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김동곤
동도초등학교 외
굽잇길을 돌고 시내를 건너면
느티나무 잎새가 드높던
내 유년의 저편
동도국민학교
풍금 소리 따라 노래를 부르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공차기를 하던
그 아이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운동장 한켠에 오늘도 서 있는
늙은 느티나무는 여전히 새잎을 토하는데
민주주의나 자유나 정의보다 사랑을
가르치던 그 젊은 선생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40년 만에 서 보는
교정은 낯선 모습으로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골 저 골에서
초록 봄빛에 젖어서
반짝이며 몰려오는 아이들
눈부신 그리움들을 몰래 기다리느라
오늘도 싱싱한 허기를 쉬고 있는지도 몰라
그때처럼 모두가 돌아와
그날의 푸른 노래를 부르며
가난한 토요일 오후를 마주하기를
먼 구름처럼 기다리다가
아이들처럼 늙어 버린
내 서늘한 저편
동도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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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ㆍ2
나를 흔드는 바람이 익숙한
이순耳順의 먼 길을 걸어
이제는 낯선 고향 동구에 이르면
바람이 놀다 간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
여름 햇살 아래 무성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세속의 서느런 무상無常을 맞아 주었다
선뜻 사람의 집에 들지 못하고
텅 빈 느티나무 그늘에 앉으면
멀리 앞산이 서늘하게 이마에 와 닿고
구불구불 냇물이 낮은음으로 흐른다
그런 느티나무 아래 낮은 그늘이
오늘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그래 이쯤이면
돈 걱정 가족 걱정도 덜겠거니
짐짓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보면
오늘이 닳아 가는 시간이 자란자란 흐르고
내일이 기댄 바람 소리도 가지런히 지나가고
다문다문* 시공時空이 적멸한다
문득, 봄의 적막을 인내한 매미 소리
느티나무 그늘에 내려와 쌓이고
저물녘 풍경은 가야 할 길을 만든다
나는 낡은 느티나무 그늘을 데리고
푸른 바람이 흐르고 있는 시간의 집으로
헐거운 중년의 나이테를 허정虛靜하게 가져갔다
* 다문다문: 「1」 시간적으로 잦지 아니하고 좀 드문 모양. 「2」 공간적으로 배지 아니하고 사이가 좀 드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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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1967년 경남 함양 안의에서 태어나 2022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광명전국신인문학상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