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단체손님 실종... 마트도 확산
해외대신 호텔.백화점 세일만 특수
지난 23일 저년 7시 서울 용산구의 한 고깃집 1층 테이블 20개 가운데 손님이 자리 잡은 곳은 8개뿐이었다. 일부 손님은 비싼 한우 대신 저렴한 일반 한식 메뉴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자리를 뜨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인 장 모 씨는 "예약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에게는 '자리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셔도 된다'고 말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30대 여성 직장인 김 모씨는 2주 전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이브에 호텔 객실을 빌려 뷔페도 즐기고 파자마파티도 열려고 했다가 일찌감치 포기했다. 한 달 전부터 호텔 뷔페 예약이 100% 다 차버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예약 문의전화가 연결되는 데만도 수십분을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연말 소비 대목을 맞았지만 일반 외식업소나 재래시장, 대형마트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고가 소비 경향이 강한 백화점과 호텔은 12월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이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해외여행을 포기하거나 회식을 1차로 몰아서 하려는 소비자들의 달라진 소비 패턴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저녁에 만난 서울 충부로의 한 음식점 가게 주인은 "연말 단체손님 수가 작년 말의 80% 수준"이라며 "삼삼오오 소규모로 오는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종업원을 고용할 때 예전에는 중국인이 많았지만 지급은 대부분이 한국인인 데다 가 연령층도 크게 낮아졌다"겨 "이런 일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 우리 가게 문을 두드리는 걸 보면 경기가 안 좋다는 걸 실감한다"고 설명했다.
이달 들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벌여온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에서도 소비 온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마트는 이달 1~23일 매출이 작년보다 3%가량 늘긴 했지만 롯데마트는 0.9% 감소했다. 그나마 연말 완구 품목 매출이 7~11%씩 늘어 전체 매출을 지탱했다. 남대문시장에서 크리스마트 용품 매장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호텔이나 백화점의 외형적인 상황은 많이 다르다. 크리스마스 트리나 최근 인기몰이 중인 장난감 구매가 크게 늘면서 각 백화점은 12월 한 달 깜짝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1~23일 롯데백화점 매출(기존점 기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늘었고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각각 7%와 2.1%의 매출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 부쩍 심해진 추위와 함께 각 백화점이 연말행사 규모를 예년보다 크게 늘린 점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아동 상품군 성장세가 눈에 띄었다. 롯데백화점은 아동 상품군 매출이 작년보다 20.7% 늘었고 현대백화점도 아동복 매출이 15.7%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불황에도 연말 아이들을 위한 선물에는 지갑을 연 셈이다.
롯데.조선.인터컨티넨칼.그랜드하얏트 등 특1급 호텔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숙박 패키지가 90%이상 팔려나갔고 뷔페를 비롯한 식음료 업장에서는 한 달전에 이미 모든 예약이 마감됐다. 여기에 올해 크리스마스는 목요일이어서 징검다리 휴가를 낸 사람들도 많아 호텔이 더 큰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경기 부진의 한 단면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예년에는 징검다리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례가 많았지만 올해는 호텔에 가족 단위 고객이 꽉 들어찬 것 역시 좀 더 저렴한 소비 행태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