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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3㎏, 그녀가 만든 암벽 위의 길
키 153㎝, 몸무게 43㎏. 김자인(27, 스파이더코리아)의 프로필에 나와 있는 키와 몸무게다.
‘클라이머 김자인’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작은 키’다. 최근 4~5시즌간 김자인과 치열한 세계랭킹 경쟁을 했던 미나 마르코비치(28, 슬로베니아)의 키는
161㎝다. 클라이밍에선 긴 팔과 긴 다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김자인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김자인은 2009년 처음으로 리드 부문 세계랭킹 2위에 오른 이후 올해까지 한 번도 1~2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 올해는
리드-볼더링-스피드를 합산한 월드컵 통합 랭킹 1위를 확정했고, 2013년과 2014년엔 리드와 볼더링에서 모두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다.
작지만 늘 강한 톱 랭커다.
2010년 김자인이 카타리나 포치(오스트리아)와 나란히 리드 더블 경기를 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포치는 키가 169㎝다. 이 영상을
보면, 초반에는 포치가 성큼성큼 홀드를 잡고 올라간다. 김자인은 중반이 지나도록 근소하게 뒤진 채 따라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김자인이
재빠르게 막판 난코스를 돌파해내더니 마지막 홀드를 잡고 완등 벨을 누른다. 그리고 완등 직후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특유의 가느다란 눈웃음을
지으며 환하게 웃는다.
이런 장면이야 말로 ‘클라이머 김자인’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김자인은 유럽의 경쟁자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작지만, 잔근육이 아름답게 자리잡은 작고 단단한 몸으로 우아하게 홀드를 잡고 나아간다. 김자인의 클라이밍을 담은 영상, 외신 기사엔
외국 팬들도 이런 댓글을 남겨 놓았다. ‘김자인의 클라이밍은 정말 우아해(Her climbing is so graceful).’ 그래서 김자인의
경기 장면을 봤던 사람이라면 그의 별명 ‘암벽 위의 발레리나’를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김자인은 우아한 클라이밍 동작으로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진 : 스파이더) |
참고로 스포츠 클라이밍에는 세 가지 종목이 있다. 김자인의 주종목인 리드(Lead)는 15m 인공암벽을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오르는 선수가 우승하는 종목이다. 스피드(Speed)는 이름 그대로 똑 같은 코스를 가장 빨리 오르는 선수가 우승이다. 일본이 이 종목에 매우 강하다. 볼더링(Bouldering)은 5m 정도 높이의 여러 코스 중 많은 코스를 완등하는 선수가 우승하는 종목으로, 김자인이 평소 인터뷰에서 “내가 키만 좀 더 컸어도 볼더링을 더 잘 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대개 리드는 지구력, 볼더링은 순발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김자인은 리드가 가장 뛰어나고 나머지 두 종목도 두루 잘 한다.
김자인 인터뷰는 서울 신사동의 클라이밍 짐 ‘더자스 클라이밍’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당시 김자인은 올해 마지막 월드컵(11월15~16일 슬로베니아 크란, 한국시간 기준)과 아시아선수권(11월20~22일, 중국 닝보)을 눈앞에 두고 한창 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 김자인은 잠깐 쭈그리고 앉아서 작고 딱딱해 보이는 암벽화를 벗었다. 신발을 벗는 순간 고통스러운 듯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1. 발레리나
김자인에게 늘 묻고 싶었던 게 있는데, 바로 ‘근육’ 이야기였다. 클라이밍 경기를 할 때 소매 없이 몸에 밀착되는 경기복을 입은 김자인의
몸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도 김자인 만큼 섬세하고 탄탄한 등 근육과 팔 근육을 가진 선수는 찾기 힘들다.
사실
김자인이 작은 키를 극복할 수 있던 비결이 바로 김자인의 근력과 유연성에 있다. 홀드 사이를 점프해서 거의 날다시피 하는 동작이 가능한 이유,
그리고 리드 종목에서 다른 선수들이 지쳐 떨어지는 중후반 이후 더 힘을 내는 지구력도 바로 그녀의 탄탄한 근육 안에 들어있다.
섬세하고 탄탄한 근육은 그녀가 작은 키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사진 : 스파이더) |
팔 근육이나 등 근육이 정말 예뻐요. 혹시 따로 그 부위에 대한 운동도 하고 그러는
건가요?
“비시즌엔 웨이트트레이닝을 따로 하긴 하는데요, 시즌 중에는 주로 클라이밍을 위한 운동만 해요.
클라이밍 자체가, 큰 근육도 쓰지만 세세한 근육을 많이 쓰는 운동이서 그런지 잔근육을 발달하게 해주나 봐요.”
보통 웨이트는 어디 위주로
해요?
“기구나 그런 거 이용하기보다는 요즘엔 ‘슬링’이라고 체조선수들 하는 링 달린 줄 갖고 전신을 같이
하는 편이에요.”
혹시 체지방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측정해 본 지 좀 오래된 것 같은데… 예전에 재 봤을 때 한 8~9% 정도였어요.”
와아. 그 정도면 보디빌더 수준
아닌가요?
“그런가요(웃음).”
그 암벽화 말인데요, 사이즈가 205㎜라면서요. 발이 그렇게
작아요?
“아, 보통 신발은 225~230㎜ 정도 신어요. 그런데 암벽화는 더 작게 신어야 돼서 그래요. 오래
신고 있기 힘들어요. 안에서 발가락이 꼬부라지게 신어야 돼서.”
발을 혹사시키는 신발도 그렇고, 중력을 거스르는 우아한
동작도 그렇고 ‘발레리나’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엔 ‘클라이밍 여제’ 이런 별명이 멋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여제 라는 자리는 언제든지 저보다 잘 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올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발레리나
라는 별명은 제 클라이밍 동작이나 스타일을 보고 지어주신 거라서 더 마음에 들어요.”
인터뷰이 김자인은 솔직하고 유쾌하게 질문에 답했다 (사진 : 스파이더) |
실제로 발레 공연을 본 적 있나요?
“고등학교 친구가
발레를 했어요. 그래서 공연 보러 간 적 있어요.”
발레리나들이랑 체형도 비슷한 것
같아요.
“하하. 많이 달라요 제가 근육이 훨씬 많아요. 발레리나들은 정말 왜소한데. 저는 어깨가 이렇게…떡
벌어져서(웃음). 사춘기 땐 어깨가 넓어지고 이런 것에 스트레스 되게 많이 받았거든요. 주변에서 어깨나 근육을 보고 ‘너 그러다 시집 어떻게
갈래’ 이런 얘기하면 막 울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예쁘다고 해주시고…. 저는 클라이머이기 때문에, 클라이머 다운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먹는 것도 많이 참고 조절해야
하죠?
“전 먹으면 바로 찌는 체질이라서요. 워낙 오랫동안 운동을 해와서 그런지 남들보다 운동량이 많다고 해서
살이 덜 찌고 그러진 않아요. 비시즌 때는 잘 먹어요. 가리는 음식도 없구요. 시즌 때 힘든 건, 먹는 걸 조절해야 하지만 또 너무 안 먹으면
운동할 때 힘이 없으니까 밸런스 조절하는 게 힘들어요.”
암벽에선 오로지 팔로 내 몸을 지탱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무거워지면 안 되는 건가요.
“네. 맞아요. 그런 부분이 있어요. 중력과의 싸움이니까. 파워도 있어야 하는데
몸은 가벼워야 하고.”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이 유명해서 그런지 김자인 선수
인터뷰에도 발 사진이나 손 사진을 같이 찍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간혹 ‘손발이 자랑스럽지 않냐’고 묻기도 하는데, 사실
전 그냥 이게 자랑스럽다기 보다 그냥 당연하게 제 손이고 제 발일 뿐이에요.”
홀드를 잡고 수 없이 오르다 보면 손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진다 던데요.
“공항에서 자동출입국 심사 하잖아요. 그걸 지문으로 하는데, 전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손바닥을 펴서 보여주면서) 여기 손가락 끝에 보시면, 이렇게 빨갛게 되면 지문이 없어지는 거예요. 좀 쉬면 다시 생기는데, 출입국심사
때 안 찍힐 때도 있어요. 클라이머 직업병이죠(웃음). 손가락 관절염도 달고 살아요.”
#2. 일등 보다
완등
김자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그땐 김자인도 떨어지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 꼬마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미 일반부에 참가할 정도로 실력이 빠른 속도로 늘었다. 2002년 아시아 유스챔피언십 리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04년
아시아선수권 리드에서 우승했다. 전세계 쟁쟁한 선수들이 모이는 IFSC(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월드컵에서는 2009년 대회(체코 브루노)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후 월드컵에서 밥 먹듯이 우승컵을 가져갔고, 2010년 처음으로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에 올랐지만 유독
세계선수권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는 2009년, 2011년, 2012년 세계선수권 리드에서 세 차례 연속 준우승했다. 그리고 세 번의 준우승
뒤인 2014년, 드디어 세계선수권 우승을 이뤄냈다.
김자인은 올 시즌 월드컵 통합 랭킹(리드, 볼더링, 스피드를 합한 랭킹) 1위에
올랐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밍의 전 종목을 두루 잘 하고, 또 반짝 스타가 나왔다가 금세 사라지곤 하는 여자 클라이밍 분야에서 7년
동안 꾸준히 톱 랭킹에 머물고 있다.
올 시즌 월드컵 통합 랭킹 1위에 오른 김자인은 일등이 아닌 완등을 위한 크라이밍을 한다 (사진 : 스파이더) |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는 종목은 실제 산을 오르는 산악을 스포츠 경기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자인은 인터뷰 내내 산악인처럼 철학적인 이야기를 했다. 김자인은 “어릴 땐 나도 이기고 싶고, 이기는 게 재미있어서 클라이밍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등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등을 위해서 한다”고 말했다.
제일 처음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기분을 혹시 아직도
기억하나요?
“네, 2009년인데, 기분이…. 물론 좋긴 했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얼떨떨한
느낌이랄까.”
뭐가
얼떨떨했을까요.
“고등학교 때 처음 월드컵에 나갔는데, 입상한 선수들이 괴물 같았어요. ‘내가 다시 태어나도
이길 수 없는 선수들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제가 바로 그 무대에 몇 년씩 있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때가 많아요.”
뭐 때문에 이렇게 오래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클라이밍 만큼 재미있는 걸 못 찾았어요.”
클라이밍은 어떤 게 가장
짜릿하죠?
“어릴 때는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고, 그냥 잘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클라이밍 할 때의 느낌 자체가 좋거든요. 물론 몸은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매달려 있을 때 몰입하고 있는 느낌이 좋은 것 같고. 정말
힘든 구간을 넘어서 완등했을 때 희열과 짜릿함이 정말 좋아요.”
2009년 월드컵 첫 우승 이후엔 자주
우승했죠?
“네, 2010년부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자인 공식홈페이지 기록에 따르면 김자인은
2010년에만 5회, 올 시즌까지 총 25회 IFSC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 1회,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총 13회 우승했다. 그외
소규모 대회의 우승 기록은 더 많다.)
이제는 우승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데, 주변 분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게 좀 힘들 때도
있어요.”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후 귀국하는 김자인 (사진 : 연합뉴스) |
세계선수권은 준우승만 하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결국 2014년 스페인 히혼 세계선수권에서
극적으로 징크스를 깨고 우승했죠. 우승하고 눈물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땐 정말 많이 울더라구요.
“우승한 것도 물론 좋았는데, 예선 준결승-결승을 모두 완등하는 그
순간이 내가 정말 꿈 꿔왔던 순간이라서 그랬어요. 결승에서 마지막 홀드 잡고 완등 찍는 그 순간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요.”
2013년에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고 이듬해에 세계선수권
우승을 했다는 게 참 드라마틱했어요. 재활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요.
“2013년 4월인가에 대회 도중 십자인대
부상 당했는데, 수술은 하지 않고 약물 치료하면서 재활하고 7월쯤부터 다시 월드컵에 나갔죠.”
보통 재활이 운동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만두고
싶진 않았나요.
“(웃음)아니, 클라이밍을 하려고 재활을 하는 건데, 그게 힘들다고 클라이밍을 그만두는 건
말이 안 되죠.”
클라이밍,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아, 오늘은 운동하기 싫고 친구들 만나서 맥주 한잔 하고 싶다, 그런 건 자주 있었죠. 하지만 운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3. 김자인이 만든 길
한국 스포츠에서 김자인의 위치는 독특하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김자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기자들조차 그런 종목이 있는지 잘
몰랐다. 김자인이 중학교 때 국내 클라이밍 대회에 나가면, 중등 여자부에서는 자신을 포함해 딱 두 명이 출전해서 1-2위를 가렸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에선 너무나 생소했던 종목이지만, 김자인은 어린 나이에 이미 클라이밍에 모든 걸 걸었고 보란 듯이 최고의 성적을 냈다.
김자인은 정말로 ‘독하게’ 훈련하고 도전했기에 이 자리에 있지만, 평소 지나치게 비장하고 진지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런 점이 김자인의
매력이다.
김자인은 젊은 20대 선수 답게 여러 개의 귀고리와 화려한 스냅백으로 자신을 꾸미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거리낌 없이 공개한다. 쉽지 않은 환경을 딛고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지만 스타로서 인정받는 것을 매우 즐겁게
받아들인다.
김자인이 훈련하는 클라이밍 짐 벽에는 자신이 한국시리즈에서 시구했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프로농구 시구자로 나갔을 때
농구골대를 클라이밍 하듯 타고 올라가서 덩크슛을 한 적도 있다. 빌딩 벽을 타고 오르는 빌더링 이벤트에도 기꺼이 참가해서 즐겼다.
김자인이 대학농구리그 개막전에서 선보인 이색 시투는 화제가 됐다 (사진 : 연합뉴스) |
인터뷰 도중 김자인의 진지한 표정이 나온 건, 클라이밍을 홍보할 때였다. 그는
월드컵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프랑스 샤모니월드컵 사진을 휴대폰에서 찾아서 보여줬다. 수 만 명은 족히 될 듯한 관중이 클라이밍월드컵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사진이었다. 이 대회는 월드컵 중 역사가 오래된 권위 있는 대회로, 김자인이 2011년과 2014년에 이 대회 리드 부문에서 우승했다.
김자인은 “나를 보고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는 분들을 많이 봤다. 김연아를 보고 피겨 유망주들이 많이 나왔듯이 내가 그런 동력이 됐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우리 나라에서도 샤모니월드컵처럼 많은 분들이 클라이밍을 보러 찾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클라이밍은 ‘길을 찾아내고’ ‘힘겹게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어찌 보면 인생과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김자인은 마치 자신이 클라이밍을 하는 그 방식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본능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말이다.
김자인은 한국에서 너무나 생소했던 클라이밍에 모든 것을 걸었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사진 : 스파이더) |
클라이밍, 특히 리드 종목에선 기술이나 힘도 중요하지만 루트를 잘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요? 어때요, 그런 부분은 본인이 타고난 것 같나요?
“제가 사실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어서(웃음). 경기 전에 루트를 확인하고,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지키려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에 저는 일단 길을 익힌 뒤에 직접 올라가서 몸이
가는 대로 따라가려는 스타일이에요. 본능적으로.”
부모님이 산악인이고, 오빠 두 명도 모두 산악인이에요.
그래서 이름도 독특한가 봐요. ‘자’는 자일(seil, 등산에서 쓰는 로프)에서 따왔고 ‘인’은 ‘인수봉(북한산의 산봉우리)’에서 따온
거라면서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원래 순수 한글 이름인데, 한자로 쓸 때는 ‘불을 자(滋)’에 ‘어질 인(仁)’을 써요.”
인수봉도 많이 타 봤어요? 개인적으론 의미 있는
산이겠네요.
“두 세 번 정도 등반해 봤어요. 인수봉 자체가 우리나라 클라이밍의 메카라고 하는데, 사실 제가
하는 스포츠 클라이밍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거든요. 저에게 있어서 클라이밍이 제 인생 그 자체라고 한다면, 산에 등반하는 건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와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해서 비시즌 때 자주 가요.”
어땠나요, 인수봉 등반
땐.
“무서웠어요(웃음).”
김자인 선수도 무서운가요. 혹시 고소공포증 같은 거
있어요?(웃음)
“없어졌어요. 저도 원래 있었는데. 볼더링은 5m, 리드는 15m 높이에서 경기를 하는데,
어릴 때 처음 리드 연습할 때는 무서웠어요. 높이 자체가 무섭다기 보다 연습 도중에 추락하는 그 느낌이요. 리드는 고리를 걸면서 올라가기 때문에
추락을 해도 마지막 고리를 건 부분까지만 떨어지는 건데도 그 느낌이 무서워서 어릴 땐 울고 그랬어요.”
요즘에 연습할 때도 떨어지나요? 김자인 선수 같은
사람도?
“그럼요. 원래 클라이밍은 하다가 수도 없이 떨어져요.”
남자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죠?
“규정상 여자 선수가 남자 대회에 정식으로 참가신청을 할 수가 없어요. 그냥 도전해 보고 싶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해본 적은 있죠. 최근에 대구에서(10월 대구 국제스포츠클라이밍대회) 대회 다 끝나고 남자 결승 코스를 번외 등반해 본 적
있어요. 남자 결승전에서 그때 완등자가 없었는데, 제가 완등했어요(웃음). 예전엔 남자 대회에 나가보고 싶어도 선배님들 눈치가 좀 보였는데,
요즘은 남자대회 참가자들이 거의 후배들이라서 마음 편히 해요.”
15년 동안 클라이밍을 해온 선수 김자인의 마지막 목표는 올림픽이다 (사진 : 스파이더) |
지금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 석사 과정 중이죠?
“네.
학기는 다 이수했고 논문만 남았어요. 올해 월드컵 기간이 겹쳐서 프로포절(교수들 앞에서 논문 주제와 방향을 설명하고 승인받는 것)을 못했어요.
내년에 해야 돼요.”
공부는…재미 없지
않나요?
“그쵸(웃음). 클라이밍은 몸이 힘든데 너무 재미가 있고, 공부는 몸은 편한데 재미가 없어요. 하하.
대학원에 갈 때는 내가 왜 굳이 여길 가나 회의가 들어서 고민하기도 했어요. 저는 제 미래에 대해 확고하게 ‘내가 이걸 준비해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자’ 이런 결심을 하고 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다만 미래를 결정하진 않았어도 뭔가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계속 했죠.”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더라구요. 어떤 사람인가요?
“저랑 동갑내기에요. 남자친구가 있으면 훈련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심리적으로 더 안정이 되구요. 국내에서 하는 대회에는 직접 와서 응원도 해주고 그래요.”
흠…운동도 잘 하고, 연애도 잘 하고, 할 건 다 하는
스타일이군요. 멋진데요.
“흐흐.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했다고 하니까 벌써 15년 동안
클라이밍을 해온 건데요. 선수로서 마지막 목표가 혹시 있다면요.
“2020년 도쿄올림픽에 클라이밍이 후보 종목으로 들어갔어요. 내년에
최종 결정이 된다고 들었어요. 만약 정식 종목이 되면, 올림픽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운동 선수로서 올림픽은 꿈의 무대죠. 그땐 제 나이가 서른
살이 넘지만, 유럽 여자 선수들 중엔 30대에도 잘 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도전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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