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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안양과학대 시각디자인 원문보기 글쓴이: alpraxas
코르티잔 - 국왕이나 고위층의 정부, 고급 창녀, 창부(콜걸) 부유한 남자나 귀족들과 관계를 가지는 고급 창녀 혹은 정부라는 뜻이다.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숱한 남성들의 사랑을 받은 여인들.코르티잔들은 여성의 사회적, 성적, 경제적 구속을 비웃으며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표현대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으로서는 유례없는 지적 자유를 누렸다. 오늘날의 기준과는 달리, 당시 코르티잔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출세였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삶으로 도약하는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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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같은 해 극찬을 받았던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상대적으로 올랭피아의 가치를 높이는 비교치로 전락한다.
비너스의 탄생 카바넬 1863
마네가 올랭피아를 발표한 같은 해 카바넬은 위의 그림을 발표한다. 마네와는 달리 극찬을 받고 국가가 매입한다.
천사 몇 명 그려 놓으니 참 헷갈린 반응이 돌아온다. 그게 대중이다.
1864 Racetrack Near Paris
마네는 1863년 10월 28일 네덜란드의 잘트봄멜에서 수잔 렌호프와 결혼했는데,그녀는 오래전 그에게 피아노를 지도했던 렛슨 선생이었다. 그때 낳은 아이는 공식적으로 자식임을 밝히지 못하고 일단 마네가 대부의 역할을 했었다. 이 소년은 발코니란 작품에 아주 흐른 모습으로 실내에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결혼 결심을 친구들에게 밝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보들레르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은 결혼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1864년 11월 바티뇰가 34번지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여 1867년까지 살았다. 그는 경마장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하여 친구인 에드가 드가가 즐겨 다루는 주제를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드가는 마네보다 2년 먼저 경마 습작을 시작했다. 마네는 이를 주제로 몇 점의 그림을 그렸다.
1866 투우
스페인 여행에서 받은 감흥을 화폭에 옮겨놓은 이 작품에서는 인상파적인 분위기가 전해진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마네는 투우경기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었던것 같다.
경기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것은 소가 아니고 말인 듯한데...
물레따를 들고 검을 든 마따도르가 등에 이미 단창이 꼽힌 소와 겨루는 것은 3막이다.
분명치 않은 기억으로 그의 시선을 스친 장면들을 조합해서 그린 듯하다.
1866 피리부는 소년
또 다시 살롱전 출품......... 낙선............
평면적이래나 뭐 어쨌대나.
좋기만 허구만...
1866 앵무새와 여인
쿠르베와 마네는 둘 다 기존 화단과의 이격을 좁히지 못하며 악전고투했지만 둘사이의 관계 또한 좋지 않았다.이 그림을 제작할 때 마네는 당시의 갈등과 경쟁관계에 있던 쿠르베를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1866년 살롱전에서 쿠르베는 <앵무새와 여인> 속에 여인의 누드를 발표함으로써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해 시비를 건다. "어때 이 애송아 ,누드는 이렇게 그리는 거야..."
마네인들 가만 있겠는가..
마네는 빅토린에게 정장을 입힘으로써 자기 나름의 대응을 하고 있다.
아카데미파들은 이 두 고집쟁이의 대립을 지켜보며 은근히 즐겼다고 한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항상 두 화가 때문에 프랑스 화단은 매년 들썩였고, 문제의 진원지인 두 사람이 그림을 통해 경쟁하니 팔장끼고 구경하기에 이만한 볼거리가 또 있었겠는가..
1867년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많은 작품을 거절당한 마네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귀스타브 크르베를 흉내내어 알마 광장에서 몽테뉴가로 들어가는 길모퉁이에 진열대를 만들고, 5월에 투우사와 투우 그림들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이곳에 전시했다. 그는 약 50점의 그림을 전시했지만 거의 인정받지 못했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도 못했다.
유럽회화사에서 쿠르베에 이어 두번째의 개인전으로 기록된다.
1867 The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
스페인 체류 중에 마네는 고야의 작품 <1804년 5월2일,3일> 연작을 보았을 것이다. 마네의 주특기중 하나는 선배들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오는 재주다.
작품의 내용은 나폴레옹3세가 내세웠던 멕시코의 막스밀리언황제가 미국과 공조한 멕시코 민병대에 체포되어 처형되는 장면이다. 헌데 마네가 표현한 작품속의 장난감 병정과도 같은, 감정이 사라진 처형집행 병사들과 나폴레옹3세의 이미지를 덧씌운 재장전 중인 병사는 분명 프랑스 군인들이다. 왜 그랬을까는 관객의 몫이다.
총구와 처형 당사자의 방향 불일치... 막스밀리언은 화면 밖에 있는 것인가?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를 향해 총을 쏘고있는것일까?
묘한 군집을 이루는 처형 구경꾼들...
차분한 화면 구성과는 달리 매우 슈르리얼리스틱한 작품이다.
1868 발코니
마네의 그림에는 소리가 없다. 마치 귀머거리의 예민해진 시각으로 바로보는 일상의 범상치 않은 무게들이 전해 오는 듯하다.
모노톤으로 이루어진 그림의 정적은 삶의 한순간이 정지영상으로 화석화되어 관람자의 무의식과 교감된다.
녹색기조의 발콘에 흰색의 야회복을 입은 두여인과 정장의 남자가 서로 다른 시선을 보내고 있는 묘한 구도의 그림이다.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양산을 든 여인이 마네의 부인이고(혹은 당시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파니 클라우스라고도한다), 그 옆이 부인의 음악친구이며 인상파 화가인 베르뜨 모리조, 남자는 화가인 기르메, 어둠속에 있는 소년은 아들로 전해진 레옹 코에라이다.
차림새와 사회적 지위에 비해 어쩐지 등장인물들이 연출하는 분위기는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인물들의 평면성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실제 자연광 속에서 일반적 시각인지상태는 이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우기 마네의 관심은 공간재현 같은 것이 아님을 빨리 간파해야한다.
1800-14 Majas on Balcony
1868 에밀졸라의 초상
에밀졸라는 마네를 이해하고 친분을 유지한 몇 않되는 지성인 중의 한명이다. 그를 위해 그려준 초상에도 올랭피아가 등장한다.
둘은 함께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파리의 위선에 분노했었을 것이다.
올랭피아 뒤로 흐릿한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인것 같다.
1872 Berthe Morisot Holding a Bunch of Violets,
1873 해변애서 부인 쉬잔과 남동생 유진
보불전쟁에 장교로 참가했전 마네는 사경을 헤메다 귀가한다. 가족들과의 한가로운 한 때가 전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1873년에 마네가 가족과 함께 어느 해안지대를 여행했는지는 확인하기가 쉽지않아 찾아보다가 그만두었다.
어쨌든 바람이 꽤 부는 날이고 다리를 뻗고 앉은 아내 수잔의 표정도 그리 신나보이진 않는다.
마네의 특징중 또 하나는 구사하는 기법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인데, 그때 그때 맘에 내키는 방식을 구사하고있다.
후에 소로야가 분명 마네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스페인 인상파 거장 소로야의 작품 몇 점 감상~~!!
1877 술 취한 여인
아직 담배불을 붙이지 않은 여인이 멍한 시선으로 불을 붙여줄 사람을 기다리는 듯하다.
오늘 저녁 누군가를 만나고..얘기를 나누고... 사랑도 나누고....
내일도 그 다음날도 저자리에 앉아있을 것만같다.
1882 폴리 베르제리의 술집
많은 작가들이 거울을 화면구성의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했었지만 마네의 이 작품 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 경우는 드믈다.
집중력이 낮은 관람객은 배경을 이루는 장면이 거울 속의 반영이라는 생각조차 못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예민한 눈을 가진 관람객일수록 뒤의 배경이 거울의 반영이 아니라고 느끼는게 맞을 것이다.
화면 오른편으로 등을 보인 여인의 반영은 한 남성과 모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엿듣고 싶지 않은가?
마네의 마지막 대작이다. 다리에 치명적인 질환을 가진 모네는 다음해 사망한다.
정말 화가 날 정도로 허무하다. 한 5년만 더 살아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던 드라마가 느닫없이 종영된 기분이다.
1882 폴리 베르제리의 술집 Detail
이대성의 <유럽문화산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