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로고스 서원 3,4월 도서목록을 보고 무척 놀랐다. 바로 다름아닌 <기.억.전.달.자.>가 도서목록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전달자>를 처음 만난 것은 홈스쿨 독서 모임 도서 목록에서였다. 그 뒤 내 영어 독서 모임에서 <The Giver>라는 책을 다음 책으로 선정했다. <The Giver>의 표지가 낯익어서 검색해보니 <기억전달자>의 원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The Giver>를 영어로 읽고 한국어로 독후감을 썼다. <The Giver> 영화도 봤고 <The Giver 2:Gathering Blue>도 보다 말았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내가 자신있게 독후감을 작성할 수 있다.
얼굴 색이 달라서, 생긴 게 달라서,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다투고 분쟁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때문에 <The Giver>속 사람들은 ‘다름’을 없애버린다. 일명 sameness(같음). 사람들을 색맹으로 만들어 색깔로 차별하지 않게 하고 계절의 차이, 지형의 차이 또한 없애버린다. 누구나 같은 규칙을 지키게 만든다.
또한 너무 많은 아이로 식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1년에 50명의 아이만 내보낸다. 잘못된 선택을 방지하여 배우자, 자녀, 직업까지 위원회가 지정해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실패 없이 평화로움을 삶을 살았다면 그 삶을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성공은 평화와는 다르다. 산은 오르기는 힘들지만 정상에 올라갔을 때 겪는 성취감이 어마어마하다. 힘들지만 값진 것,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다. 단지 평화로움을 삶만을 지향하는 이 마을이 행복한 마을은 아닌 것같다.
이 마을은 다름을 완전히 없애버린다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은근히 차별받는 birth mother(산모), 자식이 모두 어른이 되면 헤어지는 가족, 존재하지 않는 사랑, 50명 안에 들지 못하거나 너무 늙어서 죽임당하는 아기와 노인들, 그리고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이 마을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기댈 때가 없다. 그들은 공감받지 못한다. 또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공적인 관계로만 관계를 맺는다. 즉 그 누구도 ‘동행’하지 않는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름’을 없애버리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없애는 것보다는 ‘이해’하는 것이’ 바른 방법이 아닐까? 고통 받는 이가 원하는 것은 자신과 함께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동행할 때 더 강해질 수 있다. 공감, 사랑, 함께하지 않는 이 마을은 과연 진정한 공동체일까?
마지막으로 <The Giver>의 영화 버전과 책 버전을 비교로 독후감을 마치겠다. 영화 버전은 책보다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연들의 분량이 늘어났다. 로맨스도 첨가됐고(원래 <The Giver>의 세상은 사랑이 없어서 로맨스도 존재할 수 없다.) 반전도 하나 추가됐다. 이런 점들은 좋았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영화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보니 세계관 설명이나 아까 얘기한 반전에 대한 설명이 빈약했다.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