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민음사
설 연휴가 끝나니 겨울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제법 길다면 긴 연휴기간 속에 가족의 북적거림이 점점 단출해 지는건 내 가정만의 현상일까? 사회적인 현상일까?
명절이면 친가, 외가의 방문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 시절에 그리운 마음이 생기는 것 또한 떡국을 챙겨먹은 나이만큼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일까?
영국의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이야기 속 해리엇과 데이비드 부부가 아이들과 친척, 손님들로 가득 찰 가족의 보금자리를 찾고 부엌 끝에 스무 사람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을 들여놓고 함께 즐거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2024년 겨울은 대한민국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서점이 북적거리고 도서관 예약도서 1위가 되며 관심이 뜨거워졌다. 영국의 도리스 레싱(1919~2013)작가 또한 2007년 88세에 <황금 노트북> 소설로 역대 최고령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하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읽히고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소설은 <다섯째 아이>다. 1988년 영국에서 출간되고 우리나라에는 1999년 소개되었다.
<다섯째 아이>는 영국의 정상적인 하지만 남들은 보수적이고 괴팍하다는 두 사람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만나 중산층의 전통적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 네 명의 아이를 낳고 남들과 다른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겪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엄마인 해리엇과 아빠인 데이비드. 결혼 6년 사이에 4명의 아이(첫째 아이 루크가 3개월 접어들 때 둘째 헬렌을 임신하고 두 살이던 해 1970년 셋째 제인이 1973년 넷째 아이 폴이 태어났다)를 낳은 두 사람을 정신나간 사람이라며 주변 가족들은 걱정하고, 부부는 최소 6명의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3년의 휴식기간을 갖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1973년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다섯째 벤을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해리엇은 완전히 지치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을. 아이들을 양육을 도와주는 친정 어머니 도로시 또한 '난 너희들의 하인이야. 이 집에서 하인 일은 내가 다 하고 있지, 너희는 둘 다 정말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사람들이야'라는 말은 차마 뱉지 못한 채 감정을 쌓아두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많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집에서 맞이하는 것을 강박적으로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부부. 지난 4번의 임신 경험과 다른 벤의 존재에 점점 예민해 지는 해리엇과 그 불안감을 [진정제] 투약으로 회피한 브래트 박사. 벤이 태어나자 당황한 데이비드의 모습에 동정심을 느끼는 해리엇. 하지만 저항하고 버둥대는 벤에게 결코, 아니 한번도 그 애는 사랑스러운 순간이 없었음을 알게된다.
데이비드의 두 세트의 부모의 관계와 아버지 제임스의 지속적 경제적 지원. 다운증후군의 아픈 아이를 키우는 해리엇의 여동생 사라와 남편 윌리엄. 성장하는 벤에게 나타나는 야성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 두려워하는 부모와 형제들. 벤을 이용하는 동네 무리들.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주변 가족들이 가정에 끼치는 환경과 심리적 관계 서술에서 왜 이 책이 호러, 스릴러 같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는 뉴욕 타임즈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쓴 이유로 고대의 야만적인 유전자에 대한 인류학자의 글과 넷째로 태어난 아이 때문에 불행해 졌다는 어머니의 사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 또한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엄마로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니 이후에도 다섯째 아이 벤과 엄마 해리엇에 대해 많이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아마 여성이면서 엄마이기에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반응일 것이다. 내 아이가 벤과 같은 표정과 행동을 보이면 과연 나는 어떠한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임신기간 동안 자신의 아이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엄마 해리엇에게 출산 직후 들리는 말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
어떤 여인의 목소리 "건강한 사내 아이를 낳았어요"
브래트 박사 "정말 작은 레슬링 선수야, 이놈은 온 세상과 싸우면서 나왔어요"
생명은 인간의 뜻대로 조절될 수 없는 신비하며 강한 존재인 것을.
이 책 속에 나오는 가족이라는 구성원 속에 신경쓰이는 인물이 있다면 친정엄마 도로시였다. 정상적이지 않은 아들 벤을 포기한 아빠 데이비드 사이에서 해리엇이 끝까지 벤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싸우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도로시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두 딸 사라와 해리엇의 옆에서 양육 돌봄 희생을 감내해주고, 남들과 다른 아이를 낳은 아픔과 현실에 대해 질타와 보듬어 주는 조력자. 도로시에게서 울 엄마 향기가 난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몇 일 안 지났지만 또 엄마가 보고싶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박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