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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찰 연혁
- 백제 성왕 22년(544) 인도 스님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 법왕(599) 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함께하며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다.
-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다. 원효성사는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조사는 2층 4면 7칸의 법당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였다.
- 경덕왕(742~764) 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었다.
- 헌강왕(875)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고,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하였다.
-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 임진왜란(1592~1598) 때 왜군이 화엄사를 전소시켰다.
- 인조(1630~1636) 때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 때 장육전 자리에 각황전 건립을 건립하였다. 더불어 선교양종대가람이 되었다.
2.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국보 336호)
인조 10년(1632년) 조성.
2006년 3월 12일 보물 1548호 지정.
2021년 6월 23일 보물에서 국보 제336호로 승격.
대웅전 불단 중앙에 모신 불상으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며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이다. 중생과 부처님이 둘이 아니며, 번뇌와 깨달음이 일체인 뜻을 나타낸다.
비로자나불 왼쪽에 모신 불상인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두 손을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다. 보관(寶冠)을 머리에 쓴 보살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비로자나불 오른쪽에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은 선정인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은 깨닫기 전에 악마를 항복시키는 상황을 나타낸다.
🎈화엄사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
국보 301호 ‘화엄사 영산회 괘불
조선 효종 4년(1653) 제작.
1997년 9월 22일 국보 제301호 지정.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 무게가 200Kg이 넘는다.
※ 괘불은 국가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나 기우제, 영산재, 예수재, 수륙재 같은 것을 행하기 위해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할 때 모신다. 한편 연중행사로 내어 모시는 것을 ‘거불(巨佛) 햇볕쬐기’ 라고 하며, 부처님이 현세에 나타나서 고통을 덜어 주는 날이라고 믿고 있다
- 화엄사각황전앞석등(국보 12호)
화엄사 각황전 석등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
통일신라시대[신라 문무왕17년(677)] 조성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2호 지정
전체 높이 6.4m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35호)
신라 선덕여왕14년(645) 자장율사께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사리탑과 공양탑을 세움. (문화재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조성으로 봄)
1962년 12년 20일 국보 제35호 지정
탑은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 보고 서 있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이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다. 위층 기단은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 삼아 세워 놓은 구조다.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 있는 스님(비구니)(?)상이 있다. 연기존자의 어머니라고 전한다.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존자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이에 탑을 일명 효대(孝臺)라고도 부른다.
탑신은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룬다.
- 화엄사 각황전(覺皇殿)(국보 67호)
각황전의 정면 이미지
조선 숙종 25년(1699)부터 약 4년간 제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7호 지정
본래 이 자리에는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을 의상조사께서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계파 성능선사(桂波 性能禪師)의 원력과 특별한 인연으로 왕실이 시주자가 되어 숙종 25년(1699)에 시작하여 숙종 28년(1702)에 완공하였다.
장육전 중건 불사를 회향하자 조정에서는 사액하여 각황전(覺皇殿)이라 하였다. 부처님을 깨달은 왕이란 뜻과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하였다는 뜻으로 각황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보물>
각황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제2139호)
대웅전 삼신탱화 (보물 1363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 (보물 1348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 : 사사자 감로탑(보물 300호)
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화엄사 서오층 석탑(보물133호)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 이 자료는 화엄사 홈페이지(http://hwaeomsa.or.kr/) 내용을
참고로 정리하였습니다.
첫댓글 나무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나무원만보신 노사나불()
나무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_()()()_
먼곳에 있는 큰사찰중 화엄사는 아직 가보질 못했어요.
기회가되면 꼭 가보고 싶은곳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