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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이웃 사랑, 이렇게 하세요.
본문 누가복음 10장 25-37절
찬송 455장
죄인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사람은 둘뿐입니다. 자기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이씨(利氏)와 해씨(害氏)라 부릅니다.
죄인은 자기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까? 끔찍하게 위하고 사랑합니다. 반대로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대합니까? 원수로 여기고 미워합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절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조차 사랑하지 못합니다. 철저하게 죄의 종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합니까? 자기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조차 미워하거나 해칩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며 살아갑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원수를 위해 얼마든지 손해 볼 수 있습니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나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 이 질문 앞에서 죄로 말미암아 심히 부패한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합시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누구를 바라보게 합니까? 이웃을 위해, 원수를 위해 당신의 전부를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아가게 합니다.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왜요? 내가 구주로 믿는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귀에 항상 울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9-11)
다시 한 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돌아가 볼까요? 모든 비유의 말씀을 마치신 다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하고 질문하며 나아온 율법사를 향해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눅10:36)
여러분 생각에는 누구일 것 같습니까? 두 말할 필요 없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지요. 이는 지금까지 함께 듣고 나누었던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미 여러 분 나눈 말씀이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나의 참된 이웃의 모습을 다시 볼까요?
내게 참된 이웃은 선한 사마리안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며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의 원수로 살아갈 때에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나를 위해 자기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의 참된 이웃입니다.
돌아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이런 이웃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내게 참된 이웃입니까? 이 질문을 받는 성도는 누구나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내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십니다. 왜 그러합니까? 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내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온갖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사장과 레위인과 율법사들과 같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이웃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같은 이웃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고 넉넉합니까?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는 이런 이웃을 항상 자기 곁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모시고 사는 성도와 교회로 더욱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가 전도하는 모습이 꼭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전도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따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복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의 참된 이웃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가 이미 넉넉해지고 부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죄악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자기를 중심하여 보고 이용하려고만 하던 죄의 자리에서 떠나,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심히 부패한 세상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선포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참된 이웃들이, 곧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어떻습니까? 세상 모두를 향해 참된 이웃이 되어 살아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런 능력이 내 속에서 역사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36-37)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 복된 명령을 따라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벗어버리고 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 뵙고 믿어야 합니다. 당신의 목숨을 죄인과 원수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만나 뵙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영접한 다음 잘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 곁에 두신 모든 이들은 내가 사랑하며 살아야 할 참된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웃이 될 만한 사람을 자기가 선택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씨(利氏)와 해씨(害氏)로 구별한 다음, 자기의 이웃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자기가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할 것인지 자기가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이는 모든 죄인의 특징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이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사랑하기를 거절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은 바로 이방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과 율법을 따라 살기 어려웠던 일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무지 랭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도 모르고, 또 율법을 따라 살지도 않는 더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뱀을 보듯 싫어했습니다. 혹 그들과 어울리다가 자기들도 종교적으로 더러워질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눈에 보이는 이방인과 사마리아 사람들과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무지 랭이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해만 끼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생각과 믿음 때문에, 그들은 도무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러 살아가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수였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의 비방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병든 사람, 귀신 들린 사람, 창녀, 세리, 로마 군병, 사마리아 사람과 이방인까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이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온 세상의 조롱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는 죽음을 기꺼이 담당해주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박해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기는커녕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죄인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참된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무리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당신처럼 살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또 우리는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나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 두신 모든 이웃들을 나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합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는 구원받은 성도와 하나님의 교회가 행할 마땅한 일입니다.
아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대로 이웃사랑은 풍성하여 넘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이웃을 위해 정도에 넘치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이웃사랑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들으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땅히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합시다. 이것이 이웃사랑이 갖는 참된 본질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웃 사랑의 모습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을 통해 봅니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앞서 말씀을 나눈 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알았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베풀어주신 이웃사랑을 십자가를 통해 알고 경험합니다. 단순히 지식으로가 아니라 전 인격과 삶을 통해 알고 경험합니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내게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까? 누가 내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셔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해주십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본받아 나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는 이런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믿는 십자가 앞에 엎드릴 때마다 이 사랑에 감격하여 부들부들 떠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에 감격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다시 확인해보십시오. 다음 말씀을 통해 다시 확인해보십시오. 내게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입니까? 오늘 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갑니까? 우리 모두 이 시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