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23:1-7
「나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인 유일한 救世主이심을 고백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눅10장에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强盜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어떤 律法司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는 質問에 대한 비유...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의 根幹이라 할 수 있는
유대교의 核心 사람들을 실랄하게 批判한다.
嚴密하게 보면 유대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인들을 비판..
한 제사장? - 강도 만난 자를 보았지만?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한 레위인? -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한 사마리아인 -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 주니라」
예수님의 이 譬喩를 듣는 당시 祭司長들, 레위인들은?
엄청 기분이 나쁘고 禍가 엄청 났을 것이다....
자기들을 장사치 사마리아 사람보다 못한 사람들로 치부하였기에......
제사장, 레위인? 이 사람들은?
-그 당시 유대교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고 백성의 리더자들이다.....
이 비판에는 지금 주님께 나와서 질문을 하고 있는 율법사도 해당된다..
주님의 질문과 결론?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이르되 자비를 베푼자니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징어 게임? (줄거리와 줄여놓은 것을 보았다...)(세계적 선풍)
여기에는 현 우리 사회의 비열함과 모순, 황금만능 사회상을 보여준다.
-돈 앞에 눈이 어두워진 인생들! - 가면 속에서 그것을 보고 즐기는 부자들
-정리해고, 장기매매, 어머니께 빌붙어 사는 인생, 사채업자, 새터민,
-훔친 어머니의 돈으로 경마, 거기서 딴 돈 - 소매치기
-외국인 노동자, 非行청소년, 身體抛棄覺書, 배반, 서울대 출신의 몰락,
-악의 무리 정체를 지키기 위해서 찾으러 온 동생을 죽이는 兄.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게임 창안자,(그리고 그 게임에 자기도 참여)
-그 죽음의 경쟁 속에서도 파벌이 형성되고, 그 파벌안에서 배반과 죽임.
-마침내 게임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벌함....
그 과정에 사람이 죽어 가면 갈수록 상금은 쌓여 간다....
사회의 모순 모순과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목사로서의 씁쓸함, 기독교인으로서의 씁쓸함과 분노...
황동혁 감독이 꼭 기독교를 이렇게 묘사해야 했나?
이 드라마에는 우리 기독교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제사장, 레위인들이 싫듯이 우리도 싫다.... )
(그러나 또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우리의 허물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임의 최후 승자(이정재)가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묶인 채로 비오는 거리에 버려진다....
다른 많은 행인들이 쓰러진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 때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던 한 길거리 전도자가(가슴팻말)
그 주인공에게 다가가 그의 안대를 벗겨 준다....
이 사람은 안대를 벗겨 주면서 말한다. 「예수 믿으세요」.......
(이 말이 나쁜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비호감이다. 너무 냉정하다. 너무 종교적 이기적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대를 벗겨 주고
붙잡고 일으켜만 주었어도 더 감동적이었겠다..
괜찮아요? 도와줄까요? 경찰을 불러 줄까요? 119를 불러 줄까요?
지금의 교회가, 성도들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외치고
현실의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외면한다.....
일제 강점기 평양의 최권능 목사에게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을 품는 최고의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사람을 품고 감동시키는 말이 되지 못한다.
○5번째 게임 유리판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임
(강화유리와 일반 유리 - 깨지지 않고 건너야 한다... )
앞에 건너던 사람이 일반 유리를 딛고 떨어져 죽어간다....
244번 이 6번째 순서자가 되어서 건너야 한다...
앞에서 기도하면서 시간을 끈다. (뒷 사람들이...시간 끈다고 야단...)
결국 다른 사람을 밀어뜨리고 자기는 살았다고 감사기도를 한다...
○240번으로 참가한 지영이? (코 피어싱)
그의 아버지는 목사다, 그러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간다.
엄마를 구타하고 지영이게는 나쁜 짓을 한다..
그리고서는 「우리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결국 목사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해 했고,
자기는 아버지를 살해......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출소를 했다....
3번째 게임 줄다리기 게임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기독교인 한 사람?
살아남았다고 감사 기도를 한다...
이 때 지영이는 우리가 살아남은 건 상우와 오일남 할아버지
덕분이라며 기도할거면 그들에게나 하라고 하면서 반감을 가진다.
지영이는 4번째 2인 구슬게임에서 새벽이에게 일부러
구슬을 떨어뜨려 져주고 죽게 된다....
(새벽이가 이것을 알고 고마워 할 줄 알았냐며 다시 하자 하니?
지영이 왈: 어차피 살거면 살 이유가 있는 사람이 사는게 낫지
않겠냐? 꼭 살아서 나가라고 하면서 진행요원에게 잡힌다...)
우리가 기분 나쁘게 보면 기독교를 아주 폄하고, 반기독교적 드라마다.
(황동혁 감독이 꼭 기독교를 이렇게....? 해야만 했나?)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부정할 수 없다.....
교회와 성도들이 / 보배보다 귀한, 생명보다 귀한 복음을, 십자가를
-이렇게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복음을 세상 사람의 입가심으로 만들어 버렸고, 오락거리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 복음을 희화화 시키게 만드는 성도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허물을 말씀하신다...
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
모세의 자리? 말씀 선포의 자리, 재판의 자리, 지도자의 자리....
분명 이들은 존경 받는 자리에 있고, 사람들의 부러움의 자리에 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보고 뭐라고 하는가?
한마디로 - 절대로 저들을 본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이들은?
-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자들
- 잔치 윗자리, 회당의 높은 자리,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아이구 선생님! 선생님 소리 듣는 것) 을 좋아 한다...
예수님은 山上垂訓(마5장~7장)에서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성도들은 분명 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이 보게 하는 목적(보일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름 나는 곳에서의 의, 유익되는 곳에서의 의, 記寫化 되는 곳에서의 의.......
6:2에 「구제할 때에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Ex) 어려울 때 도와주었다. 항상 뿌뜻하게 생각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날 때 마다, 항상 우월감에 젖어 있다.
내가 너를 도와주었지.... 그렇게 생각 하다가 그것을 갚을 날이
왔다고 생각 되는데 그것을 갚지를 않으면 못된 놈?
은혜도 모르는 놈? 하고 그때부터 그 사람이 싫어지기를 시작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율법사들?
이들은 분명 기도하는 자들이었다. 구제하는 자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
금식을 하는 자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기도를 하는 자들이다!
-구제는 하나님이 보지지 않는 빈손의 구제를 하는 자들이다!
-가르치되 자기들은 말씀을 배우지 않고 실천치 않는 자들이다!
-금식은 하나 배고프지 않는 자들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나 주님은 듣지 않는 자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를 보며 섬겨가는 성도들(마6:4,6,18)....
우리가 가진 복음을 세상 사람들도 두렵게, 경건하게
여기게 만들어가는 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