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는 유하 감독의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옥상에서 패싸움을 하고 좁은 복도를 걸어가며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라고 절규하며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현수는 학원에서 재수를 하며 다시 제도권 교육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제도권 밖에 머물렀다면, 그리고 그보다 먼저 거리로 나간 우식이 성장했다면, 조폭이 되어 [비열한 거리]의 병두(조인성 분)나 종수(진구 분)가 되었을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짱이었지만 비열한 방법으로 종훈에게 꺽인 뒤 학교를 뛰쳐나간 우식이 거리에서 성장한 인물이 [비열한 거리]의 병두다. 병두는 병든 어머니, 아직 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철거가 예정된 집에서 살고 있다. 상철파(윤제문 분) 조폭 중간보스인 그에게는 가장 신임하는 종수 등 6명의 직속 부하들이 있다. 그들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이다. 어머니나 동생이 식구가 아니라 조직의 부하들이 식구인 것이다.
병두의 보스인 상철은 병두의 후배인 영필을 더 신임한다. 상철은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보스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 결혼식을 위해 돈을 끌어모으지만 부하들에게는 무척 인색하다. 병두가 하는 일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떼인 돈 받아 오는 것이다. 괜찮은 스폰서의 후원을 받아 편하게 살고 싶지만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
어느 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민호가 병두를 찾아온다. 그는 조폭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하고 싶지만 그의 시나리오는 너무 상투적이라며 제작자에게 거절당한다. 민호는 초등학교 동창인 병두가 조폭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취재차 병두를 찾아온 것이다. 민호는 병두를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는 병두의 첫사랑인 서점 직원 현주(이보영 분)가 있다.
유하 감독은 병두를 중심으로 한 사회의 먹이사슬 구조를 펼쳐보인다. 병두 위에 조직의 보스인 상철이 있고, 상철 위에 그의 스폰서인 황회장(천호진 분)이 있다. 병두는 병든 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고, 식구인 자신의 직속 부하 6명의 인생을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동창인 민호는 감독 데뷔하기 위해 좀 더 리얼한 조폭생활을 듣기를 원한다. 병두와 수평선상에 있는 인물은 그가 사랑하는 현주 뿐이다. 이렇게 [비열한 거리]는 병두를 중심으로 한 우리 사회의 먹이사슬 구조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민호는 그러나 친구인 병두가 그를 믿고 털어 놓은 조폭세계의 눈물과 상처를 시나리오로 써서 감독 데뷔하게 된다. 병두가 눈물 흘리며 털어 놓은 그 이야기는 절대 다른 사람이 알면 안되는 비밀이다.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면 그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식구들인 조직원들의 안위까지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민호는 결국 병두의 상처를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고 그 작품은 전국 500만이 넘는 흥행 성공을 하면서 사회적 명예를 얻게 된다. 민호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범생인 현수가 그대로 제도권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면 그런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비열한 거리,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
배우들은 조인성 빼고는 다 잘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연기 못하기로 첫번째를 달리는 저 배우를 유하 감독이 왜 썼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큰 키에, 팔 다리가 길죽해서 발차기 동작은 그림이 잘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의 깊이를 원했다면 저런 배우를 절대 캐스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감정의 몰입은 없고 흉내만 낸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고독이나 외로움 대신 응석받이 같은 표정만 있을 뿐이다. 조인성의 연기 중 가장 안되는 부분이 조직을 책임지는 보스의 역할이다. 중간보스에서 상철을 젖히고 황회장의 신임을 받아 보스로 떠오른 순간부터 조인성의 연기는 정말 깊이없음 그 자체다.
황회장 역의 천호진은 견제와 균형의 절묘한 줄타기로 조폭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부를 확대해 가는 사업가 역을 너무나 잘하고 있으며, 특히 병두의 보스로 나오는 상철파 보스 상철 역의 윤제문은, 힘의 강약을 이용해서 조직원들로부터 존경 받지 못하는 조폭 보스의 카리스마와 비열함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친구의 아픔을 이용하는 남궁민도 비열한 지식인의 이중성과 그 명암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직 문제는 조인성이다.
[비열한 거리]는 이권다툼과 영역의 확장을 둘러싼 조폭들의 전투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칼을 이용한 전투는 역대 그 어떤 조폭영화보다 사실적이다. 상대의 복부 등 상체를 찔러 치명적 위해를 끼치는 대신 하체를 겨냥하여 무력화시키는 그들의 전투는 폭력적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폭력적 방법을 폭력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유하 감독의 진정한 의도는 결말 부분에도 드러나듯이,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구조에 의해 흘러가는 이 사회의 비열함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사업가나 영화감독 등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얻은 자들의 이중성을 소름끼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이 비열한 거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