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받고 다시 시작되는 성전 짓는 역사
에스라 5장 1절 – 2절 2024년 6월 16일 주일 오전 말씀지
앞서 1장 말씀을 통해서 고레스 왕 2년에 (주전 535년) 성전 건축하려 올라오게 하셨고 4장에 아하수에로 왕 때에 (주전 529년) 대적자 사마리아 사람들로 인하여 방해받다가 아닥사스다 왕 때에 (주전 522년) 멈춰졌습니다. 그러나 5장에 다리오 왕 때에 (주전 520년) 다시 시작되어 성전 완공은 20년 만에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한번 타락하면 그 세월은 오래가고 고생하다가 늦게 서야 탕자처럼 아버지집에 양식을 받아 먹게 하시려 다시 돌아오게 하사 회복케 하시는 것입니다. 눅15:17-
오늘은 다리오 왕 2년 후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앞선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를 통해 주신 말씀을 양식으로 받으면 무너졌던 성전을 다시 짓게 되고 드디어 완공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1절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학개는 ‘쾌락’이라는 뜻입니다. (학 1:1) 육신적 세상적인 쾌락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쾌락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신령한 기쁨이 없습니다. 학개 선지는 말씀을 아구까지 채우게 하신 자로 성전 건축이 멈춰졌을 때 애가 탄 인물 중에 하나입니다. 그에게 말씀을 주어 성전을 다시 짓도록 책망 격려하게 하셨습니다. 학1:2-
지금도 영적 양식을 받아 자라난 자들은 자기 몸을 성전 삼고 날마다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면서 거룩 생활하지 않는 택자들을 보면 예레미야처럼 심히 안타까워 기도합니다.
잇도는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손자 스가랴는 ‘하나님은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스가랴서 1:1에 말씀이 임했다고 하셨는데 주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은 할아버지를 통해 스가랴도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신령한 기쁨으로 살아가는 학개와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진 스가랴에게 성전 건축을 중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은 자라면 그 사랑이 내 속에 역사하기 때문에 육신의 피곤함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은 사랑도 국경을 초월하고 죽음도 불사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았다면 날마다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님처럼 새벽을 깨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막1:35-
성전을 짓는 역사가 그쳐졌을 때 학개와 스가랴는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성전 짓는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던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중단된 것은 하나님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슥3:6-
말씀이 깨달아져 기쁨과 감사가 항상 있는 것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때에 말씀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성전 짓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신약에 고린도교회와 갈라디아 교회도 성전 건축이 멈추어져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고전3:16-
하나님께서는 왜 대적자들로 인하여 성전 건축을 중지하게 하셨습니까? 앞선 자들은 기쁨과 감사로 하고 있는데 족장들의 후손들은 또 내 열심과 내 충성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새벽을 내가 깨우려고 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잠깐 쉬어’ 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새벽을 깨웠다고 교만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심입니다. 날마다 정과 욕심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는 새벽을 깨우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를 맛본 다윗 같은 자들만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34:8-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학개와 스가랴 선지는 자기 기분과 감정에 이끌려 말씀을 나눈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의를 꺽고 온전히 엎드려 주신 대로 받아서 그대로 증거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종이라면 에스겔처럼 오로지 자기가 받아 먹은대로 그때 그때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만 할 것입니다. 겔3:1-
그런데 강단에서 인기 목사되려고 하는 자들로 인해 귀가 가려워 듣기 좋은 설교만 쏟아져 나오는 현실이요 그것을 좋다하는 어리석은 교인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먼저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양식으로 받아서 그말씀대로 이루신 역사가 있는 분들이 자기에게 이루신 그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그리고 현재에 자기 자신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이루실 그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예언으로 사도 바울로 예언하기를 특별히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4:1-
그 증거되는 말씀대로 또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한 나를 통하여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 앞으로 첫째 부활을 얻게 하시려 이루실 일이 예언인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통해서 성전을 짓는 역사가 다시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복된 첫째 부활을 얻게 하시는 계시록을 읽지도 않고 양식으로 받지도 못했으면서 예언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말하는 무당과 같은 자로 점치는 자들과 같습니다. 많은 목사들과 세상적으로 유명하고 똑똑하여도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모르니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계21:7-
2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스알디엘은 ‘빚지다’란 뜻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에 지식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주사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고전9:16) 그것은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불러서 그 복음이 믿어지게 하시고 사도로 세워서 일하게 하사 하늘의 귀한 영광을 얻게 하시니 그 크신 사랑에 빚진 자라 한 것이요 나에게 주실 그영광이 믿어졌으니 한가롭게 자신의 평안과 안일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한 영혼, 한 영혼을 만나게 하시고 나를 통해 복음이 믿어지게 하시기를 그리고 양식을 받고 자라기를 더 자라나서 영광의 일군되기를 구한 것입니다. 복음(福音)은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사랑의 빚을 진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롬1:14-
스룹바벨은 ‘바벨론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서에도 유다 사람들을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려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스룹바벨은 비록 바벨론 왕이 이름을 지었지만 그 뜻대로 살지 않고 유다 자손으로 영광 받을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사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되기 전에 요한의 아들 시몬은 육적으로 육의 아버지를 통해서 났으나 이름을 바꿔주사 베드로가 되게 하시는데 먼저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성령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기어코 그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마16:16-
오늘 나는 육신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대로만 살고 있습니까? 부르시고 복음이 믿어지게 하시고 진리로 자라게 하사 영광의 직분을 주신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그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맡기신 일이 다를뿐입니다. 스룹바벨은 슥 3:8, 6:12에 여호와의 종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삼위일체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성전 짓는 역사에 쓰시기 위해서 그때에 유다의 총독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아는 ‘여호와가 구원하심’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여호와가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호세아도 뜻이 같습니다. 오늘도 삼위일체의 역사 안에 사는 자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내가 무엇이나 열심해서 무엇이나 다 잘하려고 하는 자들은 삼위일체의 역사 안에 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성전 건축이 잠시 멈추어졌을 때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하나님이여 왕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는데 왜 멈추게 하셨습니까? 도우사 다시 건축하게 하옵소서’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도하는 것 보면 잘못된 기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전5:2-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하여 돕더니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복음을 누구보다 먼저 받고 살림 받아 진리의 양식을 누구보다 먼저 채운 자들로 앞서 가는 자들입니다. 신천지에서는 이만희를 앞선자, 이긴자, 선지자, 보혜사라고 좋은 말은 다갖다 부쳤습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이단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고 미혹을 받습니다. 자칭 유대인 (계2:9) 선지자 자칭 사도들이라 하는 자들은 사단이 그 속에 역사하는 자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계2:2-
앞선 자들은 자기 몸을 성전 삼고 이제 다른 사람이 성전 짓는 것을 돕고 있는데 아직도 예배당 건물이 성전인 줄 알고 영적 성전을 전혀 짓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육신은 밥을 먹지 않으면 일어날 기력이 없듯이 영의 양식을 받지 않으면 영광길을 한 걸음도 갈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내게 필요한 양식으로 받게 하시려 아버지 집에 나오게 하신 것이요 받은 그 말씀이 내 안에 있어 주신 하루도 그 말씀의 힘으로 달려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나오게 하셨으니 앞서 가야 하는데 항상 뒤쳐지니 나중 될 수밖에 없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날마다 내 몸을 성전 삼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나를 통해 한 생명이라도 살리시옵소서! 내게 보이신 그 첫째 부활을 반드시 얻게 하옵소서! 하면 반드시 도우시는 역사가 있는데 세상에 치우쳐 살아가면서 도와달라 하나 도우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히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