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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김상철 선교사
(1915- 2011)
1930년대와 40년대를 ‘계시의 시대’라고 한다면, 50년대와 60년대는 ‘선교의 시대’하고 할 수 있다. 1954년 협회가 창립되어 국내선교가 시작되었고 곧 이어 세계선교의 시대가 열렸다.
최봉춘 선생은 1958년 6월에 일본으로, 김영운 선생은 1959년 1월에, 그리고 김상철 선생은 1959년 9월에 미국으로 파송되었다. 해외 선교의 선구자들이다.
아래의 서신은 1970년 새해를 맞이하며, 김상철 선교사님이 주신 11년간의 미국 선교 활동 보고 말씀과 새해를 맞는 미국 식구들의 각오와 감사의 기도문이다. 1960년대 10년간 정성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둔, 위대한 선교사의 감개와 감격이 서려있는 생생한 현장의 소리다.
“ 1970년 새해를 맞으며, 하늘 용사로서의 우리의 결심”
미국에서 사역한 세 명의 한국인 파이오니어 선교사 중 한명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계신 모든 하늘 가족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10년간 원리 운동에 헌신한 소감을 나눌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며 특전이라 생각합니다.
1970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참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참부모님의 자녀이자 그분의 하늘 군사인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특별한 시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그분의 뜻을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사역하고 있는 국가, 주, 시, 그리고 지역에서 우리의 소중한 메시지를 가능한 한 빨리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우리가 사역하는 지역에서 인간과 만물을 온전히 복귀시키는 유일한 진리의 길이므로,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1959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우리의 메시지와 복음의 씨앗이 미국에 뿌려졌고, 그 씨앗은 지금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1970년부터는 해외의 식구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위대한 스승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우리 참부모님의 직접적인 지도와 감독 아래 더욱 열심히 활동을 하여 한국 식구들의 책임을 덜어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하나님의 복귀 섭리 완성을 위해 선택된 나라이므로, 우리는 한국 본부의 움직임과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민감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스승이시며 참부모님이신 주님의 지시와 계획에 귀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의 전사로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과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다른 계획을 세워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이해로, 서로에게서 배우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참부모님 아래 한 가족이 되어, 거룩하고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다가오는 1970년에도 전 세계 모든 하늘 가족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하며, 우리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인류와 우주를 복귀시켜 아버지께 기쁨과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970년 새해에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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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새해를 맞이한 미국 식구들의 결의 기도
“ 매년 새해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새롭고 더 큰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과, 준비되지 않은 경험들에 대한 두려움도 동시에 느낍니다. 아버지, 저 자신과 미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매일 섭리의 프론티어, 개척지에서 살아가며 항상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계적인 운동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만큼, 마음을 열고 열심을 내어,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믿음의 도약을 볼 만큼 담대해지기를 기도합니다.
“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우리가 알다시피, 1960년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동안 참부모님과 초창기 식구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많은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위대한 새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삶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한 깊은 감사로 이 10년을 마무리합니다.
1970년 이제 우리는 새로운 10년을 시작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난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새해 아버지의 세상을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해 나가겠습니다”.
- 팔리 존스 - (777가정 미국 초대 협회장 )
” 1970년은 새로운 10년의 시작이므로, 우리 운동과 세계 인류의 미래를 놓고 볼 때 이 10년을 성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식구님들과 참부모님 그리고 가족분들께 깊은 사랑과 축복을 전합니다. 이 10년이 그분들께 큰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주고,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닐 윈터보텀 - 워싱턴에서
< 김상철 선교사 간증 >
| 저는 서울에서 1915년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2대 독자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39년, 사랑하는 조국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저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에 진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했습니다. 제 마음속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언제나 종교였으며, 저는 종교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모은 다른 종교에서 좋은 점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섬기던 장로교회의 가까운 친구들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영적 현상에 대해서도 논의했고, 또한 한국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나오는 ‘진인’의 출현 예언, 불교 교리에서 신시대의 지배자로 묘사되는 ‘미룩존불’의 출현 예언, 그리고 성경에 약속된 ‘재림 주’의 출현 예언과 관련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심하고 열심히 연구한 끝에, 저는 이 여러 동양 종교에서 예언된 네 분이 모두 동일 인물이며, 언젠가는 누군간 모든 사람을 통일된 종교 또는 통일된 신앙으로 이끌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의 대학 동창인 엄덕문씨를 ‘통해 원리’ 운동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엄덕문 선생은 대구에 가서 ‘차원 높은 영적 집단’을 만나보라고 나에게 권유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 때 나름대로의 새로운 종교 사상에 자신만만했고, 교만했으며, 종교적·영적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나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지, 흥남 감옥에서 선생님의 제자가 된 박정화씨가 서울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와 종교적, 영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제가 던진 몇 가지 질문에 그는 제대로 답하지 못해 그냥 헤어졌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유효원씨가 서울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원리 말씀’을 들었지만, 놀라지도 않았고 기뻐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제가 종교와 영적인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유효원, 이창원, 엄덕문 선생의 권유가 계속되어, 저는 대구에 가서 선생님과 영능자들을 만나보기로 작정을 하고 1954년 1월, 혼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 갔습니다. 대구의 식구들은 저를 마치 귀빈처럼 환대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선생님의 초기 제자 중 한 분이자 영적으로 매우 뛰어난 옥세현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아버님은 대구를 떠나계셨기 때문에, 만나 뵙지를 못해 실망하고,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그날 밤, 옥세현 할머니를 통해 나에게 메시지가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상철아! 네가 30년 동안 진리와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하여 이곳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왜 순종하고 믿지 않느냐? 너의 사명은 온 세상에 진리를 전파하는 해외 선교사이며, 죄악의 세상을 대적하는 다윗 왕으로서의 역할이다. 내가 오랫동안 너를 위해 준비해 왔다. 그러니 순종하고 믿어라." 하나님의 음성은 옥세현 여사님을 통해 마치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던 것처럼 저를 꾸짖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저는 크게 놀라고 감복하여 순종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아버님께서 환한 미소와 밝은 얼굴로 저를 맞이해 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손을 잡는 순간, 온몸에 강렬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아버님을 직접 뵈었을 때, 저는 꿈에서 뵈었던 바로 그 분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고, 바로 제자의 길을 작정했습니다. - 세계기독교 통일 신령협회 HSA-UWC - 창립 서울로 돌아오니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버님께서 저와 이창원씨, 유효원씨로 삼위기대를 묶어주셨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서울 지역에서 새로운 식구를 전도하기 위해 영어와 한국어 ‘원리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부산, 대구, 서울 세 도시의 식구들이 온갖 박해와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새로운 뜻을 한국에서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 다섯 명의 교회 창설자 - 1954년 3월, 서울 지역에서 기반을 다지게 되자, 교회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54년 5월 2일, 우리는 작은 오두막 집에서 협회 창립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이창원, 유효원, 김상철, 그리고 유효원씨의 사촌인 유효민씨 다섯 명이 참석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세개의 단체명을 주시며, 가장 적합한 이름을 고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한자로 쓰여 있었는데, 그중 우리 모두가 동의한 이름이 새로운 섭리기관 "세계기독교통일성령회(HSA-UWC)"였습니다. 이 일을 마친 후, 우리는 북창동의 '세 개의 작은 문이 있는 집'(세대문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집 앞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이 작은 간판은 1954년 5월 3일에 걸렸지만, 세상은 이 오두막 집에서 시작된 날의 역사적인 날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교회 간판은 5월 3일에 걸렸지만, 선생님께서 공식적인 봉헌일을 5월 1일로 소급하여 선포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영혼과 모든 신앙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하나님의 기관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유효원 선생께서 현재까지 우리 협회의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협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후에 우리는 끊임없는 박해와 고난에 직면했습니다. 그 때 ‘세대문’ 집에 걸었던 그 작은 현판은 악의적인 파괴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수없이 땅에 넘어뜨려졌지만, 그 모든 시련을 견뎌내고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서울 본부 교회에 걸려있습니다. 그 작은 현판은 우리 모두와 함께 눈물과 고난을 나누었고, 때로는 천상의 기쁨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룩한 수많은 업적 중에서, 저는 1954년 서울에서 위대한 스승님과 함께 HSA(세기통)를 설립한 다섯 명의 생존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1954년 영국으로 선교를 떠나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 저는 사명감을 느끼고, 한국 정부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해외로 나가 새로운 메시지-“원리”를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한국 정부의 추천을 받아 12개월간 유엔장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영국으로 출국하였습니다. 1954년 8월, 영국 웨일스 대학교 스완슨 칼리지에 입학을 했습니다. 떠나기 전, 선생님께서 제게 특별한 성경 구절을 주시며 선교사 일기를 쓰라고 하셨고, 그 구절 옆에 선생님의 친필 사인을 남겨주셨습니다. (저는 그 일기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선교를 위한 영문판 “원리” 책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식구들이 “원리” 필사본을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유효원 협회장님도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아버님으로부터 “원리”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원리” 말씀을 영어로 번역하며 서양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영국 선교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1955년 영국 웨일스 남부에서 열린 사도교회 국제대회에 참석한 전 세계 3,000명의 대표단과 성도들 앞에서 강연했던 것입니다. 예상치 못하게 큰 호응을 얻어, 가능한 한 빨리 서울로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연설 내용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배포되던 그들의 신문 "사도 신보(Apostolic Herald)"에 게재되었고 <사도교회> 본부는 조셉 맥케이브 목사를 1956년 6월 서울로 파견하여 선생님을 만나 “원리”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1956년 6월 맥케이브 목사님이 『원리』를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정성철 장로님 댁 2층에 83일 동안 머물며, 최원복 선생과 김영운 교수로부터 원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선교 본부에 우리 운동의 현황, 특히 선생님의 원리 내용에 대해 자세히 보고했고, 그 보고서를 전 세계에 배포되는 "사도 신보"에 여러 차례 게재했습니다. 맥케이브 목사는 김영운 교수의 “원리” 영문 번역 작업을 도왔고, 책 제목으로 "새원리"의 영문 “The Divine Principle”를 제안하여 사용하도록 권유했습니다. 맥케이브 목사님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영문 초판 700여 부가 인쇄되어 배포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저는 외무부로 전출되었습니다. 4년간의 군 복무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미국 선교의 꿈을 갖고 기도하던중 미국 서부의 침례교 신학교 중 한 곳에 신학대학원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1959년 9월 19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도착하여 새로운 결심과 심정으로 미국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참부모님께서는 선교경험이 풍부한 김상철 선교사를 1970년 초 한국으로 부르시어 11년 동안의 미국 선교 경험을 공유하게 하시며, 당신의 세계선교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하신다.
김상철 선교사는 1970년 8월 참부모님의 명을 받고 귀국하였다. 그때의 감격을 선교사님은 일기를 통해 아름다운 글로 남기었다.
- 한국 방문 12일의 은사 (1970년 8월 21일 기록) -
[ 1970년 8월 8일 오전 11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저는 11년 만에 고국을 떠나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을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1959년에도 같은 항공사를 타고 시애틀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참부모님과 한국의 식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설렜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으로 오라고 하신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미처 끝내지 못한 지상과 천상의 임무 때문에 그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8월 11일(화요일).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주님과 자녀님들이 묵고 계신 호텔로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주님께 절을 올렸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몇몇 자녀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1959년 이후 처음으로 그분들을 뵐 수 있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맛있는 한국식 아침 식사 후,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의 10년 선교사 일지" 1959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서부 선교 활동에 대해 2시간 동안 보고를 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모든 책임자들도 함께 경험했을 험난했던 지난 시간의 경험을 이야기 했습니다. 한국 식구들의 헌신 덕분에 해외 선교활동도 가능했기에, 한국의 지도자들이야 말로 원리 운동의 실질적인 현장 지휘관들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식구들은 우리 주님과 하나님께 매우 귀한 분들이십니다. 한국의 식구들이 계셨기 때문에, 저는 주님 앞에서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말 큰 힘을 얻었습니다.
보고를 마치며 저는 미국 식구들을 대표하여 선생님께 특별한 선물을 드렸습니다. 그 선물은 101년 전인 1860년 5월 10일, 유타주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동부와 서부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박힌 "황금 못"에 관한 작은 명판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던 서부, 태평양과 대서양의 통합을 상징는 기념품이었습니다.
선생님과 한국 전역에서 오신 모든 지도자들과 함께 이틀간의 연수를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8월 12일. 저는 연수회에 참석했던 모든 식구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자녀들과 함께 자신의 차로 서울까지 태워주셨습니다. 해변에서 서울까지는 약 600km 거리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건설된 고속도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참어머님, 갓 태어난 흥진 왕자, 그리고 다른 주요 회원들에게 선물을 드렸습니다. 또한 미국 북서부 가족을 대표하여 작은 헌금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미래의 국제대학교 설립을 위해 최근 매입하신 10만평 규모의 삼림 지대로 데려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장차 세계적인 학자들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마친신 것을 보고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수택리 공기총 공장과 중앙수련소도 보여 주셨습니다.
공장의 모든 장비는 선생님과 식구들이 공장에서 직접 발명한 것이였습니다. 기록 영화를 보고, 공장을 둘러보고 모든 세부 사항을 설명해 주셨을 때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 있어 매우 깊고 정확하시며, 선생님의 계획과 지혜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깊이 느꼈습니다.
재단 이사장이신 김인철 선생님 댁에 이틀 동안 머물며 선생님과 가족분들과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8월 13일(목)에는 협회 본부를 공식 방문하여 새로 임명된 김영휘 협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이스라엘형 대표’ 축복가정 (36가정 중 12가정)들이 환영 만찬을 베풀어 주셔서 특별한 한국식 바비큐를 즐기며 몇 시간 동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또 다른 동료이자 통일사상의 이론 전문가인 이상헌 박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상한 박사님과 저는 김인철 이사장 댁에서 밤을 새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세계적 원리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매우 귀중했습니다.
8월 14일. 불교적 소양을 갖추고 강력한 영적 능력을 지닌 윤청심 보살 여사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1년 전 선생님과 함께 만났던 불교인 영능자입니다. 당시 저는 그녀와 많은 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불교와 영적 현상에 대해 같이 공부할 기회를 가졌던 인연이 있습니다.
윤보살은 ‘선생님과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여,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저에 대해, 10년간의 고난과 준비 끝에 올해부터 하늘 사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녀와 점심 식사를 마친 직후, 선생님과 함께 정평댐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해외 가족들을 위한 국제 연수 센터 건립을 위해 25만 평 규모의 부지가 매입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전 세계 제자들을 위해 세우신 계획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늦은 저녁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전주, 군산, 이리로 이동하여 각 지역 교회를 방문하고 모든 주요 사역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제 옛집, 젊은 시절 아내를 만났던 장로교회, 그리고 다섯 자녀가 태어난 집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제 삼위일체 중 한 분이시며 의사인 이상헌 박사님이 살고 계신 대전으로 갔습니다.
8월 16일(일요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왔습니다.
본부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서울 지역 연합예배에서 " 10년 미국선교 사역 "이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보고를 했습니다. 워싱턴 D.C.의 김영운 선교사님과 샌프란시스코의 최봉춘 선생의 헌신적인 사역에 대해서도 보고를 했습니다.
8월 20일. 오후 3시, 12일간의 감격적인 고국 방문을 마치고 귀미 길에 올랐습니다. 최원복 여사님과 본부의 지도자 한 분이 김포 국제공항에서 저를 배웅해 주셨습니다.
일본 도쿄에서는 아베 노리유키 회장 비서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고, 저는 일본의 중심 식구들과 이틀간의 일정을 함께했습니다.
오사카 교회 본부에서 60명의 훈련생들에게 "내가 어떻게 선생님을 만났는가"라는 주제로 간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주제는 제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가장 좋아하는 간증입니다.
일본 식구들의 엄청난 헌신으로, 일본 교회는 지난 10년동안 놀라운 성장 발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또한 번, 하나님 나라가 세계적으로 전파되 있음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은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서부의 모든 식구들에게 한국 방문의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계획하신 한국의 놀라운 1970년의 통일 사업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미국 식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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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섭리는 1972년 참부모님께서 미국에 도착하시는 때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버님께서는 '하나의 세계 십자군' International One World Crusade(IOWC) 팀을 조직하시고 '희망의 날' 전국 순회 강연을 시작하셨다. 국제적인 선남선녀들이 미국의 청년들과 하나되어 ‘하나님 아래 인류 한가족One Family under God’ 의 심정 공동체의 실체를 보여주는 새로운 섭리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래는 이 새로운 섭리의 생생한 역사를 기록한 김상철 서교사의 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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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녀 1월 16일. 오전 9시. 벨베디어 수련소에서 유럽 식구들은 미국 식구들과 함께 60일 수련을 받으며, 심정의 일치, 뜻의 일치로 협동의 훈련통해 새섭리의 주인공으로 준비 과정에 들어갔다. 선생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라는 제목의 첫 번째 메시지를 시작으로 매일 말씀의 은혜로 식구들을 인도하셨다.
17일. “우리의 조국”이라는 제목의 말씀.
18일, 19일. "혈통 전환"이라는 주제로 말씀하셨다.
1월 20일. 선생님께서 "전통"이라는 주제로 설교하시면서 앞으로 7년 동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
1월 23일. “우리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말씀.
“명령하기 전에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의로운 희생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는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사탄까지 구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주류 사상이다"
1월 24일.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주제로 말씀.
1월 26일. 말씀 "복음 전도자의 자세".
선생님 말씀이 끝나고, 한국문화자유재단 박보희 이사장께서 유럽 연수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박 이사장님은, 1973년 1월 15일 연수생들이 탑승했던 전세기를 2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 개척자들인 메이플라워호에 비유하며, 연수생들은 모두 섭리 역사의 중심인물들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 막중한 사명의 뜻길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했다.
저녁 8시 30분. 독일 협회장 폴 베르너씨가 간증을 했다.
1월 27일. 선생님은 “하나님의 슬픔”에 대해 말씀.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하나님의 슬픔”의 근원이며, 우리가 사탄을 제어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오후에는 닐 살로넨 회장이 미국 역사 특강을 하였다.
1월 28일. 말씀 “우리의 일상생활과 천국”.
오늘은 특별활동의 날이다. 수련생들이 대오를 맞추어 통일십사군 깃발을 들고 뉴욕 시내를 행진했다. 수련생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노래를 부르고 "만세!"를 외치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김상철 선교사는 궁금해하는 군중들에게 연설했다. 그는 “우리가 전 세계에서 이곳에 온 이유는, 도덕적, 윤리적, 영적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한 미국에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되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의 연설 도중 경찰이 와서 그를 제지했지만, 수련생들은 “통일교 만세”를 세 번 외쳤다. 김상철 선교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도 같은 메지지를 전했고, 수련생들은 만세를 불렸다.
1월 31일. 말씀 "우리의 미래 길": 통일 <원리>을 통한 기독교의 통일을 강조하셨다.
2월 1일 오전. "유용한 사람"이라는 주제로 말씀.
선생님께서 직접 유럽 식구들을 중심으로 기동대를 조직하고 팀리더를 임명하셨다.
2월 2일. 기념 촬영후, 각 팀의 차량이 하나씩 참부모님과 지도자들 앞을 마치 군사 퍼레이드처럼 지나갔다.
1973년 2월 8일. 참부모님 성탄 기념
- 아버지의 53번째 생신, 어머니의 30번째 생신 -
오전 7시. 캘리포니아에서 온 지도자들, 미국 축복가정들이 참석한 특별 축하 행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길고 화려한 생일 테이블에는 온갖 음식이 아름답게 높이 쌓여 있었고, 커다란 축하 케이크에는 "하나의 세계십자군 IOWC ", "미국 통일교회"라는 아름다운 글씨가 보였다.
선생님께서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라는 주제로 말씀하셨다. 오후에는 두 팀으로 나누어 한국 전통 놀이인 윳놀이를 했다. 아버님은 여성 팀을, 어머니는 남성 팀을 이끌었다. 어머니 팀이 이겨서 영화 관람권을 상품으로 받았다.
저녁 8시 30분 성대한 축하 행사가 열렸다. "만세" 삼창으로 축하 행사를 마무리했다.
2월 10일 아침. 선생님께서는 캘리포니아주 지도자 회의를 소집하시고 한국인 선교사 최상익씨(최봉춘선교사) 부부를 캘리포니아 주 책임자로 임명하셨다.
저녁에는 가족 친교의 밤이 열렸다. 마지막에 선생님 양위분께서 찬양 노래를 부르셨고, 모두 함께 춤을 추었다. 강당은 사랑과 행복, 기쁨으로 가득 찼다.
2월 12일. 저녁에는 부모님과 25명의 핵심 멤버들이 민주당의 핵심 인물이자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의 소유주인 벤저민 해리슨 스위그 회장이 부모님을 자신의 호텔로 초대하여 극진한 존경으로 환영 만찬을 베풀었다.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샌프란시스코 시장 집무실에서 샌프란시스코 시의 “명예시민의 열쇠”를 받으셨다.
이 열쇠는 약 200년 된 최초의 스페인 가톨릭 선교 열쇠의 복제품으로, 선생님은 샌프란시스코 시로부터 이 영예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스위그 회장은 아버님께 알리오토 시장을 소개하고 이 행사를 추진한 장본인이다. 한국의 코리아타임스와 조선일보 기자 두 명이 현장에서 이 행사를 취재했다.
부모님 양위분 행사후 뉴욕으로 출발. 벨베디어 수련소에 모인 22명의 네덜란드 식구들과 6명의 일본 식구들이 부모님을 환영.
2월 15일. 수련생들에게 "젊은 세대"라는 주제로 말씀.
젊은이들의 가치와 그들이 가진 특권을 강조하며, “ 문제아인 미국 젊은이들의 영향을 받지 말고, 그들을 ‘원리’ 문화에 흡수시키고 ‘원리 운동’의 젊은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격려하셨다.
2월 20일. 말씀 "심정의 회복(Return of Heart, Shim Jung)“
“ 복귀의 길은 혼자서는 갈 수 없다. 희생과 믿음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해야 한다. 복귀의 길에 있어서 믿음은 절대적이어야 하며, 굴복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박해 속에서도 변해서는 안 된다”.
2월 21일. 51명 일본 수련생 도착.
2월 27일. 한국 일화의 인삼차 샘플이 처음으로 벨베데레에 도착. 미국 경제 활동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3월 1일.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온 식구들을 중심하고 100일 특별 수련 시작. "우리의 결의"라는 주제로 말씀.
저녁에는 선생님께서 뉴욕 센터를 방문하셔서 60일 기간 동안 전도에 열심인 네덜란드와 일본 식구들을 격려해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분위기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며, 복장, 용모, 그리고 새 회원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언제나 복장을 단정히 하고, 사람을 대하여 친절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며, 감동적인 찬양과 기도, 그리고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와 심정으로 새 회원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3월 2일. "아버지 앞에서"라는 주제로 말씀. “하나님은 절대적이시기에 항상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것을 원하신다. 만약 누군가가 아버지 앞에서 온 세상을 위해 온전한 마음으로 책임을 지는 길을 간다면, 하나님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내려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자녀들이 사는 곳이다”.
3월 3일. "본래의 자아"라는 주제로 말씀. “본래의 자아는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나’로부터 찾아야 한다. ‘본래’는 외부가 아닌 내면을 의미한다. 본래의 본성은 변치 않는 믿음, 변치 않는 존재, 변치 않는 행위, 변치 않는 선을 의미하며, 그 누구도 무엇도 침범할 수 없다. 그러한 본래의 자아는 불변성, 불가침성, 유일성, 영원성을 지닌다”.
3월 4일. "아벨의 길"에 대해 말씀. “아벨이 가는 길은 희생과 제물의 길이다. 아벨은 믿음의 기초와 실체의 기초를 쌓으며, 제물의 삶을 살아야 한다. 복귀의 과정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아벨은 불평이나 불만이 아니라 감사와 고마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벨이 모든 차원에서 가인을 자연 굴복시킬 때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해방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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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선교사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2년간, 참부모님을 모시고 뉴욕 벨베디어 수련소를 중심한 미국 식구교육의 전반 과정을 총괄하였다.
아버님께서는 1973년 전년에 걸쳐 일본의 헌신적 식구들 700명을 미국으로 부르시어 동양과 서양의 식구들을 한데 묶어 수련을 시켰다. 수련을 받은 식구들은 교회장, 교구장으로 명을 받고 개척 전도의 파이어니어로, 개척자로 미국 섭리의 선봉이 되었다.
김상철 선교사는 1974년 8월 벨베디어 수련소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지도자 리더쉽 수련>에서 미국의 벨베디어 국제수련소에 동참한 참석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열정적으로 토로했다.
[ “제2차 세계 지도자 대회에서, “세계원월드십자군” (International One World Crusade), 떠오르는 새로운 세계의 지도자들을 만나 감개무량합니다. 여러분들이 세계적 리더십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 이 세미나에 참여하고자 이곳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역동적이고, 강력하며, 열정적인 리더십은 여러분 자신의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고 인류가 희망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은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일본, 한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국내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참된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 가족, 국가를 넘어 "하나님 아래 하나의 세계 가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지향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온 통일교 국제 청년들과 함께 미국에서 보내는 40일 동안 여러분은 참된 인간관계, 사랑과 심정의 세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위해 벨베디어 <세계훈련센터>는 통일교의 지도자들을 국제적 지도자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총괄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나는 100일간의 수련 기간 동안 세계의 젊은 지도자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모든 졸업생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서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로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밝은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벨베디어 ‘세계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에 진심으로 초대합니다. 언제든 여러분을 환영하는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다시 한번 따뜻한 환영 인사를 전하며, 미국에서의 40일 동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김상철 선교사 회고록 -
< 떠오르는 새로운 지도자와 세계의 운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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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선교사님은 40대에 미국 선교를 출발하시어, 16년 동안 청년의 기백으로 초창기 미국섭리 발전에 빛나는 활약을 펼치셨다. 선교사님은 1975년 베리타운 Berrytown에 설립된 통일신학대학원(UTS) 초대 총장으로 임명되어 1995년 퇴임하실 때 까지 후학을 가르치셨다. 이후의 이야기는 장을 달리하여 기록될 것이다.
김상철 선교사님, 수고하셨습니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