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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었던 고문서.잡지 해제하다...빛을 보게 하겠다는 최상열 소장자
하서 김인후 선생 천자문 소장
김영랑 시인 책 소장
전우이야기 첩 소장
서예, 그림 작품 소장
다수의 고문서, 잡지 등 소장
“역사는 묻혀있으면 그 가치를 잃는다”
“역사는 세상의 빛을 보게 해야 한다”
“내가 소집한 것들은 내 것이 되면 안 된다”
“필요한 분들이 소장해야 빛이 난다”
“내가 소장한 것들에 가치를 팔겠다”
“소장으로 삶을 더 유익하게 하겠다”
조금만 알면 친근한 것
자신이 소장하면 내 삶의 가치가 된 것
역사적인 고문서, 잡지 등 여러 문서들이 한 수집가나 소장자, 애장자에 의해 사라짐을 막고, 숨겨진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 개인인의 소장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핵심 가치를 찾고, 역사문화들을 존중하기 위한 관점, 역사문화들이 공유하는 가치 실현과 역사문화물이란 것들에 대한 의미로 우리 삶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자하는 최상열 소장자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는 고문서, 잡지 해제 작업에 진행 중이다.
최상열 소장자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역사문화물들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배달하는 ‘행복배달부’ 혹은 ‘필수품운반’ 으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며 “즉, 자기의 일에 스스로가 가치를 부여한 것, 무가치함을 가치함이란 고귀한 이름으로 변신한 것, 내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저 돌멩이 뿐인 것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버린 것,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면 전혀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린다” 고 했다. 소장하는 일이 새로운 일이 되고 의미 있는 일이 되며, 내 스스로가 굉장히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은 가치 있는 힘, 바로 당신으로부터 비롯됐고, 그 역사문화물에 얻은 가치의 힘, 즉 경제적 가치를 다시 당신에게 실어주는 소장자 최상열이라고 강조했다.
고문서는 옛 문서를 가리킨다. 조선시대의 편지인 간찰, 주민등록등본인 준호구, 매매계약서인 명문, 과거시험답인지인 과지, 각종 소송사건 및 여론 형성을 위한 소지와 통문 등등 일상생활 속에서 적성된 모든 문서들이 고문서이다.
고문서는 중앙정부가 편찬한 역사자료와는 달리 우리 선조들의 생활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적 1차 사료’ 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소중한 유산이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보고이자, 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소장자를 찾다
이런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는 전남 영암 군서 구림 출신이 최상열 씨가 자신이 30년 전부터 수집하고 소장했던 고문서, 간찰, 준호구, 명문, 소지와 통문 등 고문서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삶을 들여다볼 있게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소장자를 찾고 있다.
조금만 알면 친근한 것
자신이 소장하면 내 삶의 가치가 된 것
최상열 소장자는 “고문서나 잡지, 서예, 그림, 도자기, 골동품은 역사와 문화 돋보이는 소중한 조금만 알면 친근한 것, 자신이 소장하면 내 삶의 가치가 된 것’ 불씨가 되어주고 있다” 고 고문서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조상들이 시용하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고문서라고 하면 곧바로 알 수 없는 한문으로 쓰여 진 복잡한 문서이며, 골방이나 벽장 속에서 보관되어 왔기 때문에 케케묵은 냄새나는 문서라는 생각부토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고문서는 사실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적성하여 사용하던 각종 문서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알고 이해한다면 매우 친근한 것들이며, 현재 우리가 시용하고 있는 여러 문서들과 서로 소통하는 것들도 의외로 많다.
넓은 의미의 고문서, 좁은 의미의 고문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고문서의 개념 속에는 넓은 의미의 고문서와 좁은 의미의 고문서가 혼재되어 있다. 넓은 의미의 고문서에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모든 기록물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널리 간행된 고서를 비롯하여 일기, 치부책 및 손으로 쓰여 진 낱장의 문서들까지도 여기에 포함되며, 고문헌이라는 말과 통용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좁은 의미의 고문서는 순수한 문서만을 가치킨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출간된 고서와 일기 및 치부책 등은 제외된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지은 시문이나 기억을 돕기 위해 기록한 비망록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문서는 1차 사료
고문서 등 역사적 시료들은 1차 사료로 분류하여 고문서에 대해 주목한다. 1차 시료란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자려로서 기공이 되지 않은 생생한 자료를 말한다. 우리는 그간 삼국사기나 고려사 및 조선왕조실록을 1차 시료라고 배웠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를 연구하려면 위의 자료들이 아니면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곧잘 1차 사료라고 불러왔다. 고문서는 그 누구의 손에 의해 편찬되지 않은 아주 생생한 자료들이기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문서만이 진정한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다.
1차 사료는 아니더라도 각종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최상열 소장자의 집념은 역사를 지키는 일이요, 후세들한테 역사 지식을 풍부하게 배우게 하고. 깨우치게 하여 소중함을 알게 해주고자 그는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그동안 모아 놓은 것들을 자신의 것이 아닌 필요한 분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한다. 최상열 소장자는 “초등학생이 쓴 일기장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며 “이런 일기장들을 고물상으로 팔려가 결국 폐기처분해버리고 마는 일이 허다해 안 되겠다고 싶어 이런 일기장도 가치가 있다고 보고 수집해났다” 고 했다.
일기장 당사자나 가족들이 간직해야할 일
최 소장가는 “아미 이런 일기장을 쓴 사람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성숙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고 있을 텐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혀버린 채 살고 있을 것” 이라며 “아마 이 일기장을 디시 보면 반가워하지 않을까한다” 면서 “이 책은 내가 소장해애할 일이 아닌 이 일기장을 쓴 분이나 가족들이 간직해야 될 것” 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썼던 일기장을 아무 생각 없이 버렸던, 그래서 그때 썼던 일들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없는 안타까움, 어린 시절 생활상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는, 하루하루 생활을 기록했던 일기장이 어딘가에 누구에 의해 보관하고 있다면 반갑고 기쁜 소식이 아니지 않는가? 우연히 내가 쓴 일기장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심정일 것이다. 그때 자신의 일상과 성장을 엿보게 돼 가슴이 짜릿할 것이다.
전우이야기 국방부가 소장해야
또한 “군대시절에 의례히 써냈던 추억의 전우이야기에 대한 글과 사진은 이 전역 및 추억노트에 등장한 분들이나 국방부 등에서 역사적인 기록물로 보관하고 보전하면서 보여주는 데 활용했으면 한다” 고 했다. 우리가 함께 썼던 전역기념첩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찾을 수 없다고 애타고 있다. 찾고 싶은 전역기념첩이 다시 그들에 손에 들어간다면, 함께 생활했던 군 동료들을 모아 놓고 회상에 젖어들며 기억 소환될 것이다.
1000여 권의 문서,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그동안 수집해 놓은 것들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각종 문서들은 세상을 빛을 보지 못하고 그의 수장고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다. 그는 1000여권의 역사문화물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각방으로 밝힐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고서 등의 세상에 눈을 뜨는 일은 여러 어려움이 따른 실정이다.
고문서 체계적 정리, 역사적 가치 알리는데 노력
세상에 밝힌다고 해서 그 가치를 모르는 국민들이 많아 무관심이 크기 때문에 밝힌다고 해도 빛은 안 난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소장한 것들을 분명코 가치를 인정받게 하겠다며, 고서 해제, 즉 소장 고서 중 유일본.희귀본 등 자료적 가치가 뛰어난 고문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고문서, 잡지 해제 사업팀은 고서, 접지의 내용.발행시기.책명.저자명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서지적 내용적 가치도 밝힌다. 고서 해제 위원 구성은 준비단계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천자문 등 소장
그가 소장한 고문서 중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조선중기 중종(1510년) 6년~명종(1560년) 15년 문신, 학자인 성리학의 대가 김인후 ‘하서선생천자초첩(河西先生千字草帖)’ 의 천자문이다. 하서 산생이 초서(草書)로 쓴 천자문, 하서 선생은 조선 서예계에 명대의 초서풍(草書風)을 수용하여 조선의 개성적인 초서풍을 발전시켰다.
잡지는 박목월, 장만연 공저인 김영랑 시인의 ‘영랑시감상’ 초판이다.
또 김소월의 주옥같은 시들을 수록한 애국시감상의 ‘임의사랑’ 이다.
그리고 군 전역기념으로 작성한 전우에 보낸 이야기들을 담은 전역 또는 추억첩이다.
또 ROTC 제8기(1970년)에 대한 동기들의 사진첩인 ‘횟불’ 이다.
또 세계문화가 펴낸 ‘지성일기’ 다.
또 남세의무자 이름과 주소, 가옥등급 및 세액 등등이 기록되고 이어 부동산에 대한 내역도 기록한 ‘가옥세명기장(家屋稅名寄藏)’ 이다. 이런 문서들을 해제 중인 고문서나 잡지 외에도 여러 고문서와 잡지들을 소장하고 있다.
고문서를 해제하다
최상열 소장자는 여러 고문서와 잡지 등을 공개하며 수집가나 문서와 관련된 분들이 이 문서들을 구입해 자신의 것이 아닌 학문연구에 필요한 분이나 집안 또는 그 책에 등장한 당사자들이 소장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고문서를 해제하다’ 라는 주제로 그가 소장한 각종 고문서와 집지 등을 세상에 드러내고자한다.
최상열 소장자의 사무실을 찾아 그가 공개한 고문서와 잡기, 일기장 등을 살펴봤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표지만 봐도 기치성이 드러나 보였다.
고문서에 조예가 깊은 최 소장자는 특히 하서 김인후 선생이 쓴 초서 천자문을 꺼내면서 이 책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목판으로 찍어낸 고문서라며, 이 책은 몇 권만 발행한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희귀성이 있는 가치를 띤 소중한 고문서라고 에둘러 말했다.
하서 김인후 선생 훈몽 초서풍 천자문
하서 김인후 선생의 초서 천자문, 어린아이나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친 교과서인 천자문에 대해 한국고전번역센터 선임연구원인 철학박사 조선대학교 인동교 교수가 ‘하서 김인후의 講學활동과 訓蒙齋, 그 門人들’ 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을 연구를 위한 학자나 하서 가문 집안에서 또는 나라에서 이 책을 구입해 보관, 보전했으면 했다. 특히 초서풍(草書風) 본보기가 된 천자문으로서 ‘초서를 배운 분’ 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했다.
호남의 대표 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은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조선 중기의 문신 중 한 분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처가의 고향 순창으로 돌아가 기거하면서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만든 곳이 ‘훈몽재(訓蒙齋)’ 이다. 1540년 문과에 합격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을 설서(設書)를 역임하여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쳐서 인종의 스승이었던 그는 조선 명종 3년에 처의 고향인 순창의 점암촌으로 이거한 후 초당을 세워 훈몽(訓蒙)이라는 편액을 걸고,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등 여럿이 모여 공통된 주제에 대해 토의하는 강학(講學)을 하면서 어린아이나 초학자에게 글을 가르치는 곳으로, 이곳에서 2년간 머물면서 초서풍 천자문을 발간해 후학을 양성했다. 그 이후에도 자신이 태어난 장성에서 거주해 여생동안 훈몽에 열중했다.
김영랑 시인에 대한 책, 군대시절 동료들과의 군 생활에서 느꼈던 추억에 대한 전우들에게 남긴 말과 사진 등은 상당한 가치를 띠고 있고, 이런 수집물들이 한 개인의 소장자 손에 있는 것보다는 고문서를 쓴 후손이나, 일기를 쓴 장본인이나. 군 생활 기념 집을 함께 써낸 전우들에게 또는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한 역사박물관에서 빛을 보게 했으면 한다고 최상열 소장자는 ‘고문서를 해제하다’ 라는 주제로 그동안 수집한 것들에 대한 열리는 마음으로 주인을 찾고 있다.
고문서는 묻혀있어야만 그 가치가 있다고 한데 잠들어 있는 고문서들이 너무나 많다. 빛이 보질 못하고 수장고에 잠들고 있는 것들이 세상에 드러내고자한다. 그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고문서뿐만 아니라 그때는 이랬지. 그때 그런 식으로 발행했었지 하는 생소한 기록서나 책들을 엿볼 수 없는 일들이 많고, 그런 책들을 보고 싶고 내용을 알고 싶어 하며 찾는 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잘 드러내지 않아 역사는 그저 묻혀버리고 있다.
동대문에 소장고
최상열 씨는 인사동에서 그의 호를 따 ‘상운화랑’ 이라는 고문서 등을 수집하고 소장했던 것들을 판매해왔다. 그는 인사동 화랑이 재건축으로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무실과 호텔이 들어섬으로 인하여 최근에는 동대문 동묘 근처인 동묘역 6번 출구 ‘시즌빌딩 729호’ 에 그가 수집한 것들을 보관하고 있다.
수집가보다 애장자
최상열 소장자는 “나는 수집가란 칭호보다는 ‘애장자’ 라는 말이 더 와 닿습니다” 라고 했다. 그는 “고문서를 좋아했고, 남이 남긴 글들을 수집하여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길 좋아한다. 취미생활에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전문수집가로서의 어떤 물품 따위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애장자(愛藏者)’ 로 자신을 알아주고 있어 역사문화에 조예가 깊은 최상열로 인정을 받고 있고 기억되고 있다” 고 자신을 알렸다.
그는 ‘최상열’ 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삼행시로
최고의 역사문화 빛내준다
상위의 가치공유 소통한다
열의의 인격지성 갖춰준다
역사문화의 빛냄, 가치공유의 소통, 인격지성의 갖춤이야말로 역사문화를 지키는 최고의 상위의 열의의 기본을 드러낸 일이라면서, 평화로운 삶을 위한 필요한 가치를 띤 역사문화 향유에서 우리는 삶의 영화로움을 누리는 일이다. 역사문화를 지키고 보전하고 가까이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 영역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절대적아고 궁극적인 가치 체계로서의 가르침, 즉 Religion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의례 등의 행위를 의미하는 종교 같은 일로서의 역사의 신, 문화의 신 등으로 불리는 초월적.절대적 존재에 대한 체험이다. 역사를 빛내주고, 그 가치를 공유하고, 그로인해 인격의 지성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특정한 기치 체계를 갖춘 인간의 생활 활동으로서의 지녀야할 일이라고, 고문서와 잡지 등 각종 물품에 대한 수집(蒐集)하고 애장(愛藏)을 한 이유는 자신의 이름에서 드러내주고 있다고 밝혔다.
역사문화의 고문서 등 수집가,애장자인 최상열 소장자는 ‘나눔, 누림, 가짐, 간직’ 이런 수식어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세상에 공개해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빛을 보게 하여 이를 본 사람들에 커다란 기쁨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의 말도 역사문화가 된다
역사문화물 최 소장자는 “내가 말한 것도 하나의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며 그가 말한 말마다 역사는 값지고, 문화는 빛나고 있다. 수집가, 소장자. 애장자들은 역사문화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모으려하질 않는다, 모아놓아도 그 가치를 잃는다. 빛이 나지 않는다. 조예가 깊어야 가치를 더한다. 지식이 있고, 조예기 깊기에 수집하고, 소장자가 되고, 애장자 소리를 듣게 된다. 바로 최상열 씨가 그런 사람이다.
고문서 등 오래된 것들을 모으던 일의 취미에서 그 취미가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영혼을 깨우기 위해 단순한 취미에서 벗어나 독특한 소장자로, 소장자에서 훌륭한 전문가로 거듭나는 역사문화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해준 최상열로, 그는 잊혀질만한 역사문화물의 자신이 소장한 것들에 혼(魂)을 불어주아 다시 일깨우게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단지 맡겨놓았을 뿐
최상열 소장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물들은 여러분들이 나한테 단지 맡겨놓은 것이다. 잠시 내가 보관할 뿐” 이라며 “가지고 있는 것들은 여러분들 것이고, 여러분들이 역사문화물을 간직하고 빛내줘야 할 일” 이라고 했다.
실물은 물론이고 사진으로나마 한 사람이라도 더 보게 하려는 것이 진정한 애장자의 심정이랴 하지 않을까? 그리고 보니 애장자인 최상열 소장자의 본심이 드러난 소장한 물품에 대한 세상에 빛을 보게 하겠다며, ‘조금만 알면 친근한 것, 자신이 소장하면 내 삶의 가치가 된 것’ 이라는 제목으로 ‘고문서를 해제하다’ 주제로 한 신문사에 게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본 신문에서 한 소장자의 역사에 대한 철학, 각종 문서들에 대한 가치를 여러 사람들과의 공유에 공감하고 특별취재를 통해 다름이다.
문의처: 최상열(010-8722-9135)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