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5:36-16:10)
갈등
1. 조권사님이 미얀마 선교보고를 잘해주셨습니다. 송집사님도 동행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뜻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사도행전 이야기 25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주일, 세계 최초의 교회협의회-예루살렘 공의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공적으로 허락되었어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거나 유대교 율법을 행하도록 강요하지 않게 했습니다. 세계 선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세계 최초의 교회협의회가 끝나고,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36절,“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은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한 곳을 방문하여 교회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고 사역을 할 수 있었어요. 바람직한 선교 방법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선교지 순회사역을 하면서, 한 번만 가지 않고 반복해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순회하는 선교지 신학대학이 많아져서 매해 가지는 못하고 수년에 한 번씩 순회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 초대 교회가 탄탄대로로 선교가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예기치 않게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15:37-39,“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 가고.”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의 갈등요소로 마가 요한이 동행하는 건만 전하고 있어요.
두 사도가 서로 심히 다투었고, 피차 갈라섰다고 합니다. 두 사도는 이후 다시는 만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키프러스 섬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시작으로 2차 전도여행을 시작했어요.(지도 영상)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지고 1차 전도여행 때 방문했던 구브로 섬에는 가지 않고 시리아를 거쳐 길리기아로 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그들이 갈라서고, 각자 자기 길을 갔을까요?
갈등 심화
3. 16장부터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일정이 소개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디모데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해주었어요. 2-3절,“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아버지는 헬라인 줄 다 앎이러라.”루스드라는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었다가 살아난 곳입니다. 바울은 그 고통을 당하고도 그 성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디모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인이라고 특정하고, 딤후1:5에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가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바울이 말한 것을 보면 유대인이었습니다. 누가는 디모데의 신앙과 인격이 탁월했음을 전해주었어요.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딤전1:2) 그의 평생 가장 신뢰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했던 이방 지역에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결정한 사항을 전해주었고, 여러 교회가 믿음이 자라고 양적인 성장도 이어졌습니다.
4. 누가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정을 대폭 생략하며 바울이 마게도냐-유럽으로 부르심을 받아 달려간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거쳐서 무시아에 이르렀습니다.(영상지도) 예루살렘에서 무시아까지 거리가 1700km 정도 됩니다. 한반도를 두 번이나 지나갈 거리였어요. 바울의 계획은 무시아에서 비두니아(터키 북동쪽)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유럽이 아니라 터키로 해서 중앙아시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누가는 성령께서 바울을 아시아에서(터키 북동쪽을 지나 중앙 아시아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바울 일행만 이야기한 것이에요. 다른 사도들이나 성도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바울을 인도하신 방법은 9-10절,“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을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이끄신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면 좋을까요?
실마리
5.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헤어진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의아한 일입니다. 왜 그들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성격 이야기를 해요. 누군가 AI(ChatGpt)로 요즘 유행하는 MBTI를 가지고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물어보니 바울은 ENTJ형, 바나바는 ENFP형이라고 답했답니다. 둘의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고 AI가 대답을 했는데, 일리 있는 말입니다. 바울은 외형적-직관적-사고적-판단적(카리스마적이고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행동형), 바나바는 외형적-직관적-감정적-인식적(열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개방적이며 광범위한 관심사를 가짐)
두 사람은 이렇게 다른 성격이 달랐습니다. 그들 사이의 갈등 요인을 누가는 하나만 소개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이 동행하기를 원했는데, 바울은 반대했다고요. 바울이 반대한 이유는 밤빌리아에서 마가가 동행하다가 중도에 하차한 일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런 사람과 다시 동행할 수 없다고 하며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다 세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두 사람이 마가 때문에 다투다가 헤어졌을까요? 사도행전의 내용으로 보면 61년(순교는 68년) 바울이 로마에 감금된 때까지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은 80년대입니다.
6. 오늘 본문의 배경은 50년 경 일이니, 누가가 30여 년 뒤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이 노년에 디모데에게 편지하며, 마가를 데려오라 그가 나의 일에 매우 유익하다고 말했어요.(딤후4:11) 바울과 바나바의 충돌은 단지 마가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현대 신학(modern scholarship)은 봅니다. 갈2:11-14에도 바울과 바나바의 충돌이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인들이 그 나타나자 자리를 피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도 그랬고, 바나바도 이런 외식적인 행동에 동참했습니다. 바울이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낯뜨겁게 책망했습니다.(ENTJ-대선배들을 부끄럽게 함)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었는데, 마가가 동행하는 문제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불과 같았던 바울의 성격이 늙어가며 수그러든 모습을 성경을 전해줍니다. 누가의 기록은 30여년 전의 일을 요약해서 전해주었어요. 하나님은 사람들의 약점으로 이렇게 선교팀이 나눠졌어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르게 사용하셨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그의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초점을 두고 전도여행을 계획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방향을 유럽으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시아를 버리시고 유럽을 선택했다고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유럽의 식민사관입니다. 일본처럼 식민사관이에요.
7.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은 다수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로-인도로 중앙아시아로 중국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시아 교회사를 따로 배울 필요가 있어요. 저도 박사과정에서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환상을 본 곳은 드로아였고,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한 곳은 마게도냐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환상을 보고, 성령님의 지시로 믿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네압볼리로 바로 갔습니다.(지도 영상) 5년 전, 터키와 불가리아 선교지 순회사역을 갔을 때 선교사님들이 이 두 곳을 모두 안내해주었습니다. 터키 선교사님이 드로아를.(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곳에서 가까움) 불가리아 선교사님이 마게도냐 지방(네압볼리,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까지요)
선교지 순회사역에 순종할 때에 보너스 여정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미얀마에서는 그곳 최초의 선교사(미국 침례교) 아도니람 저드슨 교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드슨이 양곤대학을 설립하였고, 대학 안에 교회가 있어요.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묻고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순종했습니다. 지난주 우리 교회는 미얀마에 다녀왔습니다만, 원래는 인도네시아 팔렘방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 프랑스와 콩고 선교지 순회사역 후 미얀마에서 와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그것도 선교사가 아닌, 현지인 부부가요.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순종했습니다.
복음 제시
8. 복음 전도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극히 제한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에서만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서 동일합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복음전도에 크게 실패했어요. 그의 인생에 쓰디쓴 경험이었습니다. 자기가 배웠던 헬라철학 지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려 했다가 낭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헬라철학을 버리고 십자가만 자랑하며 전했습니다.
고전1:21-23,“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제가 어린이들과 청년들을 만나 대화하고, 해외 신학생들을 만나고, 노인 등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기대
9. 오늘 사도 바울의 전도 이야기를 보면서, 그에게도 큰 약점이 있었음을 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든 다윗이든, 베드로나 바울 모두에게 약점이 있었더라도 그대로 전해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약함을 보시고 각기 사용하셨어요.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약점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성격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저도 바울형(ENTJ)입니다. 제가 이 성격이 아니면, 교회 개척을 못했습니다. 전도 현장에 혼자 나가서 전하거나 선교지 신학대학 순회사역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격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성격을 주신 것은 그대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성격을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부분에 참 좋은 본을 보여주었어요. 내 계획이 있었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실 때 내 계획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도 바울처럼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격대로 잘 살아가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소서.(오늘 찬양: 오랫동안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