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교통사고로 얼굴, 목, 가슴 등 전신 3도의 중화상을 입음. 현재 인터넷 상에 자신의 홈페이지 ‘주바라기’(www.ezsun.net)를 운영하며 사고 후 자신의 치료과정과 마음을 담은 글들을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앵커: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일가에서 서울 후암동 42살 김 모 씨가 만취 상태에서 갤로퍼를 몰다가 마티즈 승용차 등 6대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경기도 안양시 갈산동 23살 이 모씨가 온몸에 2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 김 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의 만취 상태였습니다.
2000년 7월 30일… 저는… 이렇게… 남의 이야기로만 들어오던 뉴스 속 ‘이 모씨’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올린 홈페이지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사고 직후 지금까지 무려 11번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고 수술을 거듭하면서 사고 직후의 모습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홈페이지에 올려진 그녀의 현재 사진을 본다면 누구라도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과 사진을 올리는 것은, ‘이만큼 고생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며 사람들을 울려 동정을 받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녀는, 누구도 살 수 있을거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모습으로나마 살아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므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 아울러 ‘주바라기’라는 홈페이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느님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KBS 9시뉴스’에서 보도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던 그 날, 지선 씨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뒤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오빠 정근 씨와 만나 마티즈 승용차로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던 날이면 늘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고 그날도 여느때와 별 다름이 없었다. 용산 쯤 왔을 때 신호등이 바뀌어 오빠는 차를 세웠다.
잠시 후 뒤에서 “끼~익!”하는 소리가 들렸고 오빠 정근 씨는 “어디서 사고났나 보다.”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 사고는 이미 지선 씨와 정근 씨 남매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신호대기한 채 정지해 있던 남매의 차를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 승용차가 돌진해 와 박았고 그 충격으로 남매의 차는 앞차와 충돌한 뒤 중앙선 건너편에서 오던 차와 다시 충돌했다. 남매의 차는 두 바퀴 돌다가 다시 그 갤로퍼에 가서 박혔다. 오빠 정근 씨가 정신을 차린 것은 차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라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옆의 조수석을 보니 동생 지선 씨가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차를 빠져나와 보니 차 뒤편 불길 속에서 동생 지선 씨의 하얀 양말을 신은 다리가 보였다. 오빠 정근 씨는 불길에 휩싸인 동생을 끌어안아 구해냈지만 지선 씨의 얼굴과 목, 등, 가슴 등은 이미 불길에 타버린 뒤였다. 이 때 오빠 정근 씨의 팔에도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피부가 타서 벗겨져 버렸다.
“빨리 비켜요, 차 터져요!” 하는 누군가의 고함소리를 듣고 오빠 정근 씨가 지선 씨를 안고 몇 발자국 옮겼을 때 차는 폭발했다. 그 때까지 구경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들 남매를 도와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앰블런스를 타고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며 오빠 정근 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선 씨는 호흡조차 잡히지 않았고 머리 뒤통수는 다 찢어져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굴은 새카맣게 타서 누군지 알아볼수도 없는 상태였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께서 지선이가 고개를 끄덕인다며 의사를 설득해서야 겨우 지선 씨는 뒤통수를 꿰매고 온몸에 붕대를 감을 수 있었다. 그리고 CT 촬영을 한 결과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후 며칠간 지선 씨는 의식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폐에 가스와 물이 차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했고 눈 주위에 피부가 다 녹아 무려 7개월 동안 눈을 뜬 채 지내야 했다. 깨끗하고 하얗던 피부는 다 쓸려나가고, 타버린 부분이 부어오르기 시작하여 정말 쳐다보기 어려울만큼 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선 씨는 살아났다. 자신의 팔이 타는 줄도 모르고 동생을 구해낸 오빠 정근 씨와 딸이 타는 냄새를 맡고 병원 바닥을 굴렀던 어머니와 누구보다 똑똑하고 고왔던 딸에 대한 자부심이 많으셨지만 이식하기 전의 피부없는 얼굴을 보고도 한결같이 마음을 지켜주셨던 아버지, 이런 가족들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그리고 종교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한 화상의 경우 대개 일주일이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하는데 지선 씨가 중화자실에 있었던 40일간 그 침대에 있었던 환자 중에 살아난 사람은 지선 씨 하나 뿐이었다고.
하지만 살아나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슴에서 나오는 진물이 바지 밑으로 쉴 새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아야 했고, 소독물로 몸 전체를 씻어내고 약을 바른 다음 붕대로 감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얼굴과 가슴에 피부이식을 하지 않은 채로 3개월을 보내야 했고, 이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지르는 비명 소리에 마취가 깨는 대수술이 수차례 이어졌다. 수술시간도 보통 14∼18시간, 그동안 수술한 횟수만도 11번에 이른다.
그 와중에서도 지선 씨가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 한다. 사고 당시 착용했던 콘택트 렌즈가 녹아버렸으면 살아나도 앞을 볼 수 없었을텐데 사고난지 4일째 되던 날, 전혀 녹지 않은 렌즈를 눈에서 꺼낼 수 있어서 감사했고, 온몸이 화상을 입었지만 발만은 깨끗한 것에 감사했고, 그래서 발을 씻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뼈까지 완전히 타버려서 손가락 모두를 한 마디씩 절단해야했을 때도 왼손은 오른손보다 손가락도 조금 길게 남았고 많이 상하지 않아서, 왼손이 오른손 같지 않음을 감사했다.
그녀는 이제 일본으로 건너가 12번째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보통 그녀같은 화상 환자의 경우 25번의 대수술은 해야한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수술과 치료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아예 집을 마련해 지내고 있다. 어머니가 일본에 나와 계시지 않을 때에는 친한 교회 언니에게 의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미래를 위한 공부 계획을 잡아놓았다. 대학 시절부터 염두에 두었던 상담 심리학을 공부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란다.
그녀는 지금, 사고 전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밝고 맑게 생활하고 있다.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예전과 똑같이 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TV 만화영화에 등장했던 ‘샬랄라 공주’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격 그대로 ‘연예인과 자신과의 공통점은, 식당도 맘대로 못간다, 사람들이 밥 먹다가 세 번은 더 쳐다본다, 홈페이지에 하루에 백 번 넘게 들어오는 광팬이 있다, 양쪽 다 성형수술 경험이 있다’는 등의 글을 올려, 그녀를 위로하려드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용기와 웃음을 주고 있는 그녀.
이런 그녀지만 그녀도 속상할 때가 있다. 자신의 사이트에 들러 사진을 보고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자기 같으면 자살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아마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이겠지 생각하면서도 힘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게 낫다’는 판단을 내리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힘겹게 살아가는 장애우라 할지라도, 평생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구멍을 뚫어 숨을 쉬어야 하는 환자라도 그의 생명과 그의 삶은 충분히 귀중하고 소중하며 존중받아야 할 삶이라 했다.
“짧아진 여덟개의 손가락으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막대기 같아져버린 오른팔을 쓰며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불에 녹아버린 오른쪽 귀바퀴 덕분에 귀바퀴란 것이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게 되었고, 잠시였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 절뚝 걸으면서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끼게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였는지… 껍데기일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놀랍게 만드신 것인지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원망스런 마음이 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병원에서 7개월만에 퇴원하고 돌아온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방에 있는 거울을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목을 들 수 없게 되어 거울보기조차 힘들었지만 나는 나를 보지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나도 사람이고, 나도 여자였으니까요.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멀리서나마 거울에 비친 나를 바로 바라봤습니다.
태어나 처음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낯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이지선.’
지금 이 모습의 나도 지선이고, 옛날의 지선이도 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깐요.”
저러고도 살 수 있냐고?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있다.
“네! 저는 이러고도 삽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