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세월.. [장봉도// 국사봉, 해안트레킹 - 옹진군]
【특별산행】
2015. 11. 29. [일]
평택 종주산악회 47명
장봉선착장 - 장봉4리 - 윤옥골 해안둘레길 - 가막머리 전망대 - 거머지산 -
봉화대 - [국사봉] - 말문고개 - 혜림원 길 - 옹암선착장 [5시간]
세월 속 공간을 누비는 이 가을시간은 우리에게 크나큰 利澤이다. 하지만 단단한 표상도 아니오, 너그런
위엄도 아니다. 그저 고향 같은 아늑함이면 된다. 어느덧 세월도 11월의 끝자락이다. ‘무엇을 하였는가?’
묻는다면 인생의 깊은 분지를 향해 달려왔다고 말하고 싶다. 하여 그런 생각에 골똘하다보니 흰 천공이
밝아오고 있다.
서해의 잿빛바람이 시기의 빛을 간추리고 있다. 가을도 떠나려하는 끝 시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자연 빛을 갈망하며 다른 중심의 회화를 그려내는 듯하다. 황빛으로 물든 대양이 무의미한
시간을 버리고 다채로운 색채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 그리 실감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가버리면 다시 올 것인데... 그렇게 가을은 늙어가고 있다.
물거품 속에 쌓여있는 수평선은 티 없이 맑다. 빗줄기와 해무와 바람을 실컷 뒤집어 쓴 茫茫島들은
하늘과 더 가까워져 신선하게 보여 진다. 흰 운무를 머리에 이고 마지막 가을비를 물고 선 그 고고함이
마음에 든다. 멀게 느껴지는 꿈속 속 겨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대양나팔을 연주한다. 위로 받는 가을은
사랑하는 겨울보다 관심이 깊다.
“간만에 보는 대해의 가을色 모습에 진정 시간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함께하지 못한 연인에게 아쉬움이 묻어나고요.”
그 독백 속 H의 이야기는 가는 가을의 미련처럼 그리움같이 들리어온다.
바람마저 갈매기를 유혹하여 날개 짓을 젓게 하는 묘술의 해풍은 내면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모태로 한다. 그 바다는 생의 의미가 없다. 늘 그대로 살아가니 우주의 환생일 것이다. 구름은 그림자가
되어 그 깊이를 감싸고, 흰빛은 먼 길을 떠나려는 공습된 시간을 담보로 칼날 같이 드리워진다. 참 거세다.
가을의 悲戀이 흰 빛처럼 그득히 쏟아진다. 구릿빛으로 변해가는 지상의 모습은 시간에 의한 전유물로
전락되어 지난날을 복기하듯 침묵하고 있다. 스스로를 삭히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스스로를 내려놓는
조연에 불과할 뿐, 높고 먼 시간은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다. 황량한 서막이 큰 바람처럼 몰려올
시간이다. 짧은 시간의 고조됨을 느낀다.
연한 갈색 빛으로 물들은 산등성이는 퍼즐처럼 짜 맞춘 시간 앞에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토빛깔
따라 넘어오는 해풍에 자신의 영역을 수수하게 내어놓는다. 소실된 秋期의 기억은 확실하게 잊어버리고
상기된 마주할 시간으로 변색중이다. 이에 산과바다와 빛과 바람도 속절된 그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현재의 축복된 시간을 맞이하는 이 순간은 그 덕택이 아닌가 싶은 건지...
[끝없이 열려고 드는 착색된 겨울시간은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길어지겠지요. 다만, 깊이가 불규칙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하지만 서로 이어지는 교감만큼은 시기의
거울이 아니겠습니까. 이질적인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시기의 거울들은 비추는 창이
똑같으니까요.]
시간 속에 묻힌 온화한 산길은 많이도 여위었다. 젊었던 순간과 늙었던 순간이 교차된다. 봄은 청춘이요,
가을은 회억된 노화다. 붉은 황토는 빛에 그을려 검게 변한 탄소빛깔로 가득 차 있다. 황량한 바다는 세월을
매달아 논 시기의 海客이 되어 관조의 내력으로 허공을 끌어들인다. 숨이 차게 맺힌 해무는 무력한 가을을
조롱하듯 거미집처럼 다닥다닥 얽혀있다. 세상 민낯이 흐려진다.
바람을 등지며 앞, 뒤로 길게 맺은 산정이 바다를 모개삼아 맑은 가을의 아득함을 두르고 있다.
흐르고 난 세월처럼 깊숙이 박힌 그 심지는 천연한 추억처럼 가슴속의 바람이 되어준다. 은박지처럼
깔린 흰 물방울들이 빛에 반사되어 먼 그리움처럼 퍼져간다. 달빛모양을 하면서 굵게 굵게 모여드는
바닷 주름은 찬 겨울이 올 듯 예고를 하고 있다.
가을의 검은 해는 진한 그을음으로 눈을 아래로 모이게 하더니 바닷 빛이 창창하게 틀어 오른다.
무애의 몸짓인가. 갈풍의 부산함인가. 그렇게도 모여 대던 해무는 갈풍에 몸서리친 듯 어딘가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 억세던 해무의 뿌리는 이 산도를 방패삼아 기어코 다시 쳐져 바다와 멀리
떨어트릴 수 있는 간간하고 셈이 많은지도 모른다. 자연은 근사했다 간사하게 변하는 멋이 늘
도사리기에 그 이면엔 고약한 심술이 들어차 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산도의 가을소리가 누르스한 색을 버리고 고요히 바람을 타며 허공을
비행한다. 갯풍은 사뿐하고 잔잔하게 바다 위를 걸으며 광해의 감성을 주어 담는다. 가을 낯이라곤
뻥 둘린 어둠처럼 한 가닥 잿빛으로 물들고 우두커니 선 군도들은 작은 배가되어 장봉으로 기대서지
못한다. 그렇게 가을날은 흐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뭇잎은 떨어진다.
느리게 가을마디를 이루고 하얀 그림자로 뒤범벅이 된 북편 쪽 해미에 기암괴석이 출몰했다. 암석이
갑각처럼 변형되어 돌출된 무시무시한 괴암이다. 고달픈 해풍에 달아 彎曲線을 띤 해식애는 늘 흰 거품을
뒤집어쓴 채 영원히 살아왔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바다위에서는 갈매기들이 부산하게 날며
쉰 소리를 내고 있다.
시간과의 긴 호흡이 무르익고 있을 때 미생처럼 다가오는 황해의 군도와 그 속 산정이 담백한 바다 빛을
넉넉하게 받고 있다. 서만도, 모도, 시도, 신도 등이 겨울을 향해 조용히 가는 존재를 나타내 듯 시기의 삶을
묻은 채 잠시 휴식을 하고 있다. 무거운 침묵에 가깝다. 공상 속 하늘가에 검붉은 빛이 담담하게 들어차기
시작한다.
[자만으로 가득찬 시간이 존재라는 큰 성을 앞세워 평적인 해무를 변질되게 만듭니다. 존재의 당위성도
모르면서 오만하게요. 시기의 관점도 모르는 무지도 있잖습니까. 그렇지요. 순환되는 시기 속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 틀 안에서 조용히 빛나기를 바랄뿐입니다. 영원한 시간은 없으니까요.]
스러지는 시기가 고독으로 물들어 있다. 시간적 깊이는 변하고 변하지만 그 본원은 변하지 않는 게 시기이다.
바다도 그렇다. 변하는 것이 있으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변하는 것이 바다다.
그 깊이에는 어두운 비밀이 된 심원과 심연이 함께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무릇 저물어가는 바다를 보면서
가을의 잔물결을 느껴본다.
반쪽의 안개 빛깔의 흰 노을처럼 활기차지 않는 빛이 섬에 흩뿌려진다. 쓸쓸하게 차오르는 지난 시간의
허망이 해일 같이 인다. 외로운 존재라서 그런가? 사계의 어두운 내면의 역 고통인가? [... 변하는 것이
이치라면... 절대적이지 않는 것인지.] 뿌연 해무가 가을의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오는 듯하다. 시기가 빠르게
변할 줄을 모르는 것은 가벼운 존재이기를 떠나 소극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
알쏭달쏭한 끝 가을의 온기 속에서 마음이 가는 곳으로만 향했던 눈들이 새록새록 그 시간을
되찾아 줍니다. 연연하게 경직되었던 한 시간은 또 언제 그랬냐는 식에 가을은 이미 떠나 있었습니다.
“교차되는 이맘때면 늘 虛無에 앞서곤 하지요.”
함께하신 고문님, 회장님, 산악대장님, 회원님, 산우님들께 수고의 말씀을 드립니다.
회장님 내외분께서 정성껏 준비하신 부대찌개 후(後) 식(食)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찬 기운 속에 수고하신 회장님 사모님과 여성회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15. 11. 30 오후...
첫댓글 변화무쌍한 날씨가 맘에걸림돌 이었는데
모두들 행복한 추억들을 만드셨네요
예쁜모습 놓치지않으시고 찰칵 담으셨네요
항상 말없이 종주를사랑하는 마음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틈틈히 영상많이 담아오셨네요
멋진영상과 산행기 잘보았구요
수고하셨습니다
후미산행안내 해주시고 멋진 장봉도 영상담아주시고 수고하셨습니다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