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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통로 (창 39:2-6)
요셉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총애를 입고 사랑을 입고 은혜를 입는 삶의 기초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12아들 중 11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에게는 네 아내가 있었습니다.
둘은 외삼촌의 딸이고 둘은 두아내의 몸종 출신입니다.
그중 라헬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 라헬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요셉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만 어려서부터 채색 옷을 입히며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런 야곱의 편애는 나머지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의 향로를 결정짓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여기 보면 인생의 미래와 장래와 내일과 내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요셉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배후의 하나님이 바로 지금도 나의 운명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간다.
[ 사람의 선택이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결정된다 - 랍비의 생각 ]
요셉의 하나님은 곧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의 미래, 장래, 운명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은 곧 지금 나의 운명을 위해서도 생각하십니다.
그러면 요셉의 운명에 하나님은 어떻게 개입하시고 섭리하시고 액션을 취하시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형제들에게 야곱은 요셉을 불러 심부름을 보냅니다.
평소 미워하던 형제들이 아버지 심부름을 온 어린 요셉을 보는 순간 증오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어린 동생 요셉을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팔아버립니다.
아버지에게는 들에서 맹수에게 찢겨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의 모습이 오늘 읽은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갈 때 나이가 17살 되던 해로 BC1898년 되던 해로 짐작됩니다. 애굽에 가서 다시 팔려 당시 애굽왕 바로의 경호실장 이었던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의 종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왜 하필 왕의 경호실장 보디발의 집으로 들어가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요셉을 보디발의 집으로 보낸 것은 장차 애굽의 치리자로 소양을 쌓고 안목을 키우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주도면밀하십니다.
여기서 획기적인 모습 몇 대목을 추려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가는 곳 마다 형통한 길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마츠리아흐”라는 말로 “하는 일마다 만족한 현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하는 일 마다 형통하게 하셨습니다(3).
복중에서 최고의 복은 “형통의 복”입니다.
그 형통은 배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왜냐하면 형통의 길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배후에서 섭리하십니다.
그래서 형통입니다. 요셉의 앞에는 늘 형통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앞에서 길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길을 예비하시고 사람을 준비시키고 장애물을 미리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남의 나라에 팔려가서 노예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요셉의 앞길은 훤히 열렸고 뚫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앞길을 막았고 팔아버렸고 누명을 씌웠지만 사람들이 그의 앞길을 막을수록 요셉의 앞길은 더 크게 뚫렸고 더 크게 형통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성악가는 안드레아 보첼리입니다. 그는 1958년도에 이태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음악을 좋아해서 여섯 살 때부터 그에게 피아노와 색소폰, 플롯과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축구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12세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았습니다. 며칠 아프다 나을 줄 알았는데 실명했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통곡을 했지만 그는 “나는 내 눈을 잃은 것 때문에 어둡게 살지 않는다. 한 시간만 울고 나서 밝게 살리라.”라며 한 시간을 울고 나서 의욕 차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시각 장애자인 그가 법학박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었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자기가 원하던 성악가가 되기 위해 코렐리라는 유명한 성악가를 만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의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그는 라보엠 오페라를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가 주인공 역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모든 악보를 다 암기하고, 몇 발자국 위치에 계단이 있고 여주인공이 있는지, 어디에서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지를 다 암기한 후 무대에 섰습니다. 오페라를 마치고 나니 모든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그는 시각 장애자가 되었지만 오히려 더 노력해서 세계적인 별이 된 것입니다.
.“하려고 하면 하게 되고, 하면 된다. 해보자.”
2. 그러면 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는가의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요셉의 삶에는 매사가 하나님이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First God" 이것이 요셉의 삶의 중심입니다.
그러면 매사 하나님 중심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겠습니다.
먼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있었습니다.
그때 보디발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받습니다.
노예로서 주인의 집요한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노예는 생명, 인생, 삶이 모두 주인의 것입니다.
‘노예’는 ‘예’만 있고 ‘아니요’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때 주인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 요구를 과감하게 뿌리칩니다.
그 거절의 이유는 “이것은 하나님께 죄(창세기 39장9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것은 신앙인에게는 삶의 중심의 뼈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결국 감옥에 갑니다.
감옥에 있을 때 왕의 신하 둘이 들어왔습니다.
그 두 신하가 밤에 꿈을 꾸고 근심에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왜 그러냐고 묻자 꿈을 꾸었는데 해석할 수가 없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때 요셉이 40장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냐.”
이렇게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실 것이니말해 보라.”
그 말은 요셉이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요셉 자신도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꿈들이라는 것을 요셉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냐”하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얼마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고 번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감옥에서 꿈을 꾸었던 간수가 요셉을 추천하여 바로 왕에게로 데리고 갑니다. 요셉을 본 바로 왕이 요셉에게 “너는 꿈을 잘 해석한다는데 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요셉은 41장16절에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내가 해석하리이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입니다.
애굽 땅 뿐 아니고 가나안에도 기근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보니까 자기 앞에 자기를 애굽 대상들에게 팔아버린 그 형제들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순간 분노가 일어났고 피가 거꾸로 솟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한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45장5절).”
하나님이 요셉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그가 가는 길마다 형통하게 하신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사 하나님을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매사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매사 하나님을 우선하십시오.
빽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사람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방법을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소비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찾아서 다가가십시오. 하나님을 우선하십시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요셉을 챙기듯이 여러분들을 챙기실 것입니다.
스테바니 바스토스, 미국의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그는 1995년도에 자동차 사고로 발목이 잘렸습니다. 발레리나는 발목이 잘리면 끝입니다. 발목이 잘려나간 자기 다리를 보며 엉엉 우는 그에게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딸아, 너 왜 울고만 있느냐? 의족을 하고 해 봐라. 못할 게 무어냐?”
의족을 하고 발레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의족을 하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마침내 링컨 센터에서 발레 공연을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격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과 함께 하면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오뚝이처럼 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형통의 삶의 기준이고 비결이고 방법입니다.
먼저 예배에 목숨을 거십시오.
예배에 모든 우선권을 두십시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우선 하십시오.
예배는 신앙인들의 생명 그 자체이고 신앙인들의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성공하고 형통하고 승리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입니다.
축복의 통로----내가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 집이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
그런데 그 복이 내게서 너에게로 확장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때 나는 복의 근원이 되고 그 복은 세상으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의 착한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모든 소유에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길을 예비하시고 형통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머무는 곳에 복이 임하였습니다.
그가 머무는 집에, 그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가는 곳 마다 그곳에 복이 임하고 은혜가 임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임하고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임하는 곳에, 내가 앉고 일어서는 곳마다 복이 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복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 중에는 만나면 재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괜히 주는 것도 없이 만나기가 죽도록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참 불행입니다.
사람은 자신 스스로가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는 곳 마다 환영자가 되고 반기는 사람이 되고 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빽이었습니다.
한곳에서 충성하니까 그 진실함이 인정받아 다른 곳에서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 충성스러움은 감옥에서도 빛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간수가 기회가 되니까 요셉을 왕에 추천하여(41장38절) 바로가 요셉을 면접합니다.
면접 결과 왕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 뿐이니라,
자기 인장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이 형통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가는 길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서 그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쓰임 받았고 등용 받았습니다.
요셉 한사람의 복이 자신에게, 보디발의 집에,
한 나라에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형제들이 가나안땅에서 애굽까지 양식을 사러 왔습니다.
요셉은 애굽을 먹여 살렸고 가나안을 먹여 살렸고 주변국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는 당시 국제적으로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 시대 요셉 한사람이 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죽을 때가 되자 12아들에게 안수하며 복을 선언하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할 때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49장22)”고 하였습니다.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말은 요셉에게 주어진 복이 내 집 안에만 머문 것이 아니고 담을 넘어 애굽 땅에도, 가나안까지
그 시대 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시편 105:17)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편 105:19)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시편 105:20)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먼저 보내신 것이고,
그 말씀이 응할 때까지 훈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국을 다스리는 왕이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내어 자유롭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깃발을 날립니다.
그것이 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코스였습니다.
오늘까지 제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코스였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기뻐하다가 깜짝 놀랄 일을 당하다가, 또 억울한 공격을 받고 서러워서 3시간을 울기도 한 모든 일들이 지금 생각하니 다 하나님의 코스였습니다.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시고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새해 첫날이 되면 무엇보다도 회개와 참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해 되면 먼저 10일간 회개와 참회를 합니다.
그 10일 동안 회당에 모여 예배하고 하루 종일 음식과 고기를 금하고 목욕이나 성적 행위를 금하고 요나서를 읽으며 회개와 참회를 하는데 2008년 초에 회개의 예배에 이스라엘 전국민의 63%가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로 한해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유대인의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의 삶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입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길을 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First God 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현재도 미래도 그 하나님께 의존하고 맡기고 인도하심을 믿고 따가야 합니다.
새해 여러분의 앞길을 여호와께 맡겨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의존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목적으로 삼아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은 매사를 내가 하나님 편을 들면 하나님도 내 편을 드십니다.
First God, 매사를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면
하나님도 제일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