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godemn.com/xe/?mid=seek_truth&category=17670&order_type=desc&document_srl=9578
고려의 강역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고려(高麗)의 영토를 한반도로 한정하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기록이 나오는데 살펴봅니다
<고려사>인종14년
[김치규와 유대거를 송나라 명주(明州)에 보내 서찰을 전하기를 상객 진서(陳舒)가 말하기를 서하국(西夏國)이 사신을 고려에 보내어 일을 의논하고자 한다. " 만약 중국의 울타리인 우리나라가 없어진다면 회남(淮南), 절강(浙江)의 언저리가 금나라와 인접되니 진실로 상국의 이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상국에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로 길을 향한다면 저쪽도 역시 이 곳을 경유하여 갈 것이니 그렇게 되면 연해(沿海)의 모든 고을은 경비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고려가 없어지면 송(宋)나라의 회남, 절강지역이 금(金)나라와 접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에서 금나라에 복수를 할 생각으로 고려에게 길을 빌려줄 것과 군사지원을 요구하는데 고려는 만약 송나라에게 길을 빌려주면 금나라도 이 길을 이용해 송나라의 해안지역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송나라가 금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고려를 지나야 한다는 소리인데 고려의 영토는 어느곳까지 인가 하는 겁니다.

지도- 고려장성(보라색선)
송나라의 답신의 내용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고려의 영토와 고려의 국제적지위도 알 수 있습니다.
*송나라의 답신
[듣건대, 금나라와 매우 가깝게 인접해 있다 하니 사절의 왕래로 인하여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의 안부를 응당 들었을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응전을 한다든지 귀국의 땅에 길을 빌어 금나라를 정벌(征伐)을 한다는 말은 모두 돈례가 자기의 의사로 한 말이요, 조정이 지시한 것은 아니니 마땅히 깊이 양해하여 스스로 의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송나라가 고려에게 휘종과 흠종의 안위를 알면 안부나 들었으면 한다는 말이고 고려가 송과 같이 금나라의 정벌을 거부하니 송나라의 자세는 아주 낮아집니다.
그 뒤의 말은 고려의 길을 빌어 금나라를 정벌한다는 말은 사신이 꾸며낸 얘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송나라가 금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고려의 땅을 지나야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글에서 말한 길이 바다길이면 남송은 고려의 땅을 이용할 필요없이 요동반도를 통해 직접 북진하면 됩니다.
그러나 바다길이라는 가능성은 남송의 회수, 절강지역이 금나라와 접하게 되므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회수, 절강지역을 금나라와 분리하기 위해서는 고려가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에 있고 그곳은 산동반도 지역입니다.
<자치통감>
扶餘城卽唐高麗之扶餘城也時高麗王王建有國限混同江而守之混同江之西不能有也 故扶餘城屬渤海國混同江卽鴨淥水
[발해의 부여성은 고구려의 부여성이다. 당시 고려왕 왕건이 나라를 세워 혼동강까지 차지해서 지켰다. 그러나 혼동강 서쪽은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여성은 발해에 속한 것이다. 혼동강은 바로 압록수이다]
*혼동강(混同江)- 요녕성 요하의 혼하
혼동강은 요하의 지류인 혼하로 왕건이 혼동강 서쪽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하므로 초기고려의 강역은 한반도에서 요동반도까지 입니다.
대진국(발해)을 멸한 요나라가 고려와 치열한 전쟁을 한 것은 발해만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금나라가 고려에 보낸 조서에는 금나라가 고려를 황제국(皇帝國)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의 조서
大金皇帝奇書于高麗國皇帝
[대금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만약에 고려의 영토가 한반도에 한정된 작은 국가라면 고려의 왕을 황제(皇帝)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륙의 역사에 명옥진이 사천성에서 하(夏)나라를 건국했으나 사망하자 그의 아들 승이 계승하지만 주원장에게 토벌당하는 사건이 있는데 <명사>의 기록에 명옥진의 아들 명승은 명(明)나라로 끌려갔다가 고려로 신분이 넘겨지게 된다.
<명사>'열전'
洪武五年理及歸義侯明升徙高麗
[홍무 5년에 리가 귀의후 명승을 고려로 보냈다]
*명승- 명옥진의 아들
<명사>
明年徙升於高麗
[명년에 승을 고려로 보냈다]
이 기록을 보면 명나라의 입장에서 명옥진은 반역자인데 주원장은 자신이 처리하지 못하고 고려로 보냈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명승에게는 귀의후라는 칭호까지 있었기 때문에 주원장이 함부로 못하고 고려로 보낸 것이므로 명나라가 고려(高麗)의 신하국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는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이고 대외적으로도 인정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고려의 궁궐에 있던 원구단(圓丘壇)에서 고려 황제가 제천의식을 했는데 동아시아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한은 천자(天子)에게만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격에 맞지 않는다' 해서 원구단을 없애버리지만 고려는 제사를 지냅니다.
*원구단(圓丘壇)-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
대륙에서 1945년에 고려태조 왕건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송사>에 왕건이 살던 지명이 있고 그곳이 개주이고 촉막군인데 한반도에는 개주, 촉막군이라는 지명은 없습니다.
이 촉막군은 당나라부터 성산군으로 불려왔고 후에 개주라 했으며 현재는 대륙의 사천성 개현이며 개주는 본시 예맥의 땅이며 고려가 있던 곳 입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개성현으로 되어있고 개성현을 보면 개성진이라 되어있는데 그렇다면 개주, 개성, 개성부, 개성진은 모두가 사천성 근처이고 사천성도 그 주위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기록도 있는데 고려말기에 철령의 요동때문에 명나라와 국경분쟁이 있었다고 <고려사>와 <명사>에 있습니다.
<명사>를 보면 철령(鐵嶺)은 주(周), 진(秦)시대에 숙신의 땅이고 한(漢), 진(晉)시대는 읍루의 땅이라 했고 금나라때는 연평부(延平府)관할이라 한다.
*연평부- 섬서성의 연주(延州)와 평주(平州)지역
개원(開原)은 원(元)나라때에 개원(開元)이었으나 명(明)때에 원(元)자를 원(原)자로 개명한 곳이고 감숙성지역이며 명나라때 개원성(開原城)에 주치소를 설치했다.
그렇다면 고려의 영토는 동북삼성지역의 남쪽이 아니라 영하성 중위현지역이 고려의 영토였다는 것이 됩니다.
또 고려를 한반도에 국한시키기 힘든 이유로 조선(朝鮮)시대의 한반도인구가 100만이 안되는데 고려인구는 210만이라면 그에 맞는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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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촉의 왕건묘
왕권 집권기간이 12년 정도이며 전촉왕조는 18년 정도의 짧은 왕조이다.


현지인은 가우리(고려)묘라 불리우지만 중국정부는 전촉 왕건의 묘라 지칭한다.
양측에는 12위의 역사상(力士象)이 새겨져 있고 동, 서, 남의 3방에는 24위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기생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동작의 특징을 보면, 각각의 그림이 각기 다른 자태와 조형의 미를 보여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여기에 새겨진 전통악기들은 당5대 음악사의 진귀한 유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왕건의 묘는 1942년에 발굴이 되었고, 1961년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현재 그의 무덤은 길이 80m ,높이 15미터의 묘실이 남아있고, 전반적인 건축구조가 매우 뛰어나다. 왕건 묘는 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무용, 음악 등 예술분야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18년 집권 왕조의 유물크기론 너무 화려하다
본인은 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기로 하였다 .
전촉 왕조기간이 18년동안이고 아버지 왕건이 죽자 아들끼리 왕위다툼을 하다가 막내 왕연이 3년 집권하다 살해당한다.
그러면 왕건의 묘는 누가 만들어 줬을까?
아버지 왕권이 죽는동안 왕위찬탈하려던 아들들이 만들어 줬을리 무방하고
왕연이 집권하자 마자 만들어 줬을까? 그 큰 능을 세금궈둬 만들어 줬을리 없을것이다.
현지인은 그능을 가우리(고려)묘라 불리우지만 중국정부는 전촉의 왕건묘라 지칭하고 우리 회원분 몇명도 중국정부의 설명에 동조한다.
이에 본인의 결론은 절대 전촉의 왕건묘가 아니라 생각된다. 현지인 말처럼 고려의 유산인것이다.
시간관계상 나중에 살을 덧붙이기로 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 능말고 전촉의 유물을 밝혀 주시는게 더 빠르실듯합니다. 저의 시간관계상 님 질문에 답할 처지가 못됩니다. 님이 궁금하신건 직접 찾으시고 반대자료를 가시고 있으시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위키백과는 아니므로..
@솔길 제가 의문점을 갖는 전촉의 집권기간이나 그의 세력으로 만든 유물의 능으로 보이시나 이걸 말하는데 이 중요한 의문점을 흐리십니까? 현지인은 고려능이라고도 하는데 말이죠
@솔길 누가 답답한지 모르겠습니다. 현지인은 가우리 묘라 하는데 님은 전촉의 묘라 하시고 전,, 전촉의 왕건 묘치고
짧은 집권내의 능이 아니라다라는 점입니다. 논점을 흐리지 맙시다.
@솔길 제 의문점을 자꾸 회피하시는데 .. 전촉의 왕건묘가 맞습니까?
@솔길 님의 인격이 드러나는 반말은 삼가해주시고 제 질문에 답을 못하시면서 무슨 답을 내노라 하십니까? 다시 질문합니다. 전촉의 왕건묘가 맞습니까? 현지인은 고려묘라 하는데 말이죠
@솔길 전 전촉의 왕건묘라 안보고 있습니다. 전촉의 왕건과 고려의 왕건이 동일인물이 아니라 봅니다. 동일인물이었다면 중국의 전촉역사에서 잠들어야만하지요 그리고 고려 왕건의 묘인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는 한 확정하기는 힘들지만 고려인의 묘가 맞는것 같습니다. 현지인들도 고려묘라 지칭하는것 보면은요 그리고 제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자세하게 님께 설명드릴 처지는 안되는걸 님도 아실꺼라 봅니다. 다만 파편의 역사로 유추하거나
자료를 모아 우리의 역사를 찾는 행위가 잘못이라 생각이 안듭니다. 중국의 역사 바꾸기작업에 되려 우리가 긴장해야만 하지요
@솔길 중국땅요? 그시절 고려땅이였을수도 있고 한반도내도 고려땅이겠지요 확정적 역사는 없습니다.
계속 발굴되는 유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되겠죠. 다만 중국이 훼손이나 조작등으로 우리 과거역사가 지워지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는게 안타까울뿐입니다.
@솔길 님 질문에 고려 개경이 정말 어디일까? 중국에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하고 조사하고 싶어집니다. , 제 약속시간상 개경조사는 차후에 미루기로 하시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홈키파 http://cafe.daum.net/sisa-1/f8lD/753
고려 수도 개경은 중국 하남성에 있었다 .
@우전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시간나면 대륙 개경에 대한 다른자료를 찾아볼까합니다.
@솔길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 <천마산天麻山>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산속에 들다 길 잃어 숲속에 떨어졌는데,
높은 바위 쳐다보니 몇 백 길이 되는가.
나무를 헤집고 가니 원숭이들이 서로 싸우네.
창바위에 말을 세웠으니 누구를 치려는가.
북바위소리 없으니 무엇에 놀라리,
사람소리에 산골자기가 응락하는 것 같네.“
천마산에 원숭이가 나온다.
그러나, 한반도 천마산에는 원숭이는 커녕 어느 열대동물도 보이질 않는다.
이규보의 시의 천마산은 대륙의 천마산을 말하는 것이다
대륙의 황하이남은 아열대에 속하고, 원숭이도 많이 산다고 한다.
그 대륙의 천마산은 바로 하남성 숭산의 북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이다
숭산은 황화이남
@솔길 천마산을 말해서 천마산에 관한 시를 올렸지요..
고려는 도읍지를 여러번 옮겼다고 하더만요.
중국현지의 왕씨족보를 보고 진실을 밝히면 되겠군요.
또한 고려왕건이 거기에 있다면 많은 왕들이 거기에 묻혔을 거라 보입니다.
교차/크로스되게 짚어야된다고 봅니다.
중국에 왕씨가 어마무시하게 많답니다^^
@석림 우리나라 왕씨성 거의 없고 방송인 하시는 분들중에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거의 흑치, 독고, 제갈 성씨도 다 중국 성씨 잖아요!
조선 초 멸족령을 피해 왕씨들이 王과 비슷한 글자인 田, 全, 玉, 車, 申 등으로 변성하였다는 설이 있다. 왕제구 개성왕씨중앙종친회 사무국장은 "그런 설이 있다. 하지만 다 그렇다는 확신은 없다"고 한다.
조선초 왕씨 멸족령은 역사적 사실이므로, 만일 대륙에 고려와 조선이 지리적으로 동일한 지역에 있었다면 대륙에 왕씨들은 멸족이 되어 그수가 적어야 합니다.
허나 현재 성씨 분포로 보아 과거 왕씨 멸족은 한반도 내의 일로 추정되며, 이런 증빙으로 대륙고려와 대륙조선은 실증이 어렵습니다.
@대발이 멸족령으로 많은 수의 왕씨들이 대륙으로 이주하였다.
라는 주장은 대륙에 이미 조선의 국력과 비슷한 정치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이면 집단망명인데, 이 또한 중국 왕씨 거주 지역이 조선의 영역이 아님을 방증합니다.
@에크만84 한국에도 왕씨들이 많은 집성촌이 이었는데 다 고려태조 왕건을 시조로하는 개성왕씨입니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의 해당 대목의 번역본이 차이가 좀 나는군요.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bookId=%E4%B8%96%E5%AE%B6&types=r#detail/kr_016r_0080_0080_0010
대륙고려설 주장자들은 고려사 원문 해석을 과연 100% 자신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의 묘가 사천성 성도에 있고, 그 일대가 고려라면, 굳이 송나라의 회남과 절강의 연안의 고을들이 금의
침입을 우려해 방비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국 내륙을 통해 곧바로 금이 송을 침범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위 "대륙 고려"를 공략한 후 내륙을 통해서 말이죠.
태조 이후 인종때까지 소위 대륙고려의 강역이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
할려나요?
인종조 해당 기록에서 고려는 금과 접(接)해있다고 적고 있지만, 만약 금이 송.고려.하국 3국
이 모의한 것으로 생각해 고려를 치게 되어 고려가 없어지게 되면 반도의 고려 서쪽과 제주도에 면한 중국의
절강과 회남이 금과 황해를 사이에 두고 이웃(隣)하게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렇지않고서야 굳이 소위 대륙고려를 치고 내륙으로 송을 공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남과 절강의 연안지역으로 송을 공격할 것이라는 금 때문에 연안방비를 송도 걱정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청량산 고려와 금나라는 뭐 형제의 나라란 그런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보다 유물과 유적 현지 인들의 증언이 필요하죠.
@청량산 고려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때 전촉왕 왕건은 죽고 바로 그의 아들이 이어받았읍니다. 완전히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입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고려태조 왕건이 30년정도 젊습니다. 전촉왕 왕건(847~918), 고려태조 왕건(877~943). 전촉이라는 나라는 907년부터 925년까지 18년간 존속하고 후촉이 뒤를 이어 934년부터 965년까지 21년간 사천성을 지배하게 됩니다.
@우람 그래서 의문점을 갖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전촉역사가 18년이고 후손도 살해 당했습니다. 묘를 거대하게 꾸밀 시간이 없었다라는 점이고 후촉이 전촉 왕이 귀하게보여 화려한 무덤을 만들리 무방하다 보여집니다. 그럼 송나라가 만들어줬다 ??
전촉의 왕건묘라면 현지인들은 왜 가우리묘(고려묘)라 칭하냐는거와... 왕건묘라면서 영릉이라 바꿔치기 하는
그런 중국정부의 행동도 괴이하고요
철저하게 조선반도로 묶으려는 노력이 눈물겹스무니다. 잘 훈련된 조직이무니다. 실증된 역사만이 진짜 역사무니다. 우리는 과학적인 증거를 우선 하무니다. 유적과 고문서를 유리한 것만 남기고 전부 불태웠스무니다. 감히 조선 대역사를 찾는 찾다니요. 웃기무니다. 그래도 자꾸대들면 니뽄도로 호박을 단 한번에 짜르겠스무니다. 절대 협박이노 아니무니다. 히히
ㅎㅎ 반도사관이 중요한가봅니다. 반도밖으로 튀어나가면 어떤그룹 아니면 어느나라가 큰 봉변을 당하는가봅니다.
"대륙조선,대륙고려설" 사관의 반대가 반도사관이 아닙니다. 전혀 논리에 맞지않습니다. 오히려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와 증거로 중국이 한국(대륙조선)이라고 주장해봐야 사대매국이라는 소리만 듣습니다.
@우람 반도로 묶어두는게 반도사관이 아니고 머라합니까? 논리요? 역사의 파편을 이어가는게 비논리라 생각하십니까?
님은 고려가 대륙에 없다 확신하는 증거로 논리를 만들어 주세요 사대? 우리 조상의 얼을 찾는게 사대라구요?
조상께 절하면 사대집안이 되겠군요 .. 조상의 자취를 찾는게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질이군요 ㅎ 논리 참 이상합니다.
@홈키파 고려가 한반도에만 있었다고 주장하지않지요. 어떤 영토 점유지역은 한반도를 넘어갈수도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대륙고려"라고 말할수 없지요. 인천대학의 어떤 분은 논리적인 여러 사료등 정황증거를 가지고 고려말기 압록강넘어 만주 지금의 심양부근까지 점유하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것으로서 그것을 대륙고려라고 말하지않습니다. 전촉왕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다고 혹세무민하면서 고려/조선이 전중국대륙을 지배했다고 말하고 중국역사자체가 대륙조선역사라고 하는것이야말로 정통역사를 개똥으로 만들려는 저의를 가진 민족역사말살, 사대매국,혹세무민하는 행위입니다.
@우람 전촉왕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다는 말이라뇨?
전 그런글을 올린적이 없습니다ᆞ
뭐가 정통인가요? 꾸낏꾸낏 반도로만 집어넣는게 전통요? 확실한 증거가 쏟아져도 변화가 없을 분이라 판단됩니다 ᆞ더불어 앞으로 제글에 메모리 낭비하시는 일은 하지마시길 권고드립니다 ᆞ 서로 피곤할테니말입니다ᆞ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세상은 다수설이 지배한다... 참으로 위험하고 슬픈 현실이네요 또 사실이기도 하네요. 다수가 잘못된 교육울 받아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바늘로 죽을때까지... 참으로 잔인무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관이 방어를 하고 새로운 시각이 공격을 해야 이치일진데... 오히려 새로운 시각이 방어를 하고 반도조선 사관이 공격을 하는 형태네요.
씁쓸하게 재밌습니다...
고려의 행정구역인 주, 군, 현의 수는 고려사에서 584개, 조선의 행정구역 수는 327개에 불과하는데 이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합니까? 반도사관에선 고려영토가 여진에 가로막혀 조선보다 1/3 정도 더 적는데 행정적으로 고려가 후대 조선보다 더 상세히 쪼개 관리했다는 말인지요?
거란이 어원판관(御院判官) 야율골타(耶律骨打)를 보내 동북 여진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해왔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 고려사 세가 현종 17년 윤 5월 - 반도내 고려 밑 거란이 존재했습니까???? 이것은 반도사관에서 모순이 되지않나 궁금합니다. ..
참으로 불쾌한건 정론직필 사이트에서 무슨 해악질을 한거마냥 죄인시 하시는데 분명 고대역사 카테고리내에 고대사에 대한 퍼즐같은 조각을 들고 이러한 설이 신빙성이 있어 게시한 글에 매국노요,, 사대질이요 사이트분란자요
별 어거지로 매도하시는게 정당하게 느껴지시는지 그게 더 아이러니합니다. 전 분명히 게시할때 명확한 출처와
제 의심을 함께 표명합니다. 사이트내의 조건을 제가 무시라도 합니까? 자기생각에 안맞는다고 사이트반동분자로 주홍글씨를 써가시는 회원분들이 전 더 이상하다 생각이듭니다. 반대의견이 있으시면 그에 걸맞고 게시하시면 될일이지요 그리고 전 반도사관에 염증을 상당히 느끼고있습니다.
@홈키파 강단 사학자들이 이병도 제자인 김원룡 제자들..현재 5세까지 새끼를 쳐서
70년간 왜곡된 자료를 가지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겠지요
중요사실은 전부 거짓역사라 보면 맞겠지요
또 뉴라이트 학자와 사회 지도층 뉴라이트 회원들도 친일파들..
자한당.바른당 80%는 한국인으로 개명한 왜놈 후손이거나 친일파라고 봅니다
민주당일부와 국민당도 마찬가지겠지요
철수도 친일파 자손
제인 부친도 일제시대 북한에서 공직에 근무했는 모양
지배층 1%중에 80%는 왜놈 자손이거나 친일파라고 봅니다
적폐청산도 시간만 끌다가 꼬리 자르고 끝낼지 모르지요
왕조실록 외에 지리지..기타 중요 역사서는 전부 왜곡 했다고 봅니다
원본공개후 다시필사해야
@우전 http://cafe.daum.net/sisa-1/f8lD/761
대륙에 있었던 우리 조선의 황궁
대동기문 이라는 책에는
숭례문이란 명칭이 섬서성 자오곡 고개 정상에 있다고 나온다.
장안의 정남이고 장안에서 천리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림38)
"대륙조선설"논란은 전혀 영양가가 없는 시간낭비, 메모리낭비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ᆞ 이글은 대륙고려입니다 댓글로 메모리 낭비와 시간낭비 마시고 관심도 꺼주세요