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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말.말.말
말투만 바꾸어도 운명이 바뀐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이
말의 파장(波長)이 운명(運命)을 결정짓는다.
자나 깨나 ‘감사합니다!’를 쉬지 않고
반복했던 어느 말기암 환자는
한순간에 암세포가 갑자기 사라졌다.
만년 꼴찌에게 칭찬 교육을 시켰더니
우등생이 되었고,
10년간 적자로 허덕이던 기업이 직원들
덕담 훈련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혼 위기의 부부 150쌍에게
언어 습관을 교정시켰더니,
146쌍이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
좋은 말 열 번 해도
나쁜 말 한번으로 도로아미타불 된다.
조심하라.
자동차도 욕을 먹으면 계속 속썩인다.
물질 기계도 사람 언어에 감응하기 때문이다.
덕담(德談)을 매일 가급적 많이 하라!
그것이 아주 많이 쌓이면,
기적(奇蹟)이 일어난다.
내가 했던 말의 95%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말버릇을 고치면 운명(運命)이 변한다.
말투를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죽는 소리를 자주하면 죽을 일만 생긴다.
그것이 말의 영향력이다.
성공(成功)은 습관에 달렸다(Success is a habit)
습관(習慣)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어가지만,
나중에는 그 습관이 우리를 만들어간다.
성품은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성품은 좋은 습관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들이 쌓여 성품이 바뀌고,
비로소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곰은 슬개때문에 죽고
사람은 말때문에 망한다
더 도움 무궁인
《What's your name》
<(姓•名)>
우리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한국 성씨의 절반 가까운 46%는 귀화 성씨이고, 한민족의 약 30~40%는
귀화인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다문화를 수용해야 한다.
세계를 제패한 로마와 몽골제국,
미국과 중국이 대국으로 건재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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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엔 정해진 짝이 없이 남녀가 혼거하는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였다.
그러니 아버지가 누군지 불확실해,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모계사회를 구성했다.
수렵생활에서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가족제도가 형성되면서 아버지 중심의 부계사회로 전환된다.
성(姓)은 모계사회에 근거해 여자에게
붙인 것으로 女+生, 즉 여자가 낳은
아이를 뜻하며, 씨(氏)는 씨앗에서 연유돼 남자에게 붙혔다.
(이름은 '이르다'에서 나온 명사이다.)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대 씨족사회에서 다른 씨족과 구분하기 위해 지배자에게 부여해 사용한 호칭이 성(姓)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는 고조선시대 부족장이나 왕족에서부터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 초기엔 이름만 있었다.
그후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자식 표기로
이름 앞에 동계혈족집단 (同系血統集單)의 명칭인 성(姓)을 쓰기 시작했다.
성씨(姓氏)의 성(姓)은 출생의 혈통, 씨(氏)는 시조의 출생지나 근거지인 관향 (貫鄕)을 나타내고, 항렬은 시조로부터
몇 대 손임을 나타내는 돌림자이다.
<성명에 관한 법률>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나, 부모가 어머니 성을 따르기로 합의한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동성동본 금혼은 2005년부터 폐지한다.
※성씨에는 두음법칙 규정을 삭제한다.(유-->류)
※이름의 글자 수는 성(姓) 외,
5자까지만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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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환(桓)에서 한(韓)으로,
고구려 시조 주몽은 성이 고(高)씨다. 충신에게 극(克), 중실(仲室), 소실(小室)
성을 주었고, 백제 온조왕은 성을 부여
(扶餘)로 하였다.
신라는 박(朴)•석(昔)•김(金)의
왕족 외, 3대 유리왕 때 6부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했다.
양부(梁部) 李氏, 사량부(沙梁部) 崔氏, 모량부(牟梁部) 孫氏, 본피부(本彼部) 鄭氏, 한지부(漢祗部) 裵氏, 습비부(習比部) 薛氏 성(姓)을 사성했다
가야국 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許黃玉) 공주와 최초 국제 결혼한 왕으로, 황금알에서 태어나 성을 金氏로 했고,
왕자 일부는 김해 許氏가 됐다.
발해의 시조 대조영은 성이 대씨(大氏)로 대씨와 태씨(太氏)의 시조가 된다.
고구려와 백제는 20여 개, 신라는 10여 개 성씨가 사서의 기록에 보인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와
백제의 성(姓)은 차츰 사라지고, 신라에서 발생된 성씨가 한반도 전체로 확산됐다.
고려 왕실의 성은 왕씨(王氏)로 왕건의 증조부 왕국조(王國祖)가 시조이다.
왕건은, 개국공신들에게 사성했는데
'홍유'는 부계 洪氏, '신숭겸'은 평산 申氏, '배현경'은 경주 裵氏, '복지겸'은 면천
卜氏의 시조가 됐다.
고려 때, 신라 사람 '김행'은 왕건을 보필해 권씨 성을 받아 '안동 權氏'의 시조가 된다.
제국공주를 따라 귀화한 몽골인 '후라타이'는 성명을 '인후'로 바꿔 '연안
印氏'의 시조, 위구르 귀화인 '三哥'는 '장순룡'이란 성명을 얻어 '덕수 張氏'의 시조, 베트남의 왕족 '이용상'은 정변으로 고려에 귀화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전주가 관향이다. 여진인 개국공신 '동두란'에게 '이지란'이란 성명을 주어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됐고, 임진왜란 때 귀화해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전수한 왜장 '사가야'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으로 우록(달성군 가창면)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근래 한국 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이참> (베른하르트 크반트: 독일)은 '독일 李氏'의 시조, 국제 변호사 <하일>(로버트 할리: 미국)은 '영도 河氏'의 시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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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엽부터 일반화하기 시작한 성씨는 조선시대에 더욱 확장돼 천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백성이 성을 갖게 된다.
조선 초기엔 천민이 전체 인구의 1/2로, 백성의 반 정도만 성이 있었다.
백성(百姓)이란?
백 가지 성씨란 뜻인데,
국민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폐지되고,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되면서 누구나 본관과 성을 갖게 된다.
전 국민의 1/2이나 되던 노비들은
주인의 성을 따르거나 명문세가에 투탁
(投托)하면서 성을 사고 팔기도 했다.
그래서 소위 양반이라는 대성(大姓)엔
약 반 정도는 노비 출신 천민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무명 성씨이거나 희성(稀姓)들의
가문이 순수한 혈통을 유지했다.
현재 명문세가의 성씨들은 자기의
조상이 양반이나 천민일 확률은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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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성씨 자료인 '세종실록 지리지'엔 250여 개, 성종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277개, 후기 영조 때는 298개 성이 수록돼 있다.
고려에서 조선 후기까지 주로 250여 개, 1930년대와 1980년대 국세조사에도 250여 개로 나온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한국의 성씨는 총 728개로 갑자기 늘었는데, 428개는 근래 귀화 성씨이고, 한국 성(姓)은 286개였다.
현재 주민등록상 성씨는 5,000개가 넘고,
그 중 한자 없는 성이 4,000개 이상이다. 동남아시아 등에서 국제결혼에 의한 국적 취득자들의 성으로 보인다.
(코비•리샤•짠투이•레지나•와비린 등.)
동•서양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결혼하면 여자는 남편의 성을 따르지만,
한국만 예외이다.
중국도 일부는 남편 성을 따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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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李•朴•崔•鄭•姜•趙•尹•張•林.
10대 성씨가 64.1%, 20대 성씨까지는
전 인구의 약 80%를 차지한다.
金氏가 21.6%, 李氏가 14.8%,
朴氏가 8.5%이다.
본관으로는 김해 김씨가 9%, 밀양 박씨 6.6%, 전주 이씨 5.7%의 순서이다.
286개 성씨 중 약 40%는 인구 1,000 명 미만이고, 하위 42개 성은 인구 100명 미만이었다.
중국은 성씨가 4,000여 개,
일본은 10만 개가 넘는다.
※<중국> 5대 성씨: 李•王•張•劉•陳.
※<일본> 사토•스즈끼•다카하시•다나카•와타나베.
※<미국> Smith•Johnson•Wlliams•Jones•Brown.
한국의 복성(複姓: 2字姓)
南宮, 皇甫, 司空, 諸葛, 鮮于, 獨孤, 西門, 東方, 魚金, 小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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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귀화한 성씨 중, 중국 역사
속의 유명한 위인들과 연관된 성씨들.
★孔氏: '공자' 52세 후손 '공소' 고려 귀화.
★孟氏: '맹자' 40세 손 '맹승훈' 신라 귀화.
★諸葛氏: 시조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
5세 손 '제갈충'이 신라 귀화.
칠원 제씨와 남양 갈씨도 제갈씨에서 기원한다.
★白氏: 중국 '황제헌원'에서 기원,
16세 손 '백을병'의 후손 백우경 신라 귀화.
★餘氏: '여불위' 후손 '여어매' 신라 귀화.
진시왕이 여불위의 사생아라는 말이 있기에 진시황의 후손이 될 수도 있다.
★朱氏(新安): '주자'의 후손 '주잠' 고려 귀화, 주잠과 동행한 '섭공제' 경주 葉氏 시조, 주잠의 사위 '구존유'는 능성 具氏 시조.
★劉氏: 한나라 '유방' 41세손 '劉筌'
고려 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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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성, 밀양 손(密陽 孫)은 신라 6부 모량부(牟梁部) 촌장 문의군(文義君) 구례마(俱禮馬)가 득성조(得姓祖)이다.
유리왕 때 孫氏 성을 받고, 흥덕왕 때 국효(國孝) 손순(孫順) 할아버지가 시조이며, 손자 익감(翼減)이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 밀양의 옛 이름)에 봉해져 본관이 밀양이며, 성씨 순위 25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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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이름>
(1945~75년)
※남자: 영수.정훈.
※여자: 영자.미영
(2,000년)
※남자: 민준.현우.지훈.
※여자: 서연.민서.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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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공원>
대전시 중구 침산동 보문산 기슭에
성씨별 조형물과 관련 자료를 모아 만든
세계 최초의 '姓氏公園'이다.
※베토벤이 작곡한 '월광곡'의 탄생배경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
쓸쓸한 가을 저녁이다.
베토벤은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고요한 초저녁 거리를 거닐고 있다.
높이 떠오르는 둥근달을
바라보고 있을 때 .
어디선가 실낱같이 가느다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결에 들릴 듯 말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율이 베토벤의 마음을 움직인다.
베토벤은 꿈결 같은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옮긴다.
바로 자신의 피아노 곡이 초라한 오막살이 작은 집에서 흘러나온다.
이토록 가난한 집에 웬 피아노며 그것을 치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감흥에 젖어 슬그머니 그 집 문을 밀고 들어선다.
주인이 깜짝 놀라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누구요? 아닌 밤중에 말도 없이---’ .
베토벤은 주인의 기척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방안에는 작은 촛불 한 자루가 깜빡인다.
그 옆에서 꿰매던 헌신짝을 든 주인이 서 있고, 들창 밑 피아노에 앉아있던 한 소녀가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
낡은 피아노 위엔 악보는 고사하고 종이 조각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시방 치던 곡의 악보는 어디 있나요? 베토벤의 물음에 소녀가 부끄러운 듯 조그맣게 대답한다.
‘저는 눈이 안 보여서---’ 채 끝을 맺지 못하는 소녀의 목소리에는 벌써 눈물이 섞여 있다.
‘아, 장님, 가엾고 놀라운 일이다. 눈먼 소녀의 이 재주, 이 운명---’ ‘그러면 그 어려운 곡은 어떻게 배웠지요?’ ‘배운 적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살던 집 건너 편 어느 부인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저 흉내를 내 보았을 뿐이에요.’
‘참 가엾은 일입니다. 저 역시 넉넉지 못한 사람으로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오만’ 그때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소리를 듣고 있던 집 주인이 다가온다. 어딘지 모르게 기품 있어 보이는 청년에게서 뜨거운 열정을 느끼고 앞치마를 털면서 의자를 권한다.
‘눈 먼 이 아이에겐 오라비와
다 깨진 피아노만이 위안입니다.
웬만하면 음악회라도 데리고 가 저 애의 평생 소원인 베토벤 선생의 피아노 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습니다만
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그토록 베토벤의 연주가 듣고 싶은가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인지 신인지 모를 대천재 베토벤 선생이야말로 온 천하가 모두 우러러보는 분 아닙니까?’
초는 점점 녹아내려 가물가물 꺼져가면서 세 사람의 얼굴을 비춰준다.
베토벤은 슬그머니 소녀를 붙잡아 일으키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조용히 건반에 손을 얹고 불행한 소녀를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방금 전에 소녀가 치던 바로 그 곡이다.
때로 빠르게 이따금씩은 느리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조는 조그만 방을 채우고 들창 너머 달빛을 타고 흐른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베토벤은 물론 두 남매를 감싸고 도는 선율에 모두 넋을 놓아버린다.
연주가 끝나도록 남매는 미동도 않는다. 말없이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소녀가 별안간 베토벤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부르짖는다.
‘선생님, 선생님은 베토벤 선생이 아니신가요?’
‘그렇소. 내가 바로 베토벤이오.’ 베토벤의 말에 두 남매는 얼싸안고 기쁨과 감격에 복받쳐 흐느껴 운다. 벅찬 목소리로 오라비가 애원한다.
‘선생님, 불쌍한 제 동생을 위하여 한 곡만 더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베토벤이 다시 피아노를 향해 앉았을 때 가녀린 촛불이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꺼져버린다.
열어젖힌 들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이 피아노 건반 위를 비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빛나는 별들이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고 그 가운데로 은하수가 흐른다.
베토벤은 두 남매의 깊은 사랑, 아름다운 별, 방안 가득한 달빛에 몸과 마음을 내어 맡긴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최고조로 끓어올랐을 때 베토벤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황홀하고도 신비로운 광경 속에서 두 남매가 손을 모은다.
그들의 가슴 속에도 영롱한 별이 내리고, 달빛의 신비로움 속에서 피아노 가락이 그들을 에워싼다.
조용하던 곡의 흐름은 갑자기 변하고 베토벤의 두 손이 비바람치듯 현란하게 오르내리자 산이 울고 천지가 흔들린다.
휘몰아치던 선율은 다시 가볍고 아름답게 퍼져나가 두 남매의 가슴 속에 평화와 희열을 가득 안겨준다. 이윽고 베토벤의 손이 움직임을 멈추고 두 남매가 피아노 연주의 황홀경에서 채 헤어나기 전에 베토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리없이 소녀의 집을 빠져나온 베토벤은 거처로 돌아오자 낡은 피아노로 쳤던 곡을 밤새도록 악보에 옮긴다. 달빛소나타, 악성 베토벤의 유명한 '월광곡(月光曲)'은 그렇게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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