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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지 사랑의 언어/
제1의 사랑의 언어
인정하는 말
마크 트웨인이 “나는 한 번 칭찬을 받으면 두 달간은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크 트웨인의 말대로라면 일년에 여섯 번 칭찬을 받으면 일년 동안 사랑의 그릇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는 더많은 칭찬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은 격려하는 말을 쓰는 것이다. 칭찬하는 말이나 감사의 표현은 사랑을 잘 전달하는 힘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칭찬하는 말을 자주 주고받는다면 결혼 생활에 어떠한 감정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신 배우자로 하게 하기 위해 겉치레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칭찬을 들을 때 그 말에 보답하고 싶어서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한다.
격려하는 말
말로 칭찬하는 것은 당신이 배우자를 인정한다는 하나의 좋은 표현이 된다. 그것의 하나의 방언으로 격려하는 말이 있다. “격려하다”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는 불안정하게 느끼는 어떤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가 없으면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 당신의 배우자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은 당신의 격려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배우자는 삶의 구석구석에 아직 계발되지 않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잠재력은 당신이 격려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배우자는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당신의 말은 당신의 배우자로 하여금 이런 일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당신의 배우자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당장 압력을 가하라는 말은 아니다. 당신의 배우자가 이미 갖고 있는 관심거리를 계발시키도록 격려하라는 것이다.
격려하는 데에는 배우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과
배우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배우자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를 배워야만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전에 계발된 것보다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들의 감정을 억제
하는 것이 용기를 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배우자는 아주 중요한 모든 종류의 자극을 줄 수 있다. 물론 격려의 말을 하는 것이 당신에게 힘들 때도 있다. 만일 당신의 말투가 비판적이고 비난하는 것이라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되나, 나는 그것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온유한 말/ 사랑은 온유하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고 싶으면 온유한 말을 써야 한다. 온유한 말투로 해야 한다. 똑같은 문장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떠한 말투로 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오늘 설거지 해줘서 정말 기뻐”라고 딱딱거리며 말했다면 그것은 결코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반면에 상처받고 고통스럽고 분노를 느끼게 하는 상황이라도 온유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사랑의 표현이다. “오늘 저녁 당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니 실망스럽고 기분이 안 좋아요”라고 솔직하고 부드럽게 말했다면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될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알리기를 원한다.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냄으로써 남편과 친밀해지려는 것이다. 그녀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기 위해 의논할 기회를 찾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크고 거칠게 표현하면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비난하고 정죄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당신은 그의 표현이 그의 기분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그가 그 일에 대해 상하고 화난 마음을 표현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이 입장이 되어 보고 그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해 보며 그 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표현하라. 만일 당신이 잘못했다면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그렇지 않고 배우자가 당신의 동기를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을 온유하게 설명하라. 당신은 이미 발생한 일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여 당신의 생각을 입증하려고만 하지 말고 이해와 화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사랑이다.
우리가 좀 더 발전하는
결혼 생활을 원한다면
이런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
사랑은 실수를 기억하지 않는다.
사랑은 과거에 실수한 것을 끄집어 내지 않는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결혼 생활을 들여다보면 항상 좋고 바른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배우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말을 할 수도 있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을 고백하고 잘못했다고 시인해야 한다.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잘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내 실수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외에 배우자의 상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더 좋은 길은 없다. 배우자가 잘못한 것을 아주 고통스러워하며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가부간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용서해 줄 것인지 하는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다. 만일 내가 잘잘못을 가려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원한다면 나 자신은 심판관이 되며 배우자는 죄인이 된다. 부부간의 친밀함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용서를 택하면 부부 사이의 친밀함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용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들추어내면서 오늘의 새로운 날들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과거의 실수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는 과거로 끝내는 것이다. 과거의 실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오늘을 살아가기를 택할 수 있다. 용서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결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비를 베풀겠다는 선택이지 죄인에게서 죄를 들추어 내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사랑의 표현이다.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돌봐줄게요. 당신을 용서할게요. 나의 상한 마음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다시는 없을거예요. 이번 일에서 우리 둘 다 무엇인가 배우기를 원해요. 당신은 내 배우자이잖아요. 여기서부터 우리 잘해 봅시다.” 이러한 말들은 여러 가지의 다른 방언으로 표현되었긴 하나 인정하는 말들이다.
/겸손한 말/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탁하는 것이지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서로 바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서로 사랑하고 싶으면 상대방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당신이 배우자에게 정중하게 부탁할 때 당신은 배우자의 가치와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실 배우자가 당신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제로 요구한다면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폭군으로 변한다. 당신의 배우자는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몹시 초라해짐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정중한 부탁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해 낸다. 반면에 무례한 요구는 그 가능성이 사라지게 한다.
/여러 가지 방언/인정하는 말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언어 안에는 많은 방언이 있다. 앞에서 조금 언급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다. 많은 글들이 그러한 방언에 대해 쓰여졌다. 모든 방언들은 공통적으로 배우자를 인정하는 말을 사용한다.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심오한 욕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배우자를 인정해 주어라. 대중에게 칭찬을 받을 때, 그 영광을 아내와 나누라. 인정하는 말을 글로 써 보는 것도 좋다.
글은 두고두고 다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2의 사랑의 언어/ /함께하는 시간/
“함께하는 시간”이라 함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낼 때 당신은 TV 방송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지 배우자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서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라는 것이다. 둘만이 오붓하게 산보를 한다든지, 외식을 할 때도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한 가지 약으로 모든 질병을 고칠 수는 없다. 내가 빌과 베티 조를 상담했을 때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인정하는 말이 빌에게 뿐만 아니라 베티 조에게도 굉장히 중요하리라 생각했다. 부부가 서로 인정하는 말을 주고받으면 사랑의 감정이 생겨 다시 서로 사랑할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빌에게는 그 말이 유효했다. 그는 아내에게 좀 더 긍정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칭찬해 주니 참 좋았다. 하지만 베티 조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정하는 말이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에 제1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인정하는 말이란 사실을 인정했다. 아내가 그를 칭찬해 줄 때 마치 아이처럼 무척 좋았다고 내게 말했다. 베티 조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아내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저 의미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지금 즐기는 것을 나도 온 마음을 다해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려 주었다. “그녀와 연주회에 함께 갈 때처럼 말입니까?”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리틀락에 서광이 비쳐옴을 느꼈다.
“빌, 그녀가 왜 항상 부정적이었는지 알고 싶으세요? 그녀의 사랑의 언어가 바로 ‘함께하는 시간’이거든요. 당신은 그녀의 사랑의 그릇이 텅 빌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당신이 구사하는 사랑의 언어에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는 직장이 당신의 시간을 모두 빼앗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요. 사실 그녀가 당신이 하는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녀는 당신으로부터 어떤 사랑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오할 따름입니다. 빌, 이것이 바로 중요한 해답입니다. 베티 조를 위해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녀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연대감/ “함께하는 시간”은 바로 연대감(Togetherness)을 말한다. 그것은 단지 가까이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방에 가까이 앉아 있다고 반드시 연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연대감이란 서로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한다. 어떤 부부는 서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연대감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가까운 거리에서 단지 함께 살 뿐이다. 그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집에 있긴 하나, 연대감 속에 함께 있지 않다. 아내에게 말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의 온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시간이란 서로가 눈을 마주 바라보면서 매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온 관심을 집중시키고 같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둘이 함께하는 활동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감정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활동은 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아버지가 두 살 짜리 아이와 공굴리기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놀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이 사이에 있는 감정이다.
/진정한 대화/ “인정하는 말”과 같이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랑의 언어에도 여러 방언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진정한 대화다. 진정한 대화는 두 사람이 그들의 경험이나 사상이나 감정이나 바람을 아무런 해석을 가하지 않고 서로 주고받는 말을 의미한다. 배우자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이 문자 그대로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수반되지 않는 대화라는 말이다. 만일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서로간의 대화는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음을 감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진정한 대화는 제1의 사랑의 언어와 아주 다르다. 인정하는 말은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진정한 대화는 듣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17년간 결혼 생활을 한 43세의 패트릭이라는 남자를 만났었다. 내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채프먼 박사님, 저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라고 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결혼 생활을 17년간이나 하고 아내는 제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참 어리석었습니다.”
“제 아내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게 말하곤 했어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처신하라는 말을 하곤 했지요. 그녀에게 항상 충고했어요. 문제에 잘 대처해야 된다고요. 다음날 아내는 일터에서 돌아와서 또 똑같은 문제를 제게 털어놓았어요. 내가 전날 그녀에게 가르쳐 준대로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같은 충고를 반복했지요. 그 문제를 풀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고요. 다음날 아내는 또 같은 문제를 내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또 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그랬더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안 될거야’하는 것이었어요. 3,4일 지나자 나는 몹시 화가 났어요. 내 충고를 듣지 않으려면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어요. 그녀는 자청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것 같았거든요. 내 충고대로 따르기만 하면 문제를 풀 수 있는데 말이죠.”
“그 문제엔 상관하지 않고 저는 제 일에만 몰두했어요. 제가 이렇게 어리석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습니까?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내게 말할 때 그녀는 나의 충고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냥 동정해 주기만 원했는데요. 내가 들어줌으로써 관심을 보이면서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들을 단지 알아주기만 원할 뿐이었는데요. 내가 자기를 사랑하며 언제나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을 알기만 원한 것이었지요. 충고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해해 주기만 바랐지요. 그러나 저는 이해하는 대신 충고해 주기에만 급급했으니까요. 얼마나 어리석었습니까?” 패트릭의 아내는 진정한 대화를 갈망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나 좌절감을 그가 진정으로 알아주기를 원했다. 패트릭은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기보다 충고만 했다. 그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만 모색했다. 그녀의 울부짖는 절규는 듣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패트릭과 같다. 우리는 발생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훈련은 잘 받아 왔다. 우리는 결혼 생활이 완성해야 되는 과제나 해결해야 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관계라 함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듣는 것을 말한다. 상대방이 요구해 오면 충고는 할 수 있으나 결코 생색 내는 투로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듣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 당신의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이거나 그 방언이 진정한
대화라면 더 잘 배워야 한다.
1. 배우자와 이야기할 때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키라.
이는 속으로 다른 생각
을 하는 것을 막아 주며,
상대방이 충분히 관심을
받고 있음을 알게 한다.
2. 배우자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하지 말라.
“함께하는 시간”은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시간임을 기억하라.
3. 상대방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라.
4.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
을 주의 깊게 보도록 하라.
주먹을 불끈 쥐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흘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부라릴 때,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감정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때때로 입으로 하는 말과 다른 것을 몸짓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며 느끼고 있는지 분명하게 물어 보도록 하라.
5.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로막지 말라. 사람들은 평균 17초 정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통계 조사가 있다. 만일 내가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킨다면 나 자신을 방어하거나 당신을 비방하거나 아니면 아주 독설적으로 내 입장을 고수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목적은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나 당신에게 과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배우기/ 진정한 대화는 공감을 가지고 듣는 것뿐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요구한다. 어떤 부인이 “제 남편이 말 좀 했으면 좋겠어요.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어요“라고 할 때 그녀는 긴밀한 관계를 진실로 호소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과 감정적으로 좀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가까워지겠는가? 그녀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을 노출시켜야만 한다. 만일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함께하는 시간“이고 그 방언이 ‘진정한 대화”라면 그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사랑의 그릇은 늘 비어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진정한 대화”라는
사랑의 언어를 배우려면,
당신이 집을 나선 후부터 갖게 되는
감정을 메모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바탕으로 하여 결정을 내린다.
삶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감정이나 생각이나 바람을 갖게 되며 그것을 행위로 옮기게 된다. 그러한 과정의 표현을 우리는 소위 자기 현시라 일컫는다. 당신이 만일 진정한 대화라는 사랑의 방언을 배우려면 바로 그 길이 당신이 따라가야만 하는 배움의 길이다.
/성격의 종류/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긴 하나,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성격의 영향을 받는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의 아주 기본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를 나는 “사해”형이라고 부른다. 이런 형의 성격은 매일 매일 많은 경험이나 감정이나 생각들을 받아들인다. 그러한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보관할 큰 그릇은 갖고 있으나 그것들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사해” 성격의 소유자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나요? 오늘밤 왜 아무 말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그는 분명히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정직한 대답이다. 그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 편안한 것이다. 그는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운전하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의 기분은 아주 좋다. 그 반대는“시냇물”형이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는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이든지 입으로 다 내보내서 눈과 귀에 단 일분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보든지 듣든지간에 그대로 말해 버린다. 말할 사람이 없을 때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라도 말해야 한다. 사해형은 시냇물형의 사람과 결혼하기가 쉽다. 그들은 데이트할 때 서로 끌리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사해형의 사람인데 시냇물형의 사람과 교제한다면 아주 멋진 저녁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밤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까? 대화를 잘해 나갈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사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단지 고개만 끄덕이면서 “오, 음”과 같은 말만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고 나서, “참 멋진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며 귀가하면 된다.
반면에 당신이 시냇물형의 사람이라면 사해형의 사람과 교제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상대방이 잘 들어 주기에 3시간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참 멋진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헤어질 수 있다.
사해 성격의 소유자는 말하는 것을 배우고, 시냇물 성격의 소유자는 듣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 모두는 성격의 영향을 받긴 하나 전적으로 지배당하진 않는다. 매일 일어난 일 중 약 3가지 정도를 생각해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를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이면 서로를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된다. 나는 그것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매일 과제”라고 부른다.
/함께하는 활동/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랑의 언어에는 그 방언으로, “함께하는 활동”이 있다. 나는 최근에 있었던 세미나에서 “나는-할 때 배우자로부터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라는 질문을 부부들에게 했다. 8년간 결혼 생활을 한 29살의 남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할 때 아내로부터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대화를 더 많이 합니다. 그때는 다시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어요.” 제1의 사랑의 언어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거의 일률적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이는 함께 무엇인가를 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전적으로 집중시키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그 목적은 “그가 나를 아껴 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하고 적극적으로 한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을 가장 큰 소리로 구사하는 것이다.
함께 정원을 가꾼다든지, 벼룩 시장을 간다든지, 골동품을 보러 다닌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함께 소풍을 간다든지, 오래 산보를 한다든지, 뜨거운 여름날에 함께 차를 닦는 것 등은 모두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 보려는 흥미나 관심에서 나온 것들이다. 함께하는 활동으로 얻게 되는 이득 중의 하나는 그 활동들이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추억 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식사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듯 우리의 결혼 생활을 위해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기쁨이며 배우자의 사랑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배웠다는
바로 그 기쁨인 것이다.
/6제3의 사랑의 언어: 선물/선물을 줄 때 우리는 반드시 그 사람을 생각한다. 선물 자체는 생각한다는 상징에 불과하다. 값이 얼마나 되느냐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생각만 품지 말고 그 생각을 선물로 줌으로써 선물은 사랑을 실제로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뜨락에서 선물로 따온 꽃을 기억한다. 어머니 자신들이 꺾고 싶진 않은 꽃이지만 그 꽃을 통해 사랑을 느낀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한다. 이것은 선물을 주는 것이 사랑에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선물은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선물은 크기나 색깔이나 형태가 다양하다. 어떤 것은 비싸지만 어떤 것은 값없이 거저 얻은 것일 수도 있다. 선물을 받는 것이 제1의 사랑의 언어인 사람에게는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한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가격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일터의 쓰레기통에서 종이 한 장을 주워 가운데를 접어 가위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쓸 수도 있다. 선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용이 드는 것만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당신의 배우자가 지난 몇 년간 선물을 받으면서 몹시 기뻐했던 품목들을 기록하도록 하라. 만일 당신이 선물을 고르는 데 자신이 없으면 배우자의 취향을 잘 아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당신이 구입했거나 혹은 만들거나 찾아낸 선물을 배우자에게 주어라. 특별한 시기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만일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을 받는 것이라면, 당신이 어떤 것을 주든 그것이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만일 그녀가 이전에 당신이 준 선물에 대해 비판적이었거나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었다면 선물 받는 것이 그녀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선물과 돈/
만일 당신이 아주 적절하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돈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 개개인은 돈의 목적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기에 그것을 쓰는 데 다양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쓰는 것에 익숙하다. 돈을 쓰면서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돈을 절약하여 저축하는 데 주력한다. 돈을 절약하여 현명하게 투자할 때 기뻐한다. 만일 당신이 쓰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배우자에게 선물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절약형이라면 돈을 써서 사랑을 표현한다는 사실에 감정적으로 큰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구입하지 않는다. 왜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사야만 하는가? 하지만 당신도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돈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자아의 가치와 감정의 안정감을 사는 것과 같다. 돈을 다루는 식으로 당신은 당신의 감정적인 욕구를 다스리는 것이다.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 받는 것임을 알았다면 당신은 배우자를 위해 선물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이 배우자에게 투자해서 배우자의 사랑의 그릇이 꽉 차면 그는 가득 찬 사랑의 그릇으로 당신이 이해하는 사랑의 언어로 보답할 것이다. 부부의 감정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그 결혼 생활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배우자에게 투자하는 것을 꺼리지 말아라. 당신은 진정한 의미로 절약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바로 우량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물이 됨/ 사람의 손에 쥐어주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자아의 선물 혹은 존재의 선물이라 부른다. 배우자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함께 있는 것이, 제1의 사랑의 언어가 “선물”인 사람에게는 큰소리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일 수 있다.
만일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
가 선물을 받는 것이라면,
위기의 순간에 그와 함께하는
것은바로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된다.
만일 배우자가 늘 가까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그것을 배우자에게 말로 표현해라. 내 마음을 읽고 알아서 해주리라 기대하지 말라. 배우자가 “오늘밤, 내일 혹은 오늘 오후 당신이 나와 함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라. 선물은 반드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며, 매주 한 번씩 줘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 가치가 금전적인 값어치를 수반해야 되는 것도 아니며, 사랑이 깃들인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제4의 사랑의 언어: 봉사/ 봉사라 함은, 배우자가 당신에게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녀를 도와줌으로써 그녀를 기쁘게 하고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들은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내는, 노력과 정력을 요구한다. 자발적으로 이러한 일을 하면 정말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은 그의 나라에서 크고자 하는 자에게 종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지배하는 것이 일반 사회의 이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크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고 요약했다.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은 사랑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만
요구하는 것은 흘러 넘치는 사랑을 막아 버린다.
수백 쌍의 부부들은 배우자가 자기를 위해 하는 봉사로 사랑을 느끼기에 신발을 치우고,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설거지를 하고, 세차를 하고, 청소를 하고, 잔디를 깎는 것들은 제1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인 사람들에게는 큰 소리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같다.
첫째,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을 위해 하던 일을 결혼한 후에는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사랑에 푹 빠진 힘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한다. 결혼한 후에는 “사랑에 빠지기” 전의 원래 우리의 모습으로 복귀한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부모나, 자신의 성격이나, 사랑에 대한 개념이나, 감정이나, 욕구나, 욕망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하는 행동과 똑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사실은, 사랑은 선택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요구만 하면 아주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간다. 비판을 많이 하면 당신의 배우자는 내키진 않지만 당신의 뜻을 따를 수는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정중하게 부탁할 수 있다. 즉, “차 좀 닦아주면 참 좋겠어요.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면 좋겠네요. 잔디를 깎아 주면 좋겠어요”라고 부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고 싶은 의지는 불러 일으킬 수 없다. 우리는 매일 매일 배우자를 사랑할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배우자가 요청하는 것을 해야 우리의 사랑이 배우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세번째 진리는 성숙한 자만이
배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내 행동을 비판할 때 우리는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알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의 욕구가 있는 부분에 대해 배우자에게 가장 큰 소리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비판은 사랑을 가장 비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일단 우리가 그것을 이해한다면 그 비판을 좀 더 생산적인 방법으로 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현관 깔개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인가?
깔개는 생명이 없는 물건이다. 그 위에 올라서서 신발을 문지르든지 발로 차든지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도 없다. 당신은 그것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배우자를 물건처럼 취급하기 시작하면 사랑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당신은 내 배우자이니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지”라는 식으로 죄책감을 조성시키는 것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다. “이것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 좋지 않을걸”이라고 겁을 주어 강제로 하게 하는 것도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현관 앞에 있는 깔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때로 우리는 상대방에게 이용되기도 하나 사실 우리는 감정과 생각과 소망을 가진 피조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을 하고 행동을 취한다. 우리 자신을 상대방이 이용하거나 조종하도록 허락하는 것도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사실 이것은 불성실한 행위이다. 상대방에게 비인간적인 습관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에 불과하다. 사랑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당신이 내게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거예요. 이러는 것이 당신이나 나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고정관념 극복하기/
“봉사”라는 사랑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정관념을 기꺼이 깨는 것은 배우자에게 사랑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다. 고정관념을 고집한다고 이익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에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배우자의 감정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데 아주 놀랄 만한 효과가 있다.
최근에 어떤 부인이 내게 찾아와 “채프먼 박사님, 제 친구 모두에게 당신의 세미나에 참석하라고 권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라고 나는 물었다.
“그 세미나가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을 갑자기 변화시켰거든요.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바비는 한번도 저를 도운 적이 없었죠. 대학 졸업 후 두 사람 다 직장 생활을 했고 가정에서 하는 일은 늘 제 몫이었어요. 가정에서 나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생각조차 못했죠. 그런데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서 그는 ‘여보, 오늘 저녁 내가 도울 게 좀 없을까?’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3년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가 무얼 어떻게 하는지 모르기에, 그가 도와줄 때마다 우스운 일들이 생겼지요. 그가 처음 빨래를 했을 때 보통 세제를 쓰는 대신 원액의 표백제를 썼어요. 파란 수건이 하얀 반점 투성이로 변했죠. 그가 설거지통에 있는 쓰레기 분쇄기를 처음 사용하고 나서 보니 계속 배수구에서 비누 거품이 나오는 거예요. 분쇄기를 끈 후 내가 손을 배수구에 집어넣어 비누 조각을 꺼낼 때까지 그는 왜 그랬는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가 내 사랑의 언어를 계속 즐겨 구사하니 내 사랑의 그릇은 늘 꽉 차 있습니다. 이제 그는 집안 일에 익숙해져서 나를 잘 도와주고 있어요. 집안에서 항상 일만 할 필요가 없어지니 우리 부부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어요. 저도 그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그대로 따르니 그의 사랑의 그릇도 항상 가득 차 있답니다.”
정말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물론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바비는 35년 동안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데 눈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의 제1의 사랑의 언어를 배워 구사하기를 시작하면, 당신의 결혼 생활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바비는 웅변하고 있다.
제5의 사랑의 언어: 육체적인 접촉/
우리는 육체적 접촉이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동 발달 과정을 연구한 많은 보고서에 따르면, 육체적인 접촉을 전혀 갖지 않고 지낸 아이들보다는 안아 주거나 키스를 해 준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고 한다. 손을 잡아 주거나, 키스를 하거나, 껴안고, 성 관계를 갖는 것 등은 배우자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어떤 이에게 있어서는 육체적인 접촉이 제1의 사랑의 언어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육체적인 접촉이 없으면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육체적인 접촉을 할 때만 그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게 되어 배우자의 사랑을 흠뻑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