 주었다. 사람들의 걸음에는 활력이 있었고 얼굴에는 자신감과 기쁨이 있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도시에 온 지 4일이 지났을 때 나는 숙소 근처 식당에 갔다. 한 남자 앞에 앉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음식을 노려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내가 이 도시에서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여행자인가요?” 그가 대뜸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하. 저는 닉입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부럽군요. 저도 이곳에 살고 싶습니다.”
닉은 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죠? 여행자로서 이 도시가 어떤 것 같나요?”
“이곳 시민들은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도시는 가난 하지만 사람들은 밝고 친절하죠.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이렇게 활력 있는 도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닉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나는 말을 계속했다.
“7년 전, 저는 기쁘고 활기차게 살고 싶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여행을 하면 매일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자유롭습니다. 저를 의지하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죠. 불편한 상황이 있으면 그냥 다른 도시로 가면 됩니다. 또 다른 사람과 즐겁게 대화할 정도의 관계만 맺어도 됩니다. 깊이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불편할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돌아다니는 삶을 멈추고 싶습니다. 주변 환경은 매일 바뀌지만 제 자신은 7년 전과 같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방종이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친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저는 변하지 않는 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저 도망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참에 모두가 기쁜 것 같은 이 도시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마치 맑고 깨끗한 계곡물과 같습니다. 여기서라면 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그렇군요.” 의자에 기대며 닉이 말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당신은 왜 이 도시의 시민들이 즐겁고 활기찬지 아시나요? 바로 그들이 칠 일에 한 번씩 죽음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해진 요일에 시민들은 ‘상자’라는 공간에 들어가야 합니다. 의무적인 일이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상자는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작은 방입니다. 벽에 버튼이 하나 있는데, 이 버튼을 누르면 일정 확률로 바닥이 열립니다. 버튼을 누른 사람은 구덩이로 떨어져 죽습니다. 버튼을 눌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살아남은 사람은 상자의 반대쪽 문으로 나가죠.”
나의 표정을 본 닉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이번 주에도 상자에 들어가셨나요?”
“당연하죠. 그리고 다시 나왔습니다.” 옆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상자 제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상자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가뭄 때문에 도시 밖에서는 굶어 죽습니다. 저는 이 강제성이 싫습니다. 상자 안에 들어가야 할 때면 저는 제가 무력하다고 느낍니다.” 닉이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왜 이 제도에 찬성하는 것인가요?”
“죽음이 삶에 활력을 주는 모양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더 열심히 사는 거죠.”
나는 식당을 나왔다. 닉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길을 가는 시민들이 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이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몇 달 안 되어 나는 이 도시의 시민이 되었고 공장에서 직업을 얻었다.
나이가 들어 삶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나는 매일 죽음 앞에서 살기 때문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도 않았다. 곧 죽을 수 있기에 이웃에게 친절할 수 있었고,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기에 지루한 일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나의 걸음은 가벼웠다. 저녁의 햇볕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자신이 혁명을 이루었다고 했다. 상자 제도는 무슨 이유인지 폐지되었다.
혁명 후 며칠이 지났을 때, 나는 침대 위에 앉아 생각했다. 더 이상 상자는 없었다. 나는 두려웠다. 내 삶이 다시 진흙 속으로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기쁨과 활기는 사라지고 있었고, 나는 조금씩 게을러지고 있었다. 다시 방랑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나는 이 도시가 끓는 물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에 있는 개구리는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내 활기와 기쁨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이 용기를 내야 할 때일 수도 있다. 내 힘으로 늪에서 나올 기회가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별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내 집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바닥에 비닐 시트를 깔고 나를 그 위에 앉혔다. 시트는 피가 묻은 다음 빨았는지 옅은 붉은 색이었다. 그때 나는 군인들 속에서 닉을 발견했다.
“닉!” 내가 외쳤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닉이 말했다.
나는 주사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나는 깨어났다. 머리가 아파 거울을 보니 네모난 기계가 뒤통수에 붙어 있었다. 머리 깊숙이 이식되어 때어낼 수 없었다.
나는 거리로 나갔다. 거리에는 나처럼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시청으로 몰려갔다. 시청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시청 울타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경찰이나 군인은 보이지 않았다. 전에는 없었던 커다란 스크린만 덩그러니 있었다.
갑자기 내 머리 뒤에 달린 기계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숨도 쉴 수 없었다. 광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번도 보지 못한 빛이 시청 앞 화면을 체웠다. 머리 뒤 기계가 진동했다.
그 순간 화면의 빛이 천 개의 주삿바늘처럼 내 살을 꿰뚫고 뼈를 훑었다. 나는 양팔을 뻗었다. 나는 그 빛 앞에 있었고 빛과 하나였다.
빛이 사라지고 도시의 지도자들이 시청 문을 열고 나와 단상 위로 올라섰다. 닉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여러분, 어젯밤의 일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저희는 여러분에게 온전한 행복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저항하려 했다. 빛 앞에서 나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이 빛은 내 꿈에 나왔던 빛이 아니었고 저녁의 햇빛이나 별빛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뒤, 화면이 다시 켜졌고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