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지능`과 `연결성`이 특징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교육의 변화다. 전통적인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보다는 학생들이 더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도와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한다면 학생들이 차세대 인재상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기술적 능력을 갖추게 만드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학생들이 기술적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중이다. 내년부터 코딩과 소프트웨어(SW) 과정이 우리나라 초·중등학교에서 의무교육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대학교는 어떠한가. 이미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등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인문·사회과학 계열은 취업을 하는 게 이공계 전공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이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 이공 계열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현시대에 효과가 없는 것일까. 미국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스콧 하틀리(Scott Hartley)는 현재 기술 시대에는 인문·사회과학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오히려 해당 분야 전공자들이 비즈니스 성장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담은 저서 `인문학 이펙트(원제 The Fuzzy and the Techie: Why the Liberal Arts Will Rule the Digital World)`가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원제에서 `Fuzzy`는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을 의미하며 `Techie`는 엔지니어링 혹은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을 의미한다.
매경 비즈타임스는 최근 하틀리와 인터뷰를 하며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현시대에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더욱더 중요해지는 이유를 파헤쳤다. 그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지만 기술의 가치가 있다"고 단언하며 "사람들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파악하는 인재들은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하틀리와의 주요 일문일답 내용.
―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현시대에 인문·사회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보다 오히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비즈니스 성장의 중심에 있다 주장했는데. ▷사람들은 기술 자체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의미와 가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될 때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깊게 파고들고 이해하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나는 기술력은 갖췄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기업들을 수없이 봤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보면 대개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의 훌륭한 기업들은 단지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이는 실증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다. 해당 기업들은 기술적인 만큼 `인간적(humanistic)`이다. 코드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만큼 심리학, 철학, 행동 디자인 등에 중점을 두고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
(실리콘밸리에 국한하지 않고 말하자면) 물류, 교통 등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창업자가 가끔 나타난다. 이렇게 (기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갖는 문제를 창업자가 열정을 갖고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창업자들은 기술이 아닌 다른 학문 전공자들이다. 사회사, 정치학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창업자들은 자사 기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와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를 생각했다는 점이 더욱더 중요하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창업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의 요건은 단순히 그의 기술력에 있지 않다. 컴퓨터 코드를 작성하는 능력만으로는 성공적인 창업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연구하면서도 기술을 포용하는 데 겁을 먹지 않는 사람이 현시대에서 창업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인문·사회과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실제 기업의 예가 있다면. ▷미국 기업 중 슬랙(Slack)이란 곳이 있다. 기업가치가 40억달러가 넘는다. 슬랙의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성공의 밑받침에 그가 전공한 철학이 있다고 말했다. 버터필드 창업자는 철학이 불분명(fuzzy)하다고 말했다. 옳고 그른 답이 없고, 가정과 논리, 언어의 정확성(specificity)만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불분명한 철학적인 질문에 답을 하려면 주어진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버터필드 창업자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제품 개발 과정과 같다고 말했다. 철학에 옳고 그른 답이 없듯, 제품의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는 맞고 틀린 정답이 없다는 의미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설명해보겠다. 제품이 만들어진 다음에 기업의 고민은 사용자와의 관계(engagement)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용자와의 관계를 위해 필요한 고객들의 행동 변화를 어떻게 이끌 수 있을까?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고객들의 심리와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특정한 기업 혹은 웹사이트에 되돌아오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수많은 연구를 거쳐 알아본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심리를 회사 비즈니스 중심에 두는 곳이 최고의 기업이 되고 최고의 제품들을 내놓는다.
―그렇지만 기술이 있어야 실제 제품이 구현된다. 이 때문에 기술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욕구(needs)와 깊게 관련 있기 때문에 제품이 성공하는 것이다. 스냅(Snap)의 애플리케이션처럼 새로운 모바일앱을 만든다고 해보자. 이때 어려운 점은 컴퓨터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코드는 하나의 상품(commodity)이지, 기업에 경쟁력을 주는 요소가 아니다. 코드 작성법을 모르면 이에 대한 기술력이 있는 수천만 명 중 한 사람을 채용하면 된다. 스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소비자들의 불편함이 무엇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관련 제품과 활동이 넘쳐흐르는 현시대에, 오히려 오가는 내용과 사진들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기능의 앱을 만들었다(디지털 정보에 피곤해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성공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예로 한국의 카카오톡을 얘기해보겠다. 카카오톡의 코드가 와츠앱(WhatsApp)이나 바이버(Viber)보다 더 뛰어날까? 물론 그럴 수 있겠다. 그렇지만 카카오톡이 한국에서 `대박`을 친 이유는 한국 사용자들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 맞다. 다른 애플리케이션과 비교해 기술력에 월등히 차이가 있기보다는 문화적·사회적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