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기행](12)안동 송화주
안동 송화주(松花酒)는 기품있는 양반의 술이다.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채 유학자의 종가에서만 대대로 전승된 가양주(家釀酒)로 집안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종가 맏며느리들이 온갖 정성과 손맛을 곁들여 빚은 고급 술이다. 많은 재료와 오랜 숙성기간에 비해 극히 적은 양의 술이 손님상과 제사상에 오른다. 이름에 ‘송화(松花)’란 말이 있지만 송화는 사용되지 않고 찹쌀·멥쌀 등과 함께 솔잎·국화(황국)·금은화·인동초 등을 재료로 쓴다. 송화주는 1993년 2월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홀연히 취했다 말끔히 깨는 술
송화주는 맑은 진보라빛으로 도자기 주전자에서 술잔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그 빛만 봐도 군침이 돈다. 코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삭막해진 인정을 부드럽게 이끈다. 알코올농도는 15~18도. 술일까, 식혜일까. 입술에 살짝 갖다대면 약간 달라붙는 듯하다. 떫은 맛이 도는가 싶다가 금방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서 뱅뱅 돈다.
#정재(定齋)가문의 독특한 가양주
송화주는 퇴계학파의 거봉인 전주 류씨 무실파 정재 류치명(柳致明·1777~1861)때부터 제사용으로 사용됐다고 구전돼온 점으로 미뤄 최소한 200년 이상된 전통주다. 지금까지 송화주를 빚어온 주인공은 모두 정재 가문의 맏며느리들로 안동 천전(川前) 출신의 김씨에서 출발, 봉화 해저(海底) 출신의 김씨-봉화 법전(法田) 출신의 강씨-안동 계남(溪南) 출신의 이씨-성주 한계 출신의 이씨-안동 오천(烏川) 출신의 김영한씨로 이어졌다. 김영한씨(53)의 시어머니 이숙경씨(1998년 작고)는 17살에 정재 가문으로 시집와 53년 동안 송화주를 빚었고, 한때 700명의 손님에게 가문의 술을 대접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동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송화주가 정재 가문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1598~1680)가 쓴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의 송화주 제조법에는 송화를 쪄서 만든다고 기록돼 있고, 광산 김씨 예안파 문중에 전해오는 ‘수운잡방(需雲雜方)’에도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정재 가문의 송화주는 송화 대신 국화나 인동초를 써 기존의 송화주와 다른 특유의 술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침전주와 증류주의 만남
송화주는 침전주의 일종인 청주(淸酒)이다. 재료로 쓰이는 찹쌀 1말(18ℓ)에 고작 7되(1되=1.8ℓ)의 술만 생산된다. 숙성기간도 최소 30일에서 최대 100일이 걸리니 상에 오르기까지의 정성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송화주는 기온이 높아지는 늦봄부터 청주의 형태로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없다. 식초로 변질될 우려가 커 송화주는 곧바로 증류주인 송화소주(松花燒酒)로 재생산된다. 장작불로 서서히 구워 뽑아내는 송화소주의 알코올농도는 무려 50도 이상. 혓바닥으로 핥듯 조금씩 마시면 입안은 화끈하지만 속은 편안하다.
#송화다식이 안줏감으로 찰떡궁합
안동 송화주는 송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송화가루를 쪄서 만든 다식이 가장 좋은 안주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입안에서 잘 녹는 송화다식은 송화주 맛의 여운이 길게 남도록 해준다. 다만 송화주가 찹쌀과 멥쌀을 워낙 많이 사용해 빚어낸 진한 술인 만큼 안주를 과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글 안동|백승목기자 smbaek@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화학공식으로도 못푸는 맛”
송화주 기능보유자이자 정재 선생의 6대손 맏며느리인 김영한씨(53)의 제조장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2리에 자리한 정재종택(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2호)이다. 승용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종택 입구. 수국이며 황국·참꽃·동백 등 잘 가꿔진 꽃과 나무들이 유서깊은 전통가옥임을 실감케 한다.
임하댐 공사로 수몰위기에 몰려 1987년 산 중턱으로 옮겨진 이 종택은 대문 채와 정침, 행랑채, 사당 등 맞배지붕의 4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송화주는 안채 대문 옆에 붙은 가마솥과 ‘ㅁ’자 형의 마당, 폭 1.5m의 청마루, 그리고 2평 남짓한 골방에서 빚어진다.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속칭 군자마을(월하당) 출신의 김씨는 23살에 정재 가문으로 시집온 뒤 30년을 송화주를 빚어 한해 13위의 기제사와 두차례의 명절차례때 올렸다. 시어머니 이숙경씨가 7년전 작고할 때까지 23년간 송화주의 비법을 몸소 익힌 김씨는 “아직 어머니의 손맛은 아니다”라며 겸손해 하지만 그만큼 비법에 통달한 사람도 없다. 김씨가 매년 가을철 담그는 술의 재료만 찹쌀 3말 정도. 그래도 빚어진 송화주는 고작 21되뿐이다.
술은 밑술과 덧술 등 두차례에 걸쳐 만들어진다. 밑술로는 누룩가루·찹쌀·멥쌀을 7대 1대 1의 비율로 섞어서 차게 식힌 고두밥과 물로 버무려 술독에 앉힌다. 덧술은 밑술의 가스가 어느 정도 빠져 나가면 솔잎과 국화 등을 넣고 찐 찹쌀과 멥쌀을 첨가한 뒤 삼베 보자기로 감싼다. 이로부터 1주일 후 술은 숙성단계로 접어들고 2~3주가 지나면 술 독에 용수(맑은 술을 빼내는 대나무로 만든 기구)를 박는다. 술이 익는 기간은 최단 30일에서 최장 100일까지 걸린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온도”라고 강조한다. 술독에 품어진 상태의 기온, 즉 품온이 22~25도를 유지해야 미생물의 활성화가 이뤄지고 잡균의 번식을 막으면서 잘 익은 술이 된다.
술 맛을 보는 것은 김씨의 남편이자 송화주 기능보유후보자인 류성호씨가 전문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6살때부터 증조부 아래서 제사때 초헌하며 송화주를 음복해 술맛을 51년동안 봐 왔기 때문이다. 류씨는 “전통주는 화학 공식처럼 그냥 기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술을 빚을 때의 기온이나 발효될 때의 열량 등 주변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성이 있다는 것이다.
〈안동|백승목기자〉
[전통주 기행]늘 온화한 친구같은 술
송화주를 알게 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송화주를 가양주로 빚어온 정재 종택의 종손인 류성호 형과 친교하면서 귀한 술을 맛보게 됐고 한동안 형의 넉넉한 품성과 술맛에 빠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몇 년, 서로 세사에 쫓기다보니 만날 기회가 줄었고 근래 몇년간은 통 내왕이 없어 자연 송화주와의 만남도 없었다. 세속의 일을 탐하지 않아 술을 시중에 내놓지 않으니 술맛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차에 신문사에서 송화주와 맺은 짧은 인연을 어찌 알고 술맛을 평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술맛을 본 지 오래라고 사양했으나 굳이 권하기를 여러 번. 형도 만날 겸 수락하고 정재 종택을 찾았다. 그동안 완연한 농군이 돼버린 형이 검게 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 맞으니 저간의 격조함이 일시에 허물어진다.
농사에 경황이 없다면서 주섬주섬 술과 안주를 챙겨 내놓는 손길이 투박스럽고 그래서 더욱 정겹다. 일찍이 집안을 연 양파(陽坡) 류관현(柳觀鉉·1692~1764) 선생께서 ‘일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씀을 남겨 이 집안의 후손들은 수양과 몸일의 병진을 미덕으로 삼았고 재물에 연연치 않는 청빈의 가풍을 세웠다. 형의 모습을 보니 그 전통이 지금도 살아 있음을 알겠다.
먼저 거른 전주(前酒)가 아니라 뒤에 거른 후주(後酒)인 탓에 맛이 덜할 거라며 건네준 첫잔을 드니, 달짝지근하면서도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찹쌀의 순정함이 느껴진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한 모금을 더 머금으니 솔잎의 단아한 향과 국화의 은은한 향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더해 금세 옛맛이 되살아난다. 대작하는 이와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취기가 올랐다가 자리가 파할 쯤에는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 홀연히 취기가 사라져버리는, 유연하고 온화하되 결기(潔氣)가 느껴지는 유가(儒家)의 그 맛이다.
대개 양반가의 가양주는 제사를 올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데 썼다지만 청빈을 가풍으로 세운 정재종택에서 송화주를 접빈의 술로 쓰게 된 것은 남의 논을 지으면서까지 근검절약하여 지금의 종택을 세운 양파선생의 증손인 수촌(水村) 류연박(柳淵博·1844~1924) 선생에 이르러서다. 그때부터 제법 가세가 일어 송화주가 손님 상에 올랐으니 이제 100년 남짓이다.
접빈의 술상에 오르고부터 지인의 사랑을 받아온 송화주는 집안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니 품격높은 전통주와 만남을 구하는 주객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한양명·안동대 민속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