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의 종점인 하남 검단산역 3번 출구에서 동기들이 합류를 한다. 앞쪽으로는 검단산(657m)이 보이고 맞은편 팔당대교 건너편에는 예봉산(683m)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예봉산을 바라만 보아도 지난날의 추억이 새삼스럽다. 등산대장을 자청하여 동기들의 등산회를 창설한다. 회원은 열댓명 정도이다. 40대 후반의 나이들로 10여년간을 한라산 설악산은 물론이고 웬만큼 유명산은 거의 섭렵을 했을 터이다. 1년에 한번 4월이면 반드시 예봉산을 찾는다. 예봉산을 오르고 산행감사제를 하기 위함이다. 통돼지머리 수육부터 갖가지 제사상의 음식을 정성껏 차린다. " 제 * 회 산행감사제 " 프랑카드를 걸어놓고 " 지난 1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건강하게 산행할 수 있었음에 산신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라며 엎드려 큰절을 드리고 감사주(感謝酒)도 한잔 올린다.
오늘의 행선지는 검단산(657m)이다. 모처럼 간만에 참석한 재빠기를 비롯해 엉까페 막사리 버브바 뻐드타 까토나 여섯명이다. 간만에 기분좋게 검단산 산행을 하려던 이 마음을 접어야 하는 심정 누가 알리까. 80의 나이에 접어든 노객들이다. 언제부터인가 노객들은 의약품에 쩔고 의사 진료실을 노크하는 것도 일상화 된 현실이다. " 도저히 검단산은 오를 수가 없다. 앞으로는 나즈막한 산도 둘레길이 전부이다 "라고 두 녀석이 볼멘 소리를 받아드릴 수 밖에 방법이 없다. 산행은 불가하다니 둘레길로 발길을 돌린다. 오늘 노객들이 향하는 곳이 바로 제1코스인 위례 사랑길이다. 64Km로 조성된 4개의 위례길의 하나이다. 전철역에서 나와 검단산을 바라보며 잠시 걷노라면 산곡천을 만난다. 산곡천을 뒤로 하고 팔당대교 남단에서 창모루 나루터 도미나루터 배알미삼거리를 거쳐 팔당댐에 이르는총 5km 구간으로 약 1시간 30여분 가량 소요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길로 강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창모루 나루터는 남한강과 북한강을 따라 강원, 경기, 서울을 오가던 세미선과 상선이 쉬고 머무르던 여각, 객주가 많았던 곳이다. 검단산을 끼고 팔당댐 방향으로 향한다. 자동차들이 계속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다. 매연과 소음으로 짜증이 겹친다. 도로를 횡단하여 한강가로 내려선다. 제대로 잡은 위례사랑길이다. " 바로 한강이 일렁이는 물가로 내려감이 좋을 게다." " 거기는 길도 제대로 없으니 내려갈 필요가 없으니 혼자 내려가서 팔당댐 근처에서 만나자 " 왜가리 물오리 잉어 물고기들이 유영을 즐기는 강물의 모습을 가까이서 즐기려던 마음도 녀석들은 빼앗고 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노라니 벌써 오후 1시를 넘기고 있다. 자리를 펴고 둘러 앉는다. 막걸리 과일 도토리묵 김밥 빵 두유 쪼코렛 각자가 배낭에서 꺼내어 펼쳐 놓는다. 젓가락이 제일 먼저 많이 닿는 것이 겉절이에 곁들인 도토리묵이다. 뻐드타 제수님이 손수 힘들게 만든 것이다.
다시 털고 일어나서 팔당댐을 향한다. 바람도 가끔 세차게 불고 있다. 사랑의 둘레길이지만 연인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칠팔명의 산객들 한두팀이 지나칠 정도이다.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도미부부 설화가 있는 도미나루터가 있다. 도미는 평민으로서 의리를 아는 사람으로 그의 아내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절개가 있다는 여인이다. 이 소문을 들은 백제의 개루왕이 " 부녀자의 덕(德)은 지조 굳고 행실이 깨끗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 없는 곳에서 권력이나 황금으로 유혹하면 흔들리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 라고 도미에게 한 마디 한다. " 사람 마음은 헤아릴 수 없지만 내 아내 만큼은 죽어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개루왕은 그의 아내를 시험해 보기로 한다. 왕을 가장한 신하는 그 부인에게 " 네가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미와 내기하여 이겼으니 내일 너를 궁인(宮人)으로 들이기로 한다. 네 몸은 내 것이다."라며 동침(同寢)을 하려고 한다. 부인은 " 제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는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십시오." 그리고 계집종을 꾸며 대신 방에 들여 보낸다.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 된 왕은 계집종의 눈을 멀게 하고 홀로 작은 배에다 실어 강에 띄워 보낸다. 다시 도미의 아내를 끌어다가 강제로 간음하려 한다. 부인은 " 지금 남편을 잃고 홀로 남은 이 한 몸입니다. 지금 월경(月經) 중이라서 온 몸이 더러우니 생리가 끝나면 향기롭게 목욕한 후에 오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믿고 허락하고 만다. 부인은 곧바로 도망쳐 강어귀에 이르른다. 건널 수가 없다. 하늘을 향해 통곡하다가 문득 배 한 척에 오른다. 부인은 남편 도미와 재회를 한다. 부부는 풀뿌리를 캐어 먹고 살다가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䔉山) 아래에 이르른다. 고구려 사람들은 부부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옷과 음식을 준다. 부부는 그곳을 떠돌며 가난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실체가 극명한 뒤안길로 들어가서 살펴봄도 좋지 않을까. 조선시대의 근대사를 들춰 보아도 수 많은 비리와 동물적인 본성을 볼 수가 있다. 한 예를 들어본다. 장희빈은 궁녀에서 사랑 아닌 임금이라는 동물의 성욕의 대상이다. 기존의 왕후는 안중에도 없이 궁극에는 본처의 자리로 등극도 한다. 차기의 임금이 될 아들도 출산하지만 결국에는 폐위(閉位)를 당한다. 그토록 매일 밤을 성욕의 대상으로 찾던 그 남성 임금의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서오릉을 둘러 보면 남편이기도 하던 임금은 본처와 같은 능에 자리를 틀고 있다. 오롯이 성욕의 대상이며 후처이기도 했던 장희빈은 어디에 안장이 되었을까. 능(陵)이 아닌 서민들과 같은 묘(墓)에 묻혀있다. 조선 28대 임금 500여년 역사를 보노라면 장희빈과 그 임금과 같은 존재가 전부 이런 모습이 아닌가.
이처럼 전래 설화(說話)는 그저 사실이 아닌 설화일 뿐이다. 실제 인간들의 삶의 역사와는 극과 극인 것이다. 인간들은 언제든 쉽사리 정욕이나 탐닉에 빠지고 주위 분위기에 얽매이는 나약함을 일깨워 주는 교훈이 아닌가. 팔당댐은 언제 보아도 몸과 마음이 온통 빨려 들어가는 듯한 쏟아져 나오는 물보라도 놓칠 수 없는 비경이렷다. 오전 11시경에 출발하여 오후 2시가 가까워서 팔당댐 남단 삼거리에 도착이다. " 국토교통부장관도 개(犬)가 와도 통과할 수 없어요 " 팔당댐 경비초소에 근무중인 인간이 뱉어내는 한 마디이다. 몇 년전에는 댐 수문으로 거세게 쏟아지는 물살을 댐 위를 걸으며 시원스레 빠져드는 순간도 있었다. 경비초소 근무자라는 녀석의 망발(妄發)이 노객들의 기분을 저 댐 아래로 곤두박질 시키는 느낌이리라.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초소 경비원과 더 이상 말대꾸하기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몸을 추스리고 팔당댐 위로 걸으려던 마음을 저 강물 아래로 쳐박아 버린다. 오던 길을 재차 밟으며 팔당대교 남단으로 선회를 한다. 강동구 길동에 있는 맛집으로 향하련다. 양곱창구이로 제법 괜찮은 곳이다. 가격도 그런대로 저렴한 편이다. " 절대로 길동까지는 안갈거야, 너희들이나 가라 " 한 녀석의 반대로 어쩔 수 없다. 그곳을 원하는 의견이 대다수이나 함께 기분 좋게 마무리 함이 좋으리다. 근처의 한곳으로 자리를 잡는다. 몇가지 주문을 한다. 여전히 양곱창구이가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 모양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