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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LlN87PpywA?si=4SpeStLRwUIpeC5L
Maurice Ravel String Quartet in F major / Quartetto Italiano (1967/2016)
1. 라벨의 음악: 선율, 화성 그리고 조성
그의 음악에서 선율의 흐름은 인지하기 쉽고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예술가곡에 담겨있는 선율들은 성악적이기보다는 서술적이며, 풍부한 색채의 반주 위에서 말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다. 라벨의 양식은 그의 일생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1913년에 <말라르메의 세 편의 시>를 작곡한 시기부터는 기악적인 선율의 사용이 시도되기도 했다. 또한 라벨의 선율에서는 특히 프리지안 선법(미 선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장조는 다른 모드와 동등한 성격을 가질 뿐 더 이상의 특권이 없다. 따라서 장조에서는 이끔음이 으뜸음에 도달해야 하는 의무가 없으며, 또한 단조에서는 이끔음을 화성적으로 만들어줄 의무가 없다. 그는 단순히 중세 단성가의 영향뿐 아니라 솔렘악파의 다성적 기술도 연마한 것으로 보인다.
라벨은 선법적인 선율과 온음계적인 화성 사이의 대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선율적으로는 프리지안 선법을 사용했더라도 화성적으로는 전통을 따른 예가 많다.
불협화음의 사용에 있어서 드뷔시가 조심스럽게 포장된 불협화음을 사용했더라면, 라벨은 날카롭고 딱딱한 표현의 불협화음을 그대로 선택했다. <박물지 Histories naturelles>의 두 번째 곡인 <귀뚜라미 Le Grillon>에서 보이듯이 증5도를 포함하는 화성은 드뷔시의 음악과 라벨의 언어를 구분 짓는 대표적인 화성이다. 라벨의 음악에 있어서 이 화성은 거의 대부분 자연적 11화음(솔-시-레-파-라-도#)으로 사용된다. 라벨의 화성어법 중 많은 것들이 반음계적 경과음과 전타음으로 이해되며 라벨의 감성은 상당부분이 전타음을 전제로 분석될 수 있다.
3화음의 사용은 다소 복잡해진 듯하다. 간단한 예로 <다프니스와 클로에> 중 <일반의 춤>의 음계적 패시지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중 1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처럼 3화음의 강조가 미미하게 나타난다. 같은 원칙이 발전된 주제적 패턴에서도 응용되는데, 개별적 화성은 조성보다는 음색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화성의 방향이 화음의 자리바꿈이나 선법에 있어서 때때로 불규칙성을 띤다. 해결이 없는 화성적 긴장은 <정면 Frontispice>을 마무리하는 음형(다섯 개의 반복되는 화음)에서 일어난다. <쿠프랭의 무덤 Le tombeau de Couperin>중 제5번<미뉴에트 Menuett>에서 나오는 <뮈제트 Musette>는 병행화음이 선법적인 요소와 온음계적인 요소의 전형적인 대립사이에서 유동적으로 사용되는 예를 보여준다.
라벨의 화성어법의 많은 부분은 사실상 거짓 옥타브나 불협화성으로 해결되는 반음계적 경과음과 전타음의 내용으로 이해된다. 불협화음이나 어울리지 않는 화성의 돌발적인 배치에 관한 처리는 비교적 자유롭다.
조성에 대한 라벨의 감각 또한 드뷔시의 그것보다 확고하고, 따라서 화성의 움직임도 명확한 윤곽을 보인다. 라벨은 분명한 조적 영역 안에서,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따라 그의 환상과 시도를 실천했다. 음악적 기법에 관해서는 5음 음계의 사용, 그리고 중세 선법과 이국적인 리듬 등이 드뷔시와 기호를 같이 나눈다고 볼 수 있으나, 라벨은 5음 음계의 경우에도 이 음계가 지나치게 동적이고 안정적이지 않아 확실한 조성을 확립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라벨의 조성적 내용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단일조성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의 제7곡인 삼중주 부분의 토대가 되고 있다. 반면에 일반 화성을 통한 삼중조성적 대조는 <세헤라자드>의 서곡과 <물의 장난> 그리고 <왼손을 위한 협주곡>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또한 이중조성을 사용할 경우에는 뚜렷하고 독립적인 각 조성들의 효과가 특징적인데, 예를 들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어린이와 마술사들>과 같은 전쟁 후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내용은 괄목할 만하다.
대체로 라벨은 온음계적 어법에 어울리는 전통적인 모델을 유지시켜왔다. 3부분 형식과 소나타형식의 사용은 일반적으로 그가 갖고있던 전통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너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에서는 그 윤곽을 적당히 위장했을 뿐이다. 큰 규모의 작품에서는 그의 극적인 형식을 다루는 솜씨가 확신에 차 있다.
2. 음악어법
현존하는 라벨의 초기 친필악보에는 그가 단일반주음형의 단조로운 반복에 상당히 의지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하바네라>에서 그가 사용한 소재는 개성적인 오스티나토(지속음형)로 구성된 스페인 리듬의 페달음이며, 이것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이전에 보여주었던 모든 것을 능가하는 세련된 솜씨를 보이고 있다. 반복되는 딸림음 C#은 하나의 견고한 개채(대상)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 음의 반음 위보조와 아래보조인 B#과 D의 화음들은 결코 조용한 화성을 만들지 못한다. 바로 여기서 후에 보여질 클러스터기법이 선보인다. 라벨이 이 곡에서 프리지안 선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의 화성은 전통적으로 온음계적인 내용을 갖는다. 스페인의 민속음악에서 딸림음이 보여주는 준으뜸음(Quasi-tonic)은 지속적인 페달음 위에 준네아폴리탄 6화음으로 사용된 라벨의 클러스터를 설명해준다. 프리지안 선법의 억양은 라벨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스페인적인 특성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볼레로>의 음조에서도 나타난다.
반복음의 사용은 라벨의 양식상의 특징이며, 특히 피아노음악<거울>과 <밤의 가스파르>에서 그러한 면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초기에 라벨의 화성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성은 병행화음을 지속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라벨의 음악에서 비근하게 사용되는 이러한 진행은 모든 금지된 연속음정의 진행과 더불어 로마대상에 출품한 <새벽>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음악어법의 확고한 특징이 된다. 이 점에 관해-특히 9도와 11도 화음을 도입했다는 점과 더불어- 단일조성에서는 사티와 샤브리에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종소리 사이에서>는 1890년대의 라벨의 음악을 요약해서 파악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인데, 병행화음은 미묘한 화성진행을 유지시키기 위해 오스티나토 음형으로 사용되면서 이중조성을 선보인다. 라벨이 자유롭게 구사한 이 화음진행은 순수함을 표현하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후에 이러한 순수함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예상시키는 1905년 작 <장난감들의 성탄절>의 병행 화음에서 더욱 세심하게 처리된다.
보다 더 발전된 화음의 진행에 앞서, 라벨이 초기에 사용한 병행8도를 언급하는 것이 당연하다. 쿠퍼가 지적했듯이 비록 푸치니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짝을 이뤄 진행하는 예에 관해서는 샤브리에의 영향을 언급하는 것이 마땅하다. 불협화적인 화음의 병행은 명백한 음색적인 효과를 갖는다. 라벨의 음악에서 가장 전형적인 화성은 감8도의 사용으로, 이 음적은 모든 종류의 화성결합에서 나타난다. 연속적인 화음진행은 특징적인 화성진행, 특별히 으뜸음-딸림음-내려진 이끔음-버금딸림음으로 요약되는 화성진행 안에서 강조된다.
라벨은 4도와 5도의 꾸밈없는 오르가눔과 연속적인 화음진행의 다양한 사용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종소리 사이에서> 외에도 <영혼의 롱사르>에서는 특별한 표제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 오르가눔을 사용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와 마술사들>에서 사용되는 불규칙한 박자로 처리된 4도의 병진행은 정처없이 배회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3. 관현악법
편곡은 라벨의 작품활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다. 그는 민요에 화성을 붙이거나 이를 편곡했으며, 그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즐겨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라벨은 그의 창의적인 영감을 끊임없이 축적시켰다. 그는 특히 쇼팽, 슈만, 무소르그스키, 샤브리에, 사티 그리고 드뷔시의 작품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는데, 이들은 주로 발레음악을 위해 사용되었다.
1889년에 라벨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지휘하는 <스페인 카프리치오>의 연주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각 악기의 음색을 존중하고 이를 균형있게 결합시키는 러시아적인 기술을 받아들였다. 각각의 악기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에 대한 라벨의 날카로운 식견은 관현악 편곡에 대한 높은 안목을 심어주었으며 독창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라벨은 악기의 테크닉에 흥미를 보였는데, 그러나 그것은 연주가의 입장에서였다기보다는 작곡가의 입장에서였다고 하는 편이 옳다. 라벨은 드뷔시와는 반대로, 오케스트라의 악장에게서나 필요할 것 같은 연주적인 기교를 각 악기들에게도 서슴없이 요구했다.
1909년에는 드뷔시의 <야상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출판했으며, 1910년에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역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해서 출판했다. 이 작품들은 라벨 자신이 직접 연주했는데, 출발에서부터 음악비평 란에 실리면서 주목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의 이름은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13년, 라벨이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삐에로>를 접하던 그 시기에 이들은 무소르그스키의 관현악곡 <코반치나>의 여러 부분을 재편성했는데, 이것이 출판되지는 않았다. 또한 같은 해에 사티의 <별의 아들의 전주곡>이, 그리고 1914년에 슈만의 <사육제>가 니진스키(발레안무가)르르 위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었으나, 이 곡은 라벨 탄생 1백주년이 되는 1975년까지 출판되지 않았다. 라벨 자신의 피아노곡들도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었는데, 이러한 곡들은 원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라벨의 관현악법에 관해서는 스트라빈스키도 높이 평가하며 이미 "악기 감식 전문가"로 예찬한 바 있으며, 근대 음악사에서는 그를 위대한 관현악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는다.
4. 라벨의 양식
라벨의 음악에서 그의 개성을 만들어주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는 스페인의 정서, 춤곡의 성격 그리고 환상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첫째로 스페인의 정서는 사실상 프랑스 음악에서 이미 비제의 카르멘(1875년)과 샤브리에의 스페인(1883년)에 의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라벨의 음악에 있어서 이 요소는 절대적인 근본이 된다. 그의 첫 번째 중요한 작품인 <하바네라>와 마지막 작품 <둘씨네의 돈 키호테>는 모두 스페인의 정서를 담고있는 곡들로, 그의 작품활동에서 시작과 끝을 이루는 작품들이다.
둘째로 라벨의 음악에는 춤곡의 성격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의 영향을 드러내는 작품들 중에서도 이미 부분적으로는 춤곡의 내용을 보여주는데, 그의 춤곡에 관한 이러한 성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그는 <쿠프랭의 무덤>에서처럼 옛 시대의 무곡 특별히 프랑스의 무곡을 통해 17~18세기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라벨이 여러 차례에 걸쳐 슈베르트와 빈에 경의를 표하며 보여준 왈츠에 대한 그의 애정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그 당시의 폭스-트로트(fox-trot)와 블루스 그리고 래그타임(rag-time) 등에 관심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라벨의 음악에서 중요한 요소는 환상에 대한 그의 기호로, 이것은 그의 천진난만한 어릴적 동화의 세계와 그리스 신화 그리고 동양의 전설에 대해 그가 느끼고 표현하고자 한 매력들이다.
라벨의 기법은 좀 특이하여 음악적 대상을 교묘하게 확장시키면서 다루었는데, 라벨은 이점에 있어서 선각자였다. 하나의 음악적 대상은 그 자체로도 충분하게 음악적 요소를 보여주기 때문에 주제와 관련된 기능적 역할과는 무관하다. 라벨이 애태운 예술적인 관심은 '대상 그 자체'에 대한 탐구, 즉 조용하게 마음에 떠오르는 음악적인 상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종종 보들레르의 감각과 통하는 시적이고 극적인 개념과도 충분히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열정보다는 상상력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라벨의 모든 음악적 대상은 아름답고 견고하게 조각된 느낌을 준다. 라벨이 작은 스케일 구조를 사용했거나 혹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관찰자로 하여금 그를 작고 세밀한 것에 집착하는 섬세한 화가가 되게 한다. 기계적인 라벨의 경향, 예를 들면 작은 입상이나 태엽장치된 장난감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향으로, 라벨을 표현한 스트라빈스키의 유명한 묘사 "스위스 시계공"은 이러한 점을 잘 대변해준다. 라벨의 양식은 고풍스럽거나 혹은 이국적인 음계를 암시하는 선법을 사용하고, 바로크 양식 혹은 민족적인 양식의 특징들을 응용하며, 또는 특정한 양식을 모방하거나 발전시키는 등 다양한 내용을 갖고 있다.
동시대의 중요한 작곡가들은 조성과 장단음계를 벗어나는 데 동의했다. 조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던 시기에 라벨은 전통적인 온음계에 밀착되어 있었다. 그가 화서에 있어서 개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화성에 대해 인정하거나 배척하는 그의 기호는 스트라빈스키와 비교해볼 때, 융통성이 없고 독단적이었다.
라벨의 예술작품은 그 어떤 작은 부분이라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없는 성숙한 생각을 통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장켈레비치는 "즉흥적인 양식에서조차도 스타일은 엄격하게 통제되었다"고 설명했다.
인상주의는 그 당시의 화가와 시인 그리고 음악가를 지배한 미학으로, 모네의 두 번째 시리즈 <수련>과 드뷔시의 <영상> 그리고 라벨의 <거울>은 때를 같이한다. 마치 시간을 정지시키는 듯, 순간을 포착하는 모네의 그림은 순간의 감흥을 표현하려는 드뷔시를 만족시켰다. 그러나 이 인상주의에 관한 한, 드뷔시는 모네와 의견을 같이했다는 점에서 라벨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라벨이 표현했던 자연은, 그것이 인간의 감성에 미친 영향의 측면에서 고려해볼 때, 결코 충분하게 그려지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도 표현력의 결여는 없으며, 단지 감수성을 어린 아이의 순박함으로부터 차용했다.
라벨이 갖고 있는 매력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의 하나는 그가 음악적인 미세함을 표현하는 대가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감정범위는 제한적이어서, <소나티네>에서처럼 세밀한 것을 표현하거나 <엄마거위>에서처럼 유년기를 재창조하는 천진난만한 즐거움 등에 국한되어 있따.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곡들에서, <왼손을 위한 협주곡>에서처럼 큰 스케일의 형식과 라벨의 성숙한 의식을 발견하기도 한다.
라벨의 피아노 작품에서는 세 가지의 뚜렷한 영향이 발견된다. 샤브리에는 특별히 스페인적인 음악에서 그의 탁월함을 보여주었는데, 라벨의 <하바네라>는 샤브리에의 동일한 제목의 피아노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광대의 기상나팔>은 샤브리에의 <스페인>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감상적이고 우아한 왈츠>를 작곡할 당시에는 <세 편의 낭만적인 왈츠>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박물지>의 피아노 반주에서 역시 샤브리에의 유사한 음악의 피아노 반주로부터 받은 영햐이 한층 더 심화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라벨의 <고풍스런 미뉴에트>는 1918년에 라벨이 편곡한 샤브리에의 <장중한 미뉴에트>와 쌍둥이라고 평가되며, 라벨이 <난장이>를 작곡할 때에도 그의 <환상적인 부레>를 마음 속의 모델로 설정해 놓았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또 다른 모델로서, 그리고 항상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리스트였다. 라벨은 바그너를 싫어했던 반면 리스트에게는 찬사를 보냈다. 이들 작곡가들이 모두 명연주가의 열정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라벨은 리스트적인 관점을 선택했다.
라벨은 마지막으로 바로크 건반음악 작곡가들에게서 고풍스런 모델을 배웠다. 그는 <쿠프랭의 무덤>의 준비작업으로 쿠프랭의 <포를란느>를 옮겨 적었다.
5. 라벨과 드뷔시
라벨과 드뷔시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격조있고 우아하고 섬세한 세계를 추구했으며,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세계를 동경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라벨이 사용했던 중세 선법음계와 이국적 음악은 드뷔시와 동질성을 보인다. 두 사람은 모두 이국적인 리듬, 특히 스페인의 무곡리듬에 매료되어 있었고, 또한 환상적인 것, 고풍스러운 것 그리고 옛 프랑스의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의 음악을 작곡했던 음악가들을 사랑했다. 라벨은 드뷔시가 라모에게 했던 것처럼 쿠프랭을 존경했으며, 빠른 연주의 생기발랄함과 유창함이 가득한 그의 피아노음악의 스타일은 18세기 프랑스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의 스타일과 흡사하다는 평을 받는다. 프랑스적인 감수성을 구현한 이들 모두는 정교하고 색채를 띤 시구를 쓰는 상징주의 시인들을 좋아했고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또한 프랑스어에 음악을 붙이는 재능이 뛰어났으며, 19세기를 대표했던 음악의 열정보다는 심미적인 즐거움을 예찬했다. 문학적인 요소는 프랑스 음악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라벨의 상상력은-드뷔시도 그렇지만-항상 회화적인 시적 주제에 응답한다. 회화적인 주제 이외에도 라벨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주제는 유머로, 그에게 있어서 유머는 그 자신도 인정한 정교하고 우아하고 시적인 양식이다.
반면, 이들의 음악은 대조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라벨의 음악을 한낮의 광채로 표현한다면 드뷔시의 음악은 황혼의 부드러움으로 표현된다. 라벨의 음악은 형식에 관해서는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며, 선율은 보다 폭이 넓고 직접적이다. 드뷔시가 주제발전에 소극적이었다면 라벨은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었다. 짜임새에 있어서 드뷔시가 수직적인 음향에 이끌렸다면, 라벨은 수평적인 흐름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두었다.
라벨도 회화적인 음향과 물의 소리 그리고 예민한 관현악법을 추구하는 인상주의자들과 열정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라벨이 비록 드뷔시의 인상주의의 한 부분에 동참했다고 하더라도, 미학과 기법에서의 차이 또한 동질성만큼이나 현저하다. 라벨의 음악은 드뷔시의 그것보다 리듬이 더 날카로우며, 활기와 추진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드뷔시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분위기보다는 박진감이 넘치는 음악을 만든다. 어렵풋하면서 몽롱한 드뷔시의 세계는 정확하고 분명한 라벨의 세계와 대조를 보인다. 드뷔시가 감각적이라면 라벨은 보다 지적이다. 드뷔시의 감정이 외향적으로 드러났다면 라벨의 감정은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처럼 라벨의 감정 표현은 표면적으로는 지극히 평온한 가운데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감정의 노출이 강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도 감정의 표현은 점잖고 조심성 많은 작곡가 특유의 개성에 의해 절제되어 나타난다.
라벨의 몇 안되는 제자들 중에서 창작활동을 주목할 만한 사람은 들라쥬(Delage), 윌리엄스(Vaughan Williams), 롤랑-마뉘엘(Claude Roland-Manuel)이다. 그들은 스승을 모방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라벨 자신이 이미 대단한 모방자였고,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곡가로서의 그의 전적은 20세기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음악적인 객관성의 선창자로서 라벨은 1920년대와 30년대 초에 번창했던 반낭만주의와 스트라빈스키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한 때>의 시작부분에서처럼 그의 기계적인 정확성과 완벽함에 대한 열정은 리게티(Gyorgy Ligeti), 릴레이(Rileye)등 후대의 작곡가들을 예고한다.
-20세기 작곡가 연구I(음악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