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는 ‘노병사(老病死)’의 소멸이다. 이는 곧 모든 괴로움의 소멸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하여 ‘고통의 바다’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본래 태어남이 없다는 불생불멸의 이치를 깨닫는 다면, 죽음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닐 것이다.
보통 우리는 부처님은 정각을 성취함으로써 생사를 벗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은 생사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면서 왜 죽었느냐’고 질문한다. 이 십이연기를 보면 그 답이 보인다.
부처님께서는 십이연기를 깨달음으로써 생도 멸하고, 노사도 멸하신 분이다. 즉 생이 본래 없고, 노병사가 본래 없으며,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기되어 일어난 비실체적 것일 뿐임을 분명히 보셨다. 무아(無我)임을 보신 것이다. 우리가 늙고 병들고 죽음을 괴로워하는 이유는, 나라는 실체적인 존재가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실제로 있는 내가 죽는다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라는 오온이 무아임을 깨닫고, 그렇기에 생과 노사가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이 꿈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환영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도 살았다거나, 죽어도 죽었다는 관념에 집착하지 않아 생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생사에서 벗어남이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십이연기를 통해 생로병사의 모든 괴로움을 소멸하셨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소멸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탐구하셨고, 그 괴로움의 원인이 12가지 지분을 원인으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열두 가지 지분 가운데 어느 하나의 지분이 소멸되면 다른 지분 또한 소멸될 것이며, 모든 괴로움은 소멸될 것임을 보셨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불교의 가르침이 2,500여 년을 이어져 오면서 수많은 경전과 수행자, 스님들은 십이연기의 각 지분을 소멸시키기 위한 다양한 수행법과 가르침을 실천해 오고 있다. 불교의 수행에 수많은 방편이 있고, 수많은 깨달음으로 가는 가르침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수행법들은 전부 이 십이연기의 각 지분을 소멸하기 위한 수행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