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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회복과 지상명령 2019. 04, 07.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다들 평안하셨습니까? 지난주에는 ‘형통한 삶과 말씀묵상’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교회 회복과 지상 사명”이란 주제로 <복음 전파>에 대한 부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봄이 되면, 얼어붙었던 땅에서 새싹들이 돋아나고 만물이 새롭게 피어나는 Spring 하는 약동하는 계절이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기지개를 퍼고 다시금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5월 중으로 전도 집회를 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언제 할 것인가? 그 날짜가 잡히지 않고 이것이, 그저 늘 해왔던 그런 지나가는 행사로 끝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해서- 복음 전파에 대한 부담은 많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내끼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진지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제 마음에 전도에 대한 기대나 확신이 없는 것입니까?”라고 푸념하듯이 질문을 했는데, 지난 몇 해 동안 어떻게든 전도를 활성화 시켜 보려고 이것저것 많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모든 일이 허사가 되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라는 잠언 말씀이 떠오르면서 여러 번의 실패로 인해 마음이 낙심되고 좌절되어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무엇을 새롭게 시도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혹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사모도 “전도 집회를 하시려면, 지체들에게 한 번 물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고 제게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지체들의 호응도 없이 괜히 혼자서 먼지만 피우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한 끼씩 금식을 하면서 복음 전도에 대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제 마음에 답답함을 성령님께 떨어 놓았을 때, 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복음 전파는 1년에 한 두 번 하는 행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는 교회 발전을 꾀하기 위한 어떤 활동이나 행사가 아니고,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는 life style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마음에 가득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태복음 28장 18-20절 말씀을 본문으로 <교회 회복과 지상명령>에 대해서 말씀을 살피고자 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 유언으로 하신 지상명령(Ground command)입니다. 문자 그대로 주님의 가장 큰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누구에게 하신 명령입니까? 말씀을 보면 ‘너희는’ 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그 당시 11제자와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500여 형제들이지만, 이들의 복음전파로 지금 믿고 있는 우리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은 교회인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물론, 이 명령은 믿는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도 힘써야 하는 것이겠지만, 이 명령은 각 개인에게 하신 명령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룬 교회에게 하신 단체적인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명령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지역교회가 하나의 팀이 되어서 조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처럼 모든 믿는 자들이 한 몸으로 기능하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것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 가서 더 자세히 말씀 드릴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key word는 제자를 삼으라 하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상명령은 전도하는 것이다 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지만, 전도는 그 의미가 제한적입니다. 지상명령은 단지 전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전도한 그 사람을 제자로 삼아서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교회에게 하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명령은 개인적으로 한 두 번 하다가 그만둘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가 거듭나 교회의 한 일원이 된 이 후로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곧, 교회가 완성되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 되어야 할, 온 교회가 함께 힘써야 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초두에서 말씀 드린바 대로 “복음 전파는 1년에 한 두 번 하는 행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 것입니다. 그저 교회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계획을 세워 하는 어떤 활동이나 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으로서 이것은 우리 평생에 삶의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어서 우리의 life style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명령은 아무나 시행 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닙니다. 먼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것을 한글 KJV으로 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 여기서 무엇을 말씀해 줍니까? 우리가 거듭남으로서 한 성령에 의하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한 몸을 이루게 되어 한 성령으로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본래 ‘모임’이란 말을 영어로 보면 Assembly라고 하는데, 이 말은 뜻은 ‘조립’이란 뜻을 가졌습니다. 조립이라 하면, 여러 부속품들이 함께 결합되어서 한 제품이 되는 것처럼 우리 몸에는 여러 기관들이 모여서 눈 코 입 그리고 오장 육부 백체가 모여서 몸을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모임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Assembly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인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성령으로 교통할 수 있게 되면서 그 사람은 이제 그 모임(교회) 안에서 한 몸으로 기능하는 교회의 한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면 당연히 ‘침례’를 받고 교회에 소속되어서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을 배우고 지키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나면 이제 개인적으로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을 지양하고 이제부터는 단체적으로 교회에서 한 몸으로 연합하여 몸 안에서 한 지체로 기능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함께 완수해 가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증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증인’이란 헬라어로 <말투스>인데 이는 법정에서 사건이나 사실을 본 것을 증언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증인은 자신이 보았던 사실이나 진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내 놓을 수 있을 만큼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라야 했기 때문에 <말투스>는 ‘순교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에서는 복음을 증거를 위해 순교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5-7절 그리고 27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했고 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여기서 여러분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인들과 감옥에 갇힌 바울 사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교회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는 서신입니다. 5절에서 무어라고 말씀해 줍니까?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했는데 빌립보교회는 그 당시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감옥에 갇힌 바울 사도의 옥바라지를 충실히 했던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있는 바울을 돌아보고 그의 쓸 것을 공급하면서 바울로부터 교회생활을 배우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확장하는 일에 참여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했고, 13절에서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했고 14절에서는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했으며 15절에서는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매임으로 인해 복음전파에 진전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18절에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바울 사도가 기뻐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무엇을 권고하고 있습니까? 27절을 다시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권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에게 권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이유와 기쁨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확장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 곧, 교회생활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말씀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원수 마귀와 전쟁을 치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29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강한 자는 이 세상을 강탈하고 정복한 마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그 집의 소유물처럼 결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저들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는 일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을 보면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사람의 영혼을 두고 싸우는 실제적인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강한 자, 악한 자의 손아귀에 잡힌 영혼들을 건져내고, 저들을 풀어주는 일이 교회의 주 업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적 마귀의 강탈하는 손아귀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건져내는 일에 교회가 마땅히 힘써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당한 교회 생활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려면, 교회가 이 일을 감당 할 수 있는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5가지가 기초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그 첫째는 교회가 거듭난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내적 생명의 균형을 잡아주는 성경 말씀 곧, 진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참여하는 건강한 교회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몸 안에서 한 몸으로 기능하는 봉사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기본이 회복되어질 때, 교회는 새 신자들로 채워지고, 저들이 제자로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다섯 가지 기초가 회복되어야만, 진정으로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첫째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으로 사신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모신 거듭난 사람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교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내적 생명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교회의 기초석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내적 생명에 균형을 잡아주는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두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와 같습니다. 열차가 잘 달리려면 하나의 선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시작되었다면 이제 진리의 선로가 깔려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뿐 아니라 빛을 공급해 줍니다. 생명은 우리 안에서 필요하고 빛은 밖에서 필요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생명은 우리 안에 에너지가 되어 준다면, 빛은 밖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분별력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빛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이 없으면 균형 잡힌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에너지와 빛을 주는 진리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 안에서 말씀으로 사는 경건한 제자로 훈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는 교회 생활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내적 생명과 진리의 빛을 얻기 위해 개인적으로 경건의 삶을 위해 살고자 하지만, 간혹 교회 생활은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서 체험되고 확장 되려면, 생명과 빛의 두 방면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어 도움을 주고받는 교회생활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들입니다. 사실 혼자서는 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려면 우리에게 교회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설령,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과 합당한 빛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몸 안에서 교회 생활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홀로 산다면, 그는 사실상 몸에서 이탈한 자입니다. 이는 몸에서 분리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인데, 몸에서 분리 된 지체는 결국 죽게 되는 겁니다. 네 번째로 몸 안에서 서로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기능하는 봉사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들로서 어떻게 몸에 참여하며, 한 몸으로 기능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몸 안에서 한 지체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체에서 어느 한 기관이 자기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사실 병든 것이 아닙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발의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 발은 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몸에 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심각해진다면, 정말 치료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깊어진다면 그 다리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잘라지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장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른다.” 하신 것입니다. 가지로서 밖에 버려지는 것은 곧, 몸에서 잘리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몸은 에베소서 4장 16절 말씀대로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말씀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자라나는 교회이고,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지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궁극적으로 교회의 주된 봉사 항목인 복음 전파하는 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까? 우리는 원수들에게 붙잡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지체들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살아있는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전도 활동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지체들에게 산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간증은 참된 복음 전파에 달린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복음 전파는 지체들의 거룩한 생활과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모든 지체들이 이 목적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이 곧, 복음 전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내적인 생명으로 알아야 하며, 성경으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합당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머리 되신 주님의 다스림 속에서 서로 사랑으로 세우는 삶을 살아가는 지체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 말씀대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대적의 문을 부수고 사로잡힌 영혼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조화롭게 동역할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필수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대적을 파하고 그의 손에서 영혼들을 해방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9절에서 주님은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강한 자는 사탄입니다. 그의 세간은 그가 사로잡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해방시키려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영혼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누가해야 하며, 무엇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단순한 전도 활동으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전도하는 것을 일이나 활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 전파는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여기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단지 전도활동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전파는 몸 안에서 살아있는 지체들의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모든 지체들이 몸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돕고 세워주며, 몸 전체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대적의 문을 부수고, 영혼들을 해방시키며 그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교회의 한 일원으로 몸의 한 지체로 가입시키는, 제자로 세우는 이 일이 바로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가 자라난다는 것은 우리 각인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질적 성장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무엇보다도 새 신자들이 교회에 더해지는 양적성장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이 있을 때, 교회가 진정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새로운 영혼들이 거듭나 교회에 더해져야 합니다. 교회는 새로운 출생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오랫동안 이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것이 진정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단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우리 삶에 유익한 메시지를 듣고, 덕담을 나누면서 친교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교회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새 신자가 유입되지 못하고, 새로운 출생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교회로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회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영혼들을 낳고 제자로 세우는 것이 우리들의 교회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일이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복음 전파가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1년에 한두 번 하는 행사가 아니라 늘 생활 속에서 영혼들을 낳고 기르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고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영혼을 낳고 기르는 일이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되고 우리 삶의 새로운 스타일을 되어야합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시면, 우리가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면서 인생을 호구지책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으로 사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학생은 공부 잘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학급 친구나 함께 방을 쓰는 친구를 얻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생이 성적도 탁월하고 성격도 좋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친구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그 외에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 돈 벌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 동료 중 몇 사람을 얻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가 되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그 외의 모든 일이 주의 은혜로 형통케 되는 것입니다. 직장 동료들이 여러분의 형통함을 보고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늘 깨어서 사는 우리의 생활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사업이 잘 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지 않고 주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업이 질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안에 주이 도우심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면, 앞에서 언급했던 생명과 진리 그리고 교회생활 특별히 한 몸으로 기능하는 봉사생활에서 날마다 그 힘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에서 건강한 회복을 가질 때, 그 결과가 유력한 복음 전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복음 전파를 우리의 삶을 삼아야 합니다. 매주 매달 매해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세상을 이기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영혼들을 얻어내야 합니다. 이렇게 하시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하고, 진리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몸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에 충실할 때, 우리는 강력한 복음 전파에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복음 전파를 위해 살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수고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우리는 교회가 복음 전파를 위한 그런 뜨거운 분위기로 바꿔지기를 꿈꿔야 합니다. 이걸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간에 동역하는 방식으로 기도제목과 영혼에 대한 정보들을 주고받으면서, 복음전파를 위해서 서로 품마시를 하듯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함께 차(커피)를 마시고, 서로 안면을 터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걸 함께 하셔야 합니다. 서로가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접대하고, 친밀한 사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와 함께 동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그걸 교회로 가져와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운동경기를 할 때, 팀웍이 좋으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 되지 않습니까? 골도 서로 어시스트가 되어야 잘 들어갑니다. 복음 전파는 사람들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탈취해 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영적인 전투이기 때문에 항상 두 사람이 한 팀으로 보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기도로 동역하며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복음 전파는 교회와 함께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교회와 함께 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이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신자는 더 많은 새 신자를 데려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곧바로 전도할 수 있도록 새 신자를 철저하게 돌봐주어야 합니다. 저들이 계속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제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주로 열매를 맺는 가지는 오래된 가지가 아닙니다. 새로운 가지들입니다. 새 신자가 새 신자들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가 확산 되려면, 기존신자들이 새 신자를 잘 돌봐줌으로 저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에 달린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복음 전파는 우리 모두가 건강한 교회생활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세워주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금 새 신자들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복음 전파가 확산을 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이 고비를 잘 넘겨서 몇 명의 새 신자들을 얻을 수 있고, 또 이들을 잘 돌볼 수 있다면, 그 이후로는 복음전파가 좀 더 수월해지고, 갈수록 탄력을 받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은 농사짓는 원리와 똑 같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가운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을 땅에 떨어뜨리고 죽는 사람이 일어나게 되면 사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몇의 새 신자를 얻게 되면, 두 번째 수확은 더 많아지게 됩니다. 세 번째 수확은 더욱더 탄력을 받게 됩니다. 원래 복음전파는 새 신자가 새 신자를 데려오면서 줄줄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영혼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계속되려면, 새 신자들이 제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 부흥이 계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주된 문제는 교회가 제자를 세우는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복음 전파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는 한 두 번 하는 행사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생활이 꾸준히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사는 이유와 목표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생활 속에서 전하는 유력한 증인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 각 사람이 주님 앞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인이 자신을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진정으로 거듭난 생명을 가졌는가를 살펴보시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내적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하셔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만간에 집중적으로 말씀을 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적 생명이 분명하다면, 나는 과연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충실히 살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사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매일 아침 Q T 을 하시고, 성경은 하루 석장 정도는 정규적으로 읽고 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생활에 막힘은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양심은 깨끗하고 정결합니까? 내 양심에 사탄의 참소가 있으면, 믿음으로 사는 것에 담력을 잃게 됩니다. 이것을 처리하는 것을 배우시고 개인의 경건생활에 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여러분의 교회 생활은 어떻습니까? 나 자신을 몸의 한 지체로 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한 지체로 생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몸에서 이탈 된 자입니다. 우선 모이기를 힘쓰는 일부터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단지 주일 대 예배 참석으로만 교회 생활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좀 더 모임 횟수를 늘려보시길 권합니다. 주일 만찬 예배와 수요 모임도 고려해 보시고, 나아가 금요 기도회도 회복되기를 바라셔야 합니다. 이제 끝으로 몸 안에서 나는 얼마나 한 몸으로 기능하면서 팀워크로 일하는 것을 배우고자 하십니까? 몸 안에서 한 몸으로 기능하는 것, 동역하고 협력하는 것. 그리고 합심 기도하는 것 등을 새롭게 배워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 전파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교회와 더불어 효과적인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다 같이 눈을 감으시고 오늘 들은 말씀으로 자신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주님! 우리 각인이 주님 앞에서 건강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처음 사랑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모이기를 힘쓰게 하시고, 식어진 기도생활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회복에 대한 갈증을 주시고 위로부터 새롭게 되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십시오. 복음전파가 우리 생활 속에서 교회와 더불어 협력하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새롭게 헌신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우리 마음이 열리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모아주시고, 교회가 다시금 복음 전파에 심혈을 기울이는 교회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