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여러분이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 스스로 선택하십시오.—여호수아 24:15.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랑 많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할 때 기뻐하십니다. (시 84:11; 잠언 27:11) 우리는 다양한 면에서 자유 의지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본을 따라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앞자리에 두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와 사도들이 몹시 피곤해서 휴식을 취하려고 조용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싶어서 그들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짜증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가 6:30-34)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시간과 활력을 사용함으로 예수를 본받는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마태 5:14-16. 「파21.08」 3면 7-8항 |
여러분이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오늘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choose you this day whom ye will serveㅡ여호수아 24:15. Matthew Poole's Commentary If it seem evil; unjust, unreasonable, or inconvenient. Choose you this day whom ye will serve: not that he leaves them to their liberty, whether they would serve God or idols; for Joshua had no such power or liberty himself, nor could give it to any other; and both he and they were obliged by the law of Moses to give their worship to God only, and to forbear all idolatry in themselves, and severely to punish it in others; but it is a rhetorical and powerful insinuation, whereby he both implies that the worship of God is so highly reasonable, so necessary and beneficial, and the service of idols is so absurd, and vain, and pernicious, that if it were left free to all men to make their choice, every man in his right wits must needs choose the service of God before that of idols; and provokes them to bind themselves faster to God by their own choice. See such manner of speeches in Ruth 1:8,15 1 Kings 18:21. But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but know this, if you should all be so base and brutish, as to prefer senseless and impotent idols before the true and living God, it is my firm purpose, that I will, and my children and servants (as far as I can influence them) shall, be constant and faithful to the Lord. 매튜 풀의 주석 만약 그것이 사악하게 보인다면 -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너희는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선택하라. -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든 우상을 섬기든, 그들을 그들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수아 자신에게는 그러한 능력도, 자유도, 다른 누구에게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를 비롯하여 그들은 모두 하나님만을 숭배하고, 자기 안에 다른 우상을 두는 것을 참아야 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적이고 강력한 암시이다. 그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이고, 필요하고 유익하며, 우상을 섬기는 것이 너무 터무니없고, 허망하며, 해롭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들의 선택을 자유롭게 할 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우상보다는 하나님을 선택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하나님께 더 빨리 자신을 연합시키도록 자극하게 하였다. 룻 1: 8, 15; 왕상 18: 21 참조. 그러나 나와 나의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 - 그러나 여러분이 진실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분별없고 무력한 우상을 선호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나의 확고한 목적이며, 내 자녀들과 종들(내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은 주께 변함없는 충실성을 나타낼 것이다. |
워치타워의 가르침은 그들의 조직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모든 활동들이 이 사회의 규범의 제한을 받고 있다. 그들의 사교활동은 이 워치타워 사회내로 제한되며 비록 바깥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들의 교제를 제한함으로써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방인(?) 친구는 사실상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들이 제명, 이탈 또는 탈퇴를 하였을 경우 그들의 회피(shunning)제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고립된 상태가 된다. 진실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나 가족으로 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오직 '나홀로'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 워치타워 조직은 이 점들을 이용함으로써 그들의 증인 사회를 떠나면 인생이 실패한 것 처럼 주장하며 더는 가야할 곳이 없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 이용하고 있다. PIMO 라면 이 문제들을 사전에 대처할 수 있다. 그들은 몸만 증인 사회내에 담그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탈관념이 된 상태이므로 원하는 방향으로 직업이나 취미생활을 통하여 친구를 만들고 서서히 워치타워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다 사실 이런 방법이 모든 제도권의 일반 종교인들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종교를 버리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탈증인(POMI)들은 이 문제들에 대처하는 것이 비교적 어려울 수 있는데 무엇보다 먼저 탈관념이 필요하다 비록 그들이 증인 사회에서 고립되었지만 정신적인 면의 일부 내지 거의가 증인 사회내에서 주입된 관념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탈관념할 필요가 우선적으로 제기된다. 증인 사회에서 그들의 사회에 모든 것을 올인 시키는 데에는 단순히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개념이 주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조직에 대한 개념이 매우 잘못된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는데 워치타워는 조직의 개념을 그리스도인이 충성을 바쳐야 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하위에 둠으로써 형식적으로는 그들이 모든 형제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지 모르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권위와 동등한 위치에 머무르게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러한 월권적 권위를 강조하는데 뒷받침되는 성경 본문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구약과 신약의 예를 각각 인용함으로써 알아보자. |
<1981년 5월 15일자 파수대(영문) 기사 '조직' 시리즈의 첫 기사>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여호수아 24:15 1 오늘날 선택이 관련된 가장 큰 두개의 조직이 있읍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필요성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긴요합니다. 이천년 전에 한 역사적인 인물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온 우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읍니다. 2 이 사실에 대한 증인이고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던 두 사람 곧 전에 세무 공무원인 ‘레위 마태’와 의사인 ‘누가’가 이 사실을 확증하는 증언을 합니다. 그 당시 온 우주의 주목을 받고 있던 그 역사적 인물은 중동 지방의 예수 그리스도였읍니다. ‘레위 마태’는 ‘사단’ 마귀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조직된 세상에 대한 ‘사단’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주저함이 없이 ‘사단’의 제안을 거절하셨읍니다. (마태 4:8-10)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미 속해 있는 조직을 버리고 ‘사단’의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셨읍니다. |
언급된 성경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과 거짓 신들 사이에서 개인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파수대의 이 기사에는 바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오늘날 선택이 관련된 가장 큰 두개의 조직이 있읍니다. |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선택을 조직의 선택으로 전환시킨다.
증인들의 사고의 틀은 고대에 여호와를 선택하는 문제가 오늘날 어떤 조직을 선택하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이 기사의 두 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충성에 대한 다음 세 가지 답변이
나오는데 이 답변은 조직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답변이다.
이렇게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신세계 역)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시험해서는 안 된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해야 하고,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이 답변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답변임에도 불구하고 이 파수대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림으로써 조직에 대한 충성이라는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미 속해 있는 조직을 버리고 ‘사단’의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셨읍니다. |
성경 본문의 예수의 대답은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충성이지 조직적 관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조직에 대한 충성을 동일시함으로써 증인들의 사고의
틀을 조직에 대한 충성이 매우 성서적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시도한다.
이제 흔히 제기되는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의 배경이 된 신약 성서의 본문
을 살펴 보자.
(요한복음 6:67, 68)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여러분도 가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
이 신약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와 시몬 베드로의 대화를 인용하여 1988년 3월 15일호
파수대 18면(영문)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셨으므로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조직에 충성스럽게 머물기로 결정했습니까? |
인용된 어구의 고딕체인 "어디에도"는 성경 본문에 "누구에게"로를 조직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조직에 대한 믿음과 충성으로 동일시 하도록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워치타워는 그들의 주 해설서인 파수대를 통하여 그릇된 논증을 조작함으로써 워치타워의 권위를 한껏 높이려고 한다. 사실상 이러한 방식의 권위를 만드는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1세기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죽고 세월이 흐르자 교회는 자체의 권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에 가장 두드러진 점은 성경 해석의 권위를 몇 사람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로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워치타워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당시에 교회의 의미가 두 가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하나는 에클레시아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두 번째는 이 기본적 의미가 발전 확대되어 교회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교회의 이름으로"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때 사용된 교회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한 우두머리를 지칭한다. 오늘날 워치타워의 "조직"이란 명칭도 원래의 의미는 전세계적인 여호와의 증인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그 의미가 발전 확대되어 성경을 해석하고 증인 사회의 성원들을 지배하며 처벌하는 권위를 가진 소수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는 종교적인 면에서도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가 아니라 누구에게로 가야하는가? 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한다. 결코 어떤 특정한 단체나 조직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만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질문:
1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은 무엇인가?
2 파수대에서는 '누구에게'라는 개념을 무엇으로 바꾸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