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1 유선의 굴욕 (캐안습)

아무리 촉이 유선의 대에 멸망했기로서니... Koei도 너무하지 세상에 능력치를 장난으로 만든 신무장도
아니고 저게 뭔가요 ㅋㅋ

자기 베프 황호도 지력이 무려 30이나 되는데 Orz
헌데 유선이 나라를 물려받았을 당시 촉은 이미 국력이 완전히 쇠한 상태 아니었나요?
제갈량과 강유가 역부족인거 알면서도 계속 북벌을 감행한 이유 역시 승산이 낮다고 계속 기다렸다간
국토의 넓이나 인구 수 등 모든 면에서 시간이 갈수록 위와 촉의 국력간의 갭이 더 커질수밖에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북벌을 강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더구나 선대 유비가 전권을 제갈량에게 다 쥐어준 상황이라 유선 본인은 즉위한 당시
부터 힘이 상대적으로 별로 없던 상태로 30년을 더 버텼으면 나쁘진 않았던 것 아닌가요?
물론 직접 밖에 나가서 나라를 갖다 바친건 어이없긴 하지만, 되지도 않는 싸움 하다 죽는것보다
항복을 택했다.. 고 보면... 더구나 오나라도 손호(이름 맞나)가 그냥 항복해서 끝난 걸로 아는데
유선만 저리 바보취급을 받는 이유가 뭔가요?
제가 모르는 멍청이짓이 있었나요?
첫댓글 x표시 나오는데요...
수정했어요. 이제 나오나요?
잘 나오네요..그나저나 생긴 것도 참 밉상으로 그려놨네요.ㅋㅋ
프레디 아두는 축구 잘한다던데 ㅋ
차라리 오에 끌려 갔었으면 이라는 생각도 해 보네요
저도 중국역사를 잘 모르긴하지만(루게릭님이나 레드보이스 님이 계셨다면 좋았을 것을) 중국역사에서 환관(혹은 내시 혹은 여자..)을 중용한 군주는 높게 평가해주지 않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말로하면 뭐랄까요. 줏대가 없었다고 해야하나 그런 판단도 몇개 보여줬고, 막판 진나라에게 망했을때는 망국의 군주답지 않은 향락으로 비난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뭐, 자기 목숨지키기에 그것만큼 현명한 판단도 없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저도 전문가 회원분들의 댓글 기다립니다.ㅎㅎ
제갈량-장완-비위-동윤 촉의 4상이 그럭저럭 국정에서 버텨줬죠... 비위가 253년 암살된 이후 강유를 제어할 인물이 없어지고 촉은 내리막을 가게 됩니다. 강유는 제갈량의 뜻이라며 무리한 북벌을 계속 감행하며 국력쇠퇴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그걸 제어할줄 모른 유선의 무능함도 무시할 순 없구요.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에서 봤는데, 황호는 강유 외에 다른 신하들과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헌데 허구헌날 바깥 싸움에 나갔다가 잠깐 들어와 얼굴만 보이는 강유가 '황호의 말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한마디 던지고 또 나가는데, 유선 입장에서는 황호와 강유 누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지형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촉이 조금은 물러서서 국력향상에 중점을 두고 오와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버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것이 아쉽죠.
강유야 정치적 센스는 전혀 없이 충성심과 이상으로 똘똘 뭉친 순수 군바리였으니... 그리고 황호가 다른 신하들과 원만했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촉한에서 가장 충언을 잘했던 동윤은 황호를 몹시도 싫어해서 유선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했죠. 그래서 동윤의 생존시에는 황호는 그다지 기를 못폈습니다. 하지만 동윤이 죽고 나자 그야말로 지 세상이 되었죠. 자신을 견제해 줄 유일한 충신이 없어진 거니... 나머지 신하들이 황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 자체가 이미 그 나머지 신하들의 무능성을 대변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황호같은 소인배가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정치를 개판으로 이끄는 데 그걸 보고만
있었던 신하들... 특히나 제갈량의 아들이자 당시 촉에서 황호 다음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던 제갈첨이 황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충신 노릇을 못한 게 뼈아프죠. 제갈첨이야말로 자기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별 정치적 능력도, 경륜도 없이 촉한의 쇠퇴와 멸망을 그저 방관해버린 그런 인물이죠. 마지막에 나라를 지키다 죽었다는 것 때문에 더욱 더 과대포장되었지만... 동궐같은 인물이야 뭐 그저 행정적으로만 유능한 관료였을 뿐이고, 동궐과 세트 매뉴인 번건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황호와 교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비위, 동윤의 사후, 그들의 뒤를 이어서 유선을 간신배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역할을 맡은
제갈첨, 동궐, 번건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 준 건 대대로 비판받아야 옳습니다. (번건의 경우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참고로 진수는 이들의 잘못에 대해 다소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진수랑 제갈첨이 원수 사이였기 때문에 다소 편향적인 비판을 남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진수와 제갈량이 사이가 안좋아서 진수가 제갈량에 대해 나쁘게 정사를 기술했다고 오해하시는데 정작 진수와 사이가 나빴던 건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이었고 오히려 진수는 제갈첨은 몹시 폄하했어도 제갈량에 대해선 대단히 존경하면서 성심껏 기술했죠. 아무튼 뭐... 황호란 인물이 이처럼 촉한의 중신들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게 바로 황호의 스타일 덕분입니다. 황호는 그야말로 남들의 비위 맞추고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데 천재적인 인물이었죠. 유선이 그를 좋아했던 것도 자기 앞에서 동윤처럼 쓴소리나 늘어놓는게 아니라 늘 듣기 좋은 아첨들만 하면서 자신의 비위를 딱딱 맞춰주니... 요즘 세상에서 딱 영업직 사원이나 로비스트 했으면 대성할 인물이었죠. 이런 스타일의 인물 치고 대인관계 나쁜 사람 봤습니까? 당연히 유선 뿐만 아니라 제갈첨, 동궐같은 조정의 중신들에게도 비위 살살 맞춰가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호의 실체를 알아채며 그와 교류하지 않고 적대했던 동윤, 강유, 번건같은 인물들은
그야말로 소신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죠. 쾌도난담 삼국지의 저자 분은 저도 조금 아는데 촉한에 대해서 많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셨고 강유는 물론이요, 장완같은 인물에게도 가차없이 쓴소리를 던지셨죠. 超人님께서 언급하신 부분은 아마도 강유에 대한 비판적인 뉘앙스에서 그렇게 언급된 듯 합니다. 물론 일국의 병권을 쥐고 있으면서 정치적 센스가 전혀 없었던 강유도 잘못한 측면이 있지만, 당시 촉한의 여러 신하들이 황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데는 황호의 능수능란한 처세술과 더불어 촉한 중신들의 무능력이 초래한 결과일 뿐, 그걸 가지고 일방적으로 강유만 비난하는 건 공평치 못하다고 봅니다.
유선의 어리숙함은 삼국지 마지막부분에 나오죠... 극정의 조언으로 어설프게 사마염 앞에서 연기하다가 딱걸리고 사마염이 더이상 경계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솔직히...강유가 검각에서 버텼을때도 유선이 좀만 똑똑했더라면 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물론 한중이 뺐겨서 좀 치명적 이겠지만....
제갈량의 영향력이 너무 컸기에 애시당초 강한 황제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을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제갈량 사후에도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실망의 연속이죠 제갈량의 뒤를 이은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요 궁극적으로는 환관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 되는 모습까지 보였죠 신하간의 세력대결을 통해 강해지는 왕이 있기도 하지만 유선이 그런 의미로 황호를 중용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사실 뭐 고에이 삼국지 내의 유선 능력치는 너무 심한 측면이 많죠...;;; 유선은 황제로서는 무능한 인물이었고 인간적으로는 너무 평범했습니다. 한마디로 난세에서 일국의 황제라는 중임을 맡을 인재가 결코 못됐죠. 다만 사람 하나는 좋아서 딱 맘씨 좋은 부잣집 도령 스타일이었죠. 이런 스타일의 군주는 평범한 세상에서 훌륭한 신하를 만난다면 그럭저럭 중간은 가는 임금 노릇을 하는데 어지러운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신하를 만날 경우 그야말로...;;; 제갈량, 장완, 비위, 동윤 같은 훌륭한 신하들이 있었을 때는 난세임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황제의 역할을 해냈는데 이들이 다 죽고 나니 정치는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닫은거죠. 물론
애당초 촉나라가 유선이라는 인물에게 자립적인 정치력 자체를 키워 줄 여유가 없어서 기형적인 체제로 나가다 보니 결국 초래된 문제긴 합니다. 유선이 아무리 봐도 난세의 제왕 자질은 안되니 그에게 전적으로 왕권을 넘겨 줄 경우 아무래도 삼국 중 국력이 제일 약한 촉이 다른 두 나라의 상대가 될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유선은 명목만 황제로 군림하고 사실상 거의 모든 정치적 결정권을 제갈량이 행사했죠. 사실 이런 형태의 정치는 황제 중심인 중국 역사에서 매우 기형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정치 구조는 곧바로 정권을 손에 쥔 신하의 찬탈로 이어지는 게 100%죠. 왕망이나 조조, 사마의, 주온의 케이스에서 보듯... 헌데
제갈량은 찬탈은 커녕 끝까지 충심으로 황제를 모시며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죠. 중국 뿐만 아니라 동서 고금을 통틀어 한 나라의 국정을 모조리 총괄하는 그야말로 권신 중의 권신이면서 끝까지 변심하지 않고 충성을 다 바친 인물은 제갈량이 유일하다고 봐도 좋을겁니다. 그 밑에 장완, 비위, 동윤도 제갈량에는 못미쳐도 촉한이라는 작은 나라의 인물들 치고는 정말 훌륭한 정치가요, 보좌관들이었죠. 이들 역시 제갈량 사후 정권을 책임지지만 다들 충성을 다해 목숨이 다 할 때 까지 촉을 지켰으니까요. 유선이 나름 평가할 만한 게 제아무리 신하들이 충성스럽다지만 황제로서의 권력까지 대부분 신하들에게 위임한 와중에서도
그런 신하들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줬다는 것도 대단합니다. 그만큼 유선이 사람됨이 어질고 어떻게 보면 몹시 무던하다는 거겠죠. 그래서 나름대로 제갈량과 유선은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었습니다. 제갈량은 황제의 눈치 안보고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운영해 가도 별 탈 없었고, 유선 역시 황제로서 군림만 하면서 골치아픈 정치는 믿음직한 신하에게 다 맡겨둘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조합은 결국 기형적일 수 밖에 없었고, 훌륭한 신하들이 다 죽고 나자 극악으로 치닫게 된겁니다. 황제로 군림한 적은 오래 되어도 통치라곤 거의 해 본 일이 없는 유선이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직접 통치하게 되자 그만...;;; 진수는 유선을
동감합니다. 지금 세상 태어났음 인기대박일 인물 ㅋㅋ. 뭐 촉이 망한걸 안타까워한 나관중의 반작용으로, 유선을 더욱 무능하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던것도 있겠죠. 그냥 인간으로는 평범했고, '난세'의 황제로서는 적합하지 못했단게 정답이겠네요
두고 기가 막히게 정확한 평가를 남겼는데요, 유선은 그야말로 흰 비단과 같은 임금으로 자신은 아무 색도 없으면서 붉은 색을 만나면 붉어지고 검은 색을 만나면 검어지는, 그런 스타일의 임금이었던 거죠. 즉 충신을 만나면 훌륭한 임금, 간신을 만나면 못난 임금이 되버리는... 자기 자신의 주관은 없이 어떤 신하를 만나냐에 따라 색깔이 정해지는... 그야말로 일국의 황제로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죠. 리더는 차라리 덕이 없을 지언정, 능력이 없으면 정말 그 조직을 지대로 말아먹는 법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마소 앞에서 낙불사촉을 한 것도, 일종의 처세술이라고보단 유선의 너무나도 내츄럴한 모습 그대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유선 자신은 참... 난세에서 별 능력도 없이 황제 노릇하면서 정말 억세게 운도 좋았고 신하 복도 많았고 자신도 장수하고 자손들도 번창했죠. 위나라의 조방이나 조모, 조환, 오나라의 손량의 비참한 말로와 비교해보면 이건 뭐...;;; 삼국지 11에서 유선이 특수 능력으로 '천운'인가 하는 전투에서 붙잡히지도 않는 초절정 운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야말로 고에이사의 대단한 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선은 정말 삼국 시대를 통틀어 능력 대비 가장 운이 좋은 인물이라고 봐도 좋죠. 뭐 그 대신 그 댓가가 좀...;;; 덕분에 살아 생전에는 그렇게 운이 좋았어도 결국 역사에는 가장 무능한
왕의 대명사로 여지껏 엄청난 욕을 먹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가장 행운아이면서도 역설적으로는 가장 불운아일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와 제갈량이 해놓은거 말아먹어서....(죄송합니다..)
스타성이 없어서 ㅡㅡ;;; 죄송...
세상에 ..... 제가 즐겨하던 삼국지7에서는 그래도 매력은 꽤 높고 나머지는 20정도는 됐는데 ..
유선과 비슷한 성품의 중국황제가 있습니다. 인간성이 비슷하다고 하기는 어렵겠고, 황제가 무위무능할 때 신하가 이렇게 되면 여기까지도 갈 수 있다는 증명인데, 북송시대 최전성기는 인종시대입니다. 그 유명한 판관 포청천의 시대이죠. 수호지에도 등장합니다. 어린 태자가 하염없이 울었는데, 무곡성과 문곡성을 각기 얻는다는 점술사의 말을 듣고는 울음을 그쳤다고 하죠. 드라마에서 포청천의 이마에 달이 하나 달려있는 것은 문곡성을 뜻합니다. 모... 여하간 인종이 특별히 무언가 개혁적이었다거나 민중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재위기간이 약 40여년에 달하는 이 시대에 자치통감의 저자도 태어난 것으로 기억하는데
평화롭기는 했으나 그게 황제의 권능때문은 아니었던 시대입니다. 개봉부 판관이자 중신인 포증을 비롯해서 태종 조광애가 남긴 무수한 명신들이 휩쓸고 지나간 때라 북송의 역사에서 가장 빛날 뿐입니다. 그래도 황제가 너무 무위무능하면 어찌되는지 말년에 드러나지요. 명신들이 죽으면서 나라가 삐걱거립니다. 국고가 바닥나고-요에 대한 조공과 서하와의 전쟁으로-수탈이 이어지면서 왕안석의 신법으로 대표되는 개혁을 기다리는 처지로 떨어집니다.
유선이 명주인가 하면 그건 분명 아니죠. 우선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제갈량이 살아있었을 때는 일국의 황제로 군림할만한 했으나 동윤이 죽어 제어가 되지 않자 측근들에게 휘둘림을 당합니다. 유선은 한나라 영제와 비슷합니다. 다만 이렇게 정치적 신념이나 역량이 없기 때문에 좋은 재상을 만나면 나라에 복이지요. 우리가 흔히 바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꼭 어리버리해서 그런 것은 아닐겁니다. 자기 정체성이 없고, 주체적이지 못하고 역량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고 하는 말이죠. 유선은 딱 고정된 케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