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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는 가정이 되십시오
20: 16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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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44-47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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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 사람으로 나치 독일의 치하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출옥하여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쓴 저서 가운데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화란을 점령하고 모든 유대인들을 체포하기 시작했을 때 코리의 아버지와 그의 세 딸들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따라 집안에 비밀의 방을 만들고 쫓겨다니는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그때 코리의 세 자매는 독일 게슈타포 비밀 경찰이 들이닥쳐 "유대인들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갖게 됩니다. 병약한 큰 언니 벳시(Betsie)는 모른척하고 대답을 피하겠다는 것이고, 위의 언니 출가한 놀리(Nollie)는 정직하게 대답하겠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녀는 자기 집에 숨겨놓고 변장시킨 유대인 하녀 아날리에스를 보고 나치 경찰이 "이 여자는 유대인 아니오?"라고 물음을 받았을 때 "네 그렇습니다. 유대인입니다."고 솔직히 대답합니다. 그러나 막내 코리(Corrie, Cornelia)는 숨겨준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9계명도 이웃을 해치지 않고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어떤 말도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코리는 그렇게 믿는대로 시행했고 나중에 그것이 탄로나 체포되어 감옥으로 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 자매의 입장이라면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시겠습니까?
벳시는 피하겠다는 것이고,
놀리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은 안하겠다는 것이고,
코리는 정의로운 거짓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벳시의 자리, 혹은 놀리의 자리, 혹은 코리의 자리중 어떤 자리에 서시겠습니까? 벳시가 되시겠습니까? 놀리가 되시겠습니까? 코리가 되시겠습니까?
오늘의 본문 출20:16은 아홉번째 계명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건강한 웰빙 가정을 만들기 위한 아홉번째 법칙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삶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마귀의 도구로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도대체 거짓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거짓은 시작된 것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요한 8장에서 이런 거짓의 근원을 폭로하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거짓의 근원은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8:44에서 예수님은 당시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이나 불신앙의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가 그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가 거짓의 아버지, 거짓의 원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아버지"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았습니까? 발명의 아버지 에디슨, 교향학의 아버지 하이든--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제가 문교부 교과서 편찬위원이면 하나 더 덧붙일 것입니다. 거짓의 아버지--정답은 사탄 마귀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처음부터, 인류 역사의 처음부터 거짓을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생각나십니까? 인류 역사의 처음 거짓말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은 처음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정녕) 죽으리라."(창2:17)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모습으로 첫 사람을 찾아온 마귀는 어떻게 말합니까? 창3:4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사단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둘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명백히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이 죽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마귀가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그가 처음 사람에게 처음으로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오늘날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보다 사단의 거짓말을 더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 마귀의 노예가 되어 여전히 거짓을 믿고, 여전히 거짓을 말하는 자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엄중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사단 마귀의 종노릇을, 마귀의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마귀의 종 노릇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거짓을 말하십시오.
C.S. 루이스 교수는 고민없이 거짓을 쉽게 말하게 된다는 청년에게 그러면 이후로 거짓을 말할 때마다 사단이 그의 등 뒤에서 빙그레 미소짓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충고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려보십시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사단 마귀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마귀가 하늘의 보좌를 향하여 이렇게 소리치는 음성을 기억하셔야 합니다."하나님, 들으셨지요. 저들의 거짓말을, 저들은 분명 나를 닮은 나의 종들이요, 나의 자식들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만일 우리가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출석하고 있고 아무리 그럴듯한 신앙고백을 한다 해도 실제적인 삶의 상황에서 특히 우리의 가정 생활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거짓말을 밥먹듯 쉽게 할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 고백과 상관없이 우리의 언어로 우리는 본성에 있어서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 속한 자임을 증명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왜, 우리는 거짓을 중단하고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마귀의 도구로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 하나님을 닮은 자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요한8:45에서 예수께서는 "내가(나는) 진리를 말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 예수의 제자라면 진리를, 진실을 말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다시 요한8:47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진리의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저는 종종 한국 교회의 최대의 딜레마는 한국 교회에 너무나 거듭나지 못한 명목상의 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지적한바가 있습니다. 그 현저한 증거의 하나가 소위 교회 나가는 교인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너무 쉽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저는 코스타 모임에 갔다가 손봉호 박사께서 강연에서 한국 사회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전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책임인 것을 지적하는 말씀을 아픈 마음으로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범법 정도를 비교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지난 2000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이 1,198명인데 같은 기간 일본에서는 불과 5명이었던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240배나 되는 수치로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서 무려 670배나 위증을 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잘 아시는 것처럼 일본 인구중 기독교인은 1%가 되지 못하는 0,7%임에 반하여 한국 기독교인구는 인구의 약 20%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의 정직에 기여한바가 전혀 없다는 통계적인 실증인 것입니다.
그런데 엡4:22이하에 보면 성경은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이 새 사람된 가장 현저한 증거가 거짓을 버리고 참 말을 하는 변화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22절에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24절에서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새 사람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닮아 의롭고 참된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삶의 첫째 변화를 25절에서 제시합니다.
자, 엡4:24-25을 읽어 보실까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의 인구 20%을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이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왜 이 사회의 정직도가 이 모양일까요? 그것은 20%라는 통계가 얼마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따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진실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예수님, 아니 진실이요 진리 그 자체이신 우리 주님을 닮아 가기 시작한다면 우리 사회는 변화를 외치지 않아도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변화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진실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닮은 자로 예수님을 닮은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닮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다. 우리는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을, 그리고 우리는 거짓말 할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말입니다.
3. 거룩한 영향을 끼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것을 다른 말로 거룩한 영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제대로 전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의 언어 생활이 진실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입으로 나오는 말을 믿을수 없는데 우리의 말로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어떻게 믿을 것을 기대할수 있다는 말입니까? 골4:6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여기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언어 생활로 두가지 단어-은혜와 소금을 강조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은혜로운 언어 생활, 즉 우리의 이웃을 세우고 사랑하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소극적으로는 부패하지 않은 언어 생활을 강조합니다. 가장 부패한 언어는 거짓된 언어입니다. 우리의 언어에 소금을 쳐야 합니다. 거룩하고 진실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이웃들은 내 입으로 나오는 예수의 복음을 신용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실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본래 이 9계명의 상황은 좁은 의미에서는 진실한 법정 증언을 가르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의 다른 단어로 사용하는 '증거'도 본래는 법적인 증언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행1:8에서"성령이 임하시면---증인이 되리라"고 하실 때 증인의 의미는 "순교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증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희랍어로 martus의 복수인 martures가 쓰여집니다. 영어로 순교자를 뜻하는 martyrs가 이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순교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 희생이 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것이 바로 본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당시의 거짓이 만연한 사회에 거룩한 충격을 주었고 거룩한 영향을 끼치게 한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의 메시지를 코리 텐 붐의 세 자매의 거짓말에 대한 문제의 제기로 시작했었습니다. 우리는 세 자매중 특히 둘째 였던 놀리(Nollie) 자매의 입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자매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할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오늘 날 모든 유형의 절대적 윤리가치를 포기한 소위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런 자매의 입장을 매우 융통성이 없는 입장으로 일축하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는 어쩌자고 자기 집에서 일하는 하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유대인 여인을 유대인이라고 정직하게 말해서 이 여인이 체포되게 한 것은 차라리 이웃을 함정에 빠지게 한 잔인함이라고 이 자매를 고발하고 싶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놀리 자매는 만일 그녀가 정직을 말한다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을 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대인 하녀가 잡혀간후 어떻게 그리도 어리석게 진실을 말해서 이웃을 곤경에 빠지게 할 수가 있었느냐는 항의에 놀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날리에스에게는 아무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독일로 가도록 놓아두시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내가 순종(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말씀에 대하여)했기 때문에 결코 그녀의 고통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6일후 어떤 사람을 통해 메시지가 이들 자매의 집에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이었습니다. "어제 밤 암스텔담에 있는 유대인 극장이 파괴되었습니다. 이 극장에 독일 게슈타포들에 의해 체포되어 임시 구금되었던 40명의 유대인들이 구출되었습니다. 아날리에스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코리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언니 놀리가 바른 판단을 한 것이라고 동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렇다면 저도 저의 언니처럼 저를 도와 주셔서 어느 때라도 어느 상황에서도 할수 있는 한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며 나머지 인생을 살게 해주셔요"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이런 결심,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말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결단을 주께서 진실로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설교 적용 질문>
1. 거짓 증거들에는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요?
2. 우리가 거짓을 말하게 되는 원인들을 말해 보십시오.
3. 우리가 거짓의 유혹을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4. 진실하게 살기 위한 방안들을 나누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