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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시는 하나님(시 23:1–6)
할렐루야! 이 예배의 자리, 말씀과 은혜의 자리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인생의 걸음걸음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악보를 보면, 중간 중간에, 반드시 쉼표가 있습니다. 쉼표가 있으면, 연주를 하지 않고 멈추어야 합니다. 쉼표는 연주를 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음악을 망치는 시간이 아니라, 음악을 음악답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쉼표는 연주자가 숨을 고르는 시간이자, 앞선 선율을 갈무리하고 다음 선율을 준비하는 창조적 멈춤입니다. 누군가 “쉼표가 없는 음악은 소음이요, 안식이 없는 인생은 파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쉼표도 악보의 가장 중요한 일부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중간 중간에 휴게소가 있으며, 직장에도 주말과 휴가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멈추지 못해서 무너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잠깐 쉬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은 쉬는 것조차 “숙제”처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서 주말에도, “주말인데, 밀린 집안일도 해야 하고”, 그렇게 무언가 못다 한 일을 한다거나,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휴식 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쉼은 정지가 아니라, 재충전입니다.
여기서 “쉬어라”라는 헬라어 “아나파우오”라는 단어는 매우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작동을 멈추다”(Stop)라는 뜻이 아닙니다. 본래 “위로(ana) 끌어올려(pauō) 다시 채우다”, “상쾌하게 하다”, “활력을 되찾다”라는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F1 더 무비”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태백에서 목회할 때, 탄광에서 나오는 쓸모없는 슬러지를 매립하던 고수골이라는 곳에, F1 자동차 경주장을 만들고 있을 때,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 공사 현장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공사가 아직 덜 끝난 그 경주장을 바라보면서, 여기서 자동차 경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 정말 스릴 있겠다 싶었는데, 사정상, 그곳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F1 더 무비”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자동차 경주장에 있는 것처럼, 현장감이 넘치고, 스릴이 있었습니다.
그 자동차 레이싱 경기를 보면, 자동차가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달리다가 잠시 “피트 스톱”(Pit Stop)이라는 곳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넣는 곳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다가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넣기 위해 “피트 스톱”이라는 곳에 멈추는 것은 자동차 경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하여, 쉬지 않고 달린다면, 얼마 못 가서, 타이어는 펑크나고, 기름은 떨어져서,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기 위해, 타이어를 교체하고, 연료를 채우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영화에서도 이 “피트 스톱”이라는 곳이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세상의 소음, 사람들의 요구, 끊임없는 알람 소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이라는 전원(Power Source)에 깊이 접속하려면, 세상이라는 창을 잠시 닫아야(Log-out)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부르실 때,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깊이 빠져 있으면, 예수님께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쉬어라”(아나파우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아나파우오”라는 단어를 좀더 깊이 알고자 검색을 해 봤더니,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강원도 홍천에 있는 한옥 카페 “아나파우오”가 가장 위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한옥 카페 아나파우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풍성하고 맛있는 베이커리와 스페셜티 커피가 준비되었습니다. 홍천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한옥에서 반려견과 함께 있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카페 이용 뿐만 아니라 한옥 체험, 전통 체험, 한옥 스튜디오, 한옥 웨딩도 가능합니다.”
카페와 관련된 사진들을 보니, 한 번쯤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천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그곳에 가면,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헬라어 “아나파우오”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카페 주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알고 싶은 묘한 호기심이 생겨 찾아봤더니, 그 카페를 운영하는 대표 이름이 “양이래”씨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안에서, “목자, 양, 쉼”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아나파우오, 양이래”라는 단어들이 묘하게 겹쳐서, 웃음이 살짝 나왔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23편은, 쉼을 빼앗긴 인생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다시 쉼으로 인도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의 핵심은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누렸던 평안은 좋은 환경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왔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셨다”거나 “이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목자시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짧은 단어 하나가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확신보다 큰 위로는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라는 표현은 단순한 보호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먹이의 책임자요, 안전의 보장자요, 길의 인도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은 “내 인생의 모든 필요와 방향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은 “결핍이 없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이상 어떤 갈망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충분히 가진 사람은, 세상을 더 이상 절실하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서 쉼과 평안을 얻은 사람은 세상에서 권력과 재물을 통하여 더 이상 쉼과 평안을 얻고자 발버둥치지 않는다”
여러분? 하나님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른 풀밭”은 “연하고 부드러운 풀”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양이 먹기에 거칠고 질긴 풀이 아니라, 양이 힘들이지 않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연하고 부드러운 풀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먹기 좋겠습니까?
“쉴 만한 물가”는 급류가 아닌, 잔잔히 흐르는 물가를 의미합니다. 많은 비가 내려서 강하게 흘러가는 계곡이 아니라, 흐르는 것 같지 않게 흐르는 잔잔한 물가입니다. 양은 강하게 흐르는 물을 아주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일부러 조용하고 잔잔한 물가로 양을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러한 장소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참된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참된 쉼과 평안을, 크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누이시며”라는 표현은 양이 경계심을 완전히 풀고, 배를 땅에 대고, 평안하게 쉬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군가 “양이 눕는다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는 사나운 이리나 늑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하게 아름답고 멋진, 한 번쯤 가볼만한 한옥 카페라거나, 넓은 해변을 품고 있는 휴양지와 같은 그런 장소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어디이든지간에, 목자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으며,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푸른 풀밭에서 연한 풀을 배불리 먹고, 쉴만한 물가에서 배를 대고 누워있으면, 얼마나 편안하고 만족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 과연 푸른 풀밭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프리카의 초원이겠습니까? 남태평양의 어느 아름다운 섬이겠습니까? 그러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아름답고 멋진 장소에 가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거나, 달콤한 빵 한 조각을 먹음으로도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드넓은 푸른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근심도, 분함도 사라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곳에 계속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푸른 풀밭은 하나님 없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평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푸른 풀밭은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 푸른 풀밭이요, 쉴 만한 물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메마른 광야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고, 쫓기는 인생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의 좋지 않는 환경이 좋은 환경으로 바뀌면, 저절로 평안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안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평안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참된 쉼과 평안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년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 생활을 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해서, 광야에서 도피 생활을 했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왕궁을 차지한 왕으로서, 제물과 권세와 최고의 영화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함으로, 실패와 눈물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다윗은 인생의 모든 극단을 다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진정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고 참된 안식과 평안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 인생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행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렸습니다.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들이 많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행복하고, 만족하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군가, “다윗은 많은 것을 가졌을 때도 만족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을 때도 하나님 안에서 만족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만족은 소유의 많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한 데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만족이 있습니까?
높은 자리에 있다고 만족이 있습니까?
특별히 여야 정치인들을 보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높은 자리에 있고,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들을 보면서,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들만큼 가진 것도 많지 않고, 그들만큼 높은 자리는커녕, 그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 안에 있기에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리며,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어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목자이신 주님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우리는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 어거스틴은 지나온 그의 삶을 회고하면서 쓴 고백록에서, “주님 안에서만 내 영혼이 쉼을 얻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23편의 목자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도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라고 말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 4:13)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쉼과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은 무엇입니까? “부족하다”라는 것입니다.
소유한 사람은 소유한 사람대로 부족함을 느끼고,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소유하지 못한 대로 부족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재물 부족, 시간 부족, 능력 부족, 경험 부족, 물 부족, 잠 부족, 운동 부족”
이래저래, 모든 것들이 다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하고, 쉼과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부족함이 없지만, 하나님 밖에 있으면 항상 부족하다.”
많은 재물이 있어도 부족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부족하고, 바닷가에 서서 드넓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어도 부족하고,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폭포수 아래에 있어도 부족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바울처럼 감옥에 있어도, 다윗처럼 광야에 있어도, 바로 그곳이 푸른 풀밭이 되고, 쉴 만한 물가가 됩니다.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곳은 목자가 인도하는 곳에만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장소가 있어도, 인도하시는 목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의 쉼은 순종하는 양에게만 주어지는 쉼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따르다”는 히브리어 “라다프”는 본래 “추격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사냥꾼이 끝까지 추격하듯, 하나님의 은혜가 도망치는 우리를 끝까지 추격하여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보다 더 끈기 있는 사랑의 추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 안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가장 좋은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바로 하나님의 품입니다.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러분! 목자이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쉼과 평안과 만족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다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되심을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우리의 영혼을 오늘도 쉬게 하시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