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흥에 겨운 꽃들이 망울을 부풀린다. 춥고 긴 날을 용케 견디고 눈을 틔우는 연초록이 눈물겹게 곱다. 숨 쉬는 생명마다 갈길 바쁜 실바람의 가랑이를 붙잡고 호객행위에 분주하다. 여린 듯 강한 소생의 힘이다.
향교에서 혼례가 치러진다. 유학 중인 친구의 딸은 전통 혼례를 하고 싶다고 신랑 될 사람과 함께 귀국했다. 말을 타고 입장하는 신랑은 연지곤지에 족두리를 쓴 신부의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눈알을 굴린다. 신혼의 단꿈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둘의 입가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부부의 삶이 꽃길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꼬리를 늘어뜨린 꽃샘추위가 신랑 신부를 들까불며 위세를 떨친다.
초례청 양쪽에 걸린 청사초롱이 불을 밝힌다. 송죽 같은 절개를 지킨다는 소나무와 대나무, 장수와 다남多男을 의미하는 밤과 대추가 초례상에 올려졌다. 청홍색 보자기로 싼 닭 한 쌍이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를 응시한다. 청색은 신부 쪽, 홍색은 신랑 쪽이다. 녹색 치마에 빨강 저고리를 입은 신부의 모습이 보자기에 싸인 닭들 같다는 뜬금없는 상상을 하다 소스라치게 고개를 흔든다. 수십 년 전 혼례 때 입었던 연두색 치마와 분홍저고리가 재빠르게 눈앞을 스친다.
예로부터 신부의 옷은 녹의홍상이다. 녹색 치마는 자연의 생동감을, 붉은 저고리는 인간의 생명력을 담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 나타낸다. 생명을 잉태하는 여인의 몸에 불길한 액운을 물리쳐달라는 소망도 함께 심어 두었을 것이다. 녹색과 붉은색의 조화로움에서 단아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순결한 내면을 엿본다.
맏딸의 혼례복은 어머니가 손수 지었다. 미지의 땅으로 딸자식을 보내야 하는 불안과 아쉬움을 달래며 당신은 몇몇일 날밤을 지새웠다. 수많은 새댁의 예복을 지었던 당신이지만 자식이라는 이유로 몇 번씩 바늘침이 길을 잃고 손가락을 찔렀다.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잘 알기에 아린 마음을 침묵 속으로 밀어 넣었으리라. 어미의 안타까움이 꼿꼿한 바늘 끝에서 청홍색 사각 이불과 치마저고리 위로 한땀 한땀 새겨질 때마다 점은 선이 되고 면으로 넓혀갔다. 새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꿈을 펼쳐나가라는 당신의 바람을 촘촘하게 그리면서.
친정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어머니는 한복의 고름을 조심스럽게 매주었다. 첫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입고, 잘 간직했다가 죽을 때 관속에 넣으라고 당부했다. 일부종사에 대한 징표가 담겼으니 가슴에 새기라는 당신의 말에 물기가 어렸다. 자주색 고름을 따로 챙겨주었다. 청과 홍이 합하면 타고난 색은 없어지고 자주색이 되는 것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죽여야 새로운 가정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자식이 태어나면 고름을 자주색으로 바꾸어 달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땐 몰랐다.
신행하던 날 시댁 대문에 청사초롱이 걸렸다. 조상들은 우주 만물이 음陰과 양陽의 조화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청사초롱에 불을 밝히는 것은 부부의 화합과 새 출발을 훤하게 밝혀주라는 뜻이리라. 초롱의 은은한 빛이 불안하게 첫걸음을 내딛는 새댁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친정에서의 과거와 시댁에서의 현재, 새 가정에서의 미래를 기원해 줄 빛처럼 보였다.
반가의 규범은 지엄하다. 남존여비가 서슬처럼 번뜩이는 시가에서 여인의 자유는 압사당한다. 완벽주의자인 남편의 주장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대쪽이다.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여기며 벼락이 떨어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만큼 냉철하다. 앞뒤를 가늠하지 못하고 열정만 앞세워 설레발치는 아내의 생각은 늘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숨이 막힌다. 선후를 따지고 싶지만 막된 여자로 낙인찍힐까 봐 속만 끓인다. 집밖에서는 당당한데 대문만 들어서면 양처良妻의 족쇄가 발목을 조른다. 무시로 갈아엎는 남편의 쟁기질과 담금질에 본성까지 들먹거린다. 인내의 한계가 목 밑까지 치밀면 터지기 마련이다. 불꽃티는 전쟁에서 서로의 지원군을 불러 보지만 이부자리 송사에는 관여하기가 어렵다며 서둘러 철수해버린다. 긴 냉전의 시간이 짧은 생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남자는 하늘이라는 법도가 펄럭이는 한 여자는 땅으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부부로 엮이면 서로의 영혼까지 소유하고 싶은가보다. 상대의 색을 자신의 색깔 속에 넣으려고 안달한다. 두 색이 엉긴다고 타고난 색이 없어지는가. 여자가 먼저 죽어야 가정이 세워진다는 법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한쪽이 다른 쪽에 완전히 굴복해서 하나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홍이 없고 청만 있으면 둘이 함께라는 말은 허울 좋은 포장일 뿐인데.
태극기 중심의 청홍이 강렬하다. 두 색깔은 원안에서 서로 맞물고 바람개비처럼 회전한다. 붉은색을 위에, 청색을 아래에 둔 것은 하늘을 양으로 땅을 음으로 여기는 동양적 우주론에 기인한 것이리라. 무극無極의 동그라미 속에서 청과 홍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면서 둘이다. 자신의 색깔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음양이 서로 의존하며 조화를 이루라는 게 아닐까.
다투고 불편한 흔적을 남기면서 여기까지 왔다. 함께 뒤엉겨 애면글면하다가도 담장 밖으로 달아나려고 필사적으로 발끝을 세운다. 수십 년을 따로 살았던 세월보다 함께 산 흔적이 더 많은데 날마다 보면서 한뉘를 안 볼 것처럼 옆지기와 벋버스름하게 지낸다. 다른 색이 만나 서로 공존하기를 바라지만 반백 년을 싸우고 부딪쳐도 청은 늘 홍의 그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못마땅하다.
타고난 색깔이 고개를 쳐든다. 여인의 소리가 담장을 넘을까 조바심 내던 어머님도 가셨다. 어렵잖은 남편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매사를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이성이라는 파수꾼을 보란 듯 내동댕이쳤다. 벼락이 떨어져야 하는데 어째 조용하다. 갑자기 당한 하늘이 혼비백산한 것일까? 암탉이 목을 빼고 고함쳐도 괜찮네. 남자는 하늘이니 순응하고 따라야 한다는 지론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가슴이 설레어도 생은 찰나가 아닌가. 흐르는 세월에 올라앉은 청홍은 시간의 안팎을 드나들며 진종일 부는 바람을 맞는다. 청 속에 홍이 없고 홍 속에 청이 없다. 홍 곁에 청이 있고 청 곁에 홍이 있을 뿐이다. 삶을 나눠 가졌으니 서로의 어깨를 걸고 의지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야 하리라. 시간의 켜를 뚫고 청과 홍은 한 곳을 향하여 새롭게 화음을 맞춘다. 남겨진 삶을 후리며 미래를 향해 뭉근하게 행진을 이어가리라.
보자기에 묶인 닭 한 자웅이 초례청 위에서 나래를 친다. 수탉의 새빨간 벼슬이 하늘을 향해 곧추선다. 골골거리는 암탉의 옹알이가 초란 낳을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