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2010 한국축구, 누가 위기라 했는가
김현회 기사전송 2010-12-28 08:37
2010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올해 내 목표는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과 몸무게 5kg 감량하기, 자동차 바꾸기였는데 이룬 게 하나도 없다. 이제 사흘 남은 2010년 동안 이 세 가지를 모두 이루는 건 유병수가 골을 넣지 않고 인천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보다 200배 정도 어려운 것 같다.하지만 내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올해 참 기특한 일을 많이 했다. 팬들에게 무한 감동을 선사했던 한국 축구의 5가지 베스트 뉴스를 꼽아봤다. 혹자는 한국 축구를 위기라 하지만 올해 한국 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또한 이와 더불어 내년에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올해 5가지 슬픈 뉴스도 선정해봤다.이영표가 운다. 우리의 든든했던 이영표가 운다. 이영표만 운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은 대단한 성과다. ⓒ기쁜 뉴스1.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둔 후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전에 1-4로 패하기는 했지만 3차전 나이지리아와 2-2 무승부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16강에서 우루과이에 안타깝게 1-2로 패해 8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위대한 역사를 이룬 주역들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머리와 발을 연이어 사용하는 이정수의 소위 ‘헤발슛’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다. 월드컵 1승에 목말랐던 게 불과 10년도 안 된 일이라 생각하니 참 대단한 발전이다.기쁜 뉴스2. 성남의 AFC 우승성남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란 조바한을 제압하고 아시아 챔피언에 등극했다. 지난해 포항의 우승에 이어 2년 연속 K-리그 클럽이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서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성남을 비롯해 포항, 전북, 수원 등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K-리그 네 개 팀이 동아시아에 주어진 4장의 8강 티켓 주인공이 되는 기막힌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한 신태용 감독은 AFC 사상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아시아 정상을 밟은 역사적인 인물이 됐다. 일본과 중국, 호주 축구팬들은 참 불쌍하다. 이런 경기를 지켜볼 흥미도 없고 경기를 보면서 먹을 착한 가격의 이마트 피자도 없기 때문이다.FIFA 주관 대회에서 이런 기쁨을 느껴본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한국의 U-17 여자 청소년 대표팀은 기특한 일을 해냈다. ⓒ기쁜 뉴스3. U-17 여자 청소년 월드컵 우승U-17 여자 청소년 대표팀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일본과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따내고 128년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또한 공격수 여민지(함안대산고)는 8골을 기록하며 대회 최다 득점상과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하고 트로피에 입맞추는 장면이 이제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이런 거 해봤으니 자부심을 갖자.기쁜 뉴스4. U-20 여자 청소년 월드컵 3위U-20 여자 청소년 대표팀은 U-20 여자 청소년 월드컵에서 값진 3위를 기록했다. 비록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그녀들이 보여준 투혼은 대한민국을 열광시켰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여자 축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U-17 후배들도 자신감을 얻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특히 지소연은 환상적인 드리블과 골 결정력으로 8골을 기록하며 실버볼, 실버부트를 석권하면서 여자축구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지메시? 아니다. 그냥 지소연이라고 해도 충분하다.프리미어리그 맨유와 첼시의 경기 모습…이 아니고 K-리그 서울과 성남의 경기 모습. ⓒ기쁜 뉴스5. K-리그 6만 관중 시대 돌입60,747명. 대표팀 A매치 관중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월드컵 본선 경기 관중수도 아니다. 이번 시즌 K-리그 한 경기에 들어찬 관중수가 무려 60,747명이다. 지난 5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성남의 경기에는 무려 6만 명이 넘는 이들이 들어차 프리미어리그 부럽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기록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이기도 하다. K-리그의 위기를 노래하는 이들은 이 경기를 지켜봤을까. 이제는 K-리그 경기장 앞에서도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 놀라운 발전이다.슬픈 뉴스1. 바르셀로나 방한 경기K-리그 올스타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들은 들러리가 됐다. 그리고 이 자리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차지했다. K-리그 올스타와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는 한국 축구 치욕의 날로 기억된다. K-리그 경기 일정이 이 경기를 위해 변경됐고 바르셀로나는 리오넬 메시 출전 여부로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런 경기는 안 하느니만 못 하다. 아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는 이런 촌극을 보고 싶지 않다. 내년부터는 다시 우리들의 올스타전을 돌려 달라. 축구 후진국 ‘인증’하지 말자.슬픈 뉴스2. 고교 축구 승부조작지난 9월, 광양제철고와 포철공고의 SBS 고교 챌린지 리그 경기에서 1-0으로 앞서던 광양제철고가 후반 막판 10분 동안 무려 포철공고에 5골이나 내주는 일이 발생했다. 같은 시간 치러진 광주 금호고와 울산 현대고의 경기 결과를 통보받고 이 같은 승부조작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광양제철고 손형선 감독과 포철공고의 박형주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를 내리고 두 팀은 올해 챌린지리그와 초중고리그 왕중왕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징계를 내렸다. 한 선수는 감독의 승부조작 지시를 행동으로 옮기면서 경기 도중 ‘쪽팔리다’고 중얼거렸다. 다시는 어린 선수들한테 이런 ‘쪽팔린 일’ 시키지 말자.아쉽지만 이제는 미련을 버리자. 2022년 월드컵 유치 실패로 한국 축구는 멈추지 않는다. ⓒ슬픈 뉴스3. 2022년 월드컵 유치 실패2022년 월드컵 유치 도전에 나섰던 한국은 아쉽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카타르를 비롯해 호주, 일본, 미국 등과 경쟁했던 한국은 월드컵 유치에 뛰어든 5개 국가 중 3번째로 탈락했고 결국 카타르가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비록 2002년 월드컵 유치 때와는 달리 국민의 관심도 적었고 국가의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이 정도면 선전한 셈이다. 비록 월드컵 유치 실패가 조금 슬프기는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국민적 관심도를 끌어 올려 다시 한 번 월드컵 유치에 도전하면 된다. 40년만 더 기다리자. 아… 40년… 그냥 월드컵 유치 떠올리지 말고 당분간은 일만 하자. 월드컵 유치 실패해도 밥 만 잘 먹더라.슬픈 뉴스4. 왕년의 스타 황재만씨 별세지난 7월 한국 축구의 별이 졌다. 197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끈 왕년의 스타 황재만(향년 57세)씨가 지병으로 별세한 것이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A매치 94경기에 나섰던 고인은 붙박이 왼쪽 측면 수비수로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을 비롯해 숱한 국제 무대에 나선 바 있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기도 한 고인은 1986년부터 희귀병인 척수신경마비 증세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24년간 투병 생활을 해왔었다. 한국 축구 발전에 힘쓴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당시 월드컵 이후 워낙 많은 이슈탓에 고인을 기리는 칼럼 하나 쓰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죄송하다.슬픈 뉴스5. 월드컵 중계권 싸움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그라운드보다 방송국이 더 치열한 싸움을 펼쳤다. SBS의 월드컵 단독 중계가 굳어지자 각 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면서 중계권 싸움을 벌였다. 결국 이 일은 법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건 명확한 건 하나다. 시청자들은 방송사들의 싸움이 아닌 수준 높은 중계 방송을 시청하고 싶었다는 것이다.나는 2010년 한국 축구가 참 자랑스럽다. 비록 우리를 슬프게 했던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이룬 게 너무 많은 한 해였다. 훗날 2010년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대단한 성과를 올렸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2010년 한국 축구여, 우리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줘서 고맙다. 2011년에도 잘 부탁한다.footballaven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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