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칠리아 운동 / Cecilian Movement
19세기 낭만주의에 대한 새로운 복고 운동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 음악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톨릭 교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체칠리아 운동(Cecilian Movement)'의 목적은 교회음악을개혁하는데 있었는데 과거의 영광, 특히 16세기의 황금시기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 운동은 레겐스부르크 주교좌 성당의 음악감독이자 수사신부였던 칼 프로스케(Karl Poske 1794-1861)가 처음 시작하였으나 뒤에 제자이자 작곡가였던 프란츠 사버 비트(Franz Xaver Witi 1834-1888가 구체화시켜 1869년에 '독일어권 체칠리아 협회'가 창설되었다. 이 협회는 곧 이어 유럽 여러 곳에 지부를 갖게 되었고 정기적인 모임과 출판사업 등을 통해 아시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세계적인 가톨릭 쇄신운동으로 오늘날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중요한 목표는 교회가 정한 성음악의 이상과 결정을 신자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으로 다음 원칙을 명문화하였다.
1) 그레고리오 성가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최상 음악이다.
2) 팔레스트리나(Palestrina)를 중심으로 한 16세기 후반의 이탈리아의 다성음악(多聲音樂)을 화성(和聲)으로 이루어진 교회음악의 으뜸으로 친다.
3) 비엔나 학파의 교회음악들(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미사곡들)은 덜 영성적인 것으로 전례에는 적합하지 않다.
4) 현대의 음악은 물론 교회를 위해 작곡되어야 하나, 전통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하고 '신앙의 시대'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은 그 뒤 1903년에 발표된 교황 비오 10세의 '교회음악의 쇄신을 위한 자의교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체칠리아 운동의 성공 여부는 오늘날 평가가 엇갈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한 음악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평가와 한편으로는 교회음악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전시키려는 교회의 정신을 잘 반영했다는 것이다. 체칠리아 운동에 두드러지게 참여했던 작곡가로 가브리엘 포레(Gabridl Faure. 1845-1924)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1824-1896)를 꼽는다. 포레의 잘 알려진 레퀴엠. 모테트들과 브루크너의 미사곡. 모테트들은 체칠리아 협회가 출판하였고, 센티멘털리즘과 과장적인 표현이 유행하던 그 당시에 내면적이고 묵상적인 형태로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