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요일(6.16) 손선생님이 애경 수업에 온다고 해서
모처럼 우리 셋이 만났습니다.
일산과 대전에서 동시에 떠났는데,
수원에 도착은 기차로 오는 제가 빨랐습니다.
수업하고, 문우들과 점심들고 차까지 마시고 나서
우리는 남한산성으로 향했답니다.
입구의 국청사에 먼저 들렀습니다.
기와불사 준비가 한창이더군요.
시간이 부족하여서
대웅전은 먼발치에서만 보았지요.
내려 오면서 보자며...
국청사를 나섰는데 손선생과 한선생이 나무 사진을 찍더군요.
자세히 보니 나무 우둠치에 앉은 작은 새를 찍는 것이었어요.
신기해서 저도 합류했지만
제가 찍은 새는 바짝마르고 불쌍하게 찍혔고
구도도 엉망이라 못 올립니다.
저는 새 이름만 간신히 외웠어요. '동고비'
두 분의 사진으로 감상하셔요.
한선생님이 찍은 '동고비'
모델 출신인가? 카메라 렌즈를 보네요.
손선생님이 찍은 동고비
아래서 올라오는 님을 보고 있습니다.
북문을 제일 먼저 빠져 나간건
한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북문 성벽은 노란 금계국으로 고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의 여름 이미지 사진 찍었습니다.
손선생님은 원래의 미모 때문에
더 예쁘게 찍힌 것이 많지만,
제 서툰 솜씨로 그나마 구도가 맞았다고 약간 칭찬 받은 사진으로...
빠져나와 뒤 돌아본 북문입니다.
제 옷을 보면 나이 먹은 표가 나지요?
젊어서는 죽어도 안 입던 원색 옷을 요즘은 아주 편하게 잘 입어요.
옛날에 자주색 구두 신었다고 꾸중 듣던, 어린 공무원이 아니랍니다.
옷도 검정, 회색, 밤색, 흰색, 또 검정, 회색... 어이휴 ~
6년전까지도 그랬었지요.
성벽 아래와 성벽 위와...
지금은 아무것도 다르지 않건만
그 때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북문을 빠져나간 두 선생님들은
등산객들과 함께 사라지네요.
근거 남기려고 제가 사진 찍었어요.
누구냐구요?
낸들 아나요. 저 둘도 몰랐을 터인데...
북문 쪽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성위를 걷습니다.
사이 좋은 사람들도 만났어요.
둘이서 걸어가는 알듯 말듯한 사람들.
저 분들은 뉘신지...
그러나 가는 길은 각자.
산의 지형을 따라서 잘 조성된 남한산성.
아래는 자연석으로 위쪽은 다듬은 돌을 이어서.
멀리 사라지는 두 선생님들을 보면서
혼자 생각합니다.
병자호란의 그 겨울 45일간.
이 성위에서 번을 서던 군졸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옷이 얇아서 가마니를 쓰고 짚을 깔았다고...
나중에는 하루 한덩이 밥도 못먹었다고 합니다.
나만 떼어 놓고 잘도 가던 두분이
성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곤 무어라 하는군요.
쫒아가서 들어보았더니,
성 아래 보이는 오솔길을 보며 (이 사진에도 보이네요.)
다음에 오면 저 길을 걸어가자고 하네요.
저도 그러자고 말은 찰떡같이 했습니다.
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요.
장대들이 꽂쳐 있는 것을 보니 숙연해 집니다.
사람들은 깃발을 하늘과의 소통으로 생각하지요.
나무나 솟대를 그렇게 보는 것처럼.
무속인의 집에도 그런 의미로 깃발을 꼽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붉은색은 처녀 무속인.
하얀색은 맹인 무속인.
노란색은 아기 무속인.
그러나 요즘은 그것도 알수 없이 다양하게 변한것 같아요.
성벽의 이끼가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그들도 선조에게서 이 성의 아픈 역사를 들어 알것도 같은데.
청량당 입니다.
이곳은 성벽축조 책임자 였던 이회가 제 날자에 완공을 못했는데,
공금횡령으로 그랬다는 누명을 쓰고 참수를 당하지요.
그의 예언대로 절명의 시간애 매가 날아왔고
후에 조사한바 횡령사실도 없으며 성도 튼튼하게 축조되어
그의 결백이 확인되었답니다.
그의 넋을 위로해 주기위해 이 사당을 지었답니다.
청량산 주봉에 있는 수어장대 입니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친히 군사를 지휘한적도 있었답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를 참조하셔요.
수어장대 옆의 無忘樓입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는
아래 지석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어장대 좌측 구석에 있는 '매바위'입니다.
해설사가 있었으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글에 삽입할 만한 곳인데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기한 내에 성벽 축조를 못하고, 횡령을 했다며 참수까지 하다니...
그의 넋이 매가 된것인지?
매가 그의 영혼은 인도하려 온것인지?
수어장대를 나올 때는 이 문으로 나왔습니다.
문 안으로 태극문양이 그려진
청량당 문이 보이네요.
달맞이 꽃(?)도 곱게 피었습니다.
여기서 손선생님에게 꽃을 환하게 찍는 법을 배웠지요.
순간포착의 명수 손선생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잘 찍는 한선생님은 두손으로 반듯하게 찍고,
맨날 덜덜거리는 저는 겁없이 한 손으로 척!
지난번에도 한 손으로 한다고
꾸중을 듣고서 오늘 또 그 버릇을...
우리 둘은 사실 손선생님을 찍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찍은 사진? 안 보여 드립니다.
반하게 예뻐설랑...
이 문은 비밀통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조의 밀서를 가지고 적진을 뚫고 나갔던 대장장이도
이 문으로 나갔을 것 같지요?
그래서 저도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저처럼 작은 사람도 구부려야 하더군요.
앗, 마야님이 알려주었는데요. 이 문 이름은 '암문'이랍니다.
잘못 든 길에서 만난 100년 묵은 구렁이.
놀랐셨나요? 구렁이 형상의 나무입니다
내려 올때는 행궁쪽으로 내려 온다는 것이
길을 잘 못 들어서 다른 길로 멀리 돌아서 왔습니다.
결국 행궁과 서쪽 성벽, 만해기념관은 못보았어요.
바로 이 길을 따라 계속 내려왔더니,
우리 차를 주차한 쪽이 아니고,
지화문(남문)으로 나와서 한참 걸었습니다.
바로 옆에 차가 다니는 터널이 있더군요.
이름이 남한산성 터널이었던가?
아닌가?
빠져 나와서 본 지화문(남문)
노을이 발그레 얼굴을 붉히며 스며드네요.
여기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석산정] 분위기는 수수하고, 음식 맛있으며,
편하게 얘기 할 만하였어요. 이 집 어렵게 찾았답니다.
산나물이 맛있더군요.
오른 쪽 추녀아래에 파란 전광판 글씨로
"산나물이 맛있는집'이라고 보이시지요?
참 잘 먹었습니다.
이 동네는 오리, 닭 등의 요리를 잘한다는데
제가 못먹는 음식이라서 두 분께 미안하지만
평범한 한정식 먹었답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나들이는 끝났습니다.
7시 30분 쯤에, 한선생님은 모란(?)에서 전철로,
저는 야탑역에서 시외버스로,
손선생님은 야탑에서 강릉으로 떠났습니다.
일산 한선생 도착시간 : 9시 40분
어성전 손선생 도착시간: 10시 44분.
저는 집에 10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제 도착 시간이 좀 안맞지요?
7시30분 대전 직행버스 막차를 끊었는데,
그 차가 고장이래요.
기다려도 대용버스가 안와서 천안으로 갔다가
다시 대전행을 탔더니 그리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늦은것이 다행이네요.
비슷하게 들어올수 있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도 기분이 아주 상쾌한 날이었습니다.
누군가 말씀하셨지요?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와 갔는가"가 중요하다구요.
저는 어제 그말 실감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가슴 안으로 남한산성의 한 자락이 자꾸만 안겨듭니다.
그림 올리고, 글 쓰는데 4시간이 훨씬 더 걸렸네요.
(위에 쓴 어제가 그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시간 09.6.18(목) 03시20분
저 이제 자러갑니다.
해바라기님들 좋은 꿈 꾸십시요.
첫댓글 삼총사 멋있습니다. 세분의 우정을 남한산성에 세기고 오신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소녀같은 세분의 모습 영원토록 간직하세요. 덕분에 앉아서 남한산성 구경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찍 들어오셨네요. 이 글을 금요카페와 목요카페에 올렸는데 선생님의 답글이 1등입니다. 상품 드려야 하는데 볼펜이라도... 감사합니다.
남한산성 하면 병자호란이 생각 나고 , 그리고 적장 앞에서 우릎 꿇은 임금이 떠오릅니다. 병자년의 겨울 짓 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앞에 우리는 방관자 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그 산성에 올라 여름을 즐깁니다. 다정한 모습, 그리고 산성 속에 묻혀 있는 역사를 읽고 오신 선생님들 부럽습니다.
맞습니다. 인조의 굴욕과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와 북벌에 힘쓰다 죽은 효종도 생각납니다. 그러나 성벽은 무심한 듯 말이 없었고...
권 샘, 아이고 난 부끄^^*
무시기 부끄? 그대가 어디 있수?
전에 남한산성 아래쪽에 땅이 좀 있었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곳이죠. 후일에 꽃 많이 심고 사시겠다고 했는데~~~그래서 남한산성을 골고루는 못 다녔지만, 차를 타고 많이 돌았지요. 그래도 이렇게 사진으로 세밀하게 보여주시니 참 좋습니다. 권선생님은 아가씨 같고 친구분들은 아가씨 친구 같고~~~~~~~~
이진영 선생님. 요즘 시 많이 쓰시나요? 날씨가 많이 더워서 힘드시지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곳이란 말이 왜그런지 슬프네요. 아픈 역사를 껴안고도 무심한 산성을 보며 세월보다 무상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가고, 가고, 가버리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