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게임 준비에 박차 가하고 있는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이야기를 듣다
"예산 문제로 출발 늦어져" "초읽기 상황에서의 부득이한 선택으로 봐달라"
올해는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원년이다. 바둑이 스포츠로의 새 길을 걷기 시작한 한국바둑계로선 일찌감치 찾아온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는 현 시국에서 아시안게임이라는 호재를 통해 전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그 힘을 받아 제2의 중흥기로 도약할 기회를 맞이했다.
그 같은 환희와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금메달이 절실하다. 대표팀의 목표 역시 당연히 금메달에 초점이 모아진다. 바둑 종목에 걸려 있는 3개 전부를 싹쓸이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2개만 따내도 전과는 충분하다.
금메달 사냥의 첫삽은 코칭스태프의 구축으로부터 출발했다. 널리 보도된 바대로 양재호 9단이 총감독을 맡았으며, 김승준 9단과 윤성현 9단이 각각 남녀 대표팀 코치로서 양날개로 포진했다.
이른바 '1기 바둑태극호'의 발진이다. 그런데 힘을 모아 막 출발선에 선 이들을 향한 일각의 시선이 곱지 않다. 너무 많은 것을 한다,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 등등 채찍을 넘어선 구타 수준이다. 그런 시점에서 당사자들의 입장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연락이 왔다. 일부 매체의 곡해된 보도 내용도 있어 뜨끔했다고도 했다. 소통이 부족했다. 그동안 몇 차례 선수강화위원회가 열린 것도 밖으로 노출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서로 협조할 것은 협조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 김승준 코치의 선임 배경은...
"(양재호 감독) 우선 대한바둑협회에서 중국어 가능자를 요청했다. 2년 전 마인드스포츠게임즈에서 의사 소통 문제로 인해 금메달을 잃은 '사고'도 있었고, 또 가까운 예로 올해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계주에서 억울한 판정을 당하고도 제대로 항의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얘기였다.
프로기사 중 중국어 가능자는 5명 정도인데 일부는 선수로 뛰고 싶어하는 등 선택 자원이 많지 않았다. 물론 단독으로 결정한 사항은 아니었으며, 김승준 9단 본인도 한국기원 이사로서 부담스럽다고 고사하는 것을 하루 꼬박 설득했다."
■ 가이드라인 발표가 늦어졌는데...
"(양재호 감독) 근본 문제는 예산 때문이다. 현재 대한체육회로부터 지원받는 예산은 전혀 없고 바둑발전기금으로 여자상비군 훈련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강화위원회를 구성한다든지 대표선발 절차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김승준 코치는 지금 무임금으로 각종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감독직도 내정된 지는 좀 됐어도 임명은 얼마 전에 됐다. 모든 게 좀 더 일찍 진행되어 더 많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든다. 초읽기 상황에서의 부득이한 선택으로 봐달라."
■ 기회가 극소수로 국한됐는데...
"(김승준 코치) 감독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무조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최강팀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랭킹 1~6위가 그대로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만 남자대표팀은 훈련하는 데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래서 선발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훈련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 선발전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만 현재 1ㆍ2위에 랭크되어 있는 이세돌 9단과 이창호 9단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므로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다. 상위 랭커들에 프리미엄을 주어 1~6위 가운데 4명은 무조건 출전할 수 있다."
■ 앞으로의 훈련 계획은...
"(양재호 감독) 가장 걱정스러운 부문이 혼성페어전이다. 45분 타임아웃제도 낯설고…. 무엇보다 혼성페어전에 주력할 계획이다. 남자팀은 기존의 연구회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엔트리 마감인 7월 12일 후엔 세부적인 일정이 나올 것이다."
■ 박지은이 상비군에서 탈퇴했는데...
"(윤성현 코치) 아쉬운 대목이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참가했는데 훈련 과정이 힘겹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사실 상비군 훈련의 강도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양재호 감독) 주위에서 부추긴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조혜연 8단도 그렇고 기량이 뛰어난 박지은 9단이 최종 선발전에서 뽑히지 못한다면 대표팀으로선 커다란 전력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 여자팀엔 와일드카드가 없다...
"(양재호 감독) 기본적으로 대표 인원이 적다. 또한 상비군을 시행할 무렵엔 박지은 9단에게 와일드카드를 줄 명분이 약했다. 타이틀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조혜연 8단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대표진 4명 중 2명에게 줄 수도 없지 않은가. 실은 그것보다도 훈련 과정을 통해 실력을 더 키우고 싶픈 마음이 강했다."
■ 초일류가 하수들과 하루 두 판씩 두는데...
"(양재호 감독) 예전에 이창호 9단이 하루 두 판씩 두는 일정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는 줄 아는데 아시안게임의 대국룰에 대해선 충분히 설명한 다음에 출전 수락을 받았다. 후보가 한 명 있으니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의 경우 하루 한 판만 두게끔 하는 여건은 된다."
■ 일부 따가운 시선에 대해선...
"(양재호 감독) 주변의 눈총에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 개인의 영예도 없지 않지만 그것이 목적일 수는 없다. 한국바둑계의 중대 대회인 만큼 정말 잘해 볼 것이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바둑도장 일은 거의 못하는 형편이고 방송 해설도 줄이기 위해 오늘 담당PD를 만날 예정이다. 우리 코치들도 일주일에 2~3일 출근한다. 이제 모든 짐은 감독이 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 임하는 중국의 준비와 각오는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개최국 이점을 안고 혼성페어전의 일정을 일요일에 걸치도록 바꿨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주일 대국'을 하지 않는 조혜연의 출전 자체를 봉쇄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혼성페어전만큼은 한중일은 두 팀이 출전할 수 있다).
바둑은 광저우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4년 후 인천아시안게임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현재로선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연속성'을 살려 나가기 위해선 1기 대표의 가시적인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만에 하나 중국에 밀리는 성적을 내기라도 한다면 인천아시안게임의 전도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종목수가 줄고 메달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굳이 남 좋은 일 시키는 바둑을 채택할 리 만무하다. 발전적 비판과 막무가내식의 비방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