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과거와 현재의 역사/靑石 전성훈
“우리 역사의 고도(古都)를 찾아서”라는 탐방주제로 시작한 도봉문화원 2024 갑진년 마지막 인문학기행 목적지는 단양이다. 단양을 찾아가는 제목은 ‘삼국의 꿈이 머무른 요충지, 충북 단양’이다. 남한강 유역을 차지하려는 선조들의 각축지인 단양은, 원래 주인이었던 백제, 북쪽으로 뻗어 나아가려는 신라, 남쪽으로 확장하려는 고구려가 전쟁을 치렀던 곳으로,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교통의 요충지이다. 단양(丹陽)이라는 명칭은 연단조양(練丹調陽)에서 유래하였는데, 연단은 신선이 먹는 환약이고 조양은 빛이 골고루 비춘다는 뜻으로 신선과 빛이 어우러지는 좋은 고장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단양도 공주 못지않게 수차례 찾았던 고장이다. 단양에 갈 때마다 들린 곳이 다른 것 같다. 오래전 어느 해, 설 연휴 형제 가족들과의 추억이 물씬 깃든 도담삼봉과 단양을 방문해도 좀처럼 가기 어려운 온달산성이 기억에 남는다. 온달산성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으로 전해온다. 동이 트기 전이라서 그런지 아침 날씨가 쌀쌀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 창문으로 냉기가 스며든다. 달리던 버스가 쉬려고 찾은 양평휴게소는 산자락에 자리 잡아 겨울 같은 한기를 느끼게 한다. 해가 얼굴을 내밀고 나오니 버스 유리창의 성에가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막 늦가을 문턱을 넘어서는데 올겨울을 무사히 견디고 지내야 할 것 같다. “날이 추워지면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는 어른들 말씀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나도 세월에 등 떠밀려 저 멀리 가고 있는 모양이다. 단양군 경계를 들어서서 첫 방문지를 찾아가는데 일방통행 터널이 보인다. 옛날에는 기차가 다닌 곳인데 지금은 자동차가 다닌다. 터널의 폭이 매우 좁아서 일방통행을 하므로, 지시등 안내에 따라서 자동차가 움직인다. 50~60년 전 설악산 용대리 일방통행 터널과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방문지, 단양신라적성비를 찾아가려면 단양팔경 I/C에서 빠져나와 조금 지나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이정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관광버스도 들어가는 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여 한참 우왕좌왕 헤매다가 찾아간다. 현지 해설사를 따라서 낙엽이 알록달록하게 물든 적성산성 언덕배기를 힘들게 올라가서 만나는 신라적성비(新羅赤城碑, 국보)는 성재산 적성산성 안에 있다. 높이 93cm, 폭 107cm인 신라적성비는 진흥왕이 세운 다른 순수비(巡狩碑, 왕이 직접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비)는 아니다. 하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拓境碑, 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적성산성 위에서는 남한강이 잘 보여 이곳이 삼국시대에는 요새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산성 주변에 족히 몇십 년은 훨씬 넘은 소나무가 울창하고 솔가지 냄새가 차가운 공기를 타고 코끝을 간지럽힌다. 길가에 핀 노란 들국화가 진한 향기를 내뿜어 잠시 허리를 숙이고 향기를 맡는다. 깊어가는 가을 잔치의 향연은 발길 가는 곳마다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이다. 이름이 특이한 수양개(垂楊介)는 능수버들이 많은 개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1983년 충주댐 수몰 지구 문화유적 발굴지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 석기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고픈 김에 산채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오후 들어서 찾은 곳은 온달관광지이다. 이곳에는 온달산성, 온달동굴이 있고, 관광지 입구에 들어서면 드라마세트장이 있다. 마침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 촬영한다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분주하다. 아직은 햇살이 비치는데도 산골짜기라서 바람이 차갑다. 온달동굴은 약 4억 5천만 년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굴의 길이는 약 800m 정도인 석회암 동굴이다. 바쁜 일정 탓에 온달산성에 올라가지 못해서 서운하다. 10년 전 이맘때, 온달산성에 올라 남한강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는 온 산하에 단풍이 곱게 곱게 물들어 황홀한 경치에 탄성을 질렀던 추억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단양구경시장을 찾는다. 단양팔경에 이어 전통시장 이름을 아홉 번째 경치라는 구경(九景)이라 하고, 시장 구경 가자는 뜻도 있다고 한다. 단양의 대표적인 농산물은 마늘과 사과 그리고 수박이다. 구경시장에는 마늘이 들어간 먹거리가 많다. 튀긴 통마늘과 파, 청양고추 소스가 함께 나오는 마늘 통닭, 흙마늘 누룽지 닭강정, 마늘 만두, 흙마늘 빵, 마늘 메밀전병 등 이색 먹거리가 많다. 단양은 평지가 적고 산이 많고 물도 맑다. 그런 연유로 논농사 대신 대부분 밭농사를 짓는다. 산수 경치가 아름다운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이황 선생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지정한 단양팔경이 후세 사람을 불러모아 단양에 큰 복을 마련해 준 것 같다. 아름다운 이름처럼, 단양의 인심 또한 후덕하다. 단양구경시장 먹자골목에서 메밀배추전에 막걸리 한잔하는데, 버스 출발 시간이 되어 먹다 말고 일어서자, 여주인이 남은 음식을 싸 준다. 그런가 하면, 길거리에서 화장실이 급한 이에게 음식점 주인이 흔쾌하게 화장실 사용을 허락해준다. 아직도 훈훈한 인정이 남아 있는 단양 사람의 따듯한 모습을 진하게 느낀다. (202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